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익숙한 캠프파이어(campfire-야영장)가
있다. 우리가 계속 믿고 있는 것들, 이미
알고 있는 세상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기존의 방법이 바로 캠프파이어이다.
그러나 인생이
변화를 겪고 자신이 사막에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불을 더 크게 지피기 위해 황량한
사막에서 나뭇가지를 찾아 헤맨다. 때로
우리는 안락함과 안전을 뒤로 하고,
도전해야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캠프파이어를 벗어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거나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런 현실 속에 그대로 안주하기
쉽다. 고통스런 현실은 사막의 어둠보다는 덜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겹고 스트레스를
받는 생활을 계속하고, 불행한 관계도 그냥
참고 지내며, 친숙하고 오래된 믿음이나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코앞에 닥쳐도
그러질 못하는 경우가 있는다.
캠프파이어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손에서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변화라고 하는 사막의
어두운 밤으로 가기 전에 준비하고 싶은 모든
것과 계획을 써본다. 그런 후 현실적으로
그러한 계획을 모두 실행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그 다음엔 이런
준비를 마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도전을
시작하면 늘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특히
새로운 방향으로 가다가 곤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불확실한 상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둥지에만 갇혀
있다면, 인생을 건너는 진짜 여행은 결코
시작될 수 없다.
때때로 우리는
방황하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잘못된 허상을
좇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방황하면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오로지
목적지에만 중심을 두는 것이다.
둘째, 그저
변화의 가장자리만 배회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셋째, 방향
감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배회하는 것이다.
나침반을
따라가 보라.
그리고
인생이라는 거대한 여행 속에서 존재 방법,
살아가는 방법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져라. 궁극적으로 인생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며, 나침반은
우리가 이러한 여행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인생이란, 특히
변화의 시기에 있어서 인생이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끝은 보이질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지도와 여행 안내서를 들고 우리
인생을 건너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막의
모래땅이 바람에 의해 모양이 바뀌면 지도는
아무 소용이 없어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변화무쌍하고 분명한 이정표가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자체가 지도에 없고,
인생은 목표가 뻔히 보이는 등산과는 달리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가 없는 사막
종단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애매모호하고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이란 걸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사막을 건너는 여행의 진정한 출발이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혹은 사막을 건널
때, 나침반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아 준다.
둘째, 우리를
더 깊은 사막으로 이끌어준다.
셋째, 우리가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에 중점을 둘 수 있게
해준다.
지도보다는
나침반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지만, 때때로 우리는 올바르지 못한
방향을 따르기도 한다. 그래서 내면의
나침반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다거북들이
여행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정교해지는 자신의 나침반을 이용해서 자력이
느껴지는 대로 반응하고, 자기가 태어났던 그
해변으로 정확하게 되돌아오는 것처럼..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나침반을
찾아내려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하며,
나침반 바늘은 우리가 여행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목표를 갖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멀리 있는
산꼭대기 이외의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지금 자신 주변의 현재에 모든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며
우리를 인도해 줄 의미
있는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매 순간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할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오아시스에서는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궁극적인 목표뿐 아니라 위의 중요한 세 가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수심 300미터 이상 잠수하지 않는
바다거북도 가끔은, 어쩔 수 없이
1000미터 이상 깊이 잠수해 들어가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오아시스에서 자신을 보호할 것도 만들어야
하고, 메마른 몸에 물도 줘야 한다. 무엇이
자신에게 정녕 필요한지를 생각해봐야 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강구하며, 자기만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채울 수 있고, 새로운 시도들도 할
수 있으며, 휴식을 취하면서 현재의 자기
상황을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는 것, 즉 재능을 찾아내고
이제까지의 방향을 수정하여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에 자기 재능을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무조건 저 멀리 있는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오아시스에서도 쉬지
않고 그냥 지나치며 열심히 가는 게 다가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저 열심히 해서는
어느 분야에서도 뛰어날 수 없다.
재능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그 재능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종사해야 한다. 재능이 없다면
기껏해야 평범함을 약간 웃도는 사람밖에 될
수 없다.
위대한 성공은
자신이 최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자신에게 내재된 천부적이고 고유한
능력을 이끌어내야만 가능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재능을 타고났으며, 스스로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나침반 삼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따를 수 있어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 이렇듯,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고, 즐거운 순간은 종종
오아시스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인간 관계나
직업, 또는 취미에 대한 열정이 식어
버리면, 판에 박힌 김빠진 생활을 할 수도
있다. 현 상황을 잘 알지만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생활을 규정하는
틀이 아주 견고한 것이다. 이렇게 판에 박힌
생활을 하다 보면, 맥이 빠지고 지루하며
매사가 재미없어진다.
자기 안에서조차
정체 상태에 빠질 수 있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보거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뭔가를
시도해 보고 싶지만 두려움이나 실리적인 생각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만약
우리에게 방향 감각이 있다면,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게 된 상황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정체
상태에 빠져 있는가?
정체 상태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는 실마리는, 예전에는
효과가 있던 것이 더 이상 먹히지 않을
때이다. 전에는 원했던 결과를 그대로 보여
주었던 습관, 태도, 행동, 신념 등이 더는
소용이 없어진다. 이럴 때는 일단, 자신의
계획이 더 이상 소용이 없음을 인정하고,
더는 밀어붙이지 않는 게 좋다. 이걸 깨닫고
나면 참 겸허해지고, 정체된 상황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정체된 상황은
바로 우리의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사막에서 차가 모래 늪에
빠졌을 때 타이어에서 바람을 좀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고 그
구덩이를 비로소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서구화된
문화권과 사회는 거만한 자아를 건설적인
방법으로 해체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겸허해질 수 있는 작은 기회를 찾으며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변화의 사막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상황에서는 공기를 많이
빼야 할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 생활 속의 작은 사건을 통해
연습하다 보면, 큰 사건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까다로워지는 순간,
화가 나거나 참을성이 없어지고 유치해지거나,
또는 역겨워지고 둔감해지거나 오만해지는
순간이 오면 자아에서 공기를 빼고 실질적이며
건전한 방향으로 전환할 기회로 보면 된다.
겸허해진다 함은
그저 자기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작은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약점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겸허함이며, 이를 통해 더 높이 일어설 수
있다.
우리가 사막에서
겪는 변화는 종종 우리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또한 현재
상황에 대해서 냉혹하리만큼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해야 한다. 핑계를
찾아서도 안 되며, 바람을 빼는 것 역시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겸허해질 수 있으면 방황도 가능해지고, 앞서
말했듯이 방황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걸어갈
길을 찾으며 다시 인생을 건너는 여정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한 해의
삶은 사막과 같다.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 나침반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만들어 가실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인생 여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정상을 향해서만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과
준비가 별 소용이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
놓고 주님을
따를 때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고 독특하게 인도해 가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나침반이다.(장재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