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아직 이스라엘을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다녀 온 분의
이야기인데
이스라엘 음식 중에 싸고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다고 합니다.
팔레팔이라고
합니다.
빵을 두 겹으로, 마치 두 겹
빈대떡이라고
생각하면 된 답니다.
한 쪽을 잘라 내고 가운데
야채,
과일 그리고 고기를
넣습니다.
불룩하여집니다.
그 것을 하나 먹고 나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양고기를 넣은
것이 제일 비쌉니다.
그래 봐야 $3불 정도 한국
돈으로
3,000원
정도랍니다.
이 분이
한번은 음식점에 앉아서 양고기
팔레팔을 시켰습니다.
마침 우유를 사 가지고 간
것이 있어서 음료수는 시키지
않고 가지고 들어간 우유를
따랐습니다.
유대인 주인이 불같이
달려와서는 막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은
코셔 음식점이라 그렇게 먹지
마십시오"
무슨 뜻인 지 몰랐습니다.
양고기와 양 젖을 같이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종류를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성경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음식점에서 쫓겨
날 뻔 한 체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명기서 22장에 보면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고 하는
이상스러운 율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사상(思想)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가지 사상(思想)을 싫어하십니다.
1.
혼합주의
하나님은 혼합주의 사상을 싫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옷이
혼합되는 것을 싫어 하십니다.
여자와 남자 옷이 혼합되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두 종자를 같이 뿌리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소와 나귀를 같이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소는 소끼리,
나귀는 나귀끼리 겨리하여
농사짓거나 마차를 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옷을 짤 때 양 털과
베실을 같이 혼합하여 짜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혼합주의를 싫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혼합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마귀는 혼합되고 섞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곡만 있는 밭에
가라지를 심습니다.
선만 있는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따먹게 하여 선악이 혼합되게
하였습니다.
만나만 먹어야 하는 광야에서
부추,
마늘,
파 그리고 수박 참외를 같이
섞어 먹게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만 섬기는 데
우상을 혼합하여 섬기게
유혹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단이 무엇입니까 혼합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어거스틴은 한 때 마니교에
깊이 빠진 적이 있습니다.
마니가 만든 종교가
마니교입니다.
마니는
3세기
경에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의사이자 화가이자
예언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공자님,
그리고 조로아스터를 섞었습니다.
그래서 마니교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이단입니다.
기독교 진리는 그 어느 것도
섞여서는 안 됩니다.
2.
대형 지향주의
하나님이 두 번째로 싫어하시는
사상이 있습니다.
대형 지향주의입니다.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복을 받고 장수하게 되는
비결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복중에서 가장 큰 복은
장수하는 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장수의 비결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우선
10계명 중
5섯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장수하게 된다고 잠언에
말했습니다.
이렇게
10계명과
같이 거창한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하는
당연한 일을 하면 장수하지만
그러나 아주 작은 일도
장수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지나가다가 새 둥지에서 새
새끼를 꺼낼 때 어미 새를
놓아 주는 것도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것도 무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축복의 비결이 거창하고 크고
웅대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럭키 산맥을
걸어서 넘은 등산가에게 그
거창한 산맥을 넘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등산가는 대답하였습니다.
"신발
속에 들어 간 작은 모래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큰 것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한 고을을 잘 다스린 자에게
10
고을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양을 잘 지킨 다윗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맡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큰 것에만 관심을
갖기 쉽습니다.
다이아몬드 구별법이 있습니다.
진짜 다이아몬드와 가짜
다이아몬드 구별법은 간단합니다.
물속에 넣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물속에
넣어도 빛이 그대로 영롱하게
빛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짜는 물속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 합니다.
참 성도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빛을 발합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작은 일에 충성합니다.
3.
편의주의
사람들은 빠른 것을 좋아
합니다.
큰 것을 좋아 합니다.
편한 것을 좋아 합니다.
뛰기보다 걷기를 좋아 합니다.
걷기 보다 앉아 있기를 좋아
합니다.
앉아 있기 보다 누워 있기를
사모합니다.
누워 있기보다 자기를 좋아
합니다.
편할수록 좋아 합니다.
여자가 남자 옷을 입는 것은
편하기 때문입니다.
한 둥지에서 새끼와 어미를
같이 잡는 것은 편한 일입니다.
따로 잡으려면 어렵습니다.
두 번 노력하여야 합니다.
한 땅에 두 종자 씨를 뿌리면
거두기가 쉽습니다.
꿩 먹고 알 먹고 입니다.
소도 나귀도 있으면 구별할
것 없이 같이 사용하면
편리합니다.
편의주의입니다.
되는 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편리한 대로 지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편의주의를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십니다.
그런 분이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안 죽으셔도 되는 분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편의주의가 교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웃사 이야기가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막이 실로에 있었습니다.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 불레셋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의 두 아들은 법궤를
가지고 나가 앞장 세우고
싸우면 하나님이 승리를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지고 나가
싸웠습니다.
그러나 법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법궤를
의지하였기 때문에 법궤를
가지고 나간 싸움에서 패하게
된 것입니다.
불레셋은 법궤를 빼았았지만
별볼일 없는 것이라 여겨 법궤를
이스라엘에 되돌려 주었습니다.
아비아달이 그의 집에
보관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날라다가 성전에
두고 싶었습니다.
3만 명을
동원시켜서 법궤를 수레에 싣고
옮기게 되었습니다. 소가
요동치자 법궤가 떨어지려고
합니다. 웃사가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웃사는 법궤를 잡자 마자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충성하려고 한 것인 데 왜
죽었을 가요?
편의주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운반할
때는 꼭 어깨에 메고 나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편하게 수레에
실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편하게 믿으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4.
인본주의
하나님은 인본주의를 정말
싫어하십니다.
인본주의가 무엇입니까?
신본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여자는 여자로서,
남자는 남자로서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처럼,
남자가 여자처럼 살려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는 남자답게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고,
여자는 가정을 잘 다스리며
자녀를 기르며 여자답게
살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새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새가 영원히 종족을
이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새 집에서 새끼와
어미를 같이 잡아가면 종족이
소멸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려서 같이 농사짓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순수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땅을
갈면 보폭이 달라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끄는 힘이 달라 나란히 갈
수가 없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같이 살아야
조화를 이룹니다. 남자와
남자가 같이 살면 존재 자체의
균형이 깨집니다. 동성결혼은
인본주의입니다.
바울은 신자와 불신자가
같이 멍에를 메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전7:15)
양 털과 베 실을 같이 섞어서
짜게 되면 천이 튼튼하게
보입니다.
양 털로만 옷을 짜면 잘
구겨지고 관리가 힘드니까 약한
베실을 넣어서 짰습니다.
그러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순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본주의를 싫어
하십니다.
이
글은
신명기
22:5-11을
묵상하며 쓴
글입니다.(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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