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9,  2013

 

 

 

 

 

 

 

 

 

오직 자유만을 추구하며

방랑생활에 젖은 애환의 민족, 집시..
 

 

 

 

그댄 외롭고 쓸쓸한 여인

끝이 없는 방황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먼 길을 떠나가네



때론 고독에 묻혀 있다네

하염없는 눈물 흘리네

밤에는 별보며

낮에는 꽃보며

사랑을 생각하네



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

난 밤마다 꿈을 꾸네

오늘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

집시 집시 집시 집시여인



끝이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외로운 집시여인



때론 고독에 묻혀 있다네

하염없는 눈물 흘리네

밤에는 별보며

낮에는 꽃 보며

사랑을 생각하네



내 마음에도 사랑은 있어

난 밤마다 꿈을 꾸네

오늘밤에도 초원에 누워

별을 보며 생각하네

집시 집시 집시 집시여인



끝이 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외로운 집시여인

집시 집시 집시 집시여인



끝이 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외로운 집시여인



외로운 집시여인

외로운 집시여인



 

 


 

 집시 라는 족속이 있습니다.



한 곳에 적을 두거나 붙 박혀 있지 못하고

그야말로

역마살(驛馬煞)이 온 몸에 붙은,

방랑하며 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종족입니다.



아니, 꼭 인류학적으로

족(族)을 나눌 필요도 없습니다.



흑인, 백인, 황인 할 것 없이

그저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면

그것이 집시 가 될 소지가 많습니다.



집시(Gypsy) 라는 말은

영어권에서 부르는 말입니다.



이는

 더 정확히 말하면

일찍이 영국에서 이들을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인 줄 알고

Egyptian 이라고 부르다가

'E' 자(字) 가 떨어져나간 것이라는 유력한 설(說)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는

'로마니' 라고도 하는데

정작 집시 자신들은 '롬'(Roms) 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 에서 유래된 '인간' 이라는 뜻의 '롬'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어권에서는 집시를 일컬어 '찌간느'(Tzigane) 라 하는데

이는 라벨 이 작곡한 동양적 환상곡의 제목인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찌간느"

동일한 말 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카마르그 지역 집시는 '지탄'(Gitans).

스페인어로는 '히따노'(Gitano), 또는 '튄가'.

터키 에서는 '튄기아네' 라 하고



그 밖에

출신지에 따라

보헤미아 출신은 '보히민스'.

이집트 출신은 영어권과 마찬가지로

'집시' 라고 불립니다.



집시 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의 언어가

인도의 '산스크릿어''캐시미르어' 와 유사한 데가 있어

인도 남부에 살던 '아리안 족' 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독일 프랑스 를 거쳐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안달루시아 까지 진출했고

북미남미 까지 이르러

그들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한편 집시 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그들의 고유한 음악과 춤이

많은 음악가들의 좋은 소재가 되어

그 나라의 예술을 재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헝가리 집시들의 음악인 '차르다시' 를 모태로,



그리고

브람스 '헝가리 무곡' 도 그러하며



드보르작 이 보헤미안 들의 선율을 채택한

'슬라브 무곡' 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그들의 음악이

원형대로 보존된 곳은 스페인으로

그들의 '플라멩코'

거의 변형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와

스페인의 문화유산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는

유태인과 함께 집시 족 들을 약 50만 명 가까이

학살 했다고 전하는데



그것은 집시들의

무절제 하고 무책임 한 생활 방식

모호한 국적 등이

독일 게르만 민족의 정신적 통일 정책

방해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국내 치안의 명목으로

집시들에 대한 강제 추방을 추진함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러한 강제 추방 정책을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이



집시 들은

열심히 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거지 행세와 소매치기, 도둑질 등의 범죄 행위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있으며



외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에게도

프랑스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 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 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순도순 살아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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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시인
 

1968년 전남 장흥 출생.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하고 ‘현대시 동인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힘’의 동인이며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1997, 창작과비평사),  ‘상처가 나를 살린다’(2001, 현대문학북스),  산문집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2000, 다지리) 등이 있다.

 

 

 

 

모든 둥근 것들은 편안함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면 존재를 감싸 안는 모성은 둥글다고 할 수 있겠군요. 이 시에서 어머니는 가진 것을 ‘퍼 주고’ ‘열린 구멍으로 다른 존재를 살리는 것을 쏟아’내는 존재로 형상화 되어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언어는 둥근 ‘ㅇ’처럼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세상을 둥글게 살라고 둥글어진 몸으로 둥글게 발음하는 언어습관으로 가르치십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뾰족하게 부딪치는 일상인들에게 어머니의 ‘ㅇ’ 받침의 말들은 부드러우면서도 따끔한 깨우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란 것이 언어를 매개로 한 예술이 틀림없다면 모국어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살린 이런 시들이 본질적인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의 코이켄호프(Keukenhof)지역은 15세기에는

숲과 언덕으로 이루어진 곳이었고,

1401년~1436에 이곳에 네덜란드 백작부인이 사냥도 하고

성의 부엌에서 쓸 허브를 수집하기 위해 이곳에서 살았는데

---

그래서 코이켄호프 ‘Keukenhof' 라는 이름도

‘Kitchen garden(부엌 정원)에서 유래되었다.

 

현재의 Keukenhof 기초가 된 공원은 1840년경부터

원예건축가인 Zochter와 그의 아버지, 아들 3대가 조성했으며

8만6천 평에 달하는 네덜란드 제 일의 화원이 되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한국의 정원과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왜 드는 것일까?

 

같은 땅일 텐데

같은 꽃일 텐데

문화적 감각과

디자인 감각이

다르기 때문?

 

 

 

 

 

 

 

 

 

 

 

 

 

 

 

 

 

 

 

 

 

 

 

 

 

 

 

 

 

 

 

 

 

 

 

 

 

 

 

 

 

 

 

 

 

 

 

 

 

 

 

 

 

 

 

 

 

 

 

 

 

 

 

 

 

 

 

 

 

 

 

 

 

 

 

 

 

 

 

 

 

 

 

 

 

 

 

 

 

 

 

 

 

 

 

 

 

 

 

 

 

 

 

 

 

목회자는 불씨목회를 해야 하고,

교인은 불씨신앙을 가져야 하고,

교회는 불씨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죽어야 하고, 교인들이 죽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크리스천이 누구입니까?

거듭난 사람, 다시 살아 난 사람 곧 born again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미 그리스도인이라면 옛사람은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듭난 자로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불씨목회]거듭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는 목회입니다.

 

미래지향적 사역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사탄은 과거에 붙들리게 하고 성령은 미래를 향하여 도전하게 합니다.

 

기독교 사역은 무엇보다 바른 영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개인과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변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성이 있어야 불씨목회가 가능합니다.

진정한 영성은 내가 타서 죽고 불씨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영성이란 살리는 힘이 있을 때 진정한 것이 됩니다.

 

한편 모든 사역은 신학적으로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 사역이 복음적인가를 알 수 있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구원관이 관건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주가 되시고 그를 개인적으로 영접하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고백할 때 복음적이 됩니다.

 

불씨사역은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Jesus is the Answer)이 되시는 구주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사역합니다.

 

세계화의 거대한 탁류(濁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대교회의 혼합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합니다. 복음은 세상과 섞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세상에 들어가서 세상을 구원할 뿐입니다.

 

또한 목회와 신앙의 핵심은 영혼구원 곧 전도에 있습니다. 요즘 교회는 목회자가 죽어야 교회가 되고, 교인이 죽어야 전도가 된다고 합니다. 불씨목회는 다른 관점에 서 있습니다. 이미 성도는 주안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거듭났습니다.

 

윤리적이거나 혹은 도덕적이면 거듭납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거듭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생명력 있게 그리스도 인답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곧 불씨가 되어 예수님의 권세를 누리면서 승리하는 삶, 역사를 책임지는 삶, 세상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살아야 목회가 되고 내가 살아서 불씨가 돼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죽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고, Born again 한 즉 거듭난 현실의 내 실존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나약하고 무기력한 것입니다. (장재언)

 

 

 

 

 

 

 

 

 

 

 

 

 

 

 

 

 

 

 

 

 

 

 

 

 

현대인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노인이 되는 것은 싫어한다. 현대는 최신 유행상품을 선호하는 기분으로, 사람을 바라볼 때도 원기 왕성하고 생산력 있는 젊은이를 선호한다.

 

특히 TV를 비롯한 대중 매체들은 상업성에 편승하여 젊음과 미모, 패기와 힘 등을 부각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노인은 가치절하를 당하고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며 소외 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높아 가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의 시기를 오래도록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사람의 평생 중 1/3 이상의 기간을 차지하는 노년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노인은 누구인가?

 

유다 왕들의 평균 수명을 계산해 보면 44세 밖에 되지 않는다. 왕 뿐 아니라 중노동에 시달리며 전쟁과 재해를 겪어야 하는 일반 백성 역시 그들의 평균 수명이 그리 높지 않았다. 따라서 성서시대에 장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여겨졌으며 백발은 인생의 면류관으로 존경을 받았다( 16:31).

 

백발은 지혜를 상징하고 노인은 가르치며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주로 노인들로 구성되는 마을의 장로들은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인을 존경하는 것은 곧 사회의 기본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요 나아가서 모든 질서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성서는 연결시키고 있다( 19:32).

 

노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신체적으로 쇠약해지며( 12:3-7) 병약해지는 현상이다. 쇠약한 노인이 이용당하고 학대 받는 예를 성서에서는 눈먼 아버지를 속인 야곱, 불량한 아들 때문에 고통을 당한 제사장 엘리 등을 말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고 노동력이 저하되며 수입이 감소되고 배우자까지 잃어버린 노인들은(: 룻기의 나오미) 생계의 위협을 받았으며 쉽게 착취당할 수도 있었다( 7:5-13).

 

노인은 존경 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쉽게 이용당할 수 있음을 성서는 지적하면서 노인의 시기가 생의 한 부분으로 소중히 여겨져야 함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은 노인에게도 미치며 삶의 의미와 보람을 누릴 수 있음을, 오히려 노인의 시기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성숙한 면모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결실의 시기임을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실버교육이 필요하다.

 

자유를 위한 교육

 

(1)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이다.

 

사람의 시기를 어린이, 청년, 장년, 노년 등으로 간단히 구분해 볼 때 그 어느 시기에나 문제가 있으며 교육이 필요하며 노년의 시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갈 때는 그 어느 시기보다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주위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처해 나아간다. 노인 교육은 바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이며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를 품고 자유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이다. 노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과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몸을 움직여 나아가며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다스리며 살아가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 1:28).

 

노인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신체와 정신 및 주위 환경에 대해서 새롭게 배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흔히 노인은 의존적이기에 돌봐 주어야 하고 연약하기에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러한 면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기도 완벽한 시기는 없으며 서로 도와 가며 살기 마련이다. 노인교육도 노인이 독자적인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게끔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같이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핵가족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양로원이 잘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양로원에서 생활하는 노인의 수는 전체 노인의 5%에 지나지 않는다. 늙고 쇠약해도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기를 노인들은 원한다.

 

만약 노인이 부자유하며 억압을 받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정의를 가로막는 것이 된다. 소외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사랑과 자유를 선포하신 주님은 오늘도 노인을 위해 자유를 선포하신다( 4:18-19)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노인들은 노년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없애고 노년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적응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믿음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최상의 자유가 노인에게 필요하다.

 

노인의 상황은 분명 새롭고 특수한 상황이며 누구나 처음 겪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적합한 신학, 즉 노인의 특수한 상황에서 듣는 하나님의 특수한 말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배우는 노력과 교육이 필요하다.

 

성장을 위한 교육

 

(2) 하나님의 축복인 성장을 중단시킬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라"( 1:28)고 하셨다. 이 복은 사람의 육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전인적_全人的)에 해당되는 말이며 어린이와 청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피조물이며 노인도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노인은 비록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기는 하나 육신의 약함 속에서 지혜가 더욱 성숙되며 익어 가는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따라서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개발시키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새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의 성장이며 이러한 성장을 돕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전 4:16).

 

노인의 시기를 단순히 쇠약해지고 무력해지며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내리막길이 아니라 인생의 성장이 계속되는 성숙의 계절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실버교육의 목표도 노인을 도와주는 소극적인 목표 보다 노인을 성장시키는 목표, 하나님의 복이 활동하는 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설정되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봉사를 위한 교육

 

(3) 보람 있는 봉사의 삶을 위해서이다.

 

노인은 무력하며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인의 한 단면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백발은 평생의 면류관( 16:31)이며 지혜와 지도력의 상징으로 생각되어 왔다. 사람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자녀이며 배우는 학생이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가장 적합한 교육자는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노인일 것이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선생일수록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재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교육자다. 어떤 사람이나 마찬가지지만 보호를 받고 도움을 받기보다는 누구를 도와주고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 어느 세대보다도 노인에게는 이러한 긍지와 보람이 필요하다.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 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 71:17-18).

 

공동체를 위한 교육

 

(4)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직장에서 은퇴를 한다고 해서 사람의 노동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기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교회와 사회를 위해 더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노년기이다.

 

성경 시대의 노인들 가운데는 마을을 지도하는 장로의 임무를 수행하는 노인도 있었고 지혜로운 충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전도서의 늙은 전도자, 르호보암 왕을 충고한 노인들(왕상12:6-7). 레위인과 제사장은 은퇴를 하여도 성전을 경비하는 일을 평생 동안 했다. 기도하던 노인들이(시모온과 안나, 2:25-38)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고 찬양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노인들이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젊은 세대들을 지도하고 상담하는 일은 세대간 긴장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고 노인이 존경 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노인 교육은 노인들의 능력을 개발해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4:6).

 

그런데 실버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는 노인을 가르칠 전문적 교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젊은 세대가 노인을 가르칠 수 있는 분야도 있겠지만 그러나 노인이 노인을 가르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상담, 신앙, 인간관계, 건강관리 등등. 노인들이 동료 노인들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봉사활동 가운데서 노인들의 공동체 의식도 기르고 자신의 능력도 개발할 수 있다. 결국 실버교육의 전문교사를 충당하는데 있어서 노인들을 교사로 양육하여 노인들 스스로가 실버교육에 동참 하도록 하는 공동체의식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교회는 노년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교육을 필요로 하며 노년의 시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데 교회교육 현장을 살펴보면 노년부는 아예 없거나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있어도 노인들 자체적으로 모이는 친목단체 비슷한 모임 정도이다. 분명 노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노년부가 설치 되어야 하며 교회교육의 결실을 거두는 부서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19:14).

 

교회는 노인 교육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고 성의 있게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이요 '부모를 경홀히 여겨 저주를 받는'( 27:16)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함도 된다.

 

"너는 센 머리(백발)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19:32).

 

노년은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평생 동안 할 일이지 노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하고도 중요한 것은 노년기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성숙하고 결실하는 시기라는 점이다. 따라서 노인 교육은 노인 자신들이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개발하여 젊은 세대들을 위해 봉사하는 가운데서 자신감을 갖고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분명 실버교육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 위에 실현시키는 한 방법이다. (장재언)

 

 

 

 

 

 

 

 

 

 

 

 

 

 
 

 

 

 

 

 

 

 

사무엘은 제사장이자 사사(Judges) 즉 군대사령관이자 최고의 정치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노인(老人)이었다. 시대가 왕정(王政)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사무엘이 눈을 뜨고 보고 있는 가운데 시대는 이미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한탄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항거하지 않았다. 현명한 사무엘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지 않고 수용하면서도 '왕정'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굳건한 신앙의 틀 위에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왕정을 수용하여 바로 세우는 일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아 이러한 작업을 하였는데 사울 왕을 옆에 세우고 왕이 듣는 가운데 왕정 바로 세우기 작업을 진행하였다.

 

사사기 12장을 보면 사무엘이 강조하는 내용은 뜻밖에도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관한 것이요 경제와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취하다"라는 뜻의 단어인 "라카흐".

 

사무엘은 백성에게 "내가 취하였느냐?"고 물었으며, 사무엘의 질문에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사무엘이 백성의 것을 취하지 않았으며 착취하거나 압제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왜 사무엘이 자신의 결백함을 이렇게 강조하였는지 그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

 

중요한 단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 즉 왕이 옆에 있었고 또한 그가 사무엘의 결백함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3, 5). 사무엘은 백성에게 질문하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옆에 서 있는 왕이 들으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은 언제나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요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거나 백성들을 압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왕을 세우되 백성의 것을 착취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왕이 되도록 사무엘은 국가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이러한 방향설정의 기초는 왕도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일어나는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문화의 물결을 거스르기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틀 안에서 재구성하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제도를 올바르게 세우는 작업을 진행하셨다.

 

기도하며 가르치는 일

 

12 23절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이다......

 

노인이 된 사무엘이 어떻게 이러한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가? 특히 자식 교육에 실패한 사무엘이... 그리고 정치권력과 군사적 권력을 청년 왕 사울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는 마당에....

 

그러나 사무엘은 왕정을 수용하면서도 왕정의 틀을 신앙의 바탕 위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한 번으로 완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부단히 가르치고 깨우치는 목소리가 필요하였다. 더구나 새로운 시대에 백성을 위해 신앙 지도를 하는 역할은 왕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예언자이며 제사장인 사무엘이 담당해야 할 일이었다.

 

한편 권력이나 지도력 측면에서 본다면 사무엘의 이러한 결심은 가장 효과적이고 현명한 처사였다. 왕이 세워져 이미 정치권력이나 군사 권력은 사무엘의 손을 떠났다. 사무엘은 그러한 권력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사무엘은 종교적 지도력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였다.

 

사무엘은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추수계절에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 기적을 행하였다.

기도의 능력사무엘 지도력의 바탕이 되었으며 실제적인 무기가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무엘의 기도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백성들의 마음을 압도한 것이다.

 

이러한 사무엘의 모습에서 목회자의 바른 자세를 배우게 된다.

목회자는 정치권력이나 군사력이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기도함으로 가르칠 때 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교제를 바탕으로, 가르치는 목회를 할 때 목회자는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규정짓는 사무엘의 태도에서 목회자의 기본적인 자세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기도하면서 가르치는 일은 목회자에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자녀를 신앙으로 가르치는 일에는 연령제한이 없다( 6:7).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노인도 할 수 있는 일이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인터넷 시대를 맞이해서 평신도 개개인도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무엘의 결단이 하나님의 백성 모두의 결단이 될 때 이 말씀은 오늘 우리 가운데 다시 살아 생명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특히 노인들의 삶 속에서 사무엘처럼 [세상을 바로 세우는 일] [기도로 가르치는 일]이 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재언)

 

 

 

 

 

 

 

 

 

 

 

 

 

 

 

 

 

 

 

 

 

세계적인 검색업체 구글의 본사는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자리잡고 있다. 방문객 창구가 있는 43동 건물에 들어서면 수백 장의 사진을 전자앨범식으로 붙여놓은 ‘올 더 프레지덴츠 멩(All the President’s Meng, 멩과 함께한 모든 저명인사)’이라는 전광판과 마주하게 된다.

 

차드 멩 탄이라는 엔지니어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저명인사들과 찍은 사진을 한데 모아놓았다. 구글 초창기부터 유명인사가 방문할 때마다 멩이 유쾌하게 나서서 찍은 사진이 하나 둘 모이면서 일종의 ‘인증샷’이 된 것이다.

 

15일 방문한 이곳에서 국회의원 시절 찍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이 기치로 내걸고 있는 창조경제의 본산이 바로 구글이다.

 

올 1분기에 지난해보다 31% 늘어난 140억 달러의 매출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페이지는 “아무도 우리만큼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감격 어린 목소리로 직원들을 치하했다.

 ◆ 창조는 공유에서 출발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의 하나인 구글은 창조경제의 조건으로 개방과 공유를 들었다. 검색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인 이자 리프코비츠는 “실리콘밸리가 성공하게 된 근간은 지식의 공유”라며 “한국은 정보기술(IT) 관련 하드웨어 인프라는 세계 선두 권이지만 콘텐트를 비롯해 지식을 공유하는 환경은 북한·이란 같은 특수한 국가를 빼면 가장 밑단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검색엔진이 들어와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게 차단함으로써 외국인들이 정작 알아야 할 정보가 숨겨진다는 것이다.

 

구글 본사의 검색 엔지니어인 이동휘씨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각종 역사서적을 검색 대상에 올려놓지 않은 것이 독도와 동북공정 관련 외교전에서 풍부한 자료를 앞세운 일본과 중국에 밀리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창조경제를 이루려면 네트워크와 전송 속도가 아닌 지식을 공유하는 생태계 조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 혁신의 기반은 인재

 

구글 캠퍼스를 둘러본 결과 익히 듣던 대로 페이지가 자랑스러워하는 구글러(Googler, 구글 직원)들은 속된 말로 ‘개판 5분전’이다. 근무시간인데도 소파나 수면캡슐에서 잠자는 것은 다반사고, 야외에서는 따가운 캘리포니아 햇살 아래 비치발리볼을 즐기고 자신의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직원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자유로운 직원들이 구글의 힘이다. 직원 채용 디렉터를 맡고 있는 매트 워비는 “구글 문화의 시작은 채용에서 비롯된다”며 “학력과 실력도 중요하지만 우리와 함께 구글 문화를 누릴 수 있는지 여부를 가장 중점적으로 살핀다”고 말했다.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출신 대학과 학점이 훌륭하지 않더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두 건이나 뛰었다면 채용 과정에서 4~6차례의 1대1 인터뷰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창업자인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요즘도 매주 목요일이면 구내식당에서 이렇게 뽑힌 전 세계 직원과 대화하는 타운 홀 미팅을 연다.

 한편 구글은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리는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I/O)’에서 레퍼런스 스마트폰 ‘갤럭시S4 구글 에디션’을 공개한다.

레퍼런스 폰은 구글의 최신 운영체제를 가장 먼저 탑재해 다른 제조사 및 개발자들의 표준이 되는 제품이다. 그 동안 삼성전자는 갤럭시 넥서스, LG전자는 넥서스4 등을 발표한 바 있다. 레퍼런스폰이 ‘넥서스’ 명칭 없이 갤럭시S4 제품 이름을 그대로 살려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 마운틴뷰(미국 캘리포니아)=심재우 기자 


 

구글 직원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사무 공간도 일하기 편한 대로 꾸미다 보니

일반적인 사무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왼쪽 둘째)가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100주년기념관에서

특별강의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구상의 핵심은 창업이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좋은 아이디어가 손쉽게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15일 발명의날 기념식)거나 “창업을 쉽게 하기 위해 획기적인 시스템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하겠다”(16일 중소기업인과의 만찬)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두뇌집단이라는 서울대 석·박사들이 창업을 하려 할 때 어떤 현실에 부닥치게 될까.
 

박 대통령을 면담하기 위해 방한한 빌 게이츠(57)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지난달 21일 서울대에서 비공개 특강을 했을 때의 일이다. 한 학생이 “회사를 창업하고 싶은데 학교를 자퇴하는 게 나으냐”고 물어 화제가 됐었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에게 개인이 정할 문제를 꺼낸 만큼 당시엔 황당한 질문이란 반응이 많았다. 당시 빌 게이츠는 “나는 (하버드 대학을) 자퇴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면서 받아넘겼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강연 직후 서울대 측에 “아까 그 학생과 따로 얘기하고 싶다”고 요청해 두 사람이 별도로 접촉한 사실이 17일 확인됐다. 엉뚱한 질문을 한 학생이 빌 게이츠의 눈에는 다르게 비춰진 것이었다. 수소문한 결과 질문자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이두희(31)씨였다.
 

학부 때 서울대 전산망 뚫은 IT고수

 그는 대학과 IT 업계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2006년 서울대 중앙전산원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서울대 구성원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됐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당시 이 대학 의류학과를 나온 탤런트 김태희씨의 고등학교 졸업사진도 유출됐었다. 서울대 전산망을 가볍게 뚫은 해커가 바로 이씨였다. 서울대 학부에 재학 중이던 이씨는 학교 전산망의 보안이 취약하다고 수차례 얘기를 했지만 대학 측이 무시하자 자신이 해킹을 하고선 언론에 알렸다. 그는 이 일로 제적 위기에 몰렸지만 담당 교수가 간청해 간신히 징계를 면했다.
 

이씨는 대학원 시절엔 서울대의 모든 강의를 평가하고 공유하는 사이트(snuev.com)를 만들었다. 회원만 3만여 명으로, 서울대생의 90% 이상이 수강 여부를 결정하는 데 이 사이트를 활용하고 있다. 2011년엔 ‘울트라캡숑’을 공동창업해 대학생 소셜 커뮤니티인 ‘클래스메이트’를 선보였다. 이 회사엔 카카오톡으로 유명한 카카오가 기업가치를 인정해 20억원을 투자했다.

 이씨는 빌 게이츠와 휴대전화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너무 바쁜 분이라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연락이 왔길래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설명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화내용에 대해선 “매우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지만 빌 게이츠와의 대화 이후 이씨는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에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회사 차렸더니 교수님들 꾸지람”

 “미국에선 학교 안 창업을 권장하고 교수님들이 제자들에게 직접 펀딩을 하기도 한다. 관련 기사도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휘어잡고 있는 IT회사들이 서울대 도움으로 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걸 깨보고자 재작년(2011년)에 같은 학부 학생 10여 명과 학교 안에 회사(울트라캡숑)를 세웠는데 교수님들께 많은 꾸지람을 받았다.

친구 중 일부는 학업을 그만뒀고 결국 회사를 강남으로 옮겨야 했다. 서울대 구조적으로 대학·대학원생이 전공을 살려 창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빌 게이츠에게 한 질문은 솔직히 나의 롤 모델에게 말 한번 걸어보는 것이었고, 그 자리에 계시던 수많은 컴퓨터공학부 교수님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교수님들, 저 정말 전공 살려서 컴퓨터 공학으로 뭐 좀 해보려는데 학교 때려치워야 하나요”라고 적었다.

 이씨는 “학생이 회사를 세우려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본인들의 철학과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인 빌 게이츠의 이야기를 들으며 ‘창조경제’ 운운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며 “서울대 관계자분들 말대로 창조적 인재가 나오려면 열심히 리포트 쓰는 학생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창업 등으로 대표되는 창조적 활동을 권장하는 구조로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뻘질문을 날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씨는 결국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서울대를 떠나기로 했다고 본지 통화에서 밝혔다. 그는 “학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아쉽지만 학교를 나가게 됐다”며 “그분(빌 게이츠)은 (제 질문에) 반응이 있었는데 학교는 반응이 없더라”고 씁쓸해 했다.

대학 현실상 매일 학교에 나와 지도교수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논문을 써야 하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휴학하지 않고 창업에 매달리기는 무리다.
 

서울대 “창업·공부 중 택일해야”

 하지만 서울대 학칙(58조)에 따르면 학생에게 허용되는 휴학 기간은 학사과정 6학기, 석사과정 4학기, 박사과정 6학기, 석·박사 통합과정은 8학기뿐이다. 이 기간을 초과하면 제적이다. 창업만을 위해 휴학할 수 있는 규정이나 창업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는 당연히 없다. 창업을 하려다간 오히려 학교 측의 눈총을 받는다는 게 이씨의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서울대 관계자는 “휴학 규정은 대학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등교육법 등 상위법에 따르는 것”이라며 “학생들은 창업과 공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정보기술(IT) 산업과 온라인 세계를 뒷받침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전력 소모가 많다. 국내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소비량은 인구 30만명인 강원도 춘천시 전력소비량의 2~3배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전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50만개에 달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량은 세계의 전력소비량의 1.5%이자 100만㎾짜리 발전소 50기의 발전량에 이른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자동차 4000여만 대 수준이다. 데이터센터뿐만 아니라 현재의 아이티 산업 자체가 점점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적인 공유가치창출(CSV) 사례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그린메모리’는 ‘지속가능하지 못한’ 아이티 산업의 ‘아킬레스건’에 주목한 전략이다.

 

더 빠른 속도를 내면서도 전력을 적게 먹는 제품을 찾는 시장의 니즈(필요)에 부응하면서 지구환경에 기여하는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그린메모리의 핵심이다.

 

지난해 11월6일 삼성전자는 ‘삼성 메모리 솔루션 시아이오(CIO·최고정보책임자) 포럼 2012’를 개최하고, ‘그린메모리 솔루션의 진화’라는 주제로 차세대 그린메모리 전략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이날 공개한 4세대 그린메모리 제품은 “더 빠르고 전력을 적게 소비한다”는 목표에 한발 더 나아갔다.

 

삼성전자는 “4세대 그린메모리 제품군을 데이터센터에 적용할 경우, 기존 시스템에 견줘 성능을 6배 높이면서 서버 시스템의 소비전력은 약 20%, 스토리지 시스템 소비전력은 약 60%를 절감하는 혁신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전세계 모든 서버·스토리지 시스템(데이터센터의 일부)과 노트북에 4세대 그린메모리인 에스에스디(SSD)를 10%, 디디아르3(DDR3)을 20% 탑재하면 1년에 3.5TWh(100만㎾급 원자력발전소 3500기가 시간당 생산하는 전력량)를 절감할 수 있는 걸로 기대됐다. 241만t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효과로 10년생 나무 6000만그루를 새로 심는 효과와 같다는 설명이다.

 

홍완훈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부사장은 포럼에서 “그린메모리가 가격은 5~10% 비싸도 고성능에 전기 소비가 적어 충분히 비용 회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린메모리는 지난해 처리속도로 유럽에서 1위를 달리는 독일의 슈퍼컴퓨터에 30나노급 그린 디디아르3 디램을 단독 공급하는 등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성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시장 1위에 올라온 삼성전자가 2008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흐름을 예측해 그린메모리 전략을 선택한 데서 비롯됐다. 삼성은 2008년 불황 속에서 대부분 메모리 업체들이 범용화 제품 전략을 선택한 것과 달리, 2009년 그린메모리 개념을 도입해 2010년부터 1세대 제품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데이터 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고성능 노트북과 모바일 시장이 급성장한 지난 5년과 맞아떨어졌다. 최근 세계 각국에 전력난이 이어지고, 아이티 업체들이 전력소비를 줄이는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면서 그린메모리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그린메모리로 아이티업체들과 기술협력을 추진해 프리미엄 메모리 시장을 성장시키며 사회에도 기여하는 사업모델을 계속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전세계 3200만대 서버 메모리를 삼성의 그린메모리로 바꾸면 온실가스 59만Mt(메가톤)을 절감하고 140억달러의 전기요금 낭비를 막게 된다.

매년 원자력발전소 2기의 건설비를 절약하고, 10년생 나무 15억그루를 심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했다. 

 

 

 

 

매년 20억달러 ‘친환경 사업’ 연구개발비 투자

 

GE

 

생태인증 제품 매출 1000억 달러
온실가스 배출량 7년 만에 29%↓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2005년 ‘친환경은 돈이다’(Green is Green)라는 구호를 내걸고 그룹 전체를 친환경 사업 중심으로 개혁하고자 했을 때, 임원 대부분이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친환경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에콜로지’(생태)와 지이의 슬로건인 ‘이매지네이션 앳 워크’를 합한 용어인 ‘에코매지네이션’ 인증과 솔루션을 채택한 제품들의 2011년 매출이 210억달러에 이르렀다. 누적 규모는 1000억달러를 넘겼다. 에코매지네이션 분야의 성장률은 지이 전체 매출 성장률의 두배를 웃돈다.

 

청정에너지원 개발, 온실가스 감축기술 개발, 친환경 엔지니어링 기술 개발 등을 총괄하는 에코매지네이션은 이제 전세계 공유가치창출(CSV)의 ‘전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효율성, 수자원 고갈 등의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성장을 추구하는 지이의 사업 방식은 공유가치창출이 추구하는 이상에 꼭 들어맞는다.

 

제프리 이멀트 회장은 나중에 “우리는 첫날부터 이윤 창출의 관점에서 일을 시작했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접근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으로 ‘친환경’을 선택한 셈이다.

 

지이는 현재 매년 20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에코매지네이션 연구개발(R&D)에 쓰고 있다. 2010~2015년 누적 투자규모 목표는 100억달러에 이른다. 지이의 까다로운 내부 인증을 통과한 에코매지네이션 제품은 100종을 넘어섰다.

 

에코매지네이션의 효과는 단순히 매출증대에 그치지 않았다. 2011년 지이의 에너지 소비량은 4817만MMBtu(영국열량단위)가 감소했다. 2004년 대비 19% 줄어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규모도 509만t에 이르며, 2004년 대비 29% 감소했다. 물 사용량도 91억갤런으로 2006년 대비 35% 감소했다.

 

지이는 에코매지네이션을 확장한 헬시매지네이션도 2009년 출범했다. 2015년까지 헬스케어 분야에서 100개의 혁신제품에 6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전세계의 의료 비용을 15% 줄이고, 의료 서비스 품질은 15% 향상시키며, 의료접근성도 15%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헬시매지네이션 사업 또한 기존 사업 대비 두 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그룹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라는 유명한 유태인 작가가 쓴 작품 가운데 문 밖에서 일생 동안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문지기가 서 있는 문 앞에서 문 안에 들어가려고 일생 동안 애를 씁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문지기를 피해서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하고 애쓰다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문지기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나를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지키고 있는 겁니까?”
 

그때 문지기는 정색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문은 당신을 위한 문입니다. 당신을 돕기 위해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내가 들어가려는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까?”
 

그 말을 들은 문지기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드리려고 여기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이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결국 그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스스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한 번도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지도 못하고 죽어간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11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하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이테오’라고 하는데 이는 ‘요청하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 구하라? 하나님께 ‘요구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하기는 구하는데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형편과 필요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아시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이 잘되면 자기 잘 나서 된 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찾으라

 

‘찾으라’는 말은 헬라어로 ‘제테이테’라고 하는데 명령형으로 돼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엔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는 어려운 문제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구하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위기를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만드는 열쇠는 바로 끈질긴 기도입니다.

 

두드리라

 

남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반응을 얻어 내고 닫힌 문을 열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하나님의 반응을 얻어내고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생기는 든든함이 여기 있습니다. (언)

 

 

 


 

 

 

 

 

 

 

 

 

 

 

 

 

 

 

 

 

 

 

 

 

 

북한 김정은 정권이 식량의 최후 보루인 ‘군량미’를 헐었다. 3년 남짓한 6·25전쟁을 의식해 3년 치 군량미를 확보해온 북한은 1990년대부터 점차 비축 군량미를 줄이더니 최근 최후의 비상 곳간인 ‘3개월 군량미’마저 축내기 시작한 것. 북한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16일 북한이 전쟁물자로 비축한 군량미(일명 2호 창고)를 풀어 올 봄 춘궁기를 넘기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군량미를 꺼내 주민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한 시점은 올 3월 초. 중국 접경지역의 북한 주민들은 당시 “3월 초 전시 비상식량이라며 각 가정에 옥수수 15kg씩을 배급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며 주민들을 각종 군사훈련에 내몰자 “장사도 못하게 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불만 여론이 커진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북한이 군량미 창고를 열기 시작한 뒤 최근까지 군량미로 주민들에게 배급을 주고 있다는 정황은 평양 혜산 청진 등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확인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성인에겐 매달 보름치, 부양가족은 열흘 치 식량을 3개월째 주고 있다. 다만 평양엔 5월 초순까지 1인당 현미 500g씩 3차례 주었을 뿐 아직 보름치는 다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군량미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풀리고 있으며 농촌지역에선 아직 2호 창고를 열지 않은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농장을 끼고 있고 개인 뙈기 밭 농사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농촌에 비해 도시의 식량난이 더 심각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 대북소식통은 16일 “초기에는 군량미 창고에서 꺼낸 마대를 그대로 배급소에 실어갔는데 여론이 좋지 않아 지금은 마대는 없애고 식량만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꽁꽁 닫혀 있던 군량미 창고 문을 열고 보니 ‘중국 글자’가 적힌 옥수수 마대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우리나라 군량미 창고엔 중국 강냉이만 차 있었다”고 수군거렸다.
 

북한은 2호 창고를 지역별로 갖고 있으며 창고마다 비축한 식량의 종류는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쟁에 대비한다면서 3년 치 식량을 쌀로 비축해 왔다. 매년 수확하는 햅쌀을 창고에 넣고 3년 묵은 쌀은 배급으로 푸는 방식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비축 식량의 질은 따지지 않고 양만 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군량미 창고엔 옥수수만 차게 됐다. 다만 지역에 따라 중국에서 지원받은 옥수수를 채워 놓기도 하고 국산 옥수수를 채워 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북 무상지원 식량 규모는 연간 최대 50만 t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北 당국 ..  “핵 가져 군량미 많이 둘 필요 없어”
 

한 고위층 탈북자는 “군량미 창고를 열면 반역죄로 처벌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간부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량미만큼은 절대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상대로 “이제는 우리가 핵을 가졌기 때문에 전쟁을 몇 달씩 할 필요가 없고 현대전은 며칠 안에 끝나기 때문에 군량미를 많이 보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2월 핵실험 때 탁구공만 한 핵폭탄을 터뜨리는 데 성공해 이젠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현재 주민들은 군량미 배급이 6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해마다 봄철 춘궁기에 치솟던 식량 가격도 3월 이후 소폭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현재 어느 정도의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 “경제난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군량미 비축량도 계속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3년 치 비축량이 1년 치로 줄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반년 치로 다시 줄어들었다는 것. 이마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3개월분이면 된다”며 비축량을 또 줄였다고 한다.
 

북한의 1년 소비 식량 규모가 약 400만 t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군량미 창고엔 100만 t 정도가 비축돼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군량미를 풀면서 상당수 2호 창고는 바닥을 드러냈을 것으로 보인다.
 

군량미 창고를 연 데 대한 북한 내부의 여론은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들은 “군량미 창고라도 열어 굶어 죽지 않게 해주니 아버지 때보다 낫다”는 평가와 “벌써 아버지 때 물려준 마지막 곳간을 털어먹고 내년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한탄도 나온다고 전했다.
 

 

 

 

 

 

 

 

십자가가 보이는 한국의 빈민촌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57)가 멕시코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73)을 제치고 세계 1위 갑부 자리에 다시 올랐다.


 16일 공개된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Bloomberg Billionaires Index)'에 따르면 게이츠는 보유 자산 727억 달러로 2007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세계 1위 부자가 됐다. 당시 2위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회장이었다. 게이츠의 재산은 MS 주가 호조 등에 힘입어 올 들어서만 100억 달러 늘어났다. MS 주가는 연초 대비 28% 상승하며 최근 5년 내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세계 1위 갑부 자리를 6년 동안 지켜온 카를로스 슬림은 자산 가치가 721억 달러를 기록하며 2위로 밀렸다. 지난달 멕시코 의회가 반통신독점 법안을 통과시킨 여파로 자산이 20억 달러 이상 줄었다. 슬림이 이끄는 '아메리카 모빌'은 멕시코 무선전화 시장의 70%, 유선전화 시장의 80%를 지배하고 있다.
 

 

 

 

이번 집계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은 이건희(95위·113억 달러) 삼성전자 회장이 유일하다.

 

 

 

 

 

 

 

 

 

 

 

 

 

 

 

 

 

 

 

 

 

 

 

 

 

 

미국의 자동차 판매 왕 ‘조 지라드’(Joe Girad)는 기네스북에서 12년 연속 판매 왕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그는 자동차를 날마다 평균 5대 이상, 그것도 12년 동안 팔았다고 한다.
 

그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이민 온 집안의 술주정뱅이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의 구타에 못 이겨 고교를 중퇴하고 구두닦이로 첫 직업을 선택한다.
 

35세가 되기 전까지는 그는 40여 곳의 직장을 전전하면서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날 자신에 대해 고민했다.
 

‘왜 나는 한 직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옮겨 다녀야 하는가?’ 고민을 거듭하다 그는 다른 사람과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 그는 미국 시보래 자동차 대리점의 판매사원으로 15년 동안(1963년~1978년) 13,001대의 차를 팔아 기네스북에 오른 자동차 세일즈맨이 된다.
 

그를 세계적인 세일즈맨으로 만든 것은 그의 신념과 ‘250명 법칙’ 때문이다.
 

그가 세일즈 업계에 발을 내딛기 전 어느 날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에 갔다가 장례식장 직원으로부터 문상객의 숫자는 약 250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어떤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장의사로부터 문상객의 숫자는 평균 250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또 얼마 후 아내와 함께 어느 결혼식장에 갔다가 피로연장의 경영자를 만나 하객들의 평균 숫자를 물어 보니 신부 측에 약 250명, 신랑 측에 약 250명 정도가 참석했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 후 관혼상제에 참석할 때마다 관계자들에게 참석자 숫자에 대해 질문한 결과 평균 250명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조 지라드는 ‘판매에 불가능은 없다’는 저서에서 “나를 세계 제일로 만든 법칙은 조 지라드의 250명의 법칙”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간관계 연구를 통해 ‘한 사람이 미칠 수 있는 인간관계의 범위가 250명’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조 지라드의 250명 법칙’을 창안했다.
 

그 법칙을 세일즈에 적용해 한 명의 고객에게 신뢰를 얻으면 잠재고객이 생김을 터득했다. 그는 단 한 명의 고객을 만나더라도 250명을 대하듯이 했는데 ‘한 사람에게 신뢰를 잃으면 그것은 곧 250명의 고객을 잃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귀빈으로 대우했다.
 

한 사람의 가치를 250배로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고객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고, 고객들도 그를 귀빈으로 여기면서 진심으로 지원하는 ‘충성고객’이 되었다. 이로 인해 조 지라드는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귀빈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대접 받기를 원한다. 내가 상대를 귀빈 대접 해야 자신도 대접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언)

 

 

 

 

 

 

 

 

 

 

 

 

 

 

 

 

 

back to the drawing board

(화판(畵板)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노력이 실패로 끝났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뜻.

Our plan hasn't worked as well as we'd hoped, so it's back to the drawing board.

(우리의 계획이 바랐던 대로되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합시다,.)

 

beat around the bush(숲을 두르리다, 숲을 치다)

 

'문제의 핵심을 말하는 것을 피하다'라는 의미이다. 요점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피할 때 쓰는 표현이다.

We have no use for their service. Let's stop beating around the bush, and move on to our new projects.(우리는 그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문제의 핵심을 피하지 말고, 어서 새로운 과제로 넘어가도록 하자.)

 

be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입에 은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다'라는 뜻. 인간 세상에는 단지 부모가 부자인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일생을 별 고생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태어날 때 이미 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나왔다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He earned every penny himself, becoming a wealthy person. He was not born

 

beyond the pale(범위밖에)

 

'전혀 용납할 수 없는'이라는 의미이다. 옛날 아일랜드에서 The pale은 영토의 경계를 뜻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 경계선 너머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His proposal was beyond the pale

(그의 제안은 전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bite the bullet(총알을 물다)

 

'꾹 참다'라는 뜻.

The severe water famine is forcing everybody to bite the bullet and use less water.

(극심한 물 기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들은 꾹 참고 물을 덜 사용하고 있다.)

 

Bite the dust

 

Every time we hear of still another desperado biting the dust in Western films, we are hearing an almost literal translation of a line found in Homer's Iliad, written thousands of years ago. American poet William Cullen Bryant translated the words in 1870: "...his fellow warriors, may a one, fall round him to the earth and bite the dust."

 

Earlier, Alexander Pope had eloquently translated the phrase as "bite the bloody sand" and English poet William Cowper hat it, literally, as "bite the ground."

 

The idea remains the same in any case: a man falling dead in combat, biting the dust in his last hostile, futile act.

 

bite the dust(먼지를 물다)

 

'패배하다, 또는 굴욕을 당하다'라는 뜻.

Either of two fighters will bite the dust.(두 선수들 중 어느 쪽이든 한 사람은 패배할 것이다.)

 

blow hot and cold(뜨겁게 그리고 차갑게 불다)

 

'어떤 가치에 대하여 끊임없이 마음이 변하다'라는 뜻. 변덕스러운 인간의 태도를 말한다.

The president should stop blowing hot and cold on his foreign policy.

9대통령은 외교정책에 대하여 변덕부리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blow one's own horn

(자기 자신의 뿔 피리를 불다)

 

'자기 자랑을 늘어놓다.'라는 뜻. ,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한다는 것이다.

Michael had to blow his own horn while explaining about his new business.

(마이클은 자기의 새로운 사업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자기 자랑을 해야 했다.)

 

break the ice(얼음을 깨트리다)

 

처음 갖는 모임이나 사교파티 같은 데는 으레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생겨난다. 이런 때 '긴장을 풀다'라는 뜻. 얼음처럼 차디찬 분위기를 깨고 터놓는 사이가 될 때 이 말을 쓴다.

Jane's joke about a friend of his broke the ice at the conference.

(제이슨이 자기 친구 중 한 사람에 관해 한 농담으로 그 회의의 긴장이 풀렸다.)

 

burn the midnight oil(한밤중에 기름을 태우다)

 

'밤늦도록 자지 않고 공부하거나 일한다'라는 뜻. 전구가 발명되기 전에 밤늦도록 켜 놓고 공부나 일을 해야만 했을 때 기름을 태우던 옛날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표현이다.

Many Korean students are burning the midnight oil in order to pass the entrance exams coming up.(다가오는 입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많은 한국학생들은 밤늦도록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고 있다.)

 

bury the hatchet(도끼를 묻다)

 

'싸움을 끝내는데 동의하다'라는 뜻. 종종 make peace(화해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They have finally buried the hatchet for the first time in ten years.

(그들은 드디어 10년만에 처음으로 화해했다.)

 

butter up(버터를 바르다)

 

'butter' flattery(아첨)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 '누군가를 지나칠 정도로 칭찬하거나 아첨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He has been buttering up his boss in an attempt to get a promotion.

(그는 승진(昇進)하기 위해 자기 상관(上官)에게 아첨(阿諂)해 왔다.)

 

by the book(책에 의해)

 

'기존의 규칙에 의해'라는 뜻. 즉 이미 정해져 있는 규칙대로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우리말로 치면 '교과서대로'쯤 되겠다.

You should have done everything by the book.(모든 것을 규칙대로 했어야 했다.)

 

Call a spade a spade(가래를 가래라고 부르다.)

 

'직접적이고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하다'라는 뜻.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지 않고, 직언 할 때 쓰는 표현. '가래'임이 분명한데도 '가래'라고 부르지 않고, 완곡하게 표현하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에서 때로는 직언 할 필요도 생긴다.

The storekeeper said, "Let's call a spade a spade: you didn't buy it, you stole it."

(가게 주인은 "우리 솔직히 말하자. 너는 그것을 산 것이 아니고 훔쳤어" 라고 말했다.

 

Can't hold a candle to...

 

This expression goes back to Shakespeare's time, before there was any such thing as street lighting. In those days a person returning home from a tavern or theater would be accompanied by a linkboy, who carried a torch or a candle. These linkboys were considered very inferior beings, so to say that Tom couldn't hold a candle to Harry meant that Tom was very much inferior to Harry.

 

can't hold a candle to

(-앞에 양초를 잡지 못한다)

 

누군가와 또는 무엇인가와 비교할 때, 뚜렷하게 질이나 가치 등이 떨어지는 또는 열등한 사람이나 사물을 묘사할 대에 쓰는 표현으로 '-와도 비교도 안 되는, -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이라는 뜻이다.

Mr, Kim is a renowned writer, but as a speaker, he can't hold a candle to Mr. Lee.

(김선생님은 명성 있는 작가이나, 연설가로서는 이 선생님과는 비교가 안 된다.)

 

 

 

 

 

 

 

 

 

 

 

 

 

 

 

 

 

 

 


 

 

 

주간(Weekly)으로 발행되는 비전통신

2009년부터 2012년 까지 4년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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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이나 행복하세요?
 

이 책을 제가 썼는 데 이 책을 쓰면서 정말 많은 분들께 물어봤습니다.
 

언제가 행복하신지 물어보면 대부분 굉장히 어려운 대답을 하시고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로또를 맞거나 큰 프로젝트가 성사되서 일이 잘되어야지만 행복한 건가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는 행복을 찾는 경우가 많은 데 아주 작은 행복도 우리 마음은 똑같이 느낍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면 가끔 집사람이 행복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TV에서 하는 '나는 가수다'의 감동적인 노래를 들을 때 입니다.
이렇듯 우리 마음은 사소한 노래 한 곡으로도 행복과 감동의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후배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너는 언제가 가장 행복하니?"
 

이 친구도 처음엔 어렵게 생각하더니 잠시 후에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 친구가 늦둥이가 있는데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아이가 아빠하면서 안기는 순간 마음속에 행복감이 젖어 든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충분히 찾을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행복에서 복(福)자는 굉장히 좋은 글입니다.  복은 많이 받으면 좋고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고 새해에는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하듯이 복에 대한 말을 다 좋아합니다. 이 복자를 한문으로 보시면 왼쪽에 볼 시자가 있고 오른쪽에 한일자가 있고 입구자가 있고 밑에 반전자가 있습니다. 입 하나만 먹일 수 있을 정도의 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라는 겁니다.

 

이 한문의 뜻을 보시면 이렇게 작은 것에서도 충분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가까운 데서 찾지 못하고 정말 큰일이 성사되어야 하는 것처럼 아니면 로또라도 맞아야 하는 것처럼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럴 때 저희가 해야 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찾아보는 겁니다.
신문, 영상, 인터넷 상의 글을 보다가도 조금이라도 나의 마음속에 작은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글을 본다거나 조금이라도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순간이 오면 그 순간을 잊지 마시고 바로 적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기록을 계속 해나가시는 겁니다.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 그냥 주무시지 마시고 잠시 노트를 하나 피셔서 적어 놓은 것들을 한번 읽어보시는 겁니다. 그런 시간을 꾸준히 갖으실 때 사소한 행복들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많은 정신 의학자들이 사소한 행동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정신적인 건강에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게임에 중독이 되고 술, 도박에 중독이 되는 사람들은 사소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 행복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강한 자극을 원하고 강한 자극에 의해서 자꾸 중독이 되어간다는 겁니다.
 

이런 사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그러한 삶, 그러한 일상을 가지시고 항상 적는 버릇, 그리고 자기 전에 한번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신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진정한 행복, 진정한 건강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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