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4,  2013

 

 

 

 

 

 

 

 

 

 

 

 

 

 

먼옛날 어느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흘렸네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였기에

수 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는 알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 나라로 갈수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 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날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인내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있다네

 

 

 

백만 송이 장미

 

 

러시아 여가수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는
우리말로 번안되어 불려지면서

가사의 내용은 상당히 달라졌다.

원래 오래된 시(詩)에 곡을 붙였다는

이 러시아 노래는

유명한 미모의 여배우를 짝사랑하는

어떤 가난한 무명화가의 슬픈 사랑 얘기를 담고 있다.

 

Once upon a time an artist live,

he had a house and canvases
But he fallin love with actress, who adored flowers
Sold all his painting and works,
And for the summ, he had got,
He bought the ocean of flowers,

(Chorus)


Million, Million, Million, of Red Roses
who's in love, who's in love in earnest
Would turn his life to flowers for You.
Morning. You'll look out from the window
perhaps, You have lost Your mind...
As the extension of Your dream,
Square is full of the flowers at Your sight.
Your soul would grow cold:
"What a rich man plays tricks here?"
But, standing under Your window,
Train took her into the night,

their rendezvous was too brief;
But her life was lift was light was lightened

with the wild song of roses.
The artist lived in loneliness,

he went through much grief,
But his life was lightened by a square,

full of flowers.

 

 

 

 

 

 

 

 

 

 
 

 

 

 

 
 

 

 

 

 




시인/생수의강 박희엽

 

행복으로 인도하는 봄꽃놀이
양지바른 내 마음에 먼저 피어오르며
살며시 손 내미는 아지랑이 사이로
주님의 고운 얼굴 아롱거린다.

세월 따라 피고 지는 봄꽃 사연도
인생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지
아름답게 꽃단장하고 일어서서
나그네 발걸음을 축복하고 있구나.

세월의 아쉬움은 소리가 없지만
봄이 오는 소리는
봄꽃으로 알리고 있으니
창조주의 아름다운 손길이로구나.

만유의 진리이신 사랑은
웃으며 사는 인생만을 축복하시니
우리 인생의 봄꽃놀이
더불어 웃으며 가자꾸나

 

 
 

 

 

 

 

 

 

 

 

 

 

 

 

 

 

 

 

 

 

 


 

 

 

파피(Poppy)꽃은 1816년 러시아 자연과학 탐험대의 J.F.에스치숄(Johann Eschscholts) 박사가 캘리포니아를 탐험할 때 최초로 발견해 파피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인디언들은 하나님이 캘리포니아에서 추위와 기근을 쫓기 위해 불꽃을 보냈다고 믿었고,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에 이 파피 꽃은 풍요와 부를 상징한다면서 스페니쉬로 Copa de oro(파 데 오로)라고 불렀는데 이는 황금 잔이란 뜻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903년에 파피 꽃을 주꽃(주화-州花)으로 지정하고 그 서식지를 보호구역으로 설정해 주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LA 북쪽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랭캐스터(Lancaster) 일대의 앤틸롭 밸리 파피꽃 보호구역은 해마다 3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 파피 꽃이 장관을 이루는 남가주의 대표적인 파피꽃 단지다. 캘리포니아의 봄은 파피 꽃이 몰고 온다.

 

 

 

 

 

 

 

 

 

 

 

 

 

 

 

 

 

 

 

 

 

 

 

 

 

 

 

 

 

 

 

 

 

 

 

 

 

 

 

 

 

 

 

 

 

 

 

 

 

 

 

 

 

 

 

 

 

 

 

 

 

 

 

 

 

 

 

 

 

어느 날 물가에 기진맥진하여 지친 목마른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왜 그 개는 물가에서 그토록 목말라 하는가?

 

그 개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서 뒤로 물러서곤 하였다. 왜냐하면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개로 착각하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너무 목이 말라 죽기를 각오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 다른 개(물 속에 비쳐진 개)는 사라져 버렸다.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 개는 뒤늦게 알아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말해주는 가르침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구하고 있는 것과 자기자신과의 사이의 장벽을 발견하는 순간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내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예를 들자면 자존심, 이기심, 지나친 승부욕 등등) 이 바로 장애라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나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된 것을 찾고 나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자 할 때 장애물은 그저 제거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 장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는 전보다 잘 살게 되었는데 왜 죽는 사람이 많아졌는가?

 

어느 외국인 사회학자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한국을 가리켜 [사람을 죽이는 사회]라고 지적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공유(共有-share)의 도(道)가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불감증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아침에도 기도한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찾아가 예배와 설교를 통해 나라와 인생을 망치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알아 차리게 해 주시라고.

 

한국 사회를 한 번 들여다 보자. 세대간의 이질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세대간의 이질화가  점점 확대되고 고착화되어 가는 느낌이 들지 않은가.

 

386세대, 신세대, n세대, e세대 등의 용어가 편가르기처럼 들리지 않은가. 나 아닌 상대를 존중하는 구분이 아니라 [우리끼리만]이라는 달팽이 집 짓기에 열중하는 현상처럼 보인다.

 

특수한 집단끼리만 소통되는 언어를 은어(隱語)라고 한다. 언어사회학에서는 시대상을 확인하는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은어와 익명이 난무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선진국이란 말에는 국민의 문화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그 문화란 결국 내가 만든 지혜의 산물을 광장에 내놓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복음은 문화적이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밀실에서 꾸미는 음모처럼 되어서 되겠는가.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와 상업주의의 창궐이 그런 음모를 조장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어(隱語)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끼리]의 용어는 분명 선교의 장애이다. 결국 복음적인 문화공유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교인들이 종교다원주의, 요가, 뉴에이지 같은 이단에 빠져드는 것이다. (장재언)  

 

 

 

 

 

 

 

 

 

 

 
 

 

 

  

 

 

 

청년 사역의 현실과 미래를 논하기 위해

각층의 사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실부터 대안까지 다양한 이슈를 다룬 좌담회는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왼쪽부터)

 HYM 더글라스 김 대표,

선한청지기 교회 송병주 목사, LA기윤실 박상진 간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청년부 김석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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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에 대한 '위기'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뿐 아니라 미주지역도 마찬가지다. 수백 명이 모이는 청년부는 10여 교회가 채 되지 않는다. 규모가 작은 교회는 청년부가 와해되거나 겨우 유지되는 실정이다.

 

4월13~14일 나침반교회에서 열리는 '제28회 HYM청년연합집회'를 앞두고 청년 사역의 현실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달 30일 선한청지기교회에서 송병주 목사(선한청지기교회.이하 송) LA기윤실 박상진 간사(세계선교교회 청년부 담당.이하 박) 청년부 소그룹 리더 김석준(남가주사랑의교회.이하 김) HYM 더글라스 김 대표가 모여 '청년 사역의 현실 진단'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청년 사역과 관련된 각층의 기독인들이 청년사역의 '오늘과 내일'을 허심탄회하게 나눠봤다.

 

-청년사역 솔직히 어떤가.

 

(박) "한국에선 이미 청년사역이 '붕괴' 됐다고 본다. 수많은 사역자가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민교회는 한국보다 흐름이 조금 늦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송) "직설적으로 말하면 암울하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무방비 상태다. 현재 참담한 상태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20년 후쯤에는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송) "거시적으로 90년대 초반까지는 대학 캠퍼스 사역의 중흥기였다. 수백 수천 명 모이는 건 너무 쉬웠다. 이후 캠퍼스의 청년들이 고스란히 교회로 이동했다. 교회는 캠퍼스 부흥에 무임승차를 한 셈이다. 자꾸 과거를 미화시키면 안 된다. 우리가 잘나서 얻은 부흥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청년사역은 교회에서 소위 '황금알을 낳는 시대'였고 이에 편승한 스타 목사들이 배출됐다. 그때 중흥기를 보낸 세대가 지금의 30대~40대다. 오늘날 교회가 다소 젊어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현재 10대의 기독교 비율이 4% 20대는 3.7%밖에 안 된다.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20년 후는 어떻게 될까."

 

(더글라스 김) "HYM 사역을 해보니 교회가 실제 청년 사역에 관심이 없다. 어차피 떠날 그룹이라고 여긴다. 쉽게 말해 장사가 안되니까 지원이나 투자가 약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어떤 현상이 발생하고 있나.

 

(더글라스 김) "예를 들어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민교회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토요찬양예배를 하면 보통 1000~2000명이 모였다. 그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HYM 집회가 99년도에 시작됐는데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심히 우려된다."

 

(김) "지난 7년간 소그룹 리더로서 현장에서 바라본 청년 사역은 가깝게 지난 몇 년 사이만 살펴봐도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숫자 감소는 표면적 문제다. 내부적으로 보면 청년들 사이에서 복음에 대한 진지한 자세 성경공부 분위기 기독교적 가치관에 대한 고민과 성찰 등의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박) "이곳은 한국서 꾸준히 유입되는 유학생 또는 이민자들이 있기 때문에 숫자가 유지되는 것 같지만 속까지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엑소더스(exodus)' 문제와 복음을 '프라이빗 가스펠(private gospel)' 정도로 여기는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또 청년들이 새로 유입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작은 교회의 청년이 큰 교회로 옮기거나 큰 교회 청년부 간의 수평이동 정도로 청년 사역이 유지되는 실정이다."

 

-문제의 원인은.

 

(송) "한국 교회 문제에서 비롯됐다. 젊은 세대에게 청년부가 아닌 교회 자체가 매력을 잃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화두는 '성장'이었다. 성장을 통한 좋은 열매들도 있었지만 사실 배설물도 많았다. 청년 사역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성장을 강화시켜야 할 때가 아니다. 청년사역이 건강성 회복을 위한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

 

(박) "이곳의 청년사역 문제는 이민교회의 태생적 문제로 봐도 된다. 그동안 이민교회는 '소셜 게더링'의 역할도 담당했다. 그러다 보니 명목상의 신자가 가득해졌다. 교회가 친목역할에 충실한 사이 교회가 지켜야 할 본질은 점점 퇴색됐다. 청년들은 복음에 대한 구도적 자세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갖기보다 그외의 요소들을 교회에서 채워왔다."

 

(김) "교회가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통해 청년들에게 진리에 대한 영적 또는 지적 도전을 해줘야 했는데 정작 그런 본질에 대한 부분은 1차원적 접근으로 끝내버렸다. 청년들이 가진 진리에 대한 내면적 갈망에 기도해라 말씀봐라 순종해라 사랑해라 등의 단순한 형식의 답을 형태만 바꿔 제시해왔다. 청년들이 목말라 하는 이유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채 비본질적 요소로 자꾸 공백을 메우다 보니 결국 청년 사역의 '거품 현상'이 발생했다."

 

-교회만의 문제인가.

 

(송) "구조적 원인도 있지만 청년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나는 청년들이 소위 '눈꼴 시린 게 없으면' 청년이길 포기했거나 그 교회에는 청년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기독 청년이라면 복음을 통해 어그러진 교회와 세상을 향한 비판적 시각 책임 의식 진리추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그런 청년들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더글라스김) "그동안 청년들은 롤모델만을 찾아왔다. 하지만 자신들이 롤모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청년들이 수동화 됐다."

 

-그런 청년들은 왜 양산됐나.

 

(송) "교회와 청년이 피차 서로에게 길들여졌다. 청년들은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에 이념적 샤워를 당했다. 암묵적으로 교회는 성장과 유지를 위해 그런 청년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 "사회에서 청년들의 정체성은 '성인'이다. 그런데 교회만 오면 이상하게 그런 모습이 사라진다. 내부적으로 윗세대에게 어린 취급을 당하면서 자연스레 청년부란 '인큐베이터'에 가두어진 결과다. 매년 반복되는 사역 사이클 안에서 청년들은 교회가 제공하는 것에만 익숙해진다. 점점 단순해지고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의 삶과 세상에서의 삶에 괴리가 커진다. 은연중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분리시켜 생각하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이다."

 

(박) "신자 비신자를 떠나 청년들에게 진로 결혼 친교는 아주 중요하다. 이 부분을 절대 간과할 순 없다. 다만 청년 사역이 그동안 그런 부분에 좀 더 집중되면서 청년들이 단순화됐다. 정말 의문이 든다. 만약 밖에서 그런 부분들이 해결된다면 그들이 교회에 와야하는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 오늘날 교회는 그 이상을 보여주고 제시해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안이 있을까.

 

(송) "힐링과 멘토링이 필요하다. 단순히 세상이 말하는 '힐링'이 아니다. 그동안 청년들은 교회에서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다. '제너레이션'에 대한 힐링이다. 그러기 위해 세대간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우리 교회는 청년들에게 40~50대 집사님들을 일 대 일로 붙여준다. 성경공부도 함께한다. 그랬더니 어른들이 사역하는 곳에 서서히 청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회 사역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관점이 '의무'에서 '관계'의 관점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걸 보면서 '그동안 청년들은 청년부를 다닌 거지 교회를 다닌 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박)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됐다. 이민교회 전반적인 문제 말이다. 이를 위해 청년 사역자가 복음에 입각한 교회론 회복과 본질 추구에 대해 고민하고 씨름해야 한다. 청년 세대는 얼마든지 틀릴 수 있고 잘못 갈 수 있다. 다만 그런거에 대한 단순한 해답 제시가 아니라 길 위의 벗처럼 '함께 가보자'라는 정신의 공감대 형성이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겠다."

 

(더글라스김) "디아스포라 정신의 회복이다. 나는 30여 년 전에 미국에 와서 처음에는 성공과 안정을 위해 살아왔다. 쉽게 말해 '정복'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왜 보내셨는지에 대한 목적을 찾고 이유를 깨달아가는 '디아스포라'의 정신이 정말 중요하다. 교회가 삶의 안위와 안정을 강조하기보다 그 정신을 일깨워야 한다."

 

(김) "이제는 교회가 수준을 높여야 한다. 하나 됨의 명분과 공동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친목이나 교제 이벤트 등이 더 이상 청년들에게 먹히는 시대가 아니다. 그 안에 갇힌 청년들은 그게 익숙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고 정착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교회 울타리 밖으로 자꾸 시각을 넓혀야 한다. 일시적으로는 비신자 청년들이 교회 모임 성격상 단순히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는 겉모습에 호기심은 가질 수 있겠지만 결국 가치관에서 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음을 인식하면 흥미를 잃게 된다. 이를 위해 청년사역은 그 동안 추구해온 서비스 제공의 개념에서 청년들의 지성 감성 이성의 영역에 대해 진리의 복음으로 도전하고 시각을 바꾸려는 콘텐츠 제공의 역할로 변해가야 한다."

 

-변화가 가능할까.

 

(송) "개인적으로는 청년 사역자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나름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또 올해는 해외 단기선교 대신 실제로 교회가 부족한 캠퍼스 지역들을 찾아 2주 동안 청년들이 아웃 리치를 가기로 했다. 건강한 작은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장기적으로는 훈련된 청년들을 세워 미자립 교회에 파송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다.

더 이상 '내 교회' '내 청년부'가 아닌 전체로 봐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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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M 청년집회는 4월 13일~14일(오후 7시) 브레아 지역 나침반교회(1200 W Lambert Rd)에서 열렸다.

 

청년들에게 코스타 강사로 널리 알려진 노진준 목사(한길교회)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강사로 나선다. HYM 집회는 미주 지역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 서로 연합해 예배를 통해 하나 되는 집회다.

1년에 두 번씩(봄.가을) 정기적으로 열리는 HYM 집회는 1999년 9월 처음으로 시작됐다. 이후 유진소 목사(ANC온누리교회) 오석환 목사(OMI 설립자) 최홍주 목사(에브리데이교회) 김원기 목사(펠로십교회) 김승욱 목사(할렐루야 교회) 등 유명 목회자들이 강사로 나섰다.

 

HYM 사역도 연합 예배의 목적과 같이 현재 각 교회에 소속된 청년들이 함께 연합으로 사역을 한다. HYM은 기획팀 홍보팀 미디어사역팀 예배팀 등으로 구성돼있다.

또 자체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예배와 기도모임 등을 통해 청년 부흥의 불씨가 되고 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과 염소는 누구인가?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25:31-46)

 

 

 


 

[질문]
 

위의 말씀에 대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특히 궁금한 것은 위의 구절 속에는 선을 행하고 알지 못하는 오른편에 있는 자들과 선을 행하고 아는 왼편에 있는 자들이 있는데, 그러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말씀에서 바른 선(善) ( 지극히 작은 자에게까지)을 행하지 않아서 이렇게 양과 염소로 나뉘어 지는 것인가요?
 

[답변]
 

양과 염소로 나뉘어지는 기준의 핵심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을 행하지 않아 염소로 구분된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심지어 불안을 야기시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누구나 길거리나 뉴욕의 지하철, 한국의 지하철 같은 데서 자주 마주치는 걸인들에게 돈이 있으면서도 적선(積善)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둘 째 치고 마지막 심판 때에 그런 것이 문제될 수 있는가 하는 의심마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의심이 생길 때는 한 번 역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 말씀이 그런 경우를 상정한다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단언컨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선행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자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당연히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참 신자라면 더더욱 나서서 도와야 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도울 마음도 생깁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구원 받아 영생을 확보한 자라도 죄의 본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거룩한 성자로 변하지 않았으며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어느 누구라도 불가능합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처럼 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고 있는 자입니다. 말하자면 목사라도 그런 걸인을 만나면 자기 바쁜 일이 먼저 생각나 귀찮아 할 때도 있고 심지어 자기 돈이 아까워 주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대신에 베드로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갈 때에 날마다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 걸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행3:6)고 말한 것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이 말이 구제와 선행을 부인하거나 기독교라는 종교체계를 강조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구원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그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와 같은 영적 불구자인 모든 인간을 일으켜 세우실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진정으로 영접한 자는 구원을 얻고 마지막 심판 때에도 양의 자리로 나뉘어집니다.
 

앞의 두 질문과 마찬가지로 문화, 문맥, 주제라는 세 관점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의할 것은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설명하시면서 두 가지 반대되는 사물과 일을 대조 시키는 기법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무엇과 무엇이 비교되었는지 잘 분석해야만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1. 문화적 관습
 

이 비유는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비유가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비유적인 요소라곤 단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 짓는 일 뿐입니다. 비유의 특징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 가운데 화자가 전하고자 하는 진리가 추출되어져야 하는데 본 비유에선 그런 점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시 관습을 아는 것과 실제적인 해석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당시 양과 염소는 낮에 풀을 뜯을 때는 무리에 구분 없이 섞여 지내다 잠 잘 때는 목자가 그 둘을 구분했습니다. 양은 추위에 강하고 염소는 약했기 때문에 염소는 따뜻한 곳에서 재워야 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문화적 관습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현실에선 염소를 따뜻한 곳에 재웠지만 본문 비유에선 구원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심판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이 비유가 갖는 진리는 마지막 심판 때에 정확하게 영생과 멸망의 둘로 정확하게 양분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심판과 구원 외의 제 3의 자리가 없습니다. 나아가 인간에게 더 이상 유보나 연기가 불가능하며 또 다른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즉각적인 심판과 구원의 구분만이 있을 뿐입니다.
 

양을 오른 편에 두고 염소를 왼 편에 둔 것은 구약시대부터 오른 쪽은 영광과 존귀와 생명과 힘의 상징으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입니다.(출15:6, 욥30:12 등 참조) 반면에 왼편은 저주와 사망과 미련함과 힘의 상실을 상징했습니다.(삿3:15, 전10:2 등 참조)
 

그러나 평소부터 양이 선한 동물이고 염소는 악한 동물이라는 의미는 전혀 없으며 단지 흰색 양과 검은 색 염소를 대비해 선과 악, 생명과 멸망을 상징적으로 비교한 것 뿐입니다.

양이 선해서 흰색이 되었거나 구원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아니라 구원의 뜻이 생명이요 선이라는 의미로 흰 양을 비유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선행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로 온순한 양을 예로 든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구원과 심판 둘로 확실히 나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목자가 양 떼와 염소 떼로 나누는 행위에 비교시킨 것 뿐입니다.
 

2. 문맥에서 제기되는 문제
 

본 비유는 종말을 나타내는 마태복음의 5가지 비유 중 마지막이자 결론에 해당됩니다. 주제는 심판과 구원의 표준과 근거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에는 각각 상반되는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기준에 안 맞으면 심판을 받는 것이고 심판을 받는 근거에 해당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전혀 반대되는 두 부류의 사람을 대조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두 부류의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단순히 적은 일에 충성했느냐 안 했느냐로 나누는 것은 이 비유를 표면적,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것에 불과합니다. 무엇과 무엇이 대비 되었는지 잘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심판관인 왕이 자신에게 잘했기 때문에 구원을 준다고 했습니다.(35,36절) 그러나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왕에게 잘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37.38절) 그러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바로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그 뜻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40절) 그들이 처음에 부인한 이유는 자기들로선 왕에게 직접 잘한 적이 없기에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에 대해 왕은 자신이 의미하는 바는 자기에게 직접 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은 자에게 잘한 것이 바로 자기에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판 받은 자는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왕이 자신에게 잘못했기에 심판을 준다고 했습니다.(42,43절) 그러나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은 왕에게 잘못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습니다.(44절) 그러자 또 다시 왕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행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들은 왕에게 직접적으로 잘못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왕의 기준에 반발했습니다. 그에 대해 왕은 자신의 의미하는 바는 자기에게 직접 잘못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적은 자에게 잘못했느냐를 따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대조해서 분석해 보니 이 비유가 적은 자에게 선을 베풀었느냐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 이해되십니까? 그것은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진리의 일부분이자 두 종류의 사람들이 행한 행동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입니다.
 

지금 왕은 당연히 심판관이신 하나님이자 예수님입니다. 구원 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고백한 대로 하나님에게 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일을 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적은 이들에게 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심판 받은 자들은 하나님에게는 아주 잘했습니다. 그럼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좋고 하나님의 일도 많이 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종교적인 형식과 외식적인 율법 준수에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주여 하고 입으로는 열심히 불렀지만 막상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는 등한히 했거나 종교적 책임을 다해 하나님의 보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만 선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3. 주제로 살펴 본 비유의 참 뜻
 

그럼 이제 구원과 심판의 기준은 명확해졌습니다. 평소에 불우한 이웃과 형제들을 돕고 섬기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 일을 함에 세상에서의 어떠한 칭찬도 바라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상도 전혀 바라지 않는 겸손한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으로 선행과 구제를 하며 하나님 앞에선 의인인체 자랑하는 뻔뻔한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눅18:9-14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참조)
 

그러나 단순히 선행을 하느냐 아니냐는 행위만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근본적인 기준이 따로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오른 편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적인 겸손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는 데도 겸손과 교만의 두 가지 상반되는 태도가 있을 수 있으며 나아가 하나님을 위하는 열심과 정성의 크기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 겸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 볼 때에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철저한 자각과 그런 고백을 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자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자의 특징은 어그스틴이 말한 대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겸손입니다. 단순히 인간관계에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위선적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겸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여 그 분 앞에 절대적으로 겸비해졌기에 사람 사이에도 자동적으로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단지 자기가 믿는 종교의 계명을 지키거나 인간으로서 도덕적인 책임감과 양심을 만족시키는 의미로 선행을 해선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이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형식적, 종교적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성령의 거듭남이 없이 자신의 결단만으로 예수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선한 삶을 살기만 하면 천국 간다고 착각하는 자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일 대 일로 만나 하나님께 항복하기 전까지 그만큼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하나님을 위하는 열심에서 뜨거웠던 자가 없었습니다.(빌3:5,6) 그러나 그에게 오직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였다는 자각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인식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예수님을 만나 세상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여겨졌기에 세상의 칭찬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보상마저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자신을 평가해 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세상적으로는 대적임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 같이 아무리 작은 자에게도 충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자신이 이전에 행했던 의는 단지 율법에서 난 것이지만 지금 자기가 하는 모든 행위는 오직 하나님께서 난 의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의 도덕적 종교적 열심으로 선을 행했지만 이제는 예수라는 나무에 가지로 붙어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가 금지할 법이 없이 저절로 열린다는 것입니다.(요15장, 갈5장)
 

끝을 맺어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비유에서 예수님이 제시한 구원의 기준이 얼마나 선을 충실하게 행하느냐 보다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 항복하여 진정으로 낮아졌는가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연히 이웃에게 충실하게 되며 또 그것이 절대로 자신의 의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자신의 삶 자체가 변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간 자는 세 번 놀란다는 크리스천 조크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꼭 와 있어야 할 바리새인처럼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없고 있어선 안 될 죄인인 세리는 와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신이 천국에 와 있음을 놀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뜻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양으로 분류된 사람은 왕에게서 나에게 잘해 구원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저는 주님께 잘한 일이 없습니다 하면서 놀래며 부인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선 항상 가난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평생을 산 자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웃에게는 주님께 하듯이 진정으로 사랑한 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 자는 비록 가끔 죄의 본성이 남아 있어 항상 이웃을 사랑하지는 못해도 근본적으로 자신을 세상의 배설물로 여기기에 이웃에게 예수님의 심장을 갖고 진정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우선 순위나 중요도의 차이를 두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둘째는 첫째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한다고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또 하나님을 잘못 사랑하는 자도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은 이 두 계명을 정확하게 같은 것으로 본 자이며 염소는 첫째 계명만 중요하게 보았고 그것도 형식적, 종교적으로만 지킨 자라는 뜻입니다.

작은 자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구원의 기준은 아닙니다. 신자라면 자연히 작은 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께 항복한 자 즉 참 신자만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우편으로 분류됩니다. (언)

 

 

 

 

 

 

 

 

 

 

 

보지만 말고 감상하세요

 

 

 

Low clouds over a volcano.

화산 위에 낮게 뜬 구름
 

 

 

The world awakens.

세상이 깨어나고 있다.

 

[Notice that the bird's color and the rainbow match?]

새의 색깔 무지개의 색깔이

서로 어울리고 있는 것을 보시죠?

 

 

 

 

Interesting patterns.

What does it feel like to be totally alone?

 

흥미로운 도안(패턴)들이네요.

아주 혼자 남겨지는 기분이 어떨까?

 

 

 

So peaceful! The World going to sleep!

이처럼 평온할 수가! 세상이 잠들고 있네

 

 

 

 

It's so nice to have friends!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

 

 

 

 

Luminescence is beautiful. Color is an amazing gift!

아름다운 광채! 색깔은 경탄할 선물이다.

 

 

 

 

"On a clear day," wonder what you would see?

"청명한 날에는" 무엇이 보이려는지?

 

 

 

 

Life Is SO Good!

아주 좋은 삶!!!!!

God's creations are truly awesome!

하나님의 창조물들 실로 경외롭도다.

 

 

 

 

And, again.... Any questions??

그리고 다시 한번 묻는 ... 아무 질문없소?

 

 

 

 

OMG! Should you ever, really have any questions

about our 'God given' world....

 

이거 보게나!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놀라운 세상에

관해 정말로 어떤 질문 가진 적 없었단 말인가?

 

 

 

 

WOW!!! A dandelion covered with dew. Love it!!

!!! 이슬로 덮인 민들레 . 정말 좋아요.

 

 

 

 

Now, That's a shower. What a bathtub, too!

이번엔, 샤워장? 아님 목욕탕으로는 어떤가?

 

 

 

Winter shows off her silver lining! Beautiful!

겨울이 저의 자랑 거리를 보여주고 있네! 예쁘다!

 

 

 

 

Slippery, when wet!

젖었을 때는 미끄럽겠지요!

 

 

 

Never go swimming alone.!

(He seems to be in camouflage! )
 

홀로 수영 가지 마세요!

(거북이는 위장하고 있는 듯이 보이네요!)

 

 

 

Life, at a little different angle . . .

좀 다른 각도에서 본 삶

 

 

 

Winter in the Smokies. They really do look a lot like this!!!

스모키스라는 미국 동부 산맥의 겨울 풍경.

실로 풍경들이 사진과 아주 비슷하지요!!!

 

 

 

Hope you remembered to fill the tank!

가솔린탱크에 기름 가득 채우는 잊지 않았기를 바래요!

 

A great opportunity for exercising your imagination,

in the clouds, as well as road side!! Love it!!

 

구름과 길옆에 있는 여러 가지 환상 속을

헤 메어 좋은 기회네요! 정말 멋있어요!

 

 

 

How breathtaking!!

숨막힐 정도네요!

 

 

 

 

How Majestic! 얼마나 장엄한가!

Don't you wonder what pioneers must have thought??

개척자들이 무얼 생각 했을까

궁금 해 지네요?

 

 

 

Cat nap anyone? Beats a Beauty Rest, any day.

 

 

 

 

Ahhhhh...now this is what I call 'Heaven'!!!

... 이제 이것이야 말로 내가 "천국"라는 곳이야.

 

 

 

Niagara Falls, at night.

나이아가라 폭포의 야경

 

 

 

Ring around the Rosie . . .

로씨를 부르며 둘러 싸자....

(아이들이 손잡고 동그란 원을 그리면서

놀 때 부르는 노래)

 

 

 

 

Do you have these in something smaller?

작은 사이즈는 없나요?

 

 

 

I want to live here.

여기서 살고지고.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제일교회
 

남녘 땅의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군. 초도제일교회는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마을에 있다.
 

이곳은 물 좋은 샘이 많아 ‘샘동래’라 불렸고 이후 마을 앞바다에 갈대를 비롯한 풀이 무성한 작은 섬이 있어 ‘초도(草島)리’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교회 바로 뒤편에 깨끗한 백사장과 짙푸른 바닷물이 절경을 이룬 초도해변이 펼쳐져 있다.
 

초도해변은 군사보호시설이라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된다. 평소에는 철책이 쳐 있어 접근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고기잡이를 하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북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이라 항상 어업을 지도하는 경비정이 순찰을 한다”고 말했다.
 

뱃사람들의 기도
 

초도리 마을에는 바닷바람이 매서웠다. “4월 말까지도 바닷바람이 강해 이 마을에는 봄이 없다”는 주민들의 말이 과장은 아닌 듯했다.
 

여름 휴가철에 초도 1·2리의 주민 상당수는 민박집을 운영하거나 횟집, 막국수집 등에서 일한다.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차례로 나타나는 거진항, 화진포·초도해변, 대진항, 마차진해변, 명파해변 등으로 피서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특히 화진포와 그 주변의 바닷가는 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1948∼50년 북한의 김일성이 여름 휴양지로 사용한 적이 있어 ‘김일성 별장’이라 불리는 ‘화진포의 성(城)’과 이승만, 이기붕 등 옛 권력자들의 별장이 개방돼 있어 역사 자료를 볼 수 있다.
 

주민들은 그러나 “금강산 관광길이 막힌 뒤로 수입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여름철 성수기를 제외하면 주민들의 주업은 고기잡이다. 주민 400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가까운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문어, 도루묵, 광어 등을 잡는다. 이 중에서도 연중 꾸준히 잡히는 데다 가격도 비교적 높게 책정돼 있는 문어 잡이에 많이 나선다. 해삼 전복 등을 건져오는 할머니 해녀들도 있다. 감자 고추 배추 깨 농사를 조금씩 짓기도 한다.
 

뱃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곳에는 무속신앙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렸다. 정기적으로 풍어제를 올리고 조업 중 실종사고가 나면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최북단에 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어려운 ‘선교의 땅끝’이라고도 여겨진다. 김승모(40) 목사는 “우상과 미신을 타파해야 하기 때문에 복음 전파가 쉽지 않지만 그런 만큼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30여명이 출석하는 초도제일교회의 새벽예배는 새벽 4시에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는 배를 타야 하는 성도들을 배려해서 다른 교회보다 일찍 새벽예배를 갖는다. 김 목사는 “10명이 채 안 되는 성도들이 참여하지만 그 기도의 간절함은 어느 큰 교회보다 절실할 것”이라고 했다.
 

기도 제목은 ‘안전조업, 무사귀환’이다.
 

2t짜리 배를 타는 김영락(63) 장로의 아내 홍금숙(51) 권사는 매일 “사고 없이 무사히 조업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홍 권사는 “교회 행사 때 쓰려고 문어 100㎏만 잡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기도대로 되곤 하는데 우리 수입 좀 올리자고 많이 잡게 해달라면 잘 안 들어주시더라”면서 웃음 지었다.
 

김 장로는 “바다에서 청춘을 보냈는데 큰 사고 없이 여태 무사히 조업할 수 있는 게 다 하나님 덕분”이라며 “2년 전 보증을 잘못 섰다가 어선이 압류됐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김 장로님은 주일을 꼭 지키시는데도 이 지역에서 판매 실적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베테랑”이라고 소개했다.
 

김 장로 부부는 처음으로 교회에 함께 나온 95년 3월 18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이전에는 김 장로가 사찰에 다니던 어머니의 뜻을 따른다며 먼저 크리스천이 된 아내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끊임없는 설득에 남편뿐 아니라 시어머니까지 그리스도인이 됐다.
 

홍 권사는 “다 천국 가는데 혼자서만 지옥 가실 거냐고, 하늘나라에서 따로 사시려고 그러느냐고 작정을 하고 계속 권했다”며 “우리 시어머니는 당뇨합병증으로 다 돌아가시게 됐을 때도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3년이나 더 사시다 가셨다”고 했다.
 

16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다는 함희영(53) 집사는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우니까 바다는 항상 위험하다. 한번 빠지면 죽는 거니까…. 뱃사람들은 다 안전조업, 무사귀환이 기도 제목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의 어머니 서연홍(74) 권사는 “7남매를 뒀는데 바다에 나가는 아들은 위험한 데서 일하니까 항상 걱정되고 중국선교사로 나가 있는 아들도 걱정이고 어디 걱정 안 되는 자식이 있겠느냐”고 했다.
 

어촌마을에 샤머니즘이 깊숙이 자리 잡은 탓에 크리스천이 된 뒤 손가락질을 받는 성도도 있었다.
 

윤숙희(86·여) 권사는 “부끄럽지만 나는 신이 들려서 40여년을 무속인으로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교회로 인도해 주셨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4형제를 뒀는데 10년 전에 내가 교회에 나오고 나서 둘째 아들이 뇌출혈로 세상을 떴고 그 이후로 맏이도 위암 수술을 받고…. 사람들이 무당질을 계속 안 해서 그렇다고 수군거렸지만 무슨 고통을 당하더라도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 아니겠어. 온전치 못하더라도 귀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워요.”
 

고난 속에서 더 깊어지는 믿음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초도제일교회는 84년 10월 7일 창립됐다. 박기수(간성제일교회) 목사가 개척했다. 처음에는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창고를 예배당으로 썼다. 90년 ‘창고 예배당’에 불이 난 뒤 그 건너편 현재의 자리에 교회가 새로 지어졌다. 이전 예배당은 목사사택으로 쓰인다.
 

성도들은 “도시교회에 비할 수 없는 작은 교회를 섬기지만 기도의 열기는 어느 교회 못지않다”고 자부했다.
 

특히 ‘뱃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병준(64) 권사의 믿음이 남달랐다. 박 권사는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진 다음에야 하나님을 영접했다”고 말했다. 그의 딸(36)은 6세 때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에 걸렸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의 아내는 딸의 병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지만 박 권사는 “부질없는 일”이라며 아내를 타박했었다. 박 권사는 눈시울을 붉혔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 딸 병을 고쳐달라고, 병이 나으면 내가 교회를 다니겠다고 감히 조건을 걸었는데 결국은 제가 진 거예요. 딸이 다 나아서 간호사가 됐고 멀쩡히 시집도 갔으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이 바뀝니다. 사는 이유가 바뀌는 겁니다.”
 

교회 인근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문춘매(68·여) 장로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예수님을 영접했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84년 교회에 처음 나온 문 장로는 “남편이 뇌종양 수술을 포함해서 대수술만 6번을 했고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며 “교회에 얼른 나와서 기도를 했더라면 믿음 안에서 빨리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머리 아프단 소리 안 하고 잘 지내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회의 선한 영향력은 고된 생활에 지쳐 있는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역할을 했다. 험한 바다 일을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피로를 푸는 게 일상인 주민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
 

한 60대 성도는 “여기는 취미생활을 할 것도 없으니까 일 끝나면 문어 삶고 싱싱한 물고기 회를 쳐서 낮부터 새벽까지 술을 먹었는데 다 교회 다니기 전 옛날 얘기”라고 말했다. 70대 여성은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며 “아직 남편을 전도하진 못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뒤로 평안함을 얻었다”고 했다.
 

교회는 또 서울에 있는 교회들과 손을 잡고 여름 선교행사를 진행하면서 어르신 성도들이 혈압·혈당 검사 등의 건강검진을 받도록 한다. 김 목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역사가 하루빨리 일어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주로 가족관계에 중심을 둔다. 무속신앙의 영향이 커 한 가정의 구성원 모두를 전도하기가 꽤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가족 전도를 우선순위에 두고 친척이나 친한 이웃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다.

 

김 목사는 “도시에선 노방전도도 많이 했었는데 여기서는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모범적인 삶을 사는 크리스천 가족이나 이웃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기독교의 긍정적인 역할에 공감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2012년 1월 부임한 김승모(40) 목사는 처음부터 목회자를 꿈꾸지는 않았다. 99년 한신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6년여간 회사원으로 지냈다. 2009년 한신대신대원을 졸업했고 서울 늘샘교회와 발음교회 등지에서 사역했다.
 

김 목사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계속 고민을 했지만 그때마다 이상하리만큼 신학공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생겼다”고 했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왜 부르시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방황하고 어려움도 겪다보니 결국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고성군청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박순길(38) 사모와 함께 앞으로 결손가정의 어린이들, 다문화가정 내 갈등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는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로서 부끄럽지 않은 교역자, 성도들이 되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지난 한국 대선 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키워드가 [경제민주화]였다. [혹시]나 하고 대선 이후에 경제민주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하고 기다려 보았으나 [역시] 별 볼일 없는 식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경제민주화는 중소기업, 경제성장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라고도 생각한다. 사실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은 양립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과거에 급성장하던 시절에 정부는 대기업에 많은 지원과 혜택을 제공했다. 경제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편성되면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예속된 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0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글로벌 경쟁이 가열되면서 대기업은 기록적인 이익을 올리는 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고전하는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런 배경에서 경제성장은 대기업 경제력을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당하는 정책이라는 결론이 도출됐고 경제성장의 대안 책으로 [경제민주화]가 대두되게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이 양립될 수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하는 상충적 정책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구조를 민주화하자는 것이고 그 틀 위에서 경제성장이 실행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옳을 것이다.
 

과거에 경제성장을 추진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 산업이 번창했고 국민이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경제성장을 이행하는 구조가 균형 잡히지 못했고 오랜 세월 동안 불균형의 문제가 누적돼 이제 구조적 개혁필요한 시점이 된 것일 뿐이다.
 

경제민주화는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한 방향으로 경제민주화만을 추구하면 자칫 사회주의 체제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경제민주화 담론의 허점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균형이 해소돼 경제민주화가 실현되면 결국 경제를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신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제성장의 양 축을 형성해나가는 '쌍끌이 경제'를 표방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관계가 얼마나 개선돼 우리 경제구조가 어느 정도 균형화됐는가에 대한 점검이 생략됐다는 것이 아쉽다.

또한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 불투명하다는 것도 걱정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성장을 책임질 미래창조과학부가 중소기업 성장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이제 갓 생겨난 부처에 세부적인 정책과 계획까지 내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정부 정책방향에서 중소기업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혁신산업 창조도 물론 중요하다. 미래의 성장동력을 위해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일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자칫 미래창조산업만 강조되는 가운데 전통굴뚝산업은 소외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통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않고서는 결코 경제성장이 달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활성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이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 두 가지를 동시에 성취하는 지름길이다. (언)  

 

  

 

 

 

 

 

 

 

 

 

 

 

 

 

 

 


 

 

 

 

감리교 세습금지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목사뿐 아니라 장로의 자녀도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한 대목이다.

 

"지난해 지방의 어느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세습에 실패하자 장로가 자기 자녀를 담임목사에 앉히려다 교회 전체가 큰 혼란에 휩싸인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 사례를 보며 장로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서울 석교감리교회 황광민(61) 목사의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개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계의 교회 세습 행태는 여전하다. 아들이나 사위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주는 노골적인 방식에서 최근에는 주위의 비난을 피해 보려고 일단 다른 목사를 앉혔다가 곧 자식에게 넘겨주는 물타기나, 번듯한 새 교회를 지어 교회를 통째로 자식에게 주는 증여형 세습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세습금지법 통과 직후 감리교단의 왕성교회가 교회를 대물림 한 일도 있었다.

 

지난해 말 출범한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50개 이상의 교회가 세습을 단행했고, 20개 이상의 교회가 세습을 진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교회를 사물화하는 세습은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런 관행이 성직매매의 토양을 만든다는 지적을 새겨들을만하다.

 

개신교계 일각에서는 교회를 물려 줄 아들 딸이나 사위 목사가 없을 경우 물러나는 목사가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담임목사 자리를 팔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은퇴목사는 흔히 교인들이 마련한 전별금을 받고 자리를 떠나는데 그만한 여유가 안 되는 교회의 경우 교인들의 묵인 아래 돈으로 담임목사 자리를 사려는 후임자를 물색한다는 것이다.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같은 관행도 대형교회가 세습의 물꼬를 튼 최근 10년 사이 생겨났다.  
 

 

 

 

 

 

 

 

 

 

 

 

 

 

많이 퍼다 쓰세요.

 

 

♣너를♥너무사랑해♧ 널향한내마음♥

 

내가※지켜줄게※ wish☆U★were☆here *:*loving♣You*:*

 

ⓛⓞⓥⓔ?ⓨⓞⓤ 나만의♥사랑이길 ♣늘♣함께하고싶어♥

 

 

♧내눈엔♡.♡너만보여♣ 내가있잖아 힘을내^.~ ♥※사랑은※♥

 

사랑을♥너에게 ⓛⓞⓥⓔ♥ⓘⓢ ☆(~.^)/여행가자~★

 

이쁜밤~~(^-^)ノ。 ⓢⓜⓘⓛⓔ~S(^▽^)S ♤사랑♠합니다♤

 

◇니곁엔내가있잖아◆ ♣널영원히사랑해♧ S ̄ヘ ̄S난..너없음안돼

 

 

★넓은 사랑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해요○.. 웃는하루되세요

 

づ^0^)づ영원히사랑해♥ Smile^ㅁ^ ♠마음으로 보아야해♠

 

웃음^.~간직해요 힘내~내가있잖아♡.♡ ♡가장♥행복할때♡

 

♥주인님~화이팅^0^V♥ 당신을 사랑하나봅니다 ☆(~.^)/여유를가지자

 

 

★영원히†사랑하게†해주세요☆ ず.ず당신만을♥사랑하겠어요ず.ず ☆넌 날 항상 설레이게해★

 

생일축하해⌒ε⌒ ※~너만 생각나 이슬아~※ ♥미치도록 보고 싶습니다..♥

 

★★내사랑도당신곁에★★ 너는 내꼬얌~ 싸랑해~♥ *?♥사랑은♥?*

 

난너없음안돼~!!♥ 사랑이♣영원하게 나에게 소중한 너..

 

 

김과☆만두의경주 칭구야..소주한잔할까?ご,.ご 바람피믄알지?◎,.◎

 

*자연스레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너하나만 영원히 사랑해..♥ ◇항상널사랑해~◈

 

ºㅗº내사랑은영원합니다ºㅗº ..나한텐 너하나만이 행운이야.. 행복해~그리고 사랑해♥

 

언제나 함께해요..★ ★다☆잘될꼬야★ §..가장 소중한 기억은 널 만난거야..§

 

 

◎당신을사랑합니다◎ 매일 하고픈 한마디 사랑가득크리스마스

  

 

 

 

 

 

 

 

 

 

 

 

 

 

 

 

 

 

재미교포 1.5세 작가인 이창래(48)의 장편 '생존자'(나중길 옮김)을 읽고 나서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작가는 영어로 소설을 썼고, 기자가 읽은 것은 번역본이다.

 

최근 1년간 읽은 '세계문학' 중 가장 강력한 화인(火印)을 남긴 작품이라는 게 첫째 이유였지만,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에 현직 프린스턴 대학 교수인 이 엘리트 작가의 내면에 숨어 있는 '문학적 변태' '문학적 괴짜'의 얼굴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1965년생인 그는 전쟁을 겪어본 적 없는 전후 세대 작가. 그런데도 동 세대 작가들이 파고드는 일상의 부조리나 개인의 자의식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전쟁이나 학살 같은 예외적 비극을 치밀하고 치열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이 참혹한 체험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를 비정하고 집요하게 추적한다. 대개 그 상처는 치유 불가능할 만큼 치명적이다.

 

이창래는“잊히고 지워지고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나를 집어넣어 버리는 것. 그게 작가로서의 나의 책임”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이런 주제에만 집착하는 자신을

변태나 괴짜라고 생각해 본 적 없나.
 

"맞다, 나는 분명 변태다(Yes, I must be a freak!). 평상시에는 그렇게 조용하고 온건하며 합리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 대해, 내 가까운 친구들도 종종 신기해한다."
 

'생존자'의 배경은 6·25의 피란열차, 일제의 고문이 자행되던 1934년의 만주, 그리고 1986년의 평화로운 뉴욕을 넘나든다.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쟁 이후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전쟁과 폭력의 결과, 다시 말해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사람들의 외면과 내면에 주목하고 싶었다. 결국 내 관심은 전쟁의 후유증(aftermath), 그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에 있다."
 

눈앞에서 쌍둥이 동생을 잃은 11세 소녀 준, 철없는 북한 소년군을 적이라는 이유로 죽여야 하는 미군 병사 헥터, 일본군 장교가 부모와 연인을 고문하고 죽이는 광경을 강제로 목격해야 하는 소녀 실비. 이 세 사람은 모두 전쟁 때문에 마음과 육체가 망가진 인물이다. 소설가에게는 '인간 연구가'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면서 "죄의식, 심적 고통, 신랄함, 자기혐오, 혼란, 의도적 무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인내심이라는 감정을 탐험하게 됐다"고 했다.
 

―'생존자'를 읽은 독자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는 소설 제1장의 피란열차 대목일 것이다. 6·25 전란 와중의 열차 지붕 위에서 11세 소녀 준은 쌍둥이 동생을 모두 잃는다. 어떤 취재와 조사가 바탕이 됐나.
 

"사실은 아버지의 경험이다. 6·25 때 아직 소년이었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피란을 가다가 화물열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작은아버지가 한밤중에 떨어져 죽었고, 아버지는 그 비극을 넋 놓고 지켜봐야 했다고 들었다. 전쟁 중에는 흔한 일이었다는 것이 내가 취재한 분들의 증언이었다."
 

―국내에는 '생존자'로 번역됐지만,

원제 'The surrendered'는 '굴복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누구에게 무엇에게 굴복한다는 의미를 지닌 제목이었나.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힘이다.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의 망상, 무턱대고 돌진하는 욕망, 자신의 가장 어두운 자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서로에게."
 

아시아의 부커상으로 불리는 맨아시아문학상의 지난해 수상자는 신경숙이었고, 이창래는 그 심사위원 중 하나였다. 문학적 평가가 우선이었겠지만, 혹 민족적 유대감도 느꼈을까. 그는 "나 혼자 뽑은 게 아니라, 심사위원 세 명의 만장일치였다"면서도 "물론 한국인이 상을 타서 기뻤다"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영미권 언론을 통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 이런 얘기들이 작가의 창작에 긍정적 자극을 주지 않을까.
 

"노벨상이건 학교 백일장이건,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면서 "당연히 독자들이 읽어줄 것을 기대하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쓴다"고 단언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난해하고 이상한 세계에 대해 우리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쓴다"는, 예술가의 의연한 자부심이다.

 

이창래

 

예일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월가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3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교포 1.5세로,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는 자유롭지 않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 '가족'(Aloft) 등 장편 4권을 썼고, 2011년에는 영미권 언론을 통해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혔다. 현재 프린스턴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어수웅 기자)  

 

 

 

 

 

 
 

 

 

 

 

 


 

 

 

주간(Weekly)으로 발행되는 비전통신

2009년부터 2012년 까지 4년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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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짜게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나트륨 과다 섭취는 고혈압, 심혈관질환, 성인병 등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저도 그래서 되도록 싱겁게 먹고 국물은 조금만 먹으려고 신경 쓰는데요.

 

얼마 전, 메뉴 238종 가운데 나트륨 함량 1위가 짬뽕으로 밝혀지면서 화제가 됐죠? 짬뽕에 이어 우동, 간장게장, 열무냉면, 김치우동 순으로 모두 세계보건기구(WHO)의 1일 섭취 나트륨 권고량을 훌쩍 넘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간이 되어 있지 않은 음식은 맛이 없는게 또 사실입니다. 소금 섭취량을 줄이면서도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나트륨 함량이 높은 음식들이 모두 사람들이 즐겨먹는 외식음식인 것을 보면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이번 기사가 희소식일 수 있겠네요. 바로 소금 없이도 짠맛을 느끼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음식에 소금을 많이 첨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짠맛을 느낄 수 있는 소재 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한국식품연구원 류미라 박사 연구팀은 재래간장으로부터 짠맛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을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재래간장은 우리나라 전통식품이죠. 과연 어떻게 확인이 가능했던 걸까요?

 

바로 ‘맛 수용체’라는 것을 이용하여 짠맛의 강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입니다. 맛 수용체는 입 안에서 맛을 느끼고 세포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람의 혀에는 나트륨을 선택적으로 통과시켜 짠맛을 느끼는 인지경로와 나트륨 이외에 칼륨 등 다른 양이온을 통과시켜 짠맛을 느끼게 하는 경로가 또 따로 존재합니다.

 

실험을 해보니 재래간장 성분의 짠맛 조절작용은 이 두 가지 인지경로 모두에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짠맛 조절 물질은 재래간장의 숙성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인데요.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활성물질의 함량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실험쥐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쥐 A그룹에는 소금물 100mM을, B그룹에는 소금물과 재래간장에서 분리한 활성물질을 0.25% 첨가한 용액을 제공했습니다. 그런 뒤 48시간동안 각 용액의 짠맛 기호에 따른 섭취량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재래간장 물질을 첨가한 소금물을 먹은 B그룹의 섭취량은 약 250mM의 소금물을 제공했을 때의 섭취량과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정부출연금으로 수행 중인 ‘식품소재의 미각인지작용 조절기술 연구사업’의 일환이며, 국내특허권을 확보하고 미국과 일본에 특허를 낸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의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연구팀은 앞으로 짠맛을 조절하는 식품소재를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즉, 식품의 짠맛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나트륨 섭취를 줄일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한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짠맛과 건강,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렇게 숙성된 재래간장과 같은 식품소재에 짠맛 조절 물질이 함유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조리식품의 나트륨을 줄이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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