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아침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가끔 오렌지카운티 열린문교회 이영찬
목사님과 커피를 마십니다. 알고 보니 제가 다녔던 신학교에서 세운 서울 수유리의 한 초등학교
출신이라는군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옛날 일 하나가 떠 올랐습니다.
제가 신학교(사람들은 굳이 신학대학 혹은 신학대학원이라고 말하지만...)를
다닐 때 학교 서무실에 김은희라는 여직원이 일했습니다. 그 분은 곱추였습니다. 건장한 체격을 지닌
장일조 교수와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배를 째는 복강경 수술로 건강하고 예쁜 딸을 얻었습니다. 그
딸이 수유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잘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한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담임선생이 엄마를 모셔오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곱추의 모습으로 학교를 찾아가면 자기 자녀가 다른 아이들로부터 곱추 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될이라는 생각을 한 나머지 이리저리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학교 교문을 들어섰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엄마를 알아보고 단숨에 뛰어 와 엄마 앞에 선 딸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친구들을 불러 이 분이 [우리 엄마야] 하면서 당당하게 소개하더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속으로 걱정했던
것이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곱추엄마지만 배를 째고 날 낳아주신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딸.......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배를 찢고 나를 나 주신 곱추엄마보다 더 큰 고통을
통해 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나의 자랑이십니다.
부처를 보세요. 그 인자한 얼굴을. 모나리자처럼 우아하게 웃고있는
관세음보살상을. 경주 불국사의 아침 햇살을 받아 얼굴에 광채가 나는 부처의 신비스러운 얼굴을. 공자를
보세요. 그 평화로운 모습을...
그러나 거기에는 솔직하게 말씀 드립니다. 헐뜯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친 뜨거운 사랑의 상처는 없습니다. 석가모니나 공자나 자신의 수명대로 만수무강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얼굴을 보십시오. 사형수의 그 피범벅 된 고통스러운
얼굴. 33살 꽃다운 젊은 나이에 십자가 사형틀에서 사형당한 한 젊은이. 어리석은 십자가,
피범벅된 십자가, 가련한 바보 예수. 그런데 바로 그 예수님의 찢겨진 그 얼굴 때문에 우리가 거듭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피묻은 예수님의 찢겨진 얼굴을 슬그머니 뒤로 밀어두고, 세상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기독교, 재미있는 기독교, 흥청거리는 거대한 쇼프로그램 같은 예배, 세련된 고급 기독교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이것이 문제 아닌가요?
아무리 그럴듯하게 위장을 하고 포장을 해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몸찢고 피흘려 돌아가신 버림받은 죄인이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대선생이요, 존경받는
정치가요, 석가모니는 왕자요, 철학자였지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요 무식쟁이 신분이라는
사실을 어찌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무식쟁이 종교에 귀족이, 지식층이, 부자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세련되게 회 칠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삼게 되었으니 말이나 됩니까?
역사를 보십시오. 로마의 황제들이 신부와 사제들에게 귀족 옷을 입히고
성당을 왕궁처럼 지어주자, 사제들은 가난하고 무식한 순수한 예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기독교를 임금들과 귀족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귀족 종교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바울은 십자가의 예수님만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단순화시켰습니다.
로마 시민권도 버리고, 최고 학부에서 공부한 졸업장도 버리고, 가정도 없이, 삭발을 하고, 바리새도
버렸습니다.
무식쟁이 종교는 단순 무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뿐입니다. 인위적인 것,
인간 중심적인 것 모조리 벗겨내고 내 구주는 '십자가의 예수'라고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귀족이,
지식층이, 부자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세련되게 회 칠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는 도구로 삼으며 우롱하지
못하도록 기독교를 예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더욱 단순 무식한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얼마 전 한국 어느 방송국이 일부 교회지도자와 교회의 어두운 내용을
취재하여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호화 생활을 하는 일부 지도층 목회자와 교회의 비리를 비판하는 내용은
정말 가슴 아픈 내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그런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취재하여 공개한다는 것이
이교도들에게 마치 신성불가침의 아성(牙城)이 약탈당한 것 같은 아픔과 자존심 마저 상하는 불쾌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방송국은 아예 교회의 적(?)처럼 그렇게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어느 누구도 과연 그 방송국의 처사가 잘 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멀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조금 더 맞아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못일까요?
맞는 김에 더 맞아서 아예 죽을 정도로 뻗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 알기를 개똥으로 알아야 합니다. 도대체 기독교인들은 뭐가 그리 잘나서 그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그 분이 유대인들을 싹 쓸어버릴 힘이 없어서
그냥 무기력하게 십자가를 질질 끌고 골고다로 올라간 줄 아십니까?
한국 기독교는 세상에 대항하지 말고 그들의 돌팔매를 맞고 죽어야 합니다.
피 묻은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 까지 매를 맞아야
합니다. (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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