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이런 표현 어떻습니까?
옛날에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답니다.
한 부류는 동사형의 사람들이고, 또 다른 한 부류는 명사형의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동사 같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그저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꼼지락 거리면서 움직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래요.
좋은 말로 하자면 운동량이 많고 활동적인 사람이고요, 좀 안 좋은 표현을
빌리자면 어딘가 좀 산만한 것 같고 늘 분주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 있죠?
그래서 때로는 정신없다는 말을 많이 듣게도 되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생동감은 있어서 좋습니다.
어쨌든 동사형의 사람들은 노상 바빠요. 늘 움직이는 모습이죠.
그에 비해서 명사형의 사람들은.... 글쎄요?
그림으로 치자면 정물화 같은 사람들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매우 정적이라는 겁니다.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불러주거나 무슨 자극을 되게 주어야 그때서야 비로소
움직이는 사람들, 그것도 무척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죠.
이런 명사형의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자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디 아프냐?’는 말을 많이 듣게 되죠.
그렇지만 늘 차분하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어서 주변이 항상
깔끔합니다.
일 처리도 야무지고요.
나름대로 둘 다 장점은 있겠죠.
그러고 보면, 정말 동사형의 사람들을 보면 ‘웃는다.’, ‘뛴다.’,
‘걷는다.’, ‘먹는다.’, ‘싸운다.’....
이런 말들이 그들의 몸에서 막 베어 나오는 것 같고요.
명사형의 사람들에게서는 꽃, 하늘, 립스틱, 바람, 나무, 책상,
머리핀, 동화책.... 이렇게 안정적인 이미지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명사형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불러줘야 할 것 같아요.
"너는 마스카라 같은 사람이야.. " 무슨 뜻이냐고요?
글쎄요? 어딘가 모르게 좀 자존심이 세고 허세를 부린다는 뜻이겠죠?
그렇지만 아찔할 만큼 아름답다는 뜻도 있을 거예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그럼 동사형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표현을 써 주면 좋을까요?
그렇죠? "자넨 뛰어다니는 사무실 같군..."
그렇게 말해주면 정말 그 사람, 기분 좋게 일할 것 같습니다.
여기 서 있는 조한우 목사는 대충 어떤 부류의 사람일 것 같습니까?
^^*
그러고 보면 동사형의 사람이나 명사형의 사람이나 다들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들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요, 친구도 생기고,
애인도 생기고, 그러다가 결혼도 하고 그러는 건가 봐요.
오늘 봉독해 드린 아가서의 말씀은 정신이 아뜩해질 만큼
짜릿한 연애편지 같습니다.
연애소설을 읽는 것 같은 가슴 두근거림이 여기에 있어요.
그 표현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야, 이게 어떻게 성경이냐?’ 그러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녀들이 만으로 열 두 살이 되어야
아가서를 읽을 수 가 있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두 살이 되면 성년식을 하거든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19세금입니다. 성인용이에요,
성인용!
사실 아가서에는 하나님의 ‘하’자도 한번 안 나오거든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차례도 안 나오는데도 아가서는
정경으로 떡 하니 인정이 되어서 오늘날 성경책 속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아가서에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요한일서 4장 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러셨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아가서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이야기들이 쓰여
있는 거예요.
이 말씀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말씀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아가서가 당당하게 정경으로 채택이 된 거죠.
아가서를 펼쳐서 읽다 보면 구구절절이 하나님의 사랑이
배어나 오고요, 구구절절이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칠정교회 성도님들, 다들 70이 넘으셨지만
어떠세요?
아직까지도 가슴이 설레지 않습니까?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러분, 우리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세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소리를 들어보라! 들어보라! 들어보라!
그 이름 믿는 자 복 받으리. 어서 곧 일어나라!♬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있어요.
자비한 주께서 지금 우리들을 부르고
계십니다.(믿습니까?)
그런데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주님의 음성이 귀찮고 두렵고 성가시기도 하고 그런
거예요.
그러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대화도 나누고, 산책도 하고,
함께 에덴동산을 돌보면서 의논도 하고 그랬는데 죄를 범하고 나니까 그만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싫어진
겁니다.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의 음성이
들렸거든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어떻게
했어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싫어진 거예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싫어진 겁니다.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오고 태풍이 불고하는데, 누가
교회에 나오고 싶겠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나오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핸드폰이 불이 납니다.
밤새도록 그 목소리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거예요.
왜 그래요? 사랑하니까...
그런데 빚쟁이가 독촉 전화를 합니다.
웬수(?)같은 놈이 자꾸 스토커가 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아예 전화 코드도 빼 버리고 핸드폰 전원도 꺼 버리는
거예요.
그 목소리가 지긋지긋해서 듣기 싫은 걸 어떻게 해요?
옛날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잖아요?
유난히 인기가 좋은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수업 시간에 한 학기 공부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의
첫 사랑 얘기 안 듣고는 진도가 안 나갑니다.
멋진 총각 선생님이나 예쁜 처녀 선생님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나보고 첫 사랑 얘기해 달라는
교인들이 한 사람도 없으니..... ㅠㅠ (내가 그렇게도 못 생겼나?)
매주 화요일마다 우리 교회에서 설교연구모임을 하는데 오늘
이 본문을 미리 연구하면서 때 아닌 첫 사랑 얘기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예수자매원에 김재숙 전도사님은 나이가
60이 다 되신 분인데요, 옛날에 여고 시절에 영어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했다 네요.
총각 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의 미소가 뭐 백만 불짜리
미소였다 나요?
덕산 교회 이호준 목사님은 중 2 때 고등학교 누나를 짝
사랑해가지고...
하여튼 그 누나한테 잘 보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대요.
그 누나가 자기한테 뭐라고 한마디 칭찬이라도 해 주면 그
날은 잠을 못 자는 거예요.
그러더니 어느 날 그 누나가 자기한텐 말도 안하고 시집을
갔다고 지금도 섭섭해 하시던데... ㅎㅎ
사모님께서 아시면 큰일 난다고 아직도 비밀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해 주는 바로 그 사람,
그 사람의 음성, 그 사람의 목소리 한번 듣는 건 얼마나 달콤한 일인지 모릅니다.
솜사탕보다도 더 달콤하고 커피향기 보다도 더 그윽한
감동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 기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의
꿀보다 더 하니이다.”(시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글쎄?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요.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송이 꿀처럼 답니다.
그래서 늘 주님의 음성이 듣고 싶은 거예요.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
삼상3:9(할렐루야!)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러분,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본문 8절, 9절 말씀을 보니까,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바로 지금!(Right Now!)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찾아오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우리들이 보고 싶으셨는지 산을 넘어오시는데 그냥 걸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도 넘어 오시는
거예요.
어렸을 적에 산에 올라 다니면서 내리막에 많이 뛰어다녀
봤거든요.
그거 쉽지 않습니다.
잘못해서 뭣에 걸리기라도 해 보세요.
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오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더구나 뛰어 내려오다가는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달려오시는데 큰
산에서 달리시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신다고 아가서 기자는 노래합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급하신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칠정교회 성도님들을 만나시기 위해서
달려오시는데 황급하게 달려오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 나오실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님 만나고 싶어서 황급히
나오셨습니까?
보통 우리 칠정교회 성도님들은 11시 예배면 최소한
9시면 나오시더라고요.
김희영 성도(정신 장애인)는 매 주마다 7시부터 사택에
와서 나를 불러요.
우리 교인들 정말 대단들 하셔요.
수요일저녁 8시 예밴데 5시만 좀 넘으면 벌써 교회에
나와 계신단 말예요.
왜 그래요?
사랑하는 우리 주님 빨리 만나고 싶어서...
(할렐루야!)
대한민국에 우리 칠정교회 같은 교회가 그리 흔하지를
않아요.
집 앞에까지 가서 빵빵 거리고, 빨리 나오라고 전화하고,
푸줏간에 끌려가는 송아지마냥 질질 끌려 나와서 무슨 예배를 드리겠어요?
기쁘게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사랑은 마술처럼’ 다가오는
거라고....
우리 주님도 우리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렇게 찾아 와주신
것 같아요.
내가 무슨 인물이 잘 생겨서 예수님이 나를 만나러 오신
것이 아니에요.
내가 무슨 배운 것이 많아서? 내가 무슨 재주가 많아서?
누구 말마따나 내가 무슨 팔자가 좋아서 예수님이 나를
만나주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택해서 만나주시고 나를 만나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급하게 달려 오셨는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도 넘어 오셨단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만나셨어요?
예수님은 태풍이 불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찾아와
주십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사랑하는 우리 칠정교회 성도님들이 보고
싶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달려오시는 거예요.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 오셔서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아세요?
9절 말씀을 한번 보세요.
다같이 9절을 읽어 봅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보고 싶어서 노루처럼 사슴처럼
한걸음에 달려 오셔서는 우리들을 몰래 지켜보고 계시는 거예요.
옛날에 왕자님이 어느 산골 처녀를 사랑하시게 되었대요.
그런데 왕자님의 청혼을 받은 이 산골 처녀는 믿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왕자님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자기같이 미천한 계집에게
청혼을 한단 말인가?’그러고서는 왕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왕자님이 그 화려한 왕궁을 버리고 왕자의 옷을
다 벗어 버리고는 평민복을 걸쳐 입고서 그 시골 처녀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서도 혹시라도 이 시골 처녀가 상처를 받을까봐서
조심조심하느라고 쉽게 다가가지를 못하고 몰래 엿보고 있는 거예요.
평촌교회 전도사님의 어머니께서도 그러셨다 네요.
옛날 사람들은 선도 제대로 못 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랬잖아요?
평촌 교회 전도사님의 아버지는 이북 사람이셨는데, 이남에
내려와서 돈은 제법 많이 벌었는데 정 붙일 데도 없고 해서 이부순 전도사님 어머니 집에 자주
오셨대요.
오시면 장인 장모 되실 분들이 아주 잘 해 주시니까,
한마디로 정이 그리웠던 거죠.
그러면 이부순 전도사님의 어머니는 몰래 사립문 뒤에
숨어서 신랑 될 양반 얼굴을 훔쳐보시곤 했대요.
사랑하면 보고 싶어지는 거예요. 들이 대놓고 보면
재미없어요. 몰래 숨어서 사랑하는 그이를 훔쳐보는 그 기분을 아세요?
우리 주님께서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셔서는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가슴을 콩당콩당거리시면서 벽 뒤에 몸을 숨기시고는 창문으로 우리들을
몰래 지켜보고 계시는 거예요.
창살 틈으로 우리들을 몰래 훔쳐보시면서 얼마나 가슴
조이고 계시는지 아세요?
우리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날에 천국 잔치에서 우리 주님을 만날 때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안으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주님을 만나셨으면
주님을 따라 나서시기 바랍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스라엘은 더운 지방이라서 겨울철이 우기(雨期)거든요.
겨울이 우리나라처럼 춥지 않습니다. 그리고 겨울철에 비가
많이 와요.
아가서 기자는 노래합니다.
이제 겨울도 지났고, 비도 그쳤고, 날이 화창하게 맑지
않았느냐?
산과 들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비둘기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지 않느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리고, 포도나무에 꽃이 피어서
향기를 흩날리지 않느냐?
자,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일어나서 나와 함께 가자는 겁니다.
어디로 가나요?
신랑이 신부를 부르고 가자면 어디에 가자는 거예요? -
결혼식장에 가야지..
신랑의 음성을 듣고 신랑을 만나서 따라나서면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 지리산 자락에 엄청나게 전도 팀도 많이 왔고요,
봉사 팀도 무척 많이 왔거든요.
해마다 여름이면 얼마나 많은 봉사 팀들과 전도 팀들이
우리 지리산 지역을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그럽니까?
그런데도 주님을 만나기는커녕 주님의 음성도 못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참 안타깝죠?)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요, 주님의 음성도 전해 듣고
주님도 만나게 해 주었는데도 선뜻 따라나서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줄 아세요?
마음 밭에 복음의 씨가 떨어졌는데 심령 상태가 가시밭과
같아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서 자라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나님의 계명들은 내가 확실하게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호언장담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만히 보시더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게
있는 것들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그 말씀 한마디에 이 부자청년은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고서 근심하면서 돌아갔답니다.(막10:17-22)
열심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갈 준비는 되어 있어요. 각오도 서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자고 하시니까, 정작 따라 나서지를 못하는
겁니다.
거기에는 타당한 이유들이 참 많이 있죠?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데, 당연히 장사지내야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속마음을 벌써 다 꿰뚫어 보시고
계시는 거예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9:60)
‘오늘은 벌초하러 갑니다.’
벌초도 해야죠. 그러나 예배 먼저 드리고 나서 그리고
가서 벌초하면 안 됩니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 칠정교회 성도
여러분들이여!
주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주님의 손을 붙잡고 우리 주님을 따라나서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천국 잔치에 들어갈 시간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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