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6,  2012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Mariah Carey

 

You'd better watch out
You'd better not cry
You'd better not pout
I'm telling you why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He's making a list
He's checking it twice
He's gonna find out
Who's naughty or nice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He sees you when you're sleeping
He knows when you're awake
He knows if you've been bad or good
So be good for goodness sake

So you better watch out
You better not cry
You better not pout
I'm telling you why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Music)

The kids in girl and boyland
Will have a jubilee
They're gonna build a toyland
All around the Christmas tree

So you better watch out
You better not cry
You better not pout
I'm telling you why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Santa Claus is comni'
Santa Claus is comin'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촛불이 켜진다.

오늘 밤 둥근

지구를 에워싸고

켜지는

촛불의 숲.

당신을 만난다. 만나려는

 

인류의 염원이

촛불로 밝혀진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손의 증거.

주의 부활로

죄 사함을 받은,

속죄의 길이 열린

하늘의 은총.

어느 곳에는

 

눈이 온다.

어느 곳에서는

바람이 분다.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한 덩이의

지구를 에워싸고

촛불이 켜진다.

경건한

손으로 밝히는

 

불꽃에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눈동자가

당신의 구원의 손이

흰 이마가

지금

우리를 지켜본다.

아멘.

하늘의 영광, 지상의 평화.

 

 

-박목월 유고시집 중에서

 

 

 

 

 

 

 

 

 

 

 

       

 

 

 

 

 

@ 박목월 시인...

박목월 시인의 유작 시를 게재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크게 찬양하고자 할 때 이런 시인들의 의미 깊은 시를 묵상하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 영국교회...

영국교회가 얼마나 쇠락해 졌으면 조지 캐리 캔터버리 대주교가 1998년 12월 짐바브웨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세계 교회를 향해 [우리(영국) 교회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호소했겠습니까?

리가 선교를 받았으니 이제는 영국 교회를 회생시키기 위한 대열에 다같이 참여해야겠습니다.

 

@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

마태복음 12장에 있는 말씀이지요. 가을과 겨울은 수확한 열매를 바라보며 기뻐하는 절기라는 점 공감하시겠지요. 밤나무 열매를 보면서 한 해 동안 맺혀 온 자신의 열매를 한번 점거했으면 합니다.

 

@ Leader는 Reader다 .....

지도자는 책을 읽어야 하고 앞으로 세계를 짊어질 후세들도 책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독서운동을 펴고 계시는 송광택 목사님의 사역내용을 인터뷰로 알아보게 된 것은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그 외 불교의 발생지 인도에 불교가 발을 붙이지 못한 이유. 창조과학에 관한 글. 정약용 선생에 관한 글 모두 유익한 내용입니다. (언) 

 

 

 

 

 

 

 

 

 

 

 

 

오늘은 정기철 선교사의 글을

편집하여 장재언 칼럼으로 대신합니다.

 

 

 

 

 

“청소년 1천명 중 4명만 교회 출석”

 

 

“우리(영국) 교회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영국의 영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이 말은 조지 캐리 캔터버리 대주교가 1998년 12월 짐바브웨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세계 교회에 영국 교회를 위한 기도와 도움을 요청하면 했던 말이다.

 

한때 세계 선교를 주도하던 영국 교계 최고 지도자가 이런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기철 선교사 부부영국 캠브리지 7인의 한 사람인 C.T. 스터드에 1913년 설립되어 100년에 이르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초교파적인 복음적 선교단체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 국제본부에서 사역하고 있다.
 

1993년 WEC 국제본부에서 전산책임자로 사역해온 정기철 선교사는 “2001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72%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66%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 후의 조사에서는 1979년과 2005년 사이 영국 교인의 절반이 교회 출석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의하면 매주 1,000의 새 교인이 생기지만 동시에 2,500명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은 지난 1980년부터 1998년 사이에 150만명의 기독교인이 사망하고 또 150만 명은 교회를 떠나 교세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국교인 성공회의 경우 1960년과 1985년 사이에 교세가 절반으로 줄었고 그 후 1990년과 2001년 사이에도 18%나 줄었다.
 

정 선교사는 “<더 타임즈> 2008년 5월 8일자에 의하면 급격한 기독교인의 감소 때문에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워서 교회가 문을 다는 일은 계속 될 것이며 한 세대가 지나면 교회보다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인용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2000년 버밍햄에서 있은 영국 선교 대회에서 ‘영국 교회가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40년 후에는 교회가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국 교회는 1980년에서 2009년까지 30년 동안 9천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2000년대에 들어 와서도 매주 평균 4개의 교회가 문을 닫아 매년 220개의 영국 교회들이 폐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을 닫은 교회들은 겉으로 봤을 때는 교회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국의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오래된 건물의 외양을 그대로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에는 술집, 디스코장, 식당, 주택, 공장, 사무실, 창고, 심지어 모스크로 변했다.
 

특히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가 목회했던 교회 중 하나가 힌두교 사원이 되었고 1910년 역사적인 세계 최초의 에딘버러 선교 대회가 열렸던 교회는 공연장과 에딘버러 축제 매표소로 바뀌었다.
 

토마스 선교사의 파송교회인 하노버교회도 담임목사가 없다. 순회 목사가 와서 방문객과 관리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매주 평균 10여명 정도가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정기철 선교사는 “많은 교회 수와 교인 수의 감소로 인해 성직자도 엄청나게 줄었다.”며 “1975년 15,911이었던 성공회 성직자는 2009년에는 8천4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20%가 5년 내에 은퇴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교인수의 급감으로 문을 닫는 교회만 늘어가는 것만 아니라 교회를 사역할 목회자의 숫자도 급감하고 있어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다음세대들이 교회를 거의 출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 선교사는 “영국 교회의 40%가 주일학교 프로그램이 없다는 현실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어떤 통계에 의하면 지금 현재 영국 중고등학교 학생 1000명 중 3명만이 주일날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으니 장래가 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어린 이들과 청소년들을 전도하여 신앙을 심어 줄 수 있는 어떤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 선교사는 지난 7월 27일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영국 교회가 전개한 ‘금보다 더 귀한 70일 기도 운동’(The More than Gold 70 day cascade of prayer and praise>을 소개했다.
 

이 기도운동은 ‘성화가 가는 곳마다 빛을 발하라’라는 주제를 걸고 올림픽이 열리기 70일 전인 5월 18일 영국 최남서쪽 플라이마우스에서 시작해 올림픽 성화가 가는 70개 도시에서 성화가 도착하기 전날 저녁에 열린기도회(Open Air Prayer meeting)를 갖고 영국의 재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5월 19일부터는 찬양단 버스(Praise Bus)가 전국 각 지역을 돌며 올림픽 성화가 도착하는 70개 장소에서 성화가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찬양을 시작했다. 이는 이번 기도 운동(the More than Gold 70 Day Prayer)의 시작이었다. 성화 봉송이 각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다른 이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기도 책자와 성경을 담은 기도 릴레이 바톤(the Prayer Relay Baton)도 매일 정오에 이루어졌다.
 

올림픽 개막식 날인 7월 27일 오전 8시, 영국의 전 교회들은 을 울렸다. 영국의 모든 교회들이 마지막으로 종을 울린 날은 정확히 70년 전 이날이었다. 그날은 2차 대전 중 알라메인 전투를 기념하는 날이었다. 당시 영국의 수상 처칠은 “알라메인 전투 전에는 승리가 없었고 이 전투 후에는 패배가 없었다.”고 말했다. 영국 교회들은 알라메인 전투처럼 지난 몇 십년간 영적 전투에서 패배만 있었던 영국 땅에 지금부터는 영적 전투에 항상 승리하는 날만을 위해 기도했다.
 

실제로 올림픽 개최국 영국은 종합 3위라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금보다 더 귀한 70일 기도 운동’ 과 올림픽을 계기로 지역 주민들과 하나가 되고 이들을 전도하기 위한 전도 프로그램 또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정 선교사는 “숫자 70은 ‘회복’을 상징하고 ‘성장하기 전 단계’라는 의미가 있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영국에 영적 회복 나아가 큰 성장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며 “2012유럽성시화순회대회가 바로 이 시점에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나라에서 열리게 된 것”이라며 한국 교회가 강력한 기도운동을 통해 영국과 유럽교회의 재부흥을 위해 함께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여 년 전 WEC국제 본부의 전산 정보 담당 책임자로 부름을 받고 국제본부가 있는 영국 런던에서 사역을 해온 정기철 선교사는 솔직히 영국과 영국인에 대한 부르심이나 부담도 별로 없었다. 그 당시에는 영국 교회와 유럽 교회의 심각성도 잘 알지도 못 했었고, 대부분의 성도들처럼도 영국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이지 소위 선교지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역하면 할수록 영국 교회에 대한 상황을 몸소 접하면서 영국과 영국인을 향한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었다.”며 “그래서 지난 몇 년간의 IT사역보다 영국인을 깨우고 선교 동원 쪽으로 주님께서 인도하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으로 달리는 기차처럼 영적으로 어둡고 반응도 별로 없고 열매도 없는 이곳을 떠나 ‘추수’를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선교지로 가고 싶은 인간적인 많은 갈등과 고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57개 국가에 23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WEC본부가 있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정기철 선교사는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영적 상황도 영국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더 심각한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유럽은 세계에서 기독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유일한 대륙이다.

 

유럽의 개신교 출석 교인은 평균 3% 정도이고 복음주의자가 1%도 안 되는 나라가 22개국이나 된다. 프랑스의 개신교는 2% 정도이고 복음주의자는 0.6%에 불과하다.
 

“정말 유럽은 심각한 선교지”라고 밝힌 정 선교사는 “첫번째 이유는 이렇게 급격히 감소하는 유럽인들에게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주한 이주자들이 급증하여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 다종교화한 대륙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심각한 문제이자 커다란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동지역에서 한 명의 모슬렘 영혼을 구하기가 그곳의 정치 사회적인 여건으로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유럽에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훨씬 쉽다. 이것이 기회”라고 말했다. 유럽을 모슬렘 선교의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모슬렘은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의 주요 국가를 모슬렘 국가로 만들기 위한 전략 국가로 삼고 모슬렘 침투에 전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홀리클럽운동을 통해 영국의 무혈혁명을 이끌어냈고, 이반 로버트라는 26살의 한 젊은 청년에 의해 웨일즈 대부흥운동이 일어나 영국과 인도, 남아공, 미국을 거쳐 한국에까지 부흥의 불을 점화한 나라가 아닌가. 하나님은 어쩌면 부흥의 불쏘시개처럼 드려질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실 것이다.
 

아시아 사람인 사도 바울에게 유럽 사람(마게도냐인) 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사도행전 16:9)고 요청했던 것처럼, “비록 무화가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는”(하박국3:17) 것 같은 영국에서 정기철 선교사는 오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특별 기고(寄稿)

 

서재생목사(서울대현교회)

 

 

인도에서 불교(佛敎)가 창시되었는데 왜 불교가 정착되지 않고 힌두교가 정착이 됐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불교(佛敎)는 인도에서 석가모니(釋迦牟尼) 붓타에 의해서 창시된 종교(宗敎)이며, 불교는 인도의 계급 제도와 다신 바라문교(현 힌두교의 모체)신앙의 신(神)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창시된 종교입니다.

 

인도의 문화(文化)와 종교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아리안계 종족들이 인더스강 유역을 침입하면서 여러 소수민족을 무력으로 제압(制壓) 했습니다. 인도의 대부분을 점령하므로 정복자와 피정복자를 구별(久別)할 필요와 함께 정복자 중에서도 여러 가지 구별할 필요가 생기게 되어 새로운 계급 제도를 만들어 통치했습니다. 그 제도가 카스트제도입니다.

 

특히 브라문교는 카스트제도와 허례(虛禮)의식을 중요시하여 모든 시민이 하루 6시간씩 신께 제사 올리고 산양과 재물을 바쳤습니다.<BR><BR>그런 제사(祭祀)를 주도하던 바라문들은 왕과 왕족, 귀족보다도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무릎 끓고 고개를 숙여야 할 만큼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釋迦牟尼)도 왕족(王族)이지만 카스트제도에 의하면 두 번째 계급에 해당합니다.

 

당연히 바라문교의 영향 아래 있던 인도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찾기 위해서 출가하여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평등사상(平等思想)을, 그리고 몇 시간에 걸쳐 신에게 올리는 허례의식의 제사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중보사상을 중시하였습니다.

 

또한 기존에 신(神)에게 제사하는 것, 조차 허락(許諾)되지 않았던 낮은 계급인 수드라(노예)와 카스트 조차도 끼지 못하는 계층인 바리아(천민)등도 불교에 자유롭게 입문하는 것이 허락되어 인도 전역에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또한 힌두교는 수억의 신이 존재하는 다신교(多神敎)의 종교이며 신에게 기도함으로써 복(福)을 얻는다는 종교인데 반해서 불교(佛敎)는 자신의 삶은 신(神)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업보를 짓고 자신이 지은 업보를 받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을 펼쳤기에 기존 힌두교의 견제를 많이 받았습니다.

 

불교는 창시 당시 신(神)을 부정하기 때문에 종교학자들은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 철학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종교(宗敎)라기보다는 하나의 진리(眞理)를 탐구하는 철학적(哲學的)인 요소로 시작하였습니다. 초기 석가모니(釋迦牟尼) 사후에는 전통적으로 탑은 세웠지만 불상(佛像)이란 것도 없었고 목탁이나 목어나 요령 등도 후대에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불교를 좇아 출가하는 사람은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뛰어넘고자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고 난이도의 철학(哲學)은 일반 생활을 하는 서민들에게는 이해하기가 힘든 내용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더구나 불교(佛敎)가 자신의 깨달음과 해탈(解脫)을 중시하였기에 점점 외곬수로 빠져들어가는 성향이 있어서 “그것이 후에 북방으로 전달되면서 대승(大乘)불교 사상에 불을 지피는 역할도 하였지만” 이념(理念)보다는 빵을 중시하는 일반 백성들에겐 차라리 신(神)에게 매달려 복(福)을 기원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힌두교로의 복귀(復歸)가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또한 워낙 몇 천년 동안 인도인들에게 힌두교(바라문교)는 민족종교(民族宗敎)로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서서히 인도 불교는 힌두교 세력에 밀려나기 시작하여 현재는 몇몇 지방을 제외하고는 불교(佛敎)는 동남아-티벳-중국-한국-일본-미국의 순서로 동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現在)도 인도인의 대부분은 힌두교 신자이며 위대한 지도자(指導者) 간디의 노력(努力)에도 불구(不具)하고 외형상 카스트 제도는 폐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의 기득권(旣得權)층은 바라문교의 수장 바라문출신이 아니면 사회진출도 쉽지가 않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에 유학 오는 인도인들도 99%는 바라문출신의 자녀(子女)들이며 나머지도 그나마 왕족(王族)/귀족(貴族) 출신의 자녀(子女)들일 정도로 힌두교는 몇 천 년을 두고 인도인의 가슴에 뿌리가 박혀있습니다.

 

앞서 불교(佛敎)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의 문화(文化)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發生) 했지만 지금은 인도에서 역사 속에서만 불교(佛敎)를 찾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인도는 힌두교(브라만)의 나라인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인도의 힌두교 축제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역사와 문화(文化)를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基督敎人)도 기독교 진리(眞理)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역사와 문화(文化)를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전통문화(傳統文化)를 이해가 필요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전통문화와 여러 무속적인 신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여러 문제점(問題點)이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즉 불교가 인도의 전통종교인 힌두교에 융화하면서 그 불교의 자치를 찾아 볼 수가 없듯이 한국교회에도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시불교(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글은 원시 불교중심에서 근원을 두고 기고하고 있습니다.

 

 

 

 

 

 

 

 

 

 

 

 

 

 

 

 

 

 

 

 

 

큰 수술을 받기 전날 나는 친구에게 수술 과정이 정말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두렵니? ”라고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친구 앤은 곧바로 “하나님, 신디의 두려움을 모두 아시니 그 마음을 평온케 해주시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워주세요. 그리고 수술 후 곧 깨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내 생각에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아뢰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크게 부르짖었을 때, 예수님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맹인이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51-52).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처럼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기도할 때가 있는가 하면, 솔직하게 “하나님, 제가 방금 말한 것 죄송합니다.”라고 하든지, 그냥 단순히 “예수님, …때문에 제가 주님을 사랑해요.”라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아뢴다는 것은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친근하게 사랑하시는 실존하시는 분께 말하는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미사여구에 감동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마음으로 드리는 말을 귀담아 들으십니다.

 

 

On the day before a major surgery, I shared with my friend that I was really scared about the procedure. “What part scares you?” she inquired. “I’m just so afraid that I won’t wake up from the anesthesia,” I replied. Immediately, Anne prayed: “Father, you know all about Cindy’s fear. Please calm her heart and fill her with Your peace. And, Lord, please wake her up after surgery.”
 

I think God likes that kind of specificity when we talk to Him. When Bartimaeus, the blind beggar, called out to Jesus for help, Jesus said,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And the blind man said, “Rabboni, that I may receive my sight!” Jesus said,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ell”(Mark 10:51-52).
 

We don’t need to beat around the bush with God. While there may be a time to pray poetically as David did, there are also times to say bluntly, “God, I’m so sorry for what I just said,” or to say simply, “Jesus, I love You because ....” Being specific with God can even be a sign of faith because we are acknowledging that we know we’re not talking to a far-off Being but to a real Person who loves us intimately.
 

God is not impressed by a flurry of fanciful words. He is listening for what our heart is saying.

 

 

 

 

 

 

 

 

 

 

 

 

 

 

 

 

 

 

한국기독교사상의 수용은 언제부터일까.

 

7,8세기 신라시대의 경교(중국에서 들어온 최초의 동방기독교)는 흔적만 남고 기록이 없으니 사상적 수용이라 하기엔 부족하고, 17세기 초엽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1603년 간행)가 조선에 전해져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니 이 시절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중국에 머물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북경에 널리 퍼져 있던 서학(西學)과 서교(西敎)에 관심을 가지면서 들춰보던 서양 서적이 자생적 한국기독교사상 수용의 서막을 연 것이다. (여기서 굳이 천주교를 서교라 함은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당시 식자층에서 서교라 통칭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 조선사회는 유교가 사상적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서교는 정치권에서 소외되었거나 아니면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일부 유학자들의 호기심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분야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동양의 전통적 하늘(天)과 상제(上帝)개념으로 해석한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전혀 생소한 책이 아닌 우리와 같은 뜻을 지향하는 동질의 책으로 이해한다. 서교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근본적 배경이다.
 

선교사의 발길 없이도 기독교사상을 접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책을 통해서 서교를 확산시켜 나간다. 다산 정약용의 형제들도 그 중심부에 들어와 활동한다. 기독교사상의 유입 근거가 상제사상에 대한 동서의 용어와 개념적 통일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므로 기독교는 신앙의 종교로서보다는 문헌에 의한 이론으로서 조선에 전해진 것이다.
 

막상 마테오리치도 중국의 유교경전을 접하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단일성(유일성),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선한 자의 영광 등에 대한 우리의 신앙과 부합되는 논증을 들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성경과 유교경전의 통일성과 유사성을 언급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성행하던 불교를 비판하고 유교와 손을 잡고 중국 내 선교의 발판을 마련한다. 기독교적 성화(聖化)의 과정과 유교적 군자의 삶을 유비시키며 공통점을 찾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노력에 의해 나온 그의 서책이 조선 유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를 본 당시 최고의 석학 이익(1681~1763)과 같은 학자도 기독교를 긍정하거나 신앙한 것은 아니지만, 서교의 사천(事天), 존천(尊天), 외천(畏天)의 사상을 『시경』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문헌으로 접하던 서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신앙하는 이들이 나왔고, 급기야 세례를 받는 사람도 생긴다. 다산 정약용도 요한이란 세례명을 받으면서 서교를 공부단계에서 신앙의 단계로 끌어올린다. 정조시대 정치 사회적 안정은 이렇듯 서학은 물론 서교를 신앙하는 이들을 용납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그들의 수도 갈수록 늘어만 갔다.
 

하지만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순조가 뒤를 이으면서 잔잔하던 조선사회는 피바람이 몰아친다. 서교에 관대하던 정조가 죽자 사도세자 학살을 옹호하던 북인 계열의 벽파의 학자들이 위정척사를 내세우며 정조를 돕던 남인 계열의 시파를 몰아치고 서교를 문제 삼은 것이다. 서교에 깊이 들어가 활동하던 다산의 형제들도 이 때부터 수난 시절로 접어든다. 형을 고변(告變)하라는 최악의 순간을 맞지만 그 어떤 형벌과 고문으로도 형제간의 의리를 끊어 놓지는 못한다.
 

“위로는 임금을 속일 수 없고 아래로는 형을 증언할 수 없으니 나는 오늘 죽음이 있을 뿐이오. 동생으로서 형을 증언할 수는 없소.”
 

서학을 서교로 신앙하면서 다산 정약용에게 다가온 고통은 셋째 형 정약종을 고변하라는 압력이었다. 당시 오고 간 편지 내용을 들이대며 다그치는 형리들의 문초에 동생 다산은 증언을 거부하며 형제간의 강한 우애를 발휘한다. 이미 드러난 증거가 있더라도 이를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동생으로서 형을 공경하는 최소한의 도리였던 것이다.
 

조선에서 서교에 대한 핍박의 강도가 심해지자 둘째 형 정약전의 사위 황사영이 북경 주교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전하려다 발각되면서 정씨 형제들은 더 큰 곤경에 빠진다. 이 일로 정약종과 매부 이승훈은 처형되고, 정약전과 다산은 유배형을 당한다. 정씨 일가친척들이 핍박의 한가운데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된 것이다.
 

산 이별의 쓰디쓴 고통을 맞이한 다산의 가족사랑은 유배지에서 특히 빛난다. 유배지로 찾아온 아들에게 돌아가서 아비를 대신해서 아우들을 가르치라며 『주역』과 『예기』를 전수한다. (이 애틋한 가르침은 『승암문답』이란 책으로 편찬된다.) 남편을 그리며 아내가 보낸 헌 치마 다섯 폭에는 매화를 그려서 답례로 보낸다. 다산의 절절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묻어난다.
 

혹독한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매화는 고난 속의 희망을 상징하며, 다산 자신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지 않음을 표현한다. 치마폭의 매화 그림은 고난을 이겨내며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아내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헌 치마를 보낸 아내의 숨겨진 뜻과 거기에 매화를 그린 다산의 굳은 의지가 어우러진 치마폭의 매화그림을 통해 부부간의 변함없는 사랑과 도타운 정을 발견한다. 다산의 신앙으로 인한 고난은 이렇듯 가족간의 사랑을 확고히 하였다는데 그 의미를 찾는다.
 

한편 고난의 현장은 다산으로 하여금 한국사상사의 엄청난 족적을 남기는 계기를 마련한다. 전남 강진에서의 유배기간 18년은 한국사상사의 한 획을 긋는 이른바 한국실학사상의 결실을 맺은 시간이다. 마침 강진에서 30리 밖에 있던 외갓집의 윤선도 이래 보관되어 내려오던 1천여권의 서책은 다산을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실학사상가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된다. 다산의 유배지에서의 고난은 옥동자를 출산한 산모의 산통과도 같은 것이었다. 500여권 넘는 방대한 저술이 대부분 유배지에서 나왔고, 그것이 또 한국사상사의 주옥 같은 결실로 남았기 때문이다.
 

백성과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경세유표(經世遺表)』『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欽欽新書)』는 지금도 여전히 인용되고 전해지는 고전중의 고전이 되었다.

 

특히 관리는 백성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목민심서』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자리하였다. 이는 공리공론(空理空論)만 일삼는 일부 관리와 학자들에 대한 질책을 이면에 담고 있다. 이들을 “헛된 이름을 도둑질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는 자”, “도포 입고 낮에 도둑질하는 자”라고 하면서 이들을 싸잡아서 썩은 선비라 비난하고 경계한 것이다.
 

이렇듯 다산의 삶은 자신을 연마(修己)하는 가운데 서교를 학문적으로 접했고, 또 이를 믿고 따르는 세례신앙인의 길을 가다가 결국 유배라는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만나지만 여기서 이룩한 그의 남다른 학문적 성취는 한국실학사상의 집대성이란 빛나는 결실을 맺는다.

 

아울러 극한 환경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뜨거운 형제애와 아내와 자녀에 대한 남다른 가족사랑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이런 그를 두고 후대의 국내외 학자들이 ‘근대 국민주의의 선구’ ‘조선의 영광’이라 말하는 것은 당연한 찬사가 아닐까 생각한다.(비전통신 종합) 
 

 

 

 

 

 

 

 

 

 

 

 

 

Is Emily Trent trying to take over our company? Looks too pretty to have any brains!

 

에밀리 트렌트가 우리회사를 매수하려 한다 구요? 너무 예뻐서 머리는 안 좋을 것 같은 여자던데요!

 

No, she’s a dangerous beauty. Her fund bought and broke up 5 different companies last year alone.

 

아닙니다, 그녀는 미모와 능력을 다 갖춘 여성입니다. 그녀의 펀드사가 작년에만도 5개 회사들을 매수해서 분할 매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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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dangerous"를 꼭 "위험한"이라고 해석하실 필요는 없음....^ ^

 

 

 

 

 

 

 

 

 

 

 

 

 

 

조덕영 박사는 ...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성경이 없던 시절, 복음의 미스터리

 

분명 성경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아담에게도 노아에게도 모세에게도 성경은 없었다. 그래서 모세는 계시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를 친히 기록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성경은 1600년 이상 약 20가지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40명에 달하는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계시를 기록한 책(딤후 3:16-17)이다. 그렇게 해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성경이 기록되지 않고 또 성경의 일부만이 알려져 있던 아주 먼 옛날 하나님은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본 원리를 계시하였을까?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그저 방치하셨을까?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인류에게 말을 거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와 모세 등 여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을 거셨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계시의 핵심 내용은 물론 인류 구원을 향한 복음의 원형이었다. 성경이 없던 시절 하나님이 전하신 이 복음의 구체적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 보존되었을까?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성경이 알려주는 실마리

 

그런데 한 가지 실마리가 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천체 창조 목적 가운데 징조(徵兆)를 이루려 하셨다는 구절이 있다(창 1:14). 특별히 땅에 비취는 하늘의 궁창에 있는 광명으로 그런 징조를 주셨다고 했다. 이 말씀은 넷째 날 두 큰 광명인 해와 달의 창조 이전을 서술한 구절이니 이 징조가 태양을 지칭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징조”(창 1:14, 9:13)를 나타내는 히브리 단어 ‘오트’(oth, 헬라어로는 semeion)는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신 ‘표’(창 4:15)와 노아와 맺은 언약의 표인 무지개(창 9:13)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표적(sign, 출 4:8,9; 민 14:11,22; 신 4:34)과 기사(奇事, miraculous sign, 시 105:27)를 나타내는 경우에 자주 사용되었다(출 7:3).

 

 

표적은 구약의 경우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관계나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출 12:13; 신 22:14, 17, 20)되며 신약에서는 주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이나 그에 대한 반응에 표적과 징조와 기사(semeion, 마 12:38, 마 24:3, 30; 막 13:4; 눅 21:7, 11,25; 행 2:19)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4절의 ‘징조’는 분명 하늘에 특별한 언약의 표가 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인 것 같다. 즉 별은 단순히 반짝이는 아름다움 이상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징표인지도 모른다. 시편 기자도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신다(시 19편)고 하였다.

 

욥기서 38장 32절에 보면 하나님은 욥에게 “네가 열두 궁성(宮星)을 때를 따라 이끌어낼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 개역개정판은 “네가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느냐”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하늘에 그렇게 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열두 궁성(별자리들)은 무엇이었을까?

 

전세계에 남아 있는 별들에 관한 관심 

 

신기하게도 고대 모든 나라에는 다양한, 또는 일치된 별자리 이름들이 남아 있다. 밤이 되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항성들이 만들어내는 별자리들을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하늘에 펼쳐놓으셨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 같은 고대 천문 기록은 가나안 지방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산재해 있다.

 

서방에서는 별들이 주로 신화로 변질되었다. 별에 관한 관심은 동방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은 약 2800년, 우리 나라는 약 2100년, 일본은 약 1400년간에 걸친 천문과 자연 현상에 관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박혁거세로부터 벌휴이사금(주전 57-주후 196)에 이르는 총 264개 기사 가운데 34개가 천문 현상에 관한 기록이다.

고조선 시대 유물로 알려진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들이나 천문도가 그려져 있는 고구려의 여러 고분들(최소 24개 고분들)과 경주의 첨성대(주후 633년) 그리고 조선초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천문 관찰을 중요시 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사>에 보면 5천여 개에 달하는 고려 시대 관찰된 천문현상기록이 남아있으며 고구려처럼 천문도가 그려진 고분을 남기고 있다. 심지어 수도 개성에는 천문관측시설(첨성당)을 두었다. 단군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이 같은 천문 관측 기록들은 우리 민족 역사 추적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하늘에 담긴 복음

 

이들 별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예수님이 탄생하기 150년 전, 당시의 천문학자들이 별들의 숫자를 세기 위해 하늘을 구역별로 나누어 세밀하게 조사한 적이 있다. 이들의 결론은 별들의 숫자가 약 3천여 개라는 것이었다. 고대 학자 톨레미는 1,056개, 기원전 1세기 반 전 히파르쿠스는 1,022개, 중세 천문학자 브라헤는 777개, 한때 목사가 되려 했던 브라헤의 제자요 갈릴레이 못지않은 위대한 과학자였던 케플러는 1,005개의 별들을 세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은 이들 학자들이 세어본 것처럼 1천여 개에서 3천여 개 정도이다.

 

혹시 성경도 별들의 숫자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성경은 하늘의 별들의 숫자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렘 33:22)

 

그리고 하나님은 그 별들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그 별들을 다 이름대로 부른다고 했다(시 147:4). 별들과 그 별자리에 복음을 담은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였는지 아니면 아담이나 노아와 그 후손들의 믿음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의도적으로 별자리를 만들어 복음의 시청각 구술 도구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별자리 안에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런 해석이 많이 남아있다.

 

하나님이 이들 하늘의 별들에 정말 징조를 두셨다면 그 먼 옛날 처녀자리 별자리는 약속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알리는 별자리였을 것이다. 하늘의 별 가운데 가장 크게 빛나고 흰 큰개자리(Canis Major)의 시리우스(Sirius)는 예수님을 상징할 것이다. 실제로 시리우스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Sara)와 그 어원이 같다. 이 사라에서 영어의 존경어인 Sir가 왔다.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의 700년 전 예언인 ‘평강의 왕’(사 9:6)의 ‘왕’은 사라와 그 어원이 같다. 시리우스별은 평강의 왕인 것이다.

 

전갈자리(全蠍─, Scorpius)는 예수님에게 가해진 마귀의 독침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말 여름의 남쪽 하늘을 빛내는 전갈자리의 꼬리 끝에는 유난히 붉은 색을 발하는 1등성 안타레스라는 별이 빛난다. 태양은 지구 지름의 109배이며 부피는 130만배에 달한다. 그런데 안타레스는 반지름이 약 3억만 Km에 달해 태양 지름의 700배나 되는 큰 별로 알려져 있다. 화성 공전 궤도의 반지름은 약 2억 2천 700만 Km이므로 만일 안타레스가 태양 위치에 있다면 화성 궤도까지 집어삼킬 수 있는 커다란 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안타레스가 얼마나 큰 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큰 별을 소유한 전갈자리가 탐욕과 악을 상징한다면 양(羊) 자리는 반대로 어린 양 예수의 모습을 상징할 것이다(<Witness of the Stars>, E. W. Bullinger, D.D.).

 

나가면서

 

이들 별자리의 의미가 지금도 필요할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제는 이런 의미를 잘 몰라도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주어진 은혜의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혜택 받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오히려 하늘의 만상에서 엉뚱한 점성술적인 원리를 이끌어내려는 변질된 계시주의자들을 걱정해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의 달과 별들은 결코 무의미한 피조물이 아니란 것이다. 달과 별들은 어둠 속에서 변치 않는 빛을 발하며 징조와 일자와 사시와 연한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와 관심과 사랑을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전해준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 별의 수효를 모두 헤아리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놓으셨다(시 147:4).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보고 오히려 인간을 배려하고 영화와 존귀의 관을 인간에게 씌워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시편 기자의 고백(시 8)은 예사롭지가 않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한 별들은 어떤 별들이었을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과거처럼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상상의 날개를 펴서 신기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더 깊이 느껴보면 어떨까?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www.kictnet.net)

 

 

 

 

 

 

 

 

 

 

 

 

 

 

 

 

 

 

 

만연되는 비속어

 

몇 달 전 유력 대통령후보가 ‘멘붕’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멘붕은 ‘멘탈붕괴’의 줄임 말로 정신이 무너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태를 일컫는 누리꾼이 만든 말인데 그 말은 일본 에로배우들이 수치심과 자존심을 잃는 것을 걱정할 때 쓴다고 합니다.

 

현지에선 포르노에나 등장하는 말을 한국에서는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방송에서 마구 쓰이고 있으니 일본 사람들이 비웃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이나 SNS의 일상화로 빠른 의사전달을 위해 두 개 이상의 단어를 줄여서 씁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의 드라마에서도 이런 단어를 마구 사용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꿀벅지

 

일본의 웹툰에서 성적인 묘사를 할 때 쓰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예쁜 허벅지를 통칭하는 말이 돼버렸습니다.

 

·뭥미

 

‘뭐임’을 자판으로 치다가 오타가 나 ‘뭐’ 아래에 임의 ‘ㅇ’ 붙고 ‘ㅁ’ ‘ㅣ’ 가 붙어 ‘미’가 되어서 만들어진 말로 황당함이나 당황함의 표현입니다.

 

·빠순이

 

예전에는 ‘빠(bar)에 나가는 여자’, ‘성적으로 난잡한 여자’를 뜻하는 속어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한 사람에게 심하게 빠져 있는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비속어로,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극성지지자를 말할 때 쓰이며 남자일 경우 ‘빠돌이’, 여자일 경우 ‘빠순이’라 부릅니다.

 

·십장생

 

원래의 뜻은 오래 사는 열 가지의 생물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텔레비전에서 개그맨들이 사용한 뒤로 그 발음을 연상하는 욕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 뷁

 

표준어가 아니며 특별한 뜻 없이 짜증날 때나 어이가 없을 때, 난감할 때 청소년이 쓰는 신조어이며 ‘꿱’ 하고 소리를 지르는 모양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꿀이다

 

대단하다와 같이 칭찬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상도 사투리이지만 요즘은 ‘맛이 좋다.’ 또는 ‘좋다’ 같이 긍정적인 뜻을 말할 때 많이 쓰이며 ‘꿀빤다’ 는 ‘잘 지낸다’ 또는 ‘편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안습

 

‘안구에 습기가 차다’의 줄인 말로 ‘눈물이 난다’라는 뜻이며 ‘치맥’ 치킨과 맥주를 줄여서 하는 말이고. ‘커담’ 커피와 담배를 줄여서 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원래의 뜻과 다르게 잘못 사용하는 경우나 외국에서 들여온 잘못된 말 그리고 줄임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한글날이 할 정도로 기분이 씁쓸합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 지배로 우리 생활에 일본말이나 일본식 외래어 등 일본침략의 찌꺼기가 남아서 우리의 언어문화를 더럽혀 왔는데, 해방이 된지 67년이 넘은 지금에도 남아서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이것이 일본 찌꺼기인지도 모르고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젊은 이들이 하는 말투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코 맹 맹이 소리를 내고 있어 어찌 보면 축농증 환자를 연상하게 됩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생활 속의 작은 것에서부터 바른 우리말과 글을 쓰는 것이야 말로 우리민족의 진정한 정신 문화의 독립을 이루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종대왕께서 많이 걱정하실 것 같습니다.(언) 

 

 

 

 

 

 

 

 

 

 

 

 

 

 

 

 

 

 

 

총신대 평생교육원에서 교회 독서지도사 강의를 하는 송광택 목사. 송광택 목사는 20년 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독서운동가’로 불리며 기독교 고전을 비롯한 양서와 일반도서 중 좋은 책을 성도들에게 소개하고 독서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일을 하고 있다.

1993년 ‘아가피아독서운동본부’로 출발해 1996년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19년 동안 교회 독서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목사는... 지도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좋은 방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요즘 교회들이 교회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조언을 했다. 그는 "교회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할 때에는 목회자의 인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목회자의 인식 여하에 따라 교회도서관 설치와 운영의 성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교회 내 인재양성과 지역주민들에게 교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북 카페를 겸해서 교회도서관을 운영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교회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서클럽을 운영할 수 있다."며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가정에서 하는 것이지만 교회도서관에서 보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송광택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안녕하세요? 목사님을 소개할 때 '독서운동가'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독서운동가'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독서운동은 1차적으로 사람들이 독서를 하도록 동기부여하기 위해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거나 산간벽지나 오지와 같은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에 책을 보급하는 일을 말합니다.
 

제가 하는 독서운동은 이 같은 형식은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책을 읽도록 강의와 집필을 통해 동기부여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사람들에게 독서를 하도록 동기부여 하다 보니 자칭, 타칭 독서운동가로 불리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같은 독서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저는 지도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좋은 방편이죠. 처음에 신학생들 중심이 되어 글사랑, 코람데오 라는 이름으로 사적인 성격의 독서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지인들의 권유로 공적인 성격의 일일 세미나로 독서에 관한 동기부여 강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93년으로 ‘아가피아 독서운동 본부’로 시작, 1996년에 지금의 이름인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이것이 잘 될 수 있을까? 지속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벌써, 내년이면 만 20년이 됩니다.
 

독서운동도 하시고 꾸준히 책도 내셔서 책을 정말 많이 보실 것만 같습니다. 언제부터 독서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책에 대해 굉장히 인상 깊었던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추석 때 아버지가 사온 책 세트였습니다. 안데르센 동화, 서유기, 보물섬과 같은 책들을 그 때 처음 접했죠. 작은아씨들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서유기는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책이 좋은 것이구나! 재미있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우연히 문예반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동아리 선배들이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학과 책을 좋아하는 선후배들과 지낸 것이 굉장히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시도 쓰고 소설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그 때, 당시 총신대 대학도서관에는 책이 2만권이채 되지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책을 읽었죠. 책을 읽으면서 선배나 교수님들의 흔적들을 보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독서를 해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목사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청년시절 봤던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생각납니다. 그 책의 전부라기보다는 침묵의 중요성, 언어사용의 중요성에 생각하게 됐습니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 주의해야 하고 말의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게리 토마스의『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도 기억납니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다양성이 있음을 깨닫게 됐죠. 그 책에서는 색깔로 표현했는데 영성에도 다양한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목회자나 공동체에서 지도자로 섬기고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라면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목사님만의 특별한 독서 법이 있으신가요?
 

책을 볼 때에 목차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책에도 골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목차입니다. 우선적으로 독자는 목차를 통해 저자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목차부터 짜임새가 있다면 그 책이 훌륭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죠. 목차가 나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차가 참 중요합니다.
 

서평을 쓰는 연습도 좋은 방법입니다. 서평은 문단에 등단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본인이 부지런히 쓰면 됩니다. 독자투고를 활용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서평문화 잡지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주말신문에 나오는 리뷰도 볼만합니다. 책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눈여겨보면 좋습니다.
 

또한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의 학술서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근차근 자신의 외연을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심이 있다면 모든 분야의 입문서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뇌에 대한 입문서뿐만 아니라 뇌와 학습과 관련된 책, 뇌와 교육학과 관련된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고전을 포함해서 대학생 때 100권, 200권을 읽을 계획을 세워 읽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벌써 9년째 총신대 평생교육원에서 교회 독서지도사 과정에서 강의하고 계십니다. 교회 독서지도사 과정을 통해 기대하시는 바는 어떤 것인가요?
 

첫 번째는 지식 있는 믿음, 기독지성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지식이 충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기 위해서 믿지만 우리가 더 깊이 아는데 지식도 꼭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스 기니스의『소명』과 『인생』과 같은 단단하고 씹는 맛이 있는 책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책을 통해서 우리가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물려주기 위해서 입니다. 좋은 책을 통해서 내가 성장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들, 자녀들을 키우는데 책이 중요한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좋은 책인지를 가려내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서지도사 과정은 그러한 식견을 키우고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를 효과적인 방법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세 번째 교회와 가정에 독서문화를 확산시키는 지도자들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9기까지 많은 수가 배출된 것은 아니지만 모두 각자가 속한 공동체로 돌아가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책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론 교회가 지역이나 지역주민들을 섬기는 방법으로 교회도서관 만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서관 관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지역과 지역주민들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 어떤 노력들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바울의교회 글향기 도서관에서 도서관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글향기 도서관은 교인과 지역주민을 포함해 약 100여명 정도의 회원들이 있습니다. 연회비 5000원만 내면 누구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보통 화수목금 주 4일 동안 개방하면서 1주일 3권 대출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3년 전 부터는 고양시으로부터 적게는 200만원에서 1000만원 까지 지원을 받아 도서구입비에 보태거나 운영비로 쓰고 있습니다.
 

주로 주일 아침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클럽을 운영하고 1년에 1~2번 저자를 초청해 강의를 듣습니다. 때론 문학강좌를 열기도 합니다. 물론, 교회 성도가 아닌 지역주민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개방합니다.
 

도서관과 함께 북카페도 운영해 그 수익금으로 도서관 운영에 보태기도 하고 태국 소녀 1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1년에 1번 정도는 아이들도 참여하는 벼룩시장을 열어 구제헌금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은 돈을 저번 아이티 지진 때 후원금으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북카페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어린이집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주 1회에 도서관을 방문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글향기 도서관이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역주민들을 섬기기 위한 다양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회도서관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구상 중에 있을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조언과 격려의 말씀 부탁 드립니다.
 

교회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할 때에는 목회자의 인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목회자의 인식 여하에 따라 교회도서관 설치와 운영의 성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좋은 책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갖추어야 합니다.
 

교회 내 인재양성과 지역주민들에게 교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북카페를 겸해서 교회도서관을 운영하길 원합니다. 교회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서클럽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가정에서 하는 것이지만 교회도서관에서 보완하는 것이죠.
 

작은도서관진흥법도 시행하고 있어서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지자체의 지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론, 시에서 강사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기도 합니다. 시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별도의 강사료도 들지 않죠.
 

교회도서관에서 독서감상문 대회를 주최하여 시장의 이름으로 상장이 발급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시행령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평소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학부모와 아이들도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책을 선정할 때에도 교회에 있는 책을 선정하여 대회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 영성을 위한 책읽기』란 책을 저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이들의 성품을 계발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독서'를 꼽으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고 실력을 키우는 등에 학습효과를 기대하거나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롤모델을 발견하기 위해서 인물전기를 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품을 위한 독서는, 성품을 다루고 있는 좋은 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정직, 용기와 같은 덕목들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분명 학습효과도 있겠지만 독서는 품성을 키우는데도 효과적인 방편이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적인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동시나 전래동화, 창작동화를 읽으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소통에는 문학적 감수성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지금의 문화도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으로라도 부모님이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좋은 책을 같이 읽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성품도 길러줄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책보다도 검증된 저자들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외국저자로는 필립 얀시, 팀 켈러의 책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목사님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박영선 목사님의 강해설교, 돌아가신 분 중에는 김홍전 목사님의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김홍전 목사님은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Q. 이후의 활동계획과 현재 구상하고 계신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제목인데,『책으로 하는 QT』라는 책을 탈고 중에 있습니다. 1년 12달 주제별로 책을 가지고 자기를 돌아보고 신앙적인 성숙을 꾀할 수 있도록 100권 가까이 책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신앙적으로 성찰하게 하고, 특정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하려고 합니다. 책을 통해서 깊이 있는 묵상을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다음에 쓰려고 하는 것은 성경인물에 관해 쓰려고 구상 중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야곱이 지금 21세기에 산다고 한다면 자기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의 인물과 오늘날의 책과 연결시키는 작업니다. 만약, 소개하고자 하는 성경인물이 욥이라면 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고난에 관한 책을 소개하는 형식입니다. 각각의 인물과 책을 연결시켜서 풀어내려고 합니다. 아직 원고 시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하는 QT』를 끝내고 나면 책을 읽으려고 생각 중입니다. 특별히 동양고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차근차근 동양고전에 대한 입문서부터 읽을 예정입니다.

여유가 된다면 인물전기와 문학 장르 중에서 청소년 문학 책도 살펴보고 싶습니다. (파워뉴스)


 

송광택 목사는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 [독서지도사]과정 운영자 및 주강사,

한국기독인문학예술원 자문위원 & 강사,

크리스천북뉴스 발행인,

월간 빛과 소금 북리뷰 고정필자,

월간 교사의 벗 북리뷰 고정필자로 활동 중이며,

월간 생명의 삶 고정역자(2011-2012),

한국기독교 출판문화상 심사위원(2007-2012),

국민은행 <동화는 내 친구> 독후감 공모 심사위원(2010-2012),

극동방송 생활간증공모 심사위원(2010)

극동방송 독후감공모 심사위원장(2010)을 역임했다.

 

 

 

 

 

 

 

 
 

 

 

 

 

 


 

 

 

주간(Weekly)으로 발행되는 비전통신

2009년부터 2012년 까지 4년 분을

한번 클릭으로

열어볼 수 있도록 이곳에 모았습니다.

 

위 등대 그림을 클릭하면 별도의 창으로

비전통신 모음이 열립니다. 

 

 

 

 

 

 

 

 

 

 

 

 

 

 


 


 

 

 

일반적으로 안과 질환 하면 유행성 결막염, 전염성 질환, 백내장 등을 떠올린다. 특히 유행성 결막염과 전염성 질환은 여름철에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시기가 지나면 눈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에도 조심해야 할 안과 질환이 있다. 건조한 환경으로 눈물이 부족해져 발생하는 안구건조증과 찬바람을 맞으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 눈물 흘림증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부위에서 발생하는 전혀 다른 두 질환에 대해 알아보자.
 

자문_ 양산성모안과의원 박종일 원장
 

건조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안구건조증
 

날이 추워지면 실내에서는 난방기구 가동으로 더욱 건조해진다. 추위를 녹이기 위해 하는 행동이지만 이는 안구까지 건조하게 한다. 눈이 뻑뻑하고 따갑다는 느낌을 받거나 이물감, 충혈, 가려움 등이 느껴진다면 안구건조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안구건조증은 눈물의 생성량이 부족하거나 증발량이 많을 경우, 또는 눈물의 구성 성분(수성층, 점액층, 지방층) 간 균형이 맞지 않아 발생한다.
 

스마트기기도 안구건조증을 유발한다

 

스마트기기 이용도 안구건조증의 요인이 된다.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열은 공기 중의 습도를 빼앗아 간다. 또 스마트기기에 집중하게 되면 눈의 깜빡임도 평소보다 약 40% 이상 줄어든다. 눈 깜빡임은 눈물 막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행동인데, 스마트기기 사용에 집중하면 눈 깜빡임이 줄어들게 된다.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 눈물 막이 손상되고 안구가 건조해진다. 스마트기기를 15~20분만 사용해도 건조함, 뻑뻑함 등 안구건조증의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증상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안구건조증은 눈꺼풀 염을 동반할 때와 동반하지 않을 때, 눈물 분포와 배출의 이상을 동반할 때로 분류한다.

 

눈꺼풀염을 동반한 안구건조증이라면 먼저 염증을 치료한다. 눈꺼풀의 온찜질과 마사지, 눈가 닦아내기와 항생제 연고로 눈꺼풀의 균을 조절한 후 치료를 한다.

 

건조 증상만 있을 때는 주변 환경을 개선하거나 인공눈물 점안 처방을 내린다. 가벼운 각막 손상이 동반된다면 겔, 연고, 스테로이드 점안액 사용을 권장한다.

 

심한 각막 손상이 있을 경우는 눈물점 폐쇄술, 눈물샘 이식술 등의 수술을 한다. 눈물 분포 이상이 원인이면 상황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결막이완증, 눈꺼풀과 눈썹의 이상, 돌출된 안구표면 장애, 불완전한 눈 깜빡임이 원인일 경우 윤활제를 넣거나 수술적 교정을 한다. 만성 염증에 의한 결막 구석의 단축이 원인이라면 수술을 통한 치료를 한다.
 

미리 예방하려면 실내를 쾌적하게

 

겨울이 되면 야외 활동이 많이 줄어들고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실내 공기를 건조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인 18~20도와 적정 습도 60%를 맞춰 지나치게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루에 2~3회 30분 정도 실내 공기를 환기 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환기하지 않으면 실내의 오염된 공기 때문에 눈 건강에 좋지 않다. 또 스마트기기의 사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20분 이상 사용 시 5분 정도 휴식을 취하자. 눈을 감고 있거나 움직여 피로를 풀고 자주 깜빡이는 것이 좋다.

 

찬바람 맞으면 눈물이 계속 흐르는 눈물흘림증

 

정상적인 안구는 날이 추워지면 외부로부터 눈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더 많이 분비해 낸다. 그러나 눈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때 눈물흘림증이 발생한다. 눈물샘에서 코까지 이어지는 눈물길이 좁아지거나 막혀버려서 눈물이 눈꺼풀 밖으로 넘쳐흐르는 것이다.

 

눈꺼풀이 안쪽으로 말려있어 속눈썹이 눈을 찌르거나 안면신경마비 등으로 눈꺼풀이 잘 감기지 않고 바깥쪽으로 뒤집어졌을 때, 심한 눈병을 앓은 후 눈물점이나 눈물소관에 협착이 생긴 경우에도 눈물흘림증이 발생한다.

 

눈물흘림은 일상에 많은 어려움을 일으킨다. 눈물이 고이는 탓에 시야가 흐려져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또 눈물길이 막히면 만성 염증이 생겨 분비물이 많아지고 눈곱이 많이 끼게 된다. 상태가 악화되면 눈 주위 피부염이나 누낭염이 될 수도 있다.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다

 

눈물흘림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더욱 심각해진다. 눈물 고임이나 흘림 현상을 겪는다면 바로 병원의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내원하면 눈물흘림증이 나타난 원인을 찾기 위해 눈물길 세척검사를 한다.

 

세척검사는 눈물길 입구에 생리식염수를 주사해 이상이 있는 부분을 알아보는 검사다. 식염수가 역류한다면 눈물길이 막혀있다고 판단, 막힌 눈물길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통로를 만드는 수술을 한다. 누강비강연결술이라 부르는 이 수술은 눈물주머니와 코 사이에 있는 얇은 뼈를 제거하거나 뚫어 눈물주머니와 코 안이 직접 연결되게 하는 수술이다. 내시경을 통해 콧속에서 이뤄지며 약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눈 주위를 청결하게, 눈을 따뜻하게

 

눈물흘림증을 예방하기 위해 외부에 노출된 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외출할 때 보호 안경을 착용함으로써 찬바람에 안구를 덜 노출해 외부의 자극을 줄여주는 것이 좋다. 또한 눈곱이나 눈의 이물질은 손으로 제거하지 말고 면봉을 사용해야 한다.

 

손으로 눈을 만지면 손에 있는 세균에 의해 2차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 눈 위에 올려 찜질하는 것은 눈물길을 여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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