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A, B, C를 통해서 쉽게 정리할 수 있다.
A는
‘인정하는 것’(Admit), 즉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죄도 포함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나의 죄를 인정해야
한다.
B는
‘믿는 것’(Believe),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영접하고 믿고 경배해야 한다.
또한 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인정해야
한다.
C는
‘고백하는 것’(Confess),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내가 나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면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나는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성장할 수
있다(벧후 3:18).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결정적 차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하나는 충성의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변화이다.
1.
우선, ‘충성’에 대해 논의해보자.
내가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다른 어떤 단어도 이 단어만큼 강한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 만일 어떤 사람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면 그는 왕을 위해 절대적으로 헌신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왕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관계도 이런 충성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은 당신의 헌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당신을 그의 뜻대로 완전히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이런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오늘날 심지어 부부 관계에서도 헌신의 개념이 너무 희박하기 때문에 부부 관계도 충성의 좋은
예가 되지 못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은 현재의 부부들 사이의 헌신보다
강하지만, 이상적인 부부간의 헌신보다는 약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 충성의 핵심 개념이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부터 이제까지 줄곧 이 개념에는 변함이 없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다녔다.
그분이 어디로 가시든지 그들은 따랐다.
그분은 가난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일 밤마다 잠을 어디서 자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어려웠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분을 향한 충성심 때문에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어디든지 그분을 따랐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모범적 예를
제시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그분이 능력이 많으신 분임을 잘 안다.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그분께 맡길 수 있다.
그분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긴다.
바로 여기에서 충성심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간다.
우리의 헌신은 사랑과 감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을 잘 안다.
우리가 자신을 그분의 손에 맡겨드리면 그분이 사랑 가운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책임지고 지켜주고 영화롭게 하실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께 충성하는 일은 즐겁고 기쁜 일이 될 것이다.
2. 마음의 변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의 두 번째 차이점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마음’은 인간의 모든 동기와 목적과 욕구의 근원이요 자아의 중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가르친다.
우리 의식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개인적 부족함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갖게
된다.
한편 무의식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신다.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따른 가시적인 변화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로 인하여 생기는 결과들을 보거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는 우리에게 미스터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의 새로운 방향과 목적을 갖게 된다.
불신자들에게는 이것이 미스터리일 뿐이다.
마음의 변화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필수적인 사항이다.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참신자가 아닐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과거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이
생활한다면, 나는 그의 신앙고백이 참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믿는다.
생명의 중심인 마음이 변화되었다면, 그 변화의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마음이 변화될
때 나타나는
다섯 가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변화는
그가 새로운 성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고 분명히 밝힌다.
이것들은 주 예수님의 성품들인데, 신자들에게서도 이런 것들이 나타나야 한다.
이 각각의 성품들은 그리스도인이 부딪히는 상황들에 따라 거기에 맞게 적절히 나타나기 마련인데,
만일 마음의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런 성품들이 나타날 수 없다.
마음이 새로워진 그리스도인의 두 번째 변화는
행동의 동기가 새로워지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변화이다.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가르친다.
비그리스도인이 이기적이고 자기도취적인 마음으로 오직 자기중심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와 찬양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한다.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상적인 자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리스도인은 그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세 번째 변화는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는 데 흥미를 느낀다는 점이다.
그는 하늘 아버지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기를 원한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회심하지 못한 그의 친구는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 친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성경을
좋아하는 거야?’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네 번째 변화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사랑이 생기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연장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그리스도인의 다섯 번째 변화는
주님을 알리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증거하기를
갈망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하다.
그리스도인의 충성심은 자신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다.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에게는 새로운 성품들, 동기들, 성경에 대한 관심,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복음 증거의 열정이 생긴다.
그의 삶의 모든 것들은 그의 삶의 새로운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하여 새로운 형태로 재편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
바울은 많은 일들을 행했지만, 그 일들을 모두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행하였다.
이 점에서 그는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도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드리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언) 
( 이 글은 J.I. 패커의 책을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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