April 22,  2012

 

 

 

 

 

 

 


주 앞에 기도해 나를 향한 주 뜻
모두 이뤄지길 기도해 무릎 꿇고
먼저 그의 나라 의를 주께 구하리라
나 기도해 주님께
주님 뜻이 다 이뤄지길
나 기도해 주님께
주님 나라가 임하기를
무릎으로 주께 기도 드리네


주 앞에 기도해 나를 향한 주 뜻
모두 이뤄지길 기도해 무릎 꿇고
먼저 그의 나라 의를 주께 구하리라
나 기도해 주님께
주님 뜻이 다 이뤄지길
나 기도해 주님께
주님 나라가 임하기를
무릎으로 주께 기도 드리네


주님 우리에게 주 영광 보이소서
주님 우리에게 영원한 그 나라
나 기도해 주님께
주님 뜻이 다 이뤄지길
나 기도해 주님께
주님 나라가 임하기를
무릎으로 주께 기도 드리네 

 

 

 

 

 

 

 

처음 그의 이야기에 귀가 열리던 날

하늘이 열리고 땅이 노래하던 그날

 

내 몸은 어디론가 높이높이 날아오르고

가슴엔 감동이 물결처럼 흐르고

나의 어느 깊은 곳에서 울리던 그 목소리

 

"이제는 기도 하거라" 

 

 

 

 

 

 

 

 

 

 

 

 

 

제가 정말로 늙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나이를 먹도록 뭐했나 싶기도 하구요

내가 싫어하던 늙은이 행세를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갑자기 잠도 잘 오지 않고

정신이 몽롱하기도 하고

깜짝,깜짝 놀래기도 하고

멍 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살아 오면서 아주 싫어하던 늙은이 짓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게 될까 봐

걱정이 많습니다.

 

하나님 !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젊었을 때처럼

여유 있고 유머가 있게 하소서.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모두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은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 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하여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예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 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 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 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지 않지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이라는걸

잊지 말게 하소서.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빨리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바르게 말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저로 하여금 곱게 늙기를 힘쓰는

늙은이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부어주신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이 나라와 겨레에게 몇 배로

돌려주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젊은이나 늙은이나 어린이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사랑을 받는

그런 늙은이로 나머지 삶을 살아가게

나머지 걸음을 이시옵소서.


하나님 ! 감사합니다.

 

 

 

 

 

 

 

 

 

 

 

시커먼 가죽이 발목까지 차오른 군화가 포악스런 밑창으로

신발들을 짓밟고 다녔다. 짚신은 찢기었고 부드럽기 짝이 없는

고무신은 쪼그라들어 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점잖던 신사 구두도 짓이겨져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군화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빼앗았다.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발 밑에 있어. 잘난 체하던 저 구두도

내 앞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군 !'

 

군화는 평소 자기를 업신여기고

구두를 사랑했던 한 아가씨를 찾아갔다.

 

"이봐, 아가씨 !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얻었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자는 오직 나 뿐이라구. 나와 결혼해 줘 ……."

 

"그럴 수 없어요."

"그럴 수 없다고?"

 

"그래요. 설사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해도 당신의 그 모습으로는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없어요. 결혼식장에는 오직 정장을 한

구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모르세요? 만약 당신이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먼저 당신의 것을 버리고 구두가 되세요."

 

아가씨의 말을 듣고 군화는 고민했다.

 

그러나 군화는 차마 자신을 벗을 수 없었다.

군화를 벗는 순간 자신 밑에 깔려 있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갈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군화는 힘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지만

진정한 사랑은 얻을 수 없었다.

 

한편, 아가씨는 짓이겨진 구두를 일으켜 세우고

정성스레 광을  내어 비록 풍족한 삶은 아닐지라도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탐욕으로 권력을 가질 순 있어도

진정한 사랑은 얻을 수 없다. 

 

- 인생 다이어리 중에서 - 

 

 

 

 

 

 

 

 

 

 

 
 

 

이 칼럼은 2008년6월에 쓴 [장재언 칼럼]입니다.

 

나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벤자민(Walter Benjamin)이 쓴 [벤자민의 문예이론]이란 책의 한 대목을 읽었다.

 

어느 나라 국왕이 어릴 적 맛보았던 산딸기 오믈레트를 다시 맛보고 싶어, 유능한 궁중 요리사를 불러 명령하였다.

 

[ ... 50여 년 전 짐의 선왕은 동쪽에 있는 나쁜 이웃 왕과 전쟁을 했었지. 그때 그 왕이 싸움에 이겨 우리들은 도망을 쳐야만 했어. 그래서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망을 쳐 드디어 어느 날 어느 어두컴컴한 숲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때 우리는 숲 속에서 길을 잃어 허기와 피로에 지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어느 조그만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었지.

 

그 오두막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그 노파는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 나가서 곧 무엇을 들고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산딸기 오믈레트였어. 내가 그 오믈레트를 한 입에 넣자마자 나에겐 기적처럼 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고, 또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어. . . . . . . . . .

 

그러나 짐이 훗날 이 요리가 생각이 나서 짐의 전 제국을 뒤져 그 노파를 찾아보게 했지만 그 노파는 물론이고 그 노파의 산딸기 오믈레트를 요리해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대가 만약 짐의 이 마지막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면, 짐은 그대를 사위로 삼아 이 제국의 후계자로 만들 걸세. 그러나 만약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대는 죽어야만 하네........]

 

그러나 요리사는 한참을 생각 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폐하! 정 그러시다면 교수형리를 곧장 불러주십시오.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레트 요리법과 하찮은 냉이에서 시작해서 고상한 티미안 향료에까지 이르는 모든 양념을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레트를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마지막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레트는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에 드셨던 모든 양료(養料)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 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  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기 때문입니다..... ]

 

결국 요리사는 목숨은 건졌지만 파면되고 말았다.

 

벤자민은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술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뜻하는 말, 지금은 이미 사어(死語)가 되어 버린 아우라(Aura)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라 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 1936년 벤자민의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에 등장한 예술 개념이기도 하다. 벤자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를 [아우라의 붕괴]라고 정의한 것이다.

 

아우라는 유일한 원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므로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복제되는 작품에는 아우라가 생겨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아우라는 종교 의식에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을 말하기도 했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유일한 현존성이다. 아우라는 복제품이나 대량생산된 상품에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유독 예술작품에서 일어난 [아우라의 붕괴]를 만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이란 시대는 월마트나 코스코에 쌓여있는 똑같이 생긴 물건박스, 맨스클럽에 줄지어 걸려있는 기성복, 페이리스 슈스에 진열된 기성구두, 하염없이 복제된 마리린 몬로. 대량생산. 복제의 복제. 기술마저 복제되고, 논문도 복제되고..... 아우라를 상실한 시대다.

그 때 그 노래, 그 때 그 울음, 그 때 그 사랑. 그 때 그 구원의 감격, 교회가 처음 시작되던 그 때 그 예배.

 

하나님은 수억의 인간을 복제된 인간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는데 왜 인간들은 복제를 거듭하는가.  본래의 내 모습은 어디로 가 버리고 변질된 복제품으로 포장되어있는 것일까?

 

인간은 울면서 태어난다. 그 때 주변 사람들은 웃었다. 그러나 내가 죽을 때는 내가 태어날 때 웃어주던 주변사람들이 울어 준다.

 

이젠 내가 웃어야 하겠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만 주신 [아우라의 생]을 산 자만이 웃을 수 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늙은이가 [숭례문은 복원하면 그만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이런 한심한 말이 어디 있을까. 숭례문의 겉모양은 최선을 다해 복원할 수 있겠지만 [숭례문의 아우라]는 복원되지 않는다. 600년 전 손떼 묻혀 쌓아 올린 우리 조상들의 그 [아우라...].

 

회 칠한 무덤 같은 복제의 탈을 벗어 버리고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생을 고고하게 살아가는 [아우라의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장재언)

 

 

 

 

 

 

 

 

 

 

 

 

 

다소 긴 글이지만 맥을 잇기 위해 한번에 실었습니다.

이 글이 한국교회 개혁의 방향을 바르게 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놓지 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언)

 

 

 

 

 

 

 

"면죄부 파는 교황은 유다" 암흑을 깨다


"거위는 죽지만 100년 뒤 백조 온다"

거위 뜻하는 후스, 화형장서 열변
102년 뒤 루터 종교개혁 시작돼

성경대신 '교회' 집착하는 요즘
21세기 면죄부 팔고 있는 건 아닐까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에는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다. 후스는 부패한 중세 교회에 반기를 들다가 화형을 당했다. 동상 오른편에 후스가 사제로 있었던 틴 성당이 보인다.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에는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동상이 서 있다. 후스는 부패한 중세 교회에 반기를 들다가 화형을 당했다. 동상 오른편에 후스가 사제로 있었던 틴 성당이 보인다.

 
 

 

독일 정부에서 5년 전에 설문조사를 했다.

“세계사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인은 누구인가”를 물었다.

1위에 오른 인물은 괴테도, 베토벤도, 헤겔도, 히틀러도 아니었다.

 

마르틴 루터(1483~1546)였다.

중세 때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20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는다. ‘개신교’가 등장한 지 반(半) 1000년이 된다.

 

500년 전의 종교개혁지를 순례했다.

그들이 전하는 개혁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했다. 요즘 한국 교회를 향한 외침이기도 했다. 3회 시리즈를 싣는다.
 

체코프라하로 갔다. 1968년 민주화 시위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도시다. 종교개혁사에서도 프라하는 빼놓을 수 없다. 600년 전 이곳에서 미완의 종교개혁인 ‘중세의 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실패한 봄이었다. 하지만 유럽 전역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밀알이 됐다.
 

프라하는 꽤 쌀쌀했다. 중세의 봄도 그런 추위 앞에서 고꾸라졌다. 그 자취를 좇아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으로 갔다. 외국 관광객 200여 명이 대형 시계탑 앞에 모여 있었다. 600년 전에 만든 시계다. 정오가 되자 종이 울렸다. 태엽 소리와 함께 ‘28초의 짧은 공연’이 시작됐다. 시계에 설치된 12사도와 해골 등 인형들이 저마다 메시지를 안고서 움직였다.
 

현지 가이드는 “해골은 죽음을, 해골이 들고 있는 모래시계는 삶의 유한성을 상징한다. 정오를 알리는 나팔소리는 ‘회개하라’는 메시지다”라고 설명했다.

 

거기서 중세 유럽이 보였다. 중세는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성직자든, 귀족이든, 농노든 마찬가지였다.

 

“내 죄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당시 모든 이의 숙제였다. 그런 ‘숙제 의식’을 바탕으로 면죄부가 등장했다.
 

◆ 왜 면죄부가 팔렸을까

 

 중세 때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다. 유럽 인구 중 거의 반이 죽었다. 중세인은 ‘흑사병이 전염병’임을 몰랐다. 죄로 인해 병에 걸리고, 죄로 인해 죽는 줄 알았다. 그 틈을 교회가 파고들었다. 로마 교황은 면죄부를 팔았다. 숱한 사람이 돈을 주고 그걸 샀다.

현대인에겐 ‘상식 밖의 일’이다.
 

면죄부의 시초는 십자군 원정이었다. 교황은 “십자군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아울러 네가 지은 다른 죄까지 사해진다”며 면죄부를 발급했다. 면죄부는 전쟁을 위한 용도였다.
 

시간이 흐르자 그게 악용됐다.

교황 요한 23세는 “누구나 면죄부를 살 수 있다. 조상을 위해 면죄부를 사도 된다. 그럼 죽은 조상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가게 된다”고 말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라”는 예수의 메시지와 동떨어진 주장이었다. 그만큼 중세 가톨릭 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했다.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한 신국일(프랑크푸르트 슈발바흐 성령교회 담임) 목사는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결혼하면 무엇을 준비하나. 허리 졸라매서 내 집을 먼저 마련한다. 중세에는 젊은이든, 노인이든 돈을 벌어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면죄부 구입’이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면죄부는 뭘까.

 

행여 우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21세기의 면죄부를 팔고 있는 건 아닐까. 금권 선거로 얼룩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교단 총회장 선거, 원로 목사와 후임 목사의 권력투쟁, 이권을 둘러싼 교회 내 분열과 갈등, 자식에게 세습을 했거나 세습을 준비 중인 덩치 큰 교회들 등등, 일부 한국 개신교계의 곪은 풍경이 역설적으로 ‘중세 가톨릭’에서 보였다.
 

◆ 얀 후스가 뿌린 씨앗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을 걷다가 커다란 동상과 마주쳤다.

600년 전 프라하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얀 후스(1369~1415)다. 그는 프라하 대학 총장까지 지냈다. 동상은 광장 뒤편의 틴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코인들은 “저 성당에서 종교개혁이 탄생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후스는 교황을 정면 비판했다. 심지어 “면죄부를 파는 교황은 가롯 유다와 같다”고 선언했다. 유다는 예수를 유대인의 손에 팔아 넘겨 숨지게 했었다.

‘교황은 절대 오류가 없다’는 교황무오설을 철칙으로 여기던 로마 가톨릭에선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발언이었다.
 

그 용기의 뿌리는 어디였을까.

종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우리는 종교를 통해 달을 봐야 한다. 예수를 보고, 그리스도를 봐야 한다. 그러나 손가락은 종종 달을 치운다. 그리고 스스로 주인공이 된다. 중세의 가톨릭도 그랬다. 예수를 치우고 교회가 주인공이 됐다. 후스는 그런 손가락과 싸웠다. 오직 예수, 오직 달을 보려고 했다.
 

결국 교황은 후스를 파문했다.

후스의 저술은 불태워졌다. 대신 후스는 일부 귀족의 지지를 받았다. 프라하에서 그의 설교는 계속됐다. 당시 라틴어는 귀족과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서민들은 라틴어를 몰랐다. 성당의 미사와 강론은 라틴어로만 진행됐다.

후스는 거기에도 반기를 들었다. 체코어로 설교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후스는 대설교가가 됐다.
 

후스의 동상 아래에 섰다.

찬 바람이 불었다. 묻고 싶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종교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목회자의 이름으로 예수를 가리고 있진 않은가.

예수는 늘 내가 무너질 때 사는 법이다. 종교개혁의 뿌리도 바로 그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예수로 돌아가자”는 중세 때의 외침도 그것이다.

‘교회’가 예수를 왜곡하는 굴절렌즈가 돼버렸으니 다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개신교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다시 그 물음 앞에 서야 하지 않을까.

 

“행여 우리가 예수를 굴절시키던 중세의 렌즈가 돼있진 않은가” 하는 물음 말이다.
 

◆ 100년 안에 백조가 온다

 

신성로마제국 지기스문트 황제는 후스를 콘스탄스(독일 남부) 종교재판에 소환했다. 사람들은 “가면 죽일 것”이라고 말렸다. 황제는 두 번이나 사신을 보내 “이 땅에서 이단 정죄(定罪)가 사라지게 만들겠다”며 안전을 약속했다.

결국 종교재판 회의에 간 후스는 체포됐다. 석 달간 감옥에 갇혔다. 낮에는 걸어야 했고, 밤에는 벽에 묶여야 했다. 지독한 치질과 두통도 겪었다. 그리고 이단 정죄와 함께 화형 선고를 받았다.
 

1415년 7월 16일, 후스는 화형장에 끌려 나왔다. 그는 황제를 향해 종교개혁의 정당성에 대해 설교했다. 황제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후스’는 체코어로 ‘거위’란 뜻이다. 화형대에 불이 붙기 직전 후스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지금 거위 한 마리를 불태워 죽인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지 않아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

 

자신이 심은 개혁의 불씨가 100년 안에 거대한 불길로 타오를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실제 거의 100년 만에 ‘백조’가 나타났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다. 후스가 화형 당한 게 1415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게 1517년이다.

유럽은 물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루터는 지금도 독일에서 ‘백조(Swan)’로 불린다.

그 ‘백조’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 얀 후스

 

영국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았던 체코의 종교개혁자. 프라하 대학의 신학부 교수이자 가톨릭 사제였다. 면죄부 판매 등에 대해 교황청에 반기를 들다가 파문 당했다.

설교를 어려운 라틴어로 하지 않고 체코어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결국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다. 순교 후 후스는 체코에서 민족의 영웅이 됐다. 그의 종교개혁 사상은 독일의 루터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신학자들이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에서 루터의 흔적을 짚어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루터의 묘가 보인다. 루터는 교회 안내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설교대에서 기독교 정신의 근원을 설파했다.<br>

독일의 신학자들이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에서

루터의 흔적을 짚어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루터의 묘가 보인다.

루터는 교회 안내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설교대에서

기독교 정신의 근원을 설파했다.
 

벼락 체험 뒤 수도사의 길로
두려움 악용한 면죄부에 맞서
비텐베르크에 새겨진 '95개 논제'
예수로 돌아가라 외침 들리는 듯

 

'땡그러러렁!'
 

면죄부 헌금함 안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다.

중세 때 교황청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신축을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면죄부를 발행했다. 테첼이라는 수도사가 앞장섰다.

그는 열정적인 웅변가였다.

 

“금화가 면죄부 헌금함에 떨어지며 ‘땡그랑’소리가 나는 순간, 죽은 자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간다”고 강론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면죄부 판매는 성황을 이루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사진)는 이에 맞서 싸웠다.

 

유럽의 종교개혁지를 순례했다.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에는 중세 때 썼던 면죄부 헌금함이 있었다. 유심히 지켜보던 관람객이 동전을 하나 집어넣었다.

“땡그랑!”소리가 났다.

그건 어쩌면 ‘경고의 소리’였다.

 

“예수로 돌아가라. 성서로 돌아가라”는 루터의 외침에서 멀어지는 오늘날의 교회, 오늘날의 신앙을 향한 날 선 경고였다.
 

◆ 루터의 벼락체험

 

루터의 생가가 있는 아이슬레벤으로 갔다. 그곳에 기념관이 있었다. 루터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랬다.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루터는 벼락을 체험했다. 주위는 캄캄하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는 땅에 엎드려 성 안나(광부들의 수호 성인)에게 약속했다.

“살아난다면 수도자가 되겠습니다.”

목숨을 건진 루터는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수도자가 됐다. 루터를 종교의 길로 들어서게 한 ‘벼락 체험’이다.
 

벼락 체험의 핵심은 두려움이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인간을 작아지게 한다. 그런 무너짐을 통해서 우리는 ‘벼락’을 체험한다.

 

그런 벼락을 사도 바울도 맞았다.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말에서 떨어진 바울은 눈이 멀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암흑 속에, 두려움 속에 빠진 것이다.
 

루터도 그런 두려움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봤을 터다. 그리고 수도자가 됐다. 돈 선거와 세력다툼으로 범벅 된 한국의 개신교계에 필요한 것이 바로 ‘루터의 벼락’이었다.
 

◆ 벌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아이슬레벤에서 에어푸르트로 갔다. 루터가 생활했던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수도원을 찾았다. 고요했다. 그런 고요를 깨고 루터는 신을 찾았다. 중세 사람이 믿던 하나님(하느님)은 ‘벌 주시는 하나님’이었다. 신학도 ‘벌 주는 신학’이었다. 사제가 된 루터도 ‘벌 주는 하나님’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루터는 고해성사를 한 뒤 계단을 내려가다가 금세 달려와 “그 사이에 마음으로 죄를 지었다”며 다시 고해성사를 하곤 했다. 그만큼 루터도 ‘죄 문제’로 고민했다.
 

특유의 지성과 종교성을 인정받은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됐다. 시편과 로마서를 강의하면서 새로운 하나님에 눈을 떴다. 그건 ‘벌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었다.

 

루터는 탑이 있는 수도원 건물의 화장실에서 그걸 깨달았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볼일을 보던 중이었다. 그때 루터는 “가장 미워했던 로마서 1장17절(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된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산다’고 기록된 바와 같다)이 가장 사랑하는 구절이 됐다. 내게 천국의 문이 됐다”고 고백했다.

 

일종의 ‘오도송(悟道頌·깨달음의 노래)’이다.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루터의 모토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는 바울의 오도송과도 통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심약한 성격의 루터가 어떻게 교황청을 상대로 반박하고, 논쟁하고, 싸우며 종교개혁을 이끌었을까. 그 힘의 바탕이 그리스도의 체험, 말씀에 대한 체험이었다.
 

◆ 루터의 대자보, 종교사를 바꾸다

 

면죄부 판매와 함께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들이 줄었다. 루터도 이 문제와 직면했다. 비텐베르그에서는 면죄부가 판매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웃 도시로 가서 면죄부를 구입했다. 그리고 더 이상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다. 루터는 고민에 빠졌다.
 

작은 도시인 비텐베르크로 갔다. 당시 루터는 면죄부 등에 의문을 품고 “신학적인 토론이나 해보자”며 ‘95개 논제’를 써 붙였다. 비텐베르크 교회 외벽에는 루터가 내세웠던 ‘95개 논제’가 새겨져 있다. 일종의 대자보다.
 

루터의 논제는 인쇄술 혁명에 힘입어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각국 언어로 번역됐다. 파장이 커졌다. 논쟁은 1517년부터 5년간 계속됐다. 결국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루터는 파문 칙서를 비텐베르크 참나무 아래서 불태워버렸다. 지금도 그곳에는 ‘루터의 참나무’가 서 있었다.
 

◆ 지금도 울리는 루터의 외침

 

많은 이가 파문된 루터의 목숨을 노렸다. 루터는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城)으로 숨었다. 삭소니 지방의 제후가 그를 도왔다. 그 성을 찾아갔다. 높다란 계단을 올라가니 루터가 머물던 방이 있었다.
 

기사로 위장한 루터는 이곳에 숨어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성직자·귀족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방에는 바짝 마른 루터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기사로 가장한 채 수염을 길렀던 루터다.
 

안내를 맡은 신국일(프랑크푸르트 슈발바흐 성령교회 담임) 목사는 “루터판 성경은 고어체라서 읽기 힘들다. 그런데 지금도 독일인은 루터판 성경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예수로 돌아가자. 말씀으로 돌아가자.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루터의 외침 때문이 아닐까.

결국 유럽은 구교와 신교의 전쟁을 거친 뒤 종교개혁의 열매를 맺었다. 그렇게 루터는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다.
 

루터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금권 선거와 정치 공방, 교회 세습과 정당화, 목회자의 성 추문, 교회 내 이권다툼 등으로 얼룩진 일부 교회들은 그 외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로 돌아가자. 말씀으로 돌아가자.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500년 전 루터의 외침을 향해서 말이다. 

 

◆면죄부

가톨릭에선 ‘면죄부’란 용어 대신 ‘면벌부’ 혹은 ‘대사부(大赦符)’란 표현을 쓴다. 죄를 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벌을 면해준다는 뜻이다.

가톨릭에선 죄를 사하는 유일한 방법은 고해성사라고 본다. 중세의 설교가들은 교회 사업의 모금을 위해 면벌부를 남발했다. 왼쪽 작은 사진은 면죄부 헌금함.

 

 

 

 

 

“내 심장을 하나님께”

평생을 우상 숭배와 맞서다

 

 

 

예수상도 우상 숭배라고 금지
미사 대신 설교를 예배 중심에
예정설 주창해 격한 논쟁 낳아
"어떤 묘비도 만들지 말라" 유언


 

프랑스 출신 장 칼뱅(1509~64)은 종교개혁 2세대다.

그는 독일의 마르틴 루터(1483~1546)를 계승하면서도 루터와 달랐다. 칼뱅은 “하나님께 바쳐진 희생제물처럼 내 심장을 하나님께 드린다”며 종교개혁을 위해 싸웠다.
 

그는 신앙에 철저했고, 엄격했고, 냉정했다. 지금도 칼뱅에겐 열정적이란 찬사와 독단적이란 비판이 동시에 쏟아진다. 유럽의 종교개혁지를 순례하며 칼뱅의 자취를 만났다.
 

◆ 루터파와 칼뱅파의 차이

 

독일의 개신교 교회를 여럿 들렀다.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어떤 교회의 십자가에는 예수가 매달려 있었다. 가톨릭 성당처럼 말이다. 또 어떤 교회는 예수상 없이 십자가만 있었다.
 

안내를 맡은 신국일(프랑크푸르트 슈발바흐 성령교회 담임) 목사는 “루터파 교회에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다. 그러나 칼뱅이나 츠빙글리의 정신을 잇는 개혁파 교회의 예배당에는 십자가 위에 예수의 상(像)이 없다.

 

‘우상을 숭배하지 마라’는 입장 때문이다. 개혁파는 초기에 십자가 사용조차 금지했다”고 말했다.
 

그게 루터파와 개혁파의 차이였다. 루터는 “비성경적이 아니면 성경적이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가톨릭적인 요소를 유연하게 수용했다. 지금도 루터파 교회에 가면 가톨릭 성당의 분위기가 풍긴다. 루터는 온건적 개혁주의자였다. 그러나 칼뱅은 달랐다. 그는 무척 엄격했다.
 

◆ 제네바의 종교개혁

 

독일에서 스위스의 제네바로 넘어갔다. 제네바대학 맞은편의 바스티옹 공원으로 갔다. 종교개혁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칼뱅과 파렐, 베제, 녹스 등 종교개혁가의 조각상이었다. 칼뱅은 우상숭배에 대해 매우 엄격했다. 제네바시에 자신의 조각상이 세워질 걸 알았다면 노발대발 했을지도 모른다.
 

1517년 루터는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때 칼뱅은 9살이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칼뱅은 14살 때 공부를 위해 파리로 갔다. 그가 파리에 도착한 날, 어거스틴파의 수도사 장 발리에르가 이단으로 몰려 파리에서 공개 화형을 당했다.
 

루터의 책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읽었다는 이유였다. 그는 혀가 잘린 뒤 화형을 당했다. 칼뱅은 이 참혹한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종교개혁기의 참상이 어린 칼뱅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프랑스 국왕이 신교를 박해하자 칼뱅은 스위스로 피신했다. 그리고 파렐의 요청으로 스위스 종교개혁 운동에 참가했다.

제네바는 이미 개신교 도시였다. 그러나 칼뱅은 제네바를 더 경건하고 엄격한 종교생활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칼뱅에겐 ‘제2의 종교개혁’이었다. 일명 ‘성시화(聖市化) 운동’이다. 칼뱅이 추진했던 신정정치에 대한 반발과 충돌도 많았다.
 

제네바 목사였던 칼뱅은 춤과 도박을 금지했다. 간음죄와 칼뱅 모독죄로 처형된 이도 있고, 삼위일체를 부인해 화형을 당한 이도 있었다.

 

심지어 칼뱅은 “종교개혁적 신앙고백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누구든지 도시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칼뱅은 종종 ‘논란의 인물’이 되곤 한다.
 

◆ 장로교의 기초 닦아

 

제네바 시내의 성 피에르 교회에 갔다. 칼뱅은 거기서 설교를 했다. 교회 옆에는 칼뱅이 머물렀던 사택도 있었다. 칼뱅의 열정은 뜨거웠다. 그는 예배의 중심을 미사에서 설교로 바꾸었다.
 

흑사병이 돌 때도 병자들을 찾아갔다. 날마다 심방도 했다. 평소 갖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건강보다 교회를 중시했다.
 

칼뱅은 장로교의 뿌리다.

그는 목사·장로·집사로 구성된 교회직제의 기초를 세웠다. 칼뱅은 ...

 

 “하나님이 구원과 멸망을 이미 예정해 놓았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사람은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는 예정설을 주창했다. 그의 예정설을 놓고 개신교 내부에서도 격한 논쟁이 일었다.
 

칼뱅은 평생 ‘경건한 신앙, 엄격한 신앙’을 좇았다. 그의 잣대는 ‘하나님의 영광, 교회의 유익’이었다. 그러나 관용에는 인색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이었다. 병실에서 죽음을 앞둔 칼뱅은 자신의 과격한 성격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를 제네바 공동묘지에 묻되, 어떤 묘비도 만들지 마라.”

마지막까지 그는 신앙에 철저했다.
 

종교개혁지 순례를 마치며 의문이 일었다.

과연 우리가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그건 칼뱅도 아니고, 루터도 아니었다.

그들이 외쳤던 성서였다.

 

‘성서로 돌아가라. 근원으로 돌아가라.’

 

그건 한국 교회에도 절실한 답이었다. (뉴욕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코토르는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에서 80k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앞으로는 아드리아해와 마주하고 있으며 나머지 3면은 험한 산과 운하로

둘러쌓여있는 천혜의 지형조건을 자랑하고 있기에 2,000년간

외세의 침략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코토르'라는 말에는 '조이다'라는 뜻이 있는데, 그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최초에 만들어진 성벽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그 안에서 변함없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몬테네그로의 수도인 '포드고리차'에서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전체적인 느낌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닉'과 유사하지만 규모면에서는

훨씬 작은 편입니다. (언)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중독 발생의 주요 원인인 노로 바이러스가 식품에서 10일 정도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꼼꼼한 세척을 당부했다.
 

노로바이러스는 10개 정도의 매우 적은 양으로도 인체 감염을 일으킬 정도로 감염력이 높으며 지하수 등 노로바이러스에 오염된 물로 식품을 씻은 뒤 가열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경우 감염될 수 있다.
 

토마토와 상추, 얼음에 노로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오염시켜 생존율을 측정한 결과...

 

토마토의 경우 3일째 11%, 6일은 9%, 10일은 5%까지 감염성을 유지했다.

상추는 3일 27%, 6일 11%, 10일 3%까지 감염성을 지속했다.
 

특히 얼음 중 노로바이러스 생존율은 17일이 지나도 45% 가량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얼음을 만들 때는 반드시 끓인 물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로바이러스는 낮은 온도에서도 생존율이 매우 높은 특성이 있어 세척 뒤 냉장고에 보관 중인 채소와 과일이라도 먹기 전에는 다시 씻어야 한다.
 

또 식품 간 교차 오염을 막기 위해 식품 별로 용기에 따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탈북자 북송 중지에 교계 “하나님께 감사”

미주 목회자들 연합한 시위 큰 영향력

 

중국이 전세계의 압박을 받으며 탈북자 강제 북송을 중단하자 그 동안 탈북자 인권 운동에 앞장서 왔던 단체들이 크게 환영하고 있다.

 

중국은 김정일 사망 후 하루 최대 30명씩 탈북자를 검거해 송환해 왔으며 이들은 대부분 강제수용소에서 짐승보다 못한 인권적 학대를 당하거나 총살돼 왔다.

 

'북한자유를위한한인교회연합(KCC)' 대표간사 손인식 목사(베델한인교회)는 18일 교회에서 열린 수요대각성기도회에서 “중국정부가 탈북자 북송을 전면 중지시켰다. 할렐루야! 할렐루야!”라고 밝혔다.

 

손 목사는 “매일 30명 안팎이 끌려가고 있었는데 이제 북송 행렬이 중단됐다”고 전하며 “이제 다음 단계로 발전되게 하시고, 두만강 압록강이 열려서 수십만의 북한 성도들이 풀려나게 하소서. 남북이 복음으로 통일돼서 북한땅이 재건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한편, 최근에는 탈북자 인권을 위해 '해외 300인 목사단'이 조직되며 전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중국 영사관에서 동시다발적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뉴욕교협 양승호 회장은 “탈북자 강제 북송 중지를 미국 정부와 우리 정부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세계 51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중국영사관 앞에서 항의집회 및 기도회를 가진 것이 힘이 되었다면 매우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교협 활동에 대해서도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외침은 일회성이 아니고 북한인권에 계속 관심을 갖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며 ”탈북자 인권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인권보호를 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양승호 회장은 “인권에는 좌파나 우파가 필요없고 생명의 존엄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의 강제 북송 중단 소식과 관련, 국내 언론들은 명확한 근거를 밝히기 어려운 관계로 요미우리 신문의 기사만을 인용해 보도한 상태다. 하지만 현재 강제 북송 반대를 위한 외침이 미주에도 확산되는 가운데 전해진 강제 북송 소식에 언론들은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뉴욕을 방문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뉴욕교협과 조찬간담회에서 “제가 단식으로 쓰러지자 국내에 탈북자 강제 북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가 UN대북인권결의안 채택을 위해 제네바를 방문한 사이에 열기가 시드는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주 목회자들이 주축이 돼 탈북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 준 것이 너무도 큰 힘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직업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벽돌공이든, 벽돌 공장 사장이든, 헤지 펀드 매니저든, 세차장 직원이든, 자동차 회사 사장이든, 워킹맘이든, 주부이든 간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항상 움직인다. 어디를 향해 나아간다. (177p)

 

 

제프리 J. 폭스 지음, 노지양 옮김

'왜 부자들은 모두 신문배달을 했을까 - 춥고 어두운 골목에서 배운 진짜 비즈니스' 중에서 (흐름출판) 


 

 

 

 

 

 

 

 

 

 

 

 

 

 

 

먹는 순서만 이렇게 바꿔도...

건강해서 병원비 줄이는 이것이 경제적입니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노화방지', '젊게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높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이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미쓰오 다다시 박사는 세월은 되돌릴 수 없지만 신체나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며, 노화의 신호를 빨리 파악하고 원인을 제대로 알아 일상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노화의 증상들은 이렇습니다.

 

  •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 좋아하던 것에 관심을 잃는다,

  • 자주 우울해지거나 정신이 불안정해진다,

  • 식욕이 떨어지거나 입맛이 바뀐다,

  • 입 냄새나 아저씨 냄새가 난다,

  • 심계항진이나 부정맥이 있다,

  • 손발이 차다,

  •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 근력이 떨어진다,

  •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르거나 땀이 쏟아진다,

  • 잠이 잘 안 오고 아침에 일찍 눈을 뜬다,

  • 눈이 침침하고 시력이 떨어진다,

  • 고음이 들리지 않고 항상 귀 울림이 있거나 현기증이 난다...

 

이런 것들이 노화의 신호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신호를 빨리 파악해 건강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노화방지를 위해 일상의 습관을 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노하방지를 위한 일상의 습관들 중에 '식사시 먹는 순서'가 눈에 띕니다.

 

"식사를 할 때 먹는 순서는 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당분이 적은 음식부터 먹어야 혈당치가 서서히 올라간다."

 

당분이 적은 음식부터 먹어라, 쉽게 말해...

식이섬유(채소) -

단백질(육류, 생선, 두부 등) -

탄수화물(밥, 빵) -

디저트의 순서로 식사를 하라는 조언입니다.

 

이런 순서로 식사를 하면 혈당치가 서서히 올라가기 때문에 인슐린의 분비량도 급격하게 늘어나지 않고, 식후 혈당치도 서서히 떨어지기 때문에 가짜 공복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식이섬유-단백질-탄수화물' 순서의 식사법. 먹는 순서만 이렇게 바꿔도 노화를 방지해 신체나이를 줄이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내 발을 씻겨 주세요.”

“제자들의 발처럼 내 때묻은 발을, 나의 추한 발을 씻겨 주세요.”

“흐흐흑.”

 

뮤지컬 ‘이터널 라이프’(Eternal Life) 첫 장면에 등장하는, 간음한 여인의 구슬픈 노랫가락이다.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 앞에서, 이 여인은 온갖 수치와 고통 속에 신음하다, 한 줄기 빛을 보게 되는데….
 

 

2천년 전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라는 한 인간의 삶을, 오늘 이곳(Here and Now)의 언어로, 창작극이라는 예술양식으로 재현해 낸 뮤지컬 ‘이터널 라이프’가 무대 위에 올랐다.

13일 저녁 은혜한인교회 본당에서 보다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무장해 2년만에 남가주 관객과 만났다.

 

뮤지컬 ‘이터널 라이프’는 먼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과 예수의 이야기로 시작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 공생애 마지막에 나귀 새끼를 타고 군중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 겟세마네의 기도, 십자가 고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장면, 부활 후 성령의 능력 등이 스토리의 중심 줄기를 이룬다.

 

서막을 알리는 음악과 함께 간음한 여인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지나가던 예수를 향해 여인은 자신의 죄를 씻어 달라며 호소한다. 사실 이 장면은 극본을 쓴 작가의 기량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성경엔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의 발을 씻겨 주셨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 직전 고뇌하는 장면에선, 숨어있는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 유다의 심리를 표현해 낸 가사 내용은 인간 죄성의 폐부를 찌르기까지 한다. 마지막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에선 피비린내 나도록 바람을 가르는 채찍의 효과음이 공연장을 채운다.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자색옷이 걸쳐진 예수님의 몸이 크게 움찔하더니 이내 파르르 떨렸다. 객석도 조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무대 위에 재현해 낸 십자가 장면이 현실감 있게 표현됐다.

 

이번 공연은 예수 역에 CCM 가수 정홍규, 가룟 유다 역에 성악가 김상은, 베드로 역에 연극배우 배도익, 루시퍼 역에 성악가 이병진, 천사장 가브리엘 역에 성악가 이재일 등 주연급 10여 명을 비롯해 총 210여명의 배우들이 출동해 한인사회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현철 감독(창조문화선교회 대표)은 자칫 지루하기 쉬운 고전에 상상력을 가미해 관람의 재미를 더했다는 점에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아냈다. 한국과 뉴욕에서 드라마와 방송을 전공하고 꾸준히 창작극 활동을 해 온 김 감독은, 4년간에 걸쳐 기도 중에 4복음서를 중심으로 극본과 가사를 창작했다.

 

2시간 10여분 내내 귀와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은 작곡가 정봉화 씨가 31곡 모두 직접 작곡했다.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현대 팝, 클래식 오페라, 성가곡 스타일의 노래 등을 망라해 실력을 발휘했다.

 

1,2층 복합구조로 꾸며진 무대와 블루 특수조명으로 브로드웨이 수준의 의상과 분장을 비추는 등 외형적인 면에서도 일반교회 성극 수준을 훌쩍 뛰어 넘었다는 평가다. 

 

 

 

 

 

 

 

 

 

 

 

 

 

 

 

 

 

 

 

 


 

기사를 작성한 인민일보 국제자매지 환구시보 워싱턴 특파원 한샤오 기자는 "미국, 30분 이내 북한 핵무기 마비 계획’이라는 기사에서 "미 핵잠수함에서 ‘싼차지(三叉戟) D-5'(Trident D-5', '싼차지'의 뜻은 삼지창) 미사일이 발사되면 30분내에 북한 핵은 궤멸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기자는 미 전략사령부 제임스 장군의 말을 인용해 “만일 미국 대통 령의 공격명령이 떨어진다면 핵잠수함에서 탑재된 "미사일이 북한 육지에 떨어지는 시간은 반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의 선제공격은 각종 전투기, 폭격기를 동원해 1차 공격 시 8천개의 미사일과 정밀유도탄이 투하되는데, 이는 북한의 주요 타격대상 한 개 당 적어도 10기에 해당한다"며 "김정일 관저에 대한
‘참수 (斬首)’도 가능하다”고 썼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최대 우려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핵시설을 공격할 경우로 상정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의 군사 적 공격 시나리오를 집중 분석하고 있다.

 

다음은 기사 요약

 

핵 잠수함에 탑재된 ‘三叉戟 D-5’형 미사일 발사대
 

미 핵잠수함, 미사일 뚜껑을 열다.

 

미국의 대북 실전 준비설이 최근 들어 많아졌다. 미국 매체들은 미국이 한국을 넘어 단독으로 대북작전계획 수정을 고려할 것이 라고 전했다.
 

그 새로운 방안은 핵 미사일 위주로 개편된 돌격역량을 사용할 경우 , 30분 이내에 북한 핵시설과 군사대응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북한은 비밀리에 핵탄두를 장진한 ‘노동1호’ ‘대포동 2호’와 같은 미사일로 직접 한국과 일본 주둔 미군기지를 조준하고 있으나, 이 모든 움직임은 미국 정찰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기지가 험산준령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군의 방공능력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군이 전투기나 미사일로 공격할 경우, 효력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은 한 척의 핵잠수함을 선택하여 수중에서 ‘三叉戟 D-5’형 미사일을 발사해 북한 핵기지를 급습한다.
 

미국 AP통신 12월 보도에 의하면 미국 전략사령부는 의회에서 이와 관련한 예산을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거리 1만 1천km의 ‘三叉戟 D-5’형 핵미사일은 새로 개발된 첨단 미사일이다.
 

이러한 종류의 찬지탄두(땅속을 뚫고 들어가는 탄두)는 북한 곳곳의 지하 미사일 갱도와 핵 보루를 궤멸시키고, 지하 20m까지 뚫고 들어가 방호벽을 파괴한다.
 

이 탄두가 사용될 경우, 장기간 핵탄두 탑재시설이 ‘동면'에서 깨어 나게 된다. ‘三叉戟 D-5’형 미사일은 30분내에 지구상 임의의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
 

미국 전략사령부 제임스 장군은 “현재 미국에 있는 14척의 핵잠수함 에는 수백 기의 ‘三叉戟 D-5’형 핵미사일이 있으며, 공격개시 후 미사일이 떨어지는 시간까지 30분을 초과하지 않는다. 그러면 북한의 군사목표들은 사라지게 된 다"고 말했다.

 

三叉戟 D-5’형 미사일은 북한 핵단지와 같은 고정된 목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동하는 테러분자들의 기지조차 도망칠 수 없게 하는 무쇠주먹 이다.
 

새로운 '선제타격 효과' 강조
 

三叉戟 D-5’형 미사일뿐 아니라 워싱턴이 구상하는 장거리 타격무기는 모두 대북작전용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미군의 ‘선제타격 효과’ 작전은 북한군대의 대응 기초부터 먼저 흔 들어 놓는다. 미군은 북한 주변 해상에 F-15E 전투폭격기, A-10공격기, B-2 전략 폭격기, 핵잠수함 등에 수백기의 순항미사일과 정밀유도탄들을 탑재하고 있다.
 

미군 정보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중요 군사목표는 약 800 개로 알려졌다. 만일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은 제1차 공격시 8천개의 미사일과 정밀유도탄이 투하될 것이며, 이는 한 개 목표당 적어도 10기씩 투하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북한의 기본 핵시설은 궤멸될 것이며, 심지어 평양의 북한 영도자(김정은)의 관저에 대한 ‘참수 (斬首)’도 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이 미국의 대북전략은 점점 ‘실제타격’에 근거한 실전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
 

미 국방부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을 군사적으로 타격하는 계획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미 의회의 대다수 의원들은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많은 의원들은 ‘三叉戟 D-5’형 계열의 미사일을 사용할 경우, 러시아 등의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12일 논평에서 1년 동안 미국이 한반도 긴장국면을 구실로 한반도 주변에 군사적 역량을 증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평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 국방부 전문가 헐버트는 “해군학원학보는 미 해군에서 발간되는 전문지로서 ‘수천기 미사일 북한공격론’을 보도한 것은 미국 내 대북 강경론을 대변하고 있다”며그러나 이와 같은 타격 가능성은 실제로 크지 않으며, 일종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자살’ / ‘신(新)일본의 자살’….’
 

일본의 사회지도층이 자살론 전염병에 빠졌다.

문제를 해결할 리더십을 상실한 일본이 이대로 가면 스스로 망한다는 것이다.

현재 제기되는 자살론은 웬만한 충격요법으로는 변화가 없는 ‘퇴적 사회’ 일본의 극약처방이자 심각한 위기의식의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시사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5월호는 ‘신(新)일본의 자살’이라는 논문에서 일본의 국가 파탄 시나리오를 사실감 있게 묘사했다.

 

주요 내용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이 소비세 증세안 도입에 실패하면서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연금 고용 파탄이 이어져 일본이 ‘무간지옥’(無間地獄·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연금이 삭감되면서 노인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재정파탄 책임자를 A급 전범으로 잡아들이는 살벌한 시나리오도 묘사됐다.

이 논문은 익명의 이코노미스트, 관료, 사회심리학자들이 공동 작성한 것으로 정재계에서 복사해 돌려보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분게이슌주는 일본이 고도성장의 정점에 있던 시절인 1975년 2월호에도 ‘일본의 자살’이란 논문을 실은 바 있다.

고대 로마인이 ‘빵과 서커스’를 손에 넣었을 때 번영과 복지의 절정에 도달했다고 착각했으나 이 순간부터 증대하는 복지비용과 빗나간 평등주의, 사회 활력 저하와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범람 속에 로마는 자살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필자들은 로마의 자살 메커니즘이 일본에서도 똑같이 시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논문은 37년이 지난 올해 초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주필이 ‘내일의 사회에 책임을 갖자-일본의 자살을 걱정한다’는 신년 칼럼에서 재인용했다. 보수든 진보든 일본 지도층의 위기의식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민주당의 정조회장 대행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전 관방장관도 16일 “모든 원전의 가동 중단은 일본의 집단자살”이라고 말해 논란을 촉발했다.

 

다음 달 5일이면 일본은 전체 54기의 원전이 멈추는 ‘원전 가동 제로’ 상태가 되는데 재가동에 무조건 반대하는 세력 때문에 일본의 경제와 생활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집단자살’이라는 용어를 입에 올린 것이다.
 

자살론으로 대변되는 일본 지도층의 위기의식은 곳곳에 투영되고 있다. 일본 경단련(經團連)의 21세기정책연구소 모리타 도미지로(森田富治郞) 소장은 ‘2030년대부터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한국에 역전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16일 내놓고 “이대로는 일본이 극동아시아의 한 소국(小國)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아침 방송들은 17일 이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분위기는 한국에 이미 역전된 것 아닌가”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CNN 보도

 

최근 경기가 악화되면서 일본인들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후지산 근처의 아오키가하라 숲은 일명 "자살숲"이라 불린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고, 종종 깊은 숲에 숨겨져 유골조차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Aokigahara Forest is known for two things in Japan: breathtaking views of Mount Fuji and suicides. Also called the Sea of Trees, this destination for the desperate is a place where the suicidal disappear, often never to be found in the dense forest.


 

 

 

 

 

 

 

 

 

 

 

 

 

 

 

 

 

산딸기 뿌리는

몸 안에 있는 딱딱한 덩어리를 없애는 데 특효가 있다.

글쓴이가 아는 한 노인은 어렸을 때에 한번 크게 체하여

몇 달을 고생하던 중에 산딸기 뿌리를 캐서

달여 먹고 그 즉시 나았다고 한다.

 

고기나 생선을 먹고 체했거나 뱃속에 덩어리가 있을 때에는

산딸기 뿌리를 캐서 3∼4시간 푹 달여서 그 물을 마신다.

 

민간에서는

산딸기 뿌리를 오래된 기관지, 천식, 습진 등 알레르기성 질병에 쓴다.

꽃은 자궁염증, 신경쇠약 등에 달여서 먹는다.

꽃에는 꿀이 많아서 밀원식물로도 가치가 있다.

 

산딸기는 성질이 온화한 까닭에 단시일에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적어도 1년 이상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닥나무 열매, 새삼 씨, 구기자 등

다른 약재와 함께 장기간 복용하는 것이 좋다.

10∼20그램씩 하루 3∼4번 먹는다. 익은 산딸기는 술을 담그거나

잼을 만들어 먹으면 좋고 약으로는 쓰지 않는다.

 

여름철에도 끄덕 없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일단 “체력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비타민C가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비타민C는 여러 가지 호르몬을 조절하는

부신피질의 기능을 활발하게 하므로

체력증강, 면역력 증강, 피로회복

놀라운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

산딸기는 이런 비타민C의 함유량이 무려

오이3개, 사과6개를 먹는 것과 같다. 

 

 

1. 항암효과


안토시아닌, 비타민C, 탄닌 성분을 가지고 있어

항암효과와 항산화 효과를 가집니다.

 

2. 신장기능에 효과


신장기능을 강화하여 유정, 몽정을 치료하고

소변의 양과 배설시간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어,
노인들의 요실금 및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에 효과가 있습니다.

 

3. 자양강장


성질이 따뜻하고 자양강장 효능이 있으며, 남자의 신기부족,

정액고갈, 음위증, 여자의 불임 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기운을 돋우며 눈을 밝게 하고 머리털이 희어지지 않게 합니다.

 

4. 다양한 영양소


풍부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어 어린이 성장발육에 좋습니다.

 

 

 

 

 

 

 

 

 

 

 

 

 

 

 

 

 

 

  아침반(9:30) 낮반(1:30)  오후반(4:30) 저녁반(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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