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esepe re que l oe se reviot meme dans lautre monde
Mais pourtant ca se re alise trop tot um je me
facherai
Ayant subi le chagrin de lavie,
Moi je tombe avant vuos
Comme des hesbes et des
fleurs sauvages comme des oeillets de poete
프랑스 말로 부르는 안개꽃
열창을 주로 하여 현란스런 무대를 꾸며가는 [나가수] 프로를 보다가 나윤선의 노래를 만나면 마치 신비의 세계로
들어서는 심오함을 느끼게 된다.
이젠 세계적인 재즈 가수가 된 자랑스런 나윤선.
재즈에다 한국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에다 재즈를 접목 시켜 노래 부른다.
지금 부르는
이 노래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 자네이로 세계환경의 날에 최초로 환경음악(Environmental
music)이라는 장르로매스컴의 집중을 받은 "환경음악집"의 타이틀 음악이다.
나윤선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Top Class의 Artist로 인정받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Jazz 데뷔 앨범을
발표했던, 놀라운 가창력과 미성으로 스캣을 구사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Jazz Vocal의 선두주자다.
그녀는 건국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대사관 샹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으며,
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환경뮤지컬 “Ocean World” 에 출연했다.
France Beauvais 국립음악원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 하고,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CIM' 에서 1년간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재즈콩쿨 ‘Le Concours de La Defense 의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과 Euro
Jazz Music Awards 인“Les Django d'Or” 시상식에 Guest
Singer로 초청되어출연하는 등 프랑스에서
열리는 각종 Jazz Festival 참여하여 활동했다.
모든 전쟁은 잔인하고 많은 피를 흘린다.
역사상 한국전쟁 만큼 짧은 기간 내 지리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피해를 낸 전쟁은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 중 사망자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민간인과 군인 등 약
400만 명이 되고 그 중 절반이 민간인이다. 지상전과 미국의 끊임없는 공습으로 많은 북한 중국 군인들도 사망했고
한국군 전사자들은 유엔의 깃발 아래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다른 연합군 전사자들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전쟁이
초래한 참혹한 피해를 생각해볼 때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모두 한국전쟁을 잊고 싶어하는 것은 충격이다.
미국
언론에서는 사망한 한국전 참전용사의 부고 이외에는 한국전쟁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은 노인들로부터
직접 듣거나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덕분에 한국전쟁을 좀 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서울과
다른 도시의 술집이나 커피집에서 나눠지는 토론의 주제가 아니고 일자리를 찾고 대학과 대학원에 입학하며 연애하는
것만큼 시급한 문제도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이 왜 미국과 동맹을 맺고 방대한 군사 협력을 유지해야 하는가의 당위성을 잊기란 쉬운
일이다.
북한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전투만 중단시킨 정전으로 한국전쟁이 멈춘 후 지금까지 60여년 동안 북한
주민들에게 적개심을 심고 군복무를 시키면서 한국전쟁을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추잡한
표현으로 모욕하는 것을 비롯해 전쟁을 협박하는 매우 선동적인 발언들을 하고 있지만 한국언론들이 이를 무시하고
보도하지 않는 것은 한반도의 오랜 평화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인지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 수준의 군사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북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제2의 한국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이 군사전략의 ‘중심 축’을
아시아로 옮기고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이 태평양 지역 주둔 미군을 늘리겠다고 말했지만 미국에서도 ‘제2의 한국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패네타 장관이 최근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고 있지만 누구도 임박한 위협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전운(戰雲)은 평화로운 국가들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평선 위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남지나해에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군사력을 늘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에 함께 대항하며 한때 동맹이었던 베트남을 비롯, 필리핀과
일본을 위협하고 있다. 이해관계는 작아 보이지만 중국은 남지나해의 몇 개 작은 섬들과 여울목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오키나와 남서부에 위치한 무인도들을 두고 이 국가들과 갈등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이상한 미사일 발사와
3차 지하 핵실험을 하겠다고 위협하며 긴장을 더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한국과 미국이 1950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됐던 것처럼 한미 양국은 지금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은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 500명의 군사고문단만 남겼고 미국과 한국의 군사장비는 크게 부족했다. 한국의 경우 탱크와
같은 중무기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지금 한미 양국은 그때보다 훨씬 우수한 군사장비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이에 맞설 준비가 됐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정전협정이 1953년 7월 체결된 후 한국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성공을 이뤘다. 한국의 경제는 크게
약진했고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사회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불평등, 스캔들, 무능함을 보여주는
소식들이 있고 사회적 지역적 갈등은 여전하다. 하지만 완벽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한 정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국이 이룬 정치-경제적 성공이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국가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한 가지 큰 우려는 미국인들이 외교적인 말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제2의 한국전쟁이 실제로 터지면 이를 수행할 의사가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도 또 다른 북한의
공격이 있다면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 큰 질문이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필요 없기를 기도해야 한다. 평화가 유지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사시 함께 싸우겠다는 동맹들의 의지가 확고할 때 평화가 유지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반(反)
군대’라는 인기영합주의적 표현은 강한 군대가 필요했다는 한국전쟁의 교훈을 생각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일종의 공포의 균형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이 균형을 유지하는 길은 난공불락의
방어력을 확고히
하면서 지금 북한을 지배하는 동일한 정권이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에 입혔던 끔찍한
한국전쟁을 잊지 않는
것이다.(번역 이상민 기자)
꽃을 사세요. 안개꽃을 사세요.
어느 가난한 청년의 지게에 실려 새벽같이 왔지만
시퍼렇게 낯선 꿈 키우던 곳 떠나왔지만
우릴 거들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매연에 눈이 따갑고 소음에 귀가 먼 우리들
밤 늦은 거리의 가로수 밑
당신의 휘청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가슴 설레 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장미꽃과 견줄 향기도 없고요.
수선화에 비길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벌도 나비도 찾아오지 않아
아무데서나 끼리끼리 모여
스스로 피고 질 뿐
우리는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없습니다.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한 움큼 쥐세요.
우리의 여윈 목을 뜨겁게 껴안아 주세요.
멋진 꽃병에 황홀히 꽂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언젠가 당신 친구의 아버님 영전에 숨 죽여 울어 드렸지만
오늘은 남녘 하늘 떠돌며 눈 못 감는 이들의
한으로 피어난 꽃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를 사 가시는 당신.
베토벤은 소수 귀족들의 음악에서부터
일반민중으로 그 자신의 음악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그는 예술성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은 그 어느 음악보다도
진지했다. 역설적으로 그 당시 베토벤에게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음악은 반대로
예술성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가벼움을 즐기는 대중의 취향은 롯시니를
선호했으며, 경쾌한 분위기의 월츠는 복고적
반동정치 아래 있는 유럽 시민들을 무도회장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귀족취향의 빈의
신년음악회는 요한 쉬트라우스의 월츠음악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식민지쟁탈과
함께 유럽에 유행한 이국적 취향의 풋치니의
[나비부인] 이나 [라 보엠] 이 보여주는
신파조의 과장된 모습보다는, 비제의 [칼멘]이
더 민중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F.니체가 통렬히 비판했던 맥락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가졌던
바그너는 브르죠아의 속물적 예술취향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창조해냈다.
사람들 중에는 보다 나은 삶으로의 도약의
기회를 놓쳤거나,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일상에 묻혀 살아가는
인간이 있게 마련이다.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늙은 화가가
그러한 예술가의 인상이다. 그들 중 가장
비참한 경우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예술적
충동에 비해, 이를 구체화시켜 표현할 능력을
적절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예술적 영감과
그들이 구현한 작품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들은 현실과 타협하여 3류
예술가가 되거나,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베토벤의 아버지가 이러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고매한 인품의 할아버지와 달리,
그는 자신의 못다한 예술적 성취욕을 술로
달래며 어린 베토벤을 향해 난폭할 정도로
이를 내뿜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이런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으며,
후에 그와 대립하게 되는 형제들이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였다.
젊은 시절 베토벤은 피아니스트로서 실력을
인정 받으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다. 환상적이고 격정적인 즉흥연주로
청중들을 전율케 한 그는, [교향곡 1번,
2번], [피아노 소나타 8번, 14번]
등을 발표하며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빈의 상류사회에서
촌놈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주장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로서 작곡가로서 한창 재능을
피울 때에 느닷없이 찾아 든 난청으로 삶의
중대한 위기를 맞는다. 그는 요양지
하일리겐쉬타트에서 유서를 쓰며 내면적으로
이에 투쟁하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난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필두로 [교향곡 4번 - 8번], [피아노
협주곡 4번, 5번],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현악사중주
op.59-1,2,3]등 그 자신의
음악세계를 열성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베토벤은 점차 약화되는 외부의 소리에
대응하여 인간 내면의 소리를 창조한 것이다.
그는 선술집에서 들려오는 민요풍의 노래에서
그리고 고요한 숲 속을 산책하며 악상을
떠올렸고, 피아노 앞에서 거듭된 퇴고를 한
끝에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을 아끼는 친구들과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작곡을 했고, 여러 여성들과 사랑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실연은 그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단념하도록 만들었다. 안정된 후원을
보장했던 귀족들의 지원이 전쟁으로 인해
줄면서 그들의 무책임함에 실망하게 되었다.
또한 형제들의 결혼 문제로 불화가 생기고
조카의 양육권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렸다.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고, 창작력마저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다.
때로는 바보스러울 정도의 순진함 때문에
상처를 입고 무례할 정도로 이에 대응
했으며, 자신의 이상주의적 도덕관에 비추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속물이라고 공격하는
고집스럽고 다소 괴팍한 성격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의 순수함을 이해하는
친구들은 그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시기에
내면의 위기가 온 것이다. 화려한 성공으로
삶의 회의와 분노를 보상받으려는 듯 했지만,
그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돌아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교향곡 9번]과 [현악사중주곡
12번 - 16번] 에서 이전보다 더 초연한
자세로 인간의 삶을 묵시하고 있다.
음악가로서 난청이 주는 불안과 고통, 잇따른
연애의 실패 등으로 인해 삶의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로 침잠한 베토벤.
이러한
좌절과 보답 없는 자기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간다면, 시련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삶이 주는 기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영웅일
것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살아있음을 당당히 알렸다. 젊은
시절 거부하고 싶었던 자신의 운명에 극적으로
투쟁하는 모습의 [교향곡 5번]은, [교향곡
9번]에서 숙명적이라고 해야 할 삶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통해 원숙함으로 다가선다.
현실의 고뇌와 숙명이 숨쉴 수 없이 몰아치는
자연의 폭풍우처럼 먹구름과 비와 천둥번개를
몰고 간 뒤에 (1악장), 그 한가운데서
버티고 나선 한 인간의 실존적 생의 의지가
강인한 힘으로 돌진해온다 (2악장). 이윽고
이에 상응하는 내재적 이상과 사랑으로서 신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 천상으로 향하며
(3악장), 마지막으로 자연과 인간과 신의
합일로서 생의 환희에 이르는 것이다
(4악장).
이는 "고뇌를 뚫고 환희에
이르라" 는 그의 일생의 모토를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숨쉴 틈 없이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한 인간의
강인한 의지.
그리고 그 끝에서 신의 고요함
속에 안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천상에서
지상으로, 불행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손을 부여잡기 위해 내려온다.
상처투성이인
베토벤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격적으로 다소의 부족함이 있는 그였지만,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비탄에 잠겨 눈물마저
말라버린 한 여성을 위해, 영혼을 뒤흔드는
피아노 연주로서 그녀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한
베토벤이었다. 바로 그 연주가 [피아노
소나타 28번]으로 그녀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은 무겁게 내리누르는 심연에서
솟아올라, 빛나는 날개로 힘차게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삶의
계시를 들려준다.
베토벤, 그는 자연과 인간과 신을 어울러
인간의 목소리로 생의 환희를 연주하고 있다.
[교향곡 9번]에서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 (Ode an die Freude)
를 노래한다.
오 환희여, 더 이상 이런 음조는 아니다.
더욱 즐거운 노래를,
환희에 가득 찬 노래를 부르자!
베토벤은 그의 파란만장한 생의 종지부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찍었다.(언)
칠레 킹 조지 아일랜드 이정표
칠레 킹 조지 아일랜드 프라이 스테이션(역) 옆에 있는
이정표 탑이다.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국민의식은 경제생활 수준과는 전혀 다르다.
함께 사는 인구 집단이 상식적이고 행복한 관계 속에
있을 때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국민을 국민의식이 높은 나라라고 말 한다.
그래서 그 나라의 삶의
질은 경범죄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 민간 싱크탱크
신경제재단이 전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우리 한국은 63위를
차지했다.
가장 최근의
OECD발표(2011년 발표)에서도 한국인의 삶의
질 행복지수는 조사대상국 36개국 가운데 24위를
차지했다.
세계 1, 2위를
달리는 이혼율, 자살율, 부패율, 교통사고율,
직장노동불만족도 등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삶의 질이
그다지 좋은 편은 못 된다.
건국 이래 가장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시대라고들 한데 말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11위권에 올랐어도 말이다.
한국경찰청의
국감자료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한국의 경범죄건수는
무려 31만여 건에 달했다. 이웃국가인 일본의
경범죄건수 1만8천 건에 비하면 일본의 무려
44배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특히 ‘인근 소란죄’(소음)
건수는 5만여 건으로 일본 25건에 비해 무려
2000여배에 달했으며, 오물투기 일본 98건,
한국 6만940건 등 정말 부끄러운 통계가 아닐 수
없다. ‘노상 방뇨’는 일본은 191건인데 한국은
1만1535건이나 된다.
술 마시고 깽 판
부리고,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고, 노상(路上)
방뇨하는 사람들이 일본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들의
의식수준은 아프리카 미개국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한국의
경범죄건수가 엄청난 이유는 그런 행위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생활에 위협을
가하고 국가체제를 부정하며 국가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단체나 무리들을 인권, 환경 운운하며 제대로
응징하지 않고 있는 탓이 아닐까?
중범도 중범이지만
국가와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부패범, 행패, 소란범
등의 파렴치 범들에게 제대로 된 응징을 가하는
국가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집밖에
내 놓은 화분에 물이 고여만 있어도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모기가 꼬이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이순간에도
한국에서는 양보를 모르고, 공공장소에서 어린아이들이
시끄럽게 해도 부모가 야단을 치지 않고 나무라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대들며 애를 기 죽인다고
소리지르는 일이 허다할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버릇없이 굴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환경을
함부로 훼손하는 등 부끄러운 일들이 여전하다.
구급차, 소방차에게
양보하기는커녕 이들의 길목을 가로막아 사고를 내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소방관, 구조대원,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 챙기는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미국이 선거철이
되어서인지 요즘 30세 미만 젊은 불법체류자들을
구제할 것이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추방자 5명에
1명꼴로 범죄기록이 있는 영주권자들의 추방은 늘고
있다고 한다. 중범죄 혐의가 아닌 경범죄
기록만으로도 추방령을 받는다는 것이다. 영주권
소유자라도 소시민적인 생활 법규를 가볍게 여기는
자를 단호하게 추방하고 있다.
휴먼라이트 워치라는
단체가 말하는 한 예가 있다. 61세인 로저 시미는
15년 전 여자친구에게 폭력을 가한 기록과 두 차례
음주운전 적발 기록이 드러나 최근 법원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시미는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 온 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 전쟁에도 두
번이나 참전했지만
추방명령을 받았다.
또 이란 유학생 출신
영주권자인 49세 아피 카르는 무려 30년 전 한
상점에서 물건을 훔친 전력이 밝혀져 역시 추방령을
받았다.
멕시코 출신 영주권자인
45세 가라 베이는 먹거리를 훔쳤다 최근 추방
위기에 놓였다. 이렇듯 미국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범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성경에 보면 큰 일에
충성하라는 말씀은 없지만(물론 큰일을
소홀히 하라는 뜻은 아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말씀은 있다. 작은 규칙 규범 법규를 잘 지켜
경범죄를 줄이는 한국국민이 되어야 하겠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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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중간부분부터 시작될 때는
단추를 끌어다 첫
부분에 놓고 처음부터 들으세요.
제가 장례식을 집례할 때에 가끔 '6.25 참전용사' 출신의 고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저는 그런 참전용사의 영정 사진과
그 관 위에 덮여 있는 태극기를 볼 때마다 보통 장례식 때와는 다른, 특별한 감회가 절로 뭉클 솟게 됩니다.
그분들의 희생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태극기라는 국기를 여전히 내걸 수 있게 된 것이며, 그분들의 애국심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국내의 온갖 종북좌파들의 선동과 농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6.25 참전 용사'들은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그분들과 함께 '6.25 전쟁'을 겪어
보았던 세대 전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그런 분들의 피로써 지켜졌던 이 대한민국은 이제 '6.25 전쟁을 모르는 전후(戰後)세대'가 이어받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 한국정보통계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35.1퍼센트가 '6.25 전쟁'을 '북침'(남한이 북한을 침공한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50.7퍼센트가 '조선시대에 발발한 전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해에 행정안전부에서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보면 56.8퍼센트가 '6.25 전쟁'의
발생연도를 모르고 있으며, 38퍼센트는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지 않겠다.'고 답변했습니다.
'6.25 전쟁'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주장하는 그대로 잘못 알고' 있으며, '전후세대' 정도가 아니라
'국가안보의식 자체가 완전히 결여된 비둘기파'가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6.25 참전 용사'의
장례식을 치르게 될 때마다 '한 성도와 육신적으로 이별하게 되는 슬픔'보다도 오히려 '이 대한민국의 장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염려'에 더 깊이 사로잡히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제가
바로 '6.25 전쟁' 6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이 지금으로부터 61년 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실제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점점 더
모르게 되고 아무도 알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절대로 몰라서 안 되고 잊어도 안 되는 이 '6.25 전쟁'을 상기하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남북화합의 방해물'이나 되는 것처럼 치부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과연
그렇겠습니까?
'6.25 전쟁'을 모르고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 조국과 민족이 완전한 평화와 통일을 바라볼 수 있는 바른 길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이스라엘 세대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결국 어떻게 되고 말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특히
우리나라의 '6.25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가 꼭 깨달아야 할 역사적 교훈을 함께 새겨 보고자 합니다.
1.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주적(主敵)의식을 잃게 됨으로써 결국 원수에게 거꾸로 당하게 됩니다.
본문
1절부터 3절까지에 기록하기를 "1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두신 열국은
3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전쟁"은 이스라엘을 있게 한 역사적 전쟁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에서 태어났던 이스라엘 백성 즉 '광야 세대'는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그들의 조상이 40년 전에 지레
겁을 집어 먹고 물러섰던 가나안 본토를 향하여 용감하게 전진해 나갔으며 결국 그 땅을 정복해내었습니다.
즉 '가나안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그전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민족'으로부터 탈바꿈하여 '주권과
영토를 가진 정식 국가'로 출범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광야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여호수아는 이미 죽었고,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수 24:31) 역시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 대신에 이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가나안 전쟁'을 겪지는 못했지만 그 '가나안 전쟁'이 가져온 혜택만 누리고 사는 새로운 세대가 이스라엘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주 이상한 일을 행하셨는데, 바로 그처럼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 '시험하다'라는 말은 '테스트하다'라는 뜻과 '연단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 문맥에서는 후자에 해당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오로지 '태평 시대'에서만 살게 된 이스라엘의 신세대를
'단련'시키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2절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특별 연단'의 교육을 위하여 3절에 나오는 대로 "블레셋 다섯
방백"을 위시하여 가나안 본토와 그 주변 지역의 이방 민족들 중 일부를 일부러
"남겨두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로 하여금 계속 '전투의식'을 유지시키려 하셨습니다.
즉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안이하게 살지 말고 아직도 '섬멸해야 할 적'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완전히 정복해야 할
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깨움으로써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단련'시키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전쟁을 모르는 자'에게 일부러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해 주시는 아주 특별한 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세대'는 하나님의 그런 뜻 깊은 '연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남겨 두신 열국'을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평화 공존의 이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즉 그들을 완전히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는 대신에 여호수아 세대의 조상들이 이미 정복해 놓은 땅에서 안주하는 데에만
급급했고, 그 결과 주변 이방 민족은 물론이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본토 민족들에 대해서조차 오로지 '유화 정책'으로만
일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나중에 다윗 왕이 나타나기 전까지 전 사사 시대를 통하여 그 '블레셋 민족'을
비롯한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 줄곧 침략과 착취를 당하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원수에 대하여 '주적의식'을 가지지 않고 그저 적당히 '사이좋게' 지내고자 했을 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결코 '평화
공존'이 아니라 오히려 그 원수에게 거꾸로 잡아먹히는 '패배'일 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공산주의 침략자들로부터 지켜낸 실로 중요한 역사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선조들이 이 전쟁에서 졌더라면 저와 여러분도 지금 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밑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어 가는 수백만 명 중에 하나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저 '참전 용사'들이 오늘날의 청소년들처럼 '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싸우지 않겠다.'라고 했더라면, 지금 경제대국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존속하기는커녕 한반도와 한민족 전체가 다 제3세계보다 더 못한 '거지 나라'의 비참한
꼴을 면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순전히 '6.25 참전 세대' 덕분에 지금 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땅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6.25 전쟁'을 왜곡하는 좌파 세력들이 바로 이 대한민국 안에서 버젓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세 명 중에 한 명이 '6.25 전쟁은 북침이었다.'라고 잘못 알게 된 것도 순전히 이런 자들의 오도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아침에 서울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날 라디오를 통하여 "모든 국군 장병들은 즉시
귀대하라."는 방송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마침 그날이 주일이어서 많은 장교와 사병들이 휴가나 외출 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것이었다면, 공격 개시일 전날에 그처럼 군인들에게 휴가를 주어서 일부러 병력을 줄여 놓고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이 말이나 될 일이겠습니까?
지금 '종북좌파'
세력들은 그처럼 분명히 불법남침을 저지른 북한을 두고서 지금도 입에 발린 듯이 하는 말이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아니, 저쪽은 '자극' 정도가 아니라 61년 전에 '무력 남침'을 했으며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무력 도발'을 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어떤 유명한 정치인께서는 "북한을 약 올리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라고 하시더군요.
저쪽은 '약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한테 어뢰를 발사하고 대포를 쏘아대고 원자폭탄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우리 대한민국은 저 '민족의 원수'이며 '국제적 악의 축'인 김정일과 '평화 공존'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
무슨 얼빠진 소리입니까?
그처럼
대한민국의 진짜 원수에 대한 '주적 의식'이 결여된 자들은 오히려 '대한민국 안에 있는 적'을 만들려 하기 마련입니다.
'6.25 전쟁'이 '북침'이었다고, '미국'이야말로 '민족통일의 방해자'였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전교조'는 우리나라 안에서 '없애 버려야 할 50개의 대기업들과 50개의 대형교회들의 명단'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소위 '계급투쟁'을 부채질하고 '종교는 마약'이라고 선동하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똑같지 않습니까?
'6.25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이런 '종북좌파'에 의하여 세뇌되어 버린다면 그 결과는 정말 두려우면서도 뻔한 일이
될 뿐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울 마음이 없다.' - 그렇게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주적의식이 결여된 자'는 이미 적에게 굴복하고 있는 '패배자'일 뿐이며,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애초에 '국민이 될 자격'부터가 없는 진짜 '반역자'요 '매국노'에 불과함을 절대로 잊지 않는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영적 타락으로 인하여 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4절
이하 6절에 "4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5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6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겨두신 이 열국" 즉 앞서 3절에 나왔던 이방 민족들을
통하여 또다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려고 했습니다.
여기의 '시험'은 앞에 나왔던 '연단'과는 달리 '테스트'입니다.
그것은 곧 이어지는 4절 하반절의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명백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에게 주변 이방 민족들을 남겨 두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신앙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
제1, 2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본토인들과 주변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 계명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청종" 여부를 테스트해 보시는 데에 있어서 적절한 '시험지'와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다 우상숭배하는 민족이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한다면 결코 그들과
교제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세대'는 이 '테스트'에도 실격하고 맙니다.
5절과 6절에 나오는 대로 "이스라엘 자손은" 그 이방 민족들
"사이에 거하던" 중에 끝내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이스라엘의 적'으로 알지 못하고 '평화 공존해야 할 이웃'으로 여겼으니 그런 '통혼'이 일어난 것은 자동적인
순서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그처럼 십계명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한 결과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스스로 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앞서 여호수아 24장 3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는
의미심장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은 '가나안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역사'를
"아는 자"들이 생존해 있을 동안에는 그래도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그 조금 뒤에 나오는 사사기 2장 10절에서는 그런 여호수아 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이란 바로 '가나안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신 일'을 가리키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즉 '전쟁을 바로 깨닫고 기억하는 것'이 '신앙을 바로 지키는 것'과 직결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미국의 어떤 한인교회에서 실제로 목격했던 일입니다.
매주일 오후에 있던 대학부 성경공부 시간이 어느 주일에 갑자기 무슨 '북한 선교에 대한 특강'이라는 순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북한을 다녀왔다는 두 명의 목사들이 어떤 장로의 주선으로 그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독교 전도는커녕 종교의 자유 자체가 아예 없는' 북한에 도대체 어떻게 선교를 했다는 것인지 처음부터
미심쩍었는데, 몇 마디 들어 보니 역시 제 짐작대로였습니다.
그들은 북한이 선전용으로 세워 놓은 '봉수교회'에 한 번 다녀온 것을 두고 '북한 선교'를 했다면서 강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목사는 우선 자기가 어릴 때 '반공 교육'을 받으면서 "북한군은 다 머리에 뿔이 난 줄 알았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더라."는 냉소적인 농담으로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들과 똑같이 '군사정권 시절의 반공교육'을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처럼 '북한군의 머리에 뿔이 나 있다'고 배운 적도 없고 저 혼자 그렇게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만,
아마 그분은 저와는 달리 무척 '순진한 어린이'였나 봅니다.
그 목사는 이어서 말하기를 자기네들이 봉수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와 똑같은 찬송가'를 부르더라고 하면서
거기서 녹음해 왔다는 테이프까지 틀어 주었습니다.
북한이 봉수교회에 외국 사람들을 초청해서 예배라는 것을 보여 줄 때에는 그 주일에만 특별히 '동원된 교인'들이 모이게
되고 처음 보는 찬송가라 해도 '악보만 보면 척 부를 수 있는 성악 전공자'들을 모아서 성가대를 급조한다는 사실은 만천하에
알려진 일인데, 그 목사들이 그것을 몰랐다면야 그 역시 그저 '순진무구한 목사'여서 그랬다고 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진짜 본색은 그 다음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북한 선교는 옛날 미국 선교사들이 처음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했던 식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구원의
복음'이라는 것은 북한이 받아 주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화해의 복음'을 가지고 북한을 선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남북한을 화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전도하면 김일성도 얼마든지
기독교를 용납해 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참 '기똥찬 복음' 아닙니까?
그
목사들이 끝으로 덧붙였던 말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멘트는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 대학생들과 같이 맥주나 한 잔씩 마시면서 나누어야 더 좋은데..."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북한 선교'에 대한 토의라는 것을 교회에서보다 술집에서 해야 '더 잘 통한다.'라는 말이 명색이 '목사'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의 진실을 부인하고 침략자 김일성의 동상 앞에 절하고 오는 목사는 어김없이 '가짜 목사'입니다.
'한반도 분단'과 '동족상잔'의 원흉인 공산주의자들과 '통혼'하는 기독교인이란 실상은 두말할 것도 없는 '배교자'들일
뿐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예외가 없고 틀림이 없는 '등식'입니다.
이처럼
'전쟁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안이함과 나태'에 빠지게 만들며 그것은 결국 '영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을 적으로 알지 못하는 세대', '하나님의 원수와 동침하는 세대'는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배교의 세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방 민족과의 교류와 통혼을 '평화 공존을 이룩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의 전후 세대'가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저 무신론의 공산주의자들을 '하나님의 원수'요 '기독교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조국과 교회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배반자'들임을 똑바로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전후세대'의 청년들과 학생들은 '6.25
전쟁'을 '역사'를 통해서 바로 배우지 못하고 그저 '영화'를 통해서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참전을 은근히 비꼬는 '웰컴투 동막골'이나 두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 때문에 억울한 민간인들만
희생당했다는 식으로 강조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따위의 영화들이 이 '6.25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6.25
전쟁'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이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만약 그때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자기네들이 그처럼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리가 없고, 그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희생시킨
전쟁의 장본인은 절대로 '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한 무리였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전쟁의
실체는 그 어떤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비참합니다.
군에 징집된 남자들은 전장에서 총에 맞아 죽고 후방에 있는 민간인들도 폭격에 찢겨 죽습니다.
부부가 생이별을 하게 되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됩니다.
아군에 의해서도 집이나 식량이 징발되고, 적군이 점령한 곳에서는 아내와 딸이 눈앞에서 강간을 당하게 되는 일까지도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끔찍한 비극을 겪지 않고 이런 '평화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일수록 절대로 전쟁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6.25 전쟁' 발생연도조차 모르고 있으면, 여러분의 부모들을 총포로 쏘아 죽이고 탱크로 짓밟아 죽였던 침략자들을
'평화 공존해야 할 같은 민족'이라고만 생각하고, 반대로 이 대한민국을 지켜 주기 위하여 전사자만 해도 3만 7천 명에
달하는 자국 청년들의 피를 희생해 주었던 우방 미국을 '여중생 2명을 탱크로 깔아 죽인 원수'라고 매도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6.25 전쟁'을 '북침'이라고 알고 있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 명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박해하고 투옥시키고
고문하고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고 있는 저 '하나님의 원수'를 무슨 '화해의 복음'이라는 것을 들고 가 만나서 포옹을
해야 할 '합리적인 통치자'라고 추켜세우고, 반면에 바로 이 대한민국 안에 있는 '교회'들을 '없애버려야 할 적'이라고
살생부를 만들고 있는 교사들이 추천하는 사람을 교육감으로 버젓이 뽑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전후
세대'일수록 최소한 '전쟁을 알기는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그처럼 '전쟁을 겪지 않고 있는 축복'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의 원수'에게 미소만 보내다가 결국 거꾸로 당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대적'과 포옹하고 있다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25 전쟁을 모르는 세대', 우리 '학생들과 청년들'은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합니다.
'6.25 전쟁'은 결코 '북침'이 아니라 명백한 '남침'이었으며, 무슨 '통일전쟁'이 아니라 '동족상잔의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만은 '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반공(反共)'은 절대로 '군사정권의 독재 유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이 공산독재국가가 되는 대신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하게 해 준 소중한 '건국(建國)정신'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반공'은 '6.25 참전 용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면서 이 조국을 지키게 만들어 준 '국시(國是)',
'나라 국 자'에 '옳을 시' 즉 '대한민국의 바른 이념'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로
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몽고메리 장군은 '전쟁의 역사'라는 그의 책 서문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라는 너무나
훌륭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곧 '전쟁을 모르면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6.25 전쟁'이 생생하게 보여 준 '역사의 교훈'을 상기하고 성경이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명백하게 가르쳐
주는 '역사의 경고'를 깨달음으로써 조국 대한민국을 원수로부터 지켜내고 우리 한민족의 진정한 평화통일을 하루라도 더 빨리
앞당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 장안3동 한
12층짜리 상가건물 외벽에
빈틈없이 내걸린 간판 풍경.
학원 음식점 병원 은행 세무사 미용실 등 내걸린
간판들은
그 자체로 도시민들의
생활상과 관심사를 한눈에 읽어볼 수 있게 한다.
건물의 아름다움은 실종되고
간판으로 도배된 건물이 있을 뿐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적인 ‘IT(정보기술)강국’ 또는 ‘ICT(정보통신기술)강국’이라고
불리었다. 그런데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IT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영국의 EIU(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해마다 발표하는 IT산업경쟁력지수는 IT강국이라고 일컬어지던 2007년에는 세계 3위까지
올랐다가 2008년에 8위, 2009년에 16위, 2011년에는 19위로 추락하였다(2010년에는 발표하지
않음).
올 연말에는 몇 위까지 얼마나 더 낮아질 지 궁금하다. 대책
없이 이대로 가다가는 더 떨어질 수도 있다.
2008년 2월 25일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IT정책을 총괄했던
정보통신부를
해체(강화하기는 커녕)하여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문화관광부 등 4개 부처로 분산시켰다.
또한 4대강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퍼붓는
대신 정부부처와 지자체의 정보화 예산은 크게 삭감하였다. 그 결과 한국 국제적인 IT경쟁력이 약화되고,
국내 IT산업이 지난 4년여 동안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은 IT업계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부 부처에서는 다른 지표를 인용해가면서 한국의 IT경쟁력이 약화되지 않았고, 국내 IT산업도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국내 IT산업이 대기업 위주로 성장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몰린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내 IT산업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1) 이의 주된 원인은 IT 관련
법·제도, 산업정책, 산업생태계 조성 등에서 입법부의 입법 활동 부진과 행정부의
총체적인 리더십 부재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정통부 해체와 정보화 예산 축소 등과 같은 현 정부의 실정으로 크게 실추된 IT강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특단의 초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IT 산업 전담 부처가 없이 IT 정책이 네 부처로 흩어지자 업무 공백과 더불어 업무 중복도 많이 생기고
있다.
2)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구글의 시각장애인 연구원 라만 박사가 한 말이다. 그는 강연과 포럼을 통해 여러
나라를 다닐 때 스마트폰으로 구글맵을 통해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구글맵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서 쓸모가 없었다고 말했다.
규제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구글맵을 쓸 수 없는 나라는
세계 각국 중에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입장에서 한국이 절대로 IT강국의 명예를 다시 찾을
수 없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
3)
IT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력하여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도 조성해줘야 한다. 대기업만 배부르고 중소기업은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IT산업뿐만 아니라 한국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4) IT 인력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찌 보면 한국의
IT인력 양성정책은 북한보다 못할 수 있다. 북한은 초등학생 때부터 IT인재를 선별해서 전문가로
육성하며, 컴퓨터를 전문으로 하는 대학도 여러 곳에 있다.
5)
IT산업이 번성하면 일자리가 준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지 않다. IT산업에
투자하면 다른 산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IT산업과 IT융합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여. 크게 후회하기 전에 IT
르네상스를 이룩하라. (언)
지방은 비만과 심장병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필수지방이 있다.
바로 오메가-6와
오메가-3 지방산이다.
이들은 뱃살에 축적되는 에너지 원료로 이용되기 보다는 생명유지와 건강유지에 필수적인 물질들의 원료로 이용되기
때문에 이들의 영양불균형과 산화적 손상은 각종 질병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필수지방은 모든 세포막의 구성물질로서 노화, 당뇨와 관련이 있고, 혈관벽과 지단백(LDL)의
구성물질로서 동맥경화, 심장병과 관련이 있고, 각종 호르몬의 합성원료로서 염증질환, 면역질환과 관련이 있고,
두뇌, 신경계, 망막의 중요 구성물질로서 성장장애, 치매, 백내장과 관련이 있다.
이들 필수지방은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구조이기 때문에 빛, 열, 산소와 만나면 쉽게 산화되어 유독물질로 변하고
만다.
체내에서는 유해산소에 의해 쉽게 산화되고 2차적으로 주변 조직을 산화적으로 손상시킨다. 그래서 이들
필수지방이 많이 분포하는 눈, 뇌, 신경, 혈관 조직은 산화적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노화가 쉽게 일어난다.
많은 현대인들이 오메가-6와 오메가-3가 영양불균형 상태이고, 이들 불포화지방산의 산화를 방지하는
방어시스템이 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에 중대한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잘못된 방향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부터 복잡하고 재미없는 자연원리를 설명하겠다. 다음의 내용은 평생 모르고 지낼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아는 게 약이 된다.
비슷한 사례로 업자들이 “동물성 포화지방인 버터보다 식물성 불포화지방인 마가린이 더 좋다”고 광고해서 열심히
마가린을 사먹었는데, 한참 뒤늦게 학자들이 “아니다, 마가린의 트랜스 지방이 더 해롭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오메가-6와 오메가-3의 영양균형
다른 지방과는 달리 오메가-6와 오메가-3는 우리 몸의 염증, 면역, 혈전, 혈압, 소화 등의 신체기능을
조절하는 호르몬(프로스타글란딘)들을 합성하는 원료로 이용되는데, 잘못된 식사습관으로 오메가-6와 오메가-3의
영양균형이 무너지면 이런 신체기능의 균형도 무너지게 된다.
동물성 기름에 많은 아라키돈산(오메가-6)은 ‘2형 프로스타글란딘’이란 염증과 혈전을 촉진하는 물질들의
원료로 이용된다. 즉, 동물성 식품을 많이 먹으면 염증질환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생선 기름에 많은 EPA(오메가-3)는 ‘3형 프로스타글란딘’이란 염증과 혈전을 억제하는 물질들의 원료로
이용된다. 즉, 생선을 많이 먹으면 염증질환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낮아진다.
식물성 기름(콩, 옥수수)에 많은 리놀레산(오메가-6)은 감마리놀렌산(GLA)을 거쳐 ‘1형 프로스타글란딘’이란
염증과 혈전을 억제하는 물질들의 원료로 이용되기도 하고, 아라키돈산을 거쳐 ‘2형 프로스타글란딘’이란 염증과
혈전을 촉진하는 물질들의 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식물성 기름은 염증질환과 심장질환의 위험을 낮추기도
하지만, 반대로 높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프로스타글란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라키돈산(오메가-6)과 EPA(오메가-3)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고, 리놀레산(오메가-6)과 감마리놀렌산(GLA)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평균 식사에서 오메가-6와 오메가-3의 섭취비율은 예전에는 2:1이었는데, 현대에는 미국인 20:1, 한국인
10:1로 달라졌다.
즉, 오메가-3(생선)의 소비는 줄고, 오메가-6(동물, 식용유)의 소비가 늘어났다.
학자들이 권장하는 섭취비율은 4:1이다. 따라서 영양균형을 맞추려면
오메가-6는 줄이고 오메가-3는 늘려야
한다.
달맞이꽃종자유의 허와 실
여성들과 아토피에 좋다고 알려진 달맞이꽃종자유는 리놀레산 72%, 감마리놀렌산 9%로 구성되어 있다. 즉,
81%가 오메가-6이고, 오메가-3는 없다. 달맞이꽃종자유는 소비자들이 돈을 들이면서 영양불균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달맞이꽃종자유 1알을 먹으면 오메가-6와 오메가-3의 섭취비율이 10:1에서 11:1로 더욱 나빠지기
때문이다.
원료업자들이 자금을 댄 연구들은 달맞이꽃종자유가 생리불순, 아토피, 류마티스 관절염 등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 달맞이꽃종자유는 동물성 식품을 선호하는 사람에서 다소 염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효과는 콩기름 등의 일반 식용유를 보충해도 나타난다. 아라키돈산에 비해 리놀레산의
비율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자연의학자들은 달맞이꽃종자유가 장기적으로 EPA(오메가-3)는 낮추고 아라키돈산(오메가-6)은 높이기 때문에
염증질환과 심장질환의 치료목표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오메가-6 지방산인 달맞이꽃종자유를
보충할 것이 아니라 오메가-3 지방산을 보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현대 사회에서 달맞이꽃종자유는 부유한 여성들이 사먹는 여성 호르몬과 관련된 신비의 물질로 인식되기도
한다. 절대 따라 먹을 일이 아니다. 판매업자들의 과장광고일 뿐이다. 여성 호르몬은 콜레스테롤에서 합성되고,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콩에 많다. 달맞이꽃종자유는 여성 호르몬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물론 감마리놀렌산(GLA)의 보충이 유익한 사람들도 있다. 리놀렌산을 감마리놀렌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동물성 식품, 식물성 지방, 설탕, 술을 많이 먹거나, 당뇨, 아토피, 생리전증후군이
있거나, 비타민B6, 마그네슘, 아연이 부족한 사람들에서 간혹 발생할 수 있다.
감마리놀렌산(GLA)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달맞이꽃종자유(GLA 9%), 블랙커런트오일(GLA 17%),
보라지오일(GLA 22%)로 보충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GLA 함량이 높으면서 리놀레산이 적은 보라지오일이나
블랙커런트오일이 달맞이꽃종자유보다 더 나아 보인다.
오메가-3(생선오일)의 섭취량
미국에서는 염증질환과 심장질환에 생선오일 1g 캡슐(오메가-3 지방산 0.3g 함유)을
1일 10알 이상 보충하는 임상연구가 많다. 동물성 식품을 많이 소비하는 미국인들은 1일 10알의 생선오일을 보충해도 4:1의
비율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인에 비해 동물성 식품을 덜 소비하는
한국인들은 이론상
1일 5알의 생선오일을 보충하면
4:1(10:2.5)의 비율을 맞출 수 있는데, 식사에서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지방을 줄이고 생선과 들깨를
늘린다면 더 적은 양만 보충해도 된다. (들깨에 많은 알파리놀렌산은 오메가-3로서 EPA로 전환될 수
있다.)
특히 심장질환, 염증질환(아토피,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들과 동물성 식품(육류, 우유, 계란)을 많이
소비하는 어린이들은 식사와 보충제에서 오메가-6를 줄이고 오메가-3를
늘리는 것이 영양상태와 건강상태를
개선하고 약물의 사용량을 줄이는 최고의 방법이다.
오메가-3 섭취량을
늘릴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산화되지 않은 오메가-3를
섭취하고, 체내에서 산화되지 않도록 항산화제를
함께 섭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