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사랑하시는 독자들의 애독을 바랍니다.

 

 

147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의 방대한 자료입니다.

미국 국무성이 제공한 자료입니다.

 

 

 

 

 

 

 

 

 

CONTENTS

 

1장 식민시대 초기부터 1776년까지

2장 민주주의 기원 및 혁명 세대 작가들:1776~1820

3장 낭만주의 시기 1820~1860:수필가 및 시인

4장 낭만주의 시기 1820~1860:소설

5장 리얼리즘의 발생:1860~1914

6장 모더니즘과 실험:1914~1945

7 1945년 이후 미국 시: 반(反)전통

8 1945년 이후 미국 산문:리얼리즘과 실험주의

 

 

 

 

CHAPTER _ 1 식민시대 초기부터 1776년까지

 

 

미국 문학은 인디언 문화 속에서 구전된 신화, 전설, 민담, 민요 등의 구비문학으로부터 시작한다. 북아메리카에 있던 5백 개 이상의 인디언 언어와 부족 문화 속에 기록문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아메리칸 인디언의 구비문학은 매우 다양하다. 나바호 족 같은 반유목 부족의 사냥문화에서 나온 이야기는, 푸에블로에 거주하는 아코마 족 같은 농업 중심의 정착 부족의 이야기와 다르다. 또한 오지브와 족과 같은 미국 북부 호숫가 정착 부족들의 이야기는 호피 족과 같은 사막지역 부족들의 이야기와 확연히 다르다.

 

인디언 부족들은 신이나 동물, 식물이나 신성한 인물들을 숭배하는 자체 종교를 지니고 있었다. 인디언들의 통치 형태는 민주주의로부터 원로회, 신탁정치까지 다양했다. 이렇게 부족마다 다른 점들이 구비문학에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고 이들 구비문학을 일반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디언의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적인 어머니로서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은 살아 숨쉬며, 또한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디언들 이야기에는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한 부족이나 개인과 연관된 토테미즘이 자주 등장한다. 미국 문학에서 인디언들의 성스러움에 대한 개념과 가장 가까운 것은, 랠프 월도 에머슨이 주장한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힘인 대령大靈(Over-Soul)이다.

 

멕시코 부족들은 톨텍과 아즈텍의 신인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받들었으며, 다른 부족들 또한 높은 신이나 그로 인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처럼 하나의 절대적인 신에 대한 표준화되고 긴 종교적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 구세대의 영적인 이야기들과 가장 가까운 것은 샤먼의 입문 의식이나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샤먼 이야기들과는 별도로 오지브와 족의 마나보조나 나바호 족의 코요테 등 문화적 영웅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문화적인 영웅 트릭스터(Trickster)들에 대한 묘사는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트릭스터는 한 이야기에서 영웅처럼 행동하는가 하면, 다른 이야기에서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인물로 등장한다.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 등을 비롯한 과거 학자들은 트릭스터에 관한 이야기가 정신의 도덕과 관계없는 열등한 면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경시했지만, 인디언 출신을 포함한 최근의 학자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존경받는 영웅들인 오디세우스와 프로메테우스 또한 본질적으로 트릭스터였다고 지적한다.

 

서정시, 성가, 신화, 동화, 우스갯소리, 주문, 수수께끼, 속담, 서사시, 전설 등 거의 모든 구비문학 장르가 미국 인디언 문학에 나타나고 있다. 조상이나 부족 이동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많았으며, 몽환적인 노래(vision-song)나 치유의 노래, 그리고 트릭스터 관련 이야기들 또한 풍부했다. 창조 설화들은 특히 인기가 있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많은 부족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유명한 설화 중 하나는,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거북이 이야기이다. 샤이엔 족의 설화에 따르면 창조주 마헤오에게는 물로 구성된 우주로부터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네 번 있었다고 한다.

 

그는 물새 네 마리를 보내 우주의 밑바닥에서 흙을 끌어올리도록 했다. 흰기러기, 되강오리, 청둥오리가 하늘 높이 올라간 후 세차게 곤두박질하여 잠수했지만 바닥에는 닿을 수 없었다. 한편 날지 못하는 작은 검둥오리는 자신의 부리에 약간의 진흙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마헤오는 진흙을 소박한 할머니 거북이 등에 붙였다. 오직 할머니 거북만이 진흙으로 만든 세상을 지탱할 수 있는 올바른 모양을 등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미국을 거북섬(Turtle Island)’이라고 부른다.

 

설화처럼 노래나 시 또한 신성한 것에서부터 가볍고 유머가 가득한 것까지 다양했다. 자장가, 전투가, 사랑 노래, 그리고 아이들 놀이, 노름, 다양한 허드렛일, 마법, 무도 의식 등과 관련된 민요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민요들은 반복적이었다. 꿈을 묘사한 짧은 시-노래(poem-song)는 일본 단시短詩인 하이쿠나 동양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미지즘 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투명한 심상과 섬세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다음은 치피와 족의 노래이다.

 

 

되강오리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사랑이

노 젓는 소리였다네.

 

 

대개 매우 짧은 몽환적인 노래들은 또 하나의 특유한 양식이다. 꿈속에서나 환영 속에서, 때때로 불쑥 나타나는 이 노래들은 치유적이거나, 사냥에 관련되어 있거나, 혹은 사랑에 관한 노래일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몽환적인 노래는 다음 모독 족의 노래처럼 개인적이었다.

 

 

나는

노래

이곳을 걷는다.

 

 

인디언의 구전 전통과 전체 미국 문학의 관계는, 미국 문학 연구 분야에서 자료가 가장 풍부하면서도 가장 적게 탐구된 주제 중 하나이다. 미국에 대한 인디언의 공헌은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하다. 일례로 인디언 단어 수백 개가 현재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canoe(카누) tobacco(담배), potato(감자), moccasin(가죽구두), moose(큰사슴), persimmon(), raccoon(너구리), tomahawk (토마호크, 전투용 도끼), totem(토템) 등이 바로 인디언 단어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또한 현대 미국 인디언의 글 중에는 상당히 아름다운 작품들이 있는데, 이는 제8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탐험의 문학

 

 

역사가 다른 식으로 흘렀다면, 미국은 스페인 혹은 프랑스 제국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현대 미국인들이 멕시코 인들과 같은 국민이 되어 스페인 어를 모국어로 하거나, 혹은 캐나다의 불어권 도시인 퀘벡이나 몬트리올에서처럼 불어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초기 미국의 탐험가들은 영국인이나 스페인 혹은 프랑스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 탐험에 관한 최초 유럽 인의 기록은 스칸디나비아 어로 되어 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 어로 된 빈란드 전설(Vinland Saga),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발견하기 약 4백 년 전인 11세기 초반에 레이프 에릭손과 북유럽 유랑자 무리가 어떻게 미국의 북동부 해안(아마도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어딘가)에 잠시 정착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륙이 나머지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고 지속적인 접촉이 이루어진 것은, 스페인 지도자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의 후원을 받은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서였다. 1493년에 인쇄된 콜럼버스의 일기 에피스톨라(Epistola)는 극적인 항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선원들이 괴물에 대한 공포감과 지구 끝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폭동이 일어날 뻔했으며, 배가 예전의 다른 배보다 더 멀리 왔다는 사실을 선원들에게 숨기기 위해 콜럼버스가 항해일지를 속였다는 내용과, 아메리카 대륙에 접근하면서 처음 본 장면에 대한 묘사 등이 담겨 있다.

 

바르톨로메 데 라 카사스는 미국 인디언들과 유럽 인들의 초기 접촉 상황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젊은 성직자였던 그는 쿠바 정복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는 콜럼버스의 항해일지를 옮겨 썼으며, 훗날 스페인의 인디언 노예화에 대한 길고 생생한 비판서인 인디언의 역사를 집필했다.

 

미국을 식민지화하려던 영국의 초기 시도들은 모두 크게 실패했다. 첫 식민지는 1585년 노스캐롤라이나 해변 근처에 있는 로어노크에 세워졌으나, 식민지 개척자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푸른 눈의 크로아탄 인디언들에 관한 전설만이 남아 있다. 두 번째 식민지는 1607년에 세워진 제임스타운이다. 그곳은 배고픔, 잔인함, 혼란을 참아낸 식민지이다. 그러나 당시 문헌에 미국은 풍요와 기회의 땅으로 밝게 묘사되었다. 식민지화에 대한 기록은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로어노크 탐험은 토머스 헤리엇의 신개척지 버지니아에 대한 짧고 충실한 보고서(A Brief and True Report of the New-Found Land of Virginia)(1588)에 정성스럽게 기록되어 있다. 해리엇의 책은 라틴 어, 프랑스 어, 독일어로 바로 번역되었고 활자와 그림이 조판되어 2백 년 동안 널리 읽혔다.

 

제임스타운 식민지에 관한 주요 기록은 식민지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존 스미스 선장이 쓴 것으로, 헤리엇의 정확하고 과학적인 문체와는 완전히 다른 글이었다. 스미스는 지독한 낭만주의자였으며 자신의 모험에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 덕택에 우리는 유명한 인디언 처녀 포카혼타스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간에 포카혼타스 이야기는 미국의 역사와 관련한 상상력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 이야기는 포와탄 추장의 총애하는 딸 포카혼타스가, 어떻게 추장에게 사로잡힌 스미스 선장의 생명을 구해주는지를 자세히 들려주고 있다. 이후 그녀의 부드러움, 똑똑함, 아름다움에 반한 영국인들은 포와탄에게 포카혼타스를 볼모로 요구했고, 그녀는 1614년 영국 신사 존 롤프와 결혼했다. 그 결혼으로 식민지 이주자들과 인디언들 사이에 8년 동안의 평화가 시작되었고, 고전하던 새로운 식민지에서 이주자들의 생존이 보장되었다.

 

17세기에는 해적, 모험가, 탐험가들이 부인과 자식들을 데리고 농기구나 공업 도구들을 가지고 오면서 두 번째 영구적인 식민지 개척의 길을 텄다. 일기, 편지, 여행기, 항해일지, 탐험가의 재정 후원자(유럽 지도자 혹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자 회사들)에게 보내는 보고서 등에 초기 탐험의 기록이 적혀 있으며, 정착된 식민지에 대한 기록이 이를 보충해주었다. 결국 영국이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차지하게 되었고, 따라서 가장 잘 알려지고 선집選集에 가장 많이 실린 식민지 문학의 언어는 영어가 되었다.

 

미국의 소수 문학이 20세기에 꽃을 피우게 되고 미국이 더욱더 다문화적인 성격을 갖게 됨에 따라, 학자들은 미국에 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있다. 비록 앞으로 다룰 미국 문학의 역사가 주로 영어로 된 것에 집중하지만, 미국 문학이 전 세계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뉴잉글랜드의 식민지 시대

 

 

세계 역사에서 청교도만큼 지적인 식민지 개척자들은 없을 것이다. 1630년과 1690년 사이 뉴잉글랜드로 알려진 미국의 북동부 지역에는 대학교 졸업 학력을 지닌 사람들이 유럽 본국만큼이나 많았다. 이런 사실은, 당시 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이 황야에서 기꺼이 생명을 내던질 것 같지 않던 귀족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자립적이고 대개 스스로 학식을 깨우친 청교도들은 눈에 띄게 예외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뉴잉글랜드 전역에 식민지를 세우면서 하느님의 의지를 이해하고 실행하기 위해 교육을 원했다.

 

청교도들에게 좋은 글은 하느님 숭배의 중요성과 영혼이 지상에서 직면하는 정신적인 위험을 철저하게 인식하도록 일깨워주는 글이었다. 청교도 스타일은 복잡한 형이상학적 시에서부터 가정생활을 적은 일기, 지나칠 정도로 현학적인 종교 역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스타일이나 장르가 어떻든 간에 청교도의 글들이 지닌 일정한 주제는 변함없었다. 인생은 하나의 시험으로 간주되었다. 시험에서의 실패는 영원한 저주 및 지옥불로, 성공은 천국의 기쁨으로 이끈다고 청교도들은 생각했다. 세상은 하느님이 수없이 변장하는 강력한 적 사탄과 힘을 겨루는 전쟁터였다. 청교도들 다수는 예수가 지상에 다시 돌아와 인간의 고통을 종식시키고 천년 동안의 평화와 번영을 알릴 천년왕국을 열렬히 기다렸다.

 

학자들은 청교도와 자본주의 사이의 연관성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둘 다 야망, 근면, 성공에 대한 열정적인 노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은 비록 자신이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갈 선택받은 자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 해도, 세속적인 성공이 선택받았음을 보여주는 계시라고 믿었다. 부와 명예의 추구는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을 도모하여 영생에 대한 약속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청지기 의식(stewardship)’이라는 개념 또한 성공을 부추겼다. 청교도들은 모든 사물과 사건을 깊은 정신적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 해석했으며, 개인의 이익 및 사회의 복지를 추구하는 것 또한 하느님의 계획을 진척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세속과 종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않았다. 또한 삶의 모든 것은 신의 의지가 표현된 것으로 여겼는데 이는 후에 초월주의에서 다시 부각되는 믿음이다.

 

청교도 작가들은 일상적인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밝히기 위해 이를 기록하는 동시에 통상적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역사는 상징적인 종교 파노라마로 신세계에 대한 청교도의 승리와 지상에서의 하느님 왕국 건설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최초의 청교도 식민지 이주자들은 종교개혁의 진지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필그림(Pilgrims)’으로 알려진 이들은, 종교 박해가 있던 1608년 영국에서 그 당시에도 종교적 관용으로 유명했던 네덜란드로 이주한 작은 신앙 집단이었다.

대부분의 청교도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 그들은 고린도후서의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라는 부분을 읽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영국 국교회를 내부로부터 정화하는 것에 절망을 느낀 분리주의자들은 지하 교회들을 형성하고 국왕 대신 교회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이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저주받은 이교도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왕에 대한 반역자로 여겨져 박해를 받았다. 이런 차별 속에서 결국 그들은 신세계로 오게 되었다.

 

 

윌리엄 브래드퍼드(William Bradford, 1590~1657)

 

윌리엄 브래드퍼드는 분리주의자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한 직후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에 있는 플리머스 지역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그는 독실한 신자이자 독학자로서, “하느님의 오래된 신탁, 그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히브리 어를 배우는 등 여러 가지 언어에 통달했다. 플리머스 지도자가 되기 전에 그는 영국인들의 네덜란드 이주와 메이플라워 호를 통한 플리머스로의 이동에서 활약했는데, 이를 통해 식민지 최초 역사가로서의 이상적인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플리머스 식민지의 역사(Of Plymouth Plantation)(1651)는 식민지 초기 상황을 뛰어나게 그린 작품이다. 다음은 그가 아메리카에 대한 첫인상을 적은 유명한 구절이다.

 

 

넓은 대양, 고난의 바다를 그렇게 지난 후 그들은 이제 환영해주는 친구도 없고 유흥을 즐기거나 날씨에 지친 몸을 쉬게 할 여인숙도 없는 곳에 도착했다. 집도 없었고, 구원을 청하거나 자주 방문할 수 있는 마을은 더더욱 없었으며, 야만인들은 언제라도 그들의 몸에 화살을 퍼부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겨울이 살을 에는 듯 지독하며, 잔인하고 날카로운 눈보라가 언제라도 들이닥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날씨에 겁먹은 얼굴로 서 있었다. 나무와 잡목밖에 없는 그 나라는 황량하고 거친 색조를 띠고 있었다.

 

 

브래드퍼드는 필그림들이 아직 선상에 있을 때 신세계에서의 식민지 자치에 대한 최초의 문서, ‘메이플라워 서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 서약서는 150년 정도 후에 작성되는 독립선언서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청교도들은 신성하지 않은 귀족들이나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춤이나 카드놀이 등의 세속적인 놀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흥미 위주의 책들을 읽거나 쓰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청교도들은 논픽션이나 신성한 장르, 즉 시, 설교, 신학 관련 소책자, 역사 관련 글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청교도들의 개인적 일기나 명상록은 내성적이면서 동시에 열정적인 이들의 풍요로운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앤 브래드스트리트(Anne Bardstreet, 1612~1672)

 

미국인에 의해 처음으로 출간된, 그리고 미국에서 여성에 의해 최초로 출간된 책은 앤 브래드스트리트의 시집이다. 식민시대 초기에는 인쇄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 책이 영국에서 출간된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브래드스트리트는 백작의 부동산 관리자의 딸로 영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18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녀의 남편은 이후 보스턴으로 성장하게 되는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녀는 계절 등 관습적인 소재를 다룬 종교적인 장시長詩를 선호했으나, 현대의 독자들은 그녀가 일상생활을 소재로 쓴 재치 있는 시와 남편과 아이들에게 바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시들을 더 즐겨 읽는다. 그녀는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의 시집 최근 미국에 출현한 10번째 뮤즈(The Tenth Muse Lately Sprung Up in America)(1650)는 에드먼드 스펜서와 필립 시드니, 그리고 기타 영국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대개 정교하고 기발한 착상이나 확장된 은유 등을 사용하였다. 내 친애하며 사랑하는 남편에게(To My Dear and Loving Husband)(1678)는 당시 유럽에서 인기 있던 동양적인 이미지와 사랑이라는 주제, 비교법 등을 사용하고 있는데, 시의 결론에는 깊은 신앙심이 표현되어 있다.

 

 

둘이 하나인 게 있다면 그건 분명히 우리일 거예요.

부인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일 거예요.

한 남자 때문에 행복한 부인이 있다면

여성들이여, 나와 한번 비교해보세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광산 가득한 금보다

동양의 모든 부보다 더 귀하게 여겨요.

내 사랑은 강물로도 축일 수 없으며

당신의 사랑만이 내 사랑을 보상할 수 있어요.

당신의 사랑을 내가 직접 갚을 수 없으니

하늘이 당신에게 몇 배로 갚아주길 기도할 수밖에.

그러면 우리 사는 동안 사랑으로 견뎌

이 땅을 떠나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요.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Taylor, 1644~1729)

 

열정적이고 뛰어난 시인이자 성직자인 에드워드 테일러는 앤 브래드스트리트와 대부분의 뉴잉글랜드 초기 작가들처럼 영국에서 태어났다. 자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로 일하던 테일러는 1668년에 영국 국교회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기보다는 뉴잉글랜드로 건너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대부분의 하버드 출신 성직자들이 그렇듯이 그리스 어, 라틴 어, 히브리 어를 알고 있었다. 사심 없고 신앙심 돈독한 테일러는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매사추세츠 중심에서 160킬로미터나 떨어진, 숲이 우거지고 황량한 벽지 웨스트필드에서 평생 목사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테일러는 그 지역에서 교육을 가장 잘 받은 사람이었고,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마을 목사, 의사, 시민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겸손하고 신앙심 깊으며 근면했던 테일러는 자신의 시를 출간하지 않았는데, 1930년대에 와서야 그의 시가 발굴되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작품이 발견된 것이 신의 섭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북아메리카 17세기 시 중 가장 섬세한 그의 시를 읽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테일러는 장례식 비가悲歌, 서정시, 중세 논쟁시, 주로 순교자의 역사를 다룬 500페이지 분량의 시 운문의 기독교 역사(Metrical History of Christianity)등 다양한 시를 창작했다. 한편 현대 비평가들은 짤막한 예비 명상시 연작이 그의 최고 작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마이클 위글스워스(Michael Wigglesworth, 1631~1705)

 

주목할 만한 뉴잉글랜드 식민지 시인 중 세 번째 인물인 마이클 위글스워스는 테일러처럼 영국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공부했으며, 청교도 성직자이자 의사이기도 했다. 그는 유명한 장시長詩 《운명의 날(The Day of Doom)(1662)에서 청교도적인 주제들을 다루었다. 칼뱅주의 교리를 대중화시킨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시이다. 이 최초의 미국 베스트셀러는 발라드 운율을 통해 저주받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시는 종종 운율이 맞지 않는 등 조악했으나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환상적인 공포 이야기와 장 칼뱅의 권위를 결합했다. 미국인들은 2백 년 이상 이 기념비적인 종교 공포 시를 암송하며 지냈다.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이 작품을 암기했으며 성인들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이 시를 언급하곤 했다.

이 시에 묘사된 끔찍한 처벌은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1850)에 나오는 죄의식으로 가득한 청교도 목사 아서 딤스데일의 자학적인 상처, 그리고 허먼 멜빌의 백경(Moby-Dick)(1851)에서 금지된 지식을 찾으려다 미국을 상징하는 배를 침몰시킨 뉴잉글랜드 판 파우스트인 다리 불구자 에이합 선장의 소름끼치는 상처와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백경 20세기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가 좋아하는 소설로, 포크너의 끔찍하고 심오한 작품들은 미국 프로테스탄트의 어둡고 형이상학적인 비전이 아직 고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뉴잉글랜드 문학이 비록 새로운 배경과 종교적 열정, 잦은 성경 구절의 언급 등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식민지 문학이 그렇듯이 초기 뉴잉글랜드의 시들 역시 모국 문학의 형식과 기법을 흉내 내었다. 고립된 신세계 작가들은 빠른 운송 수단이나 전자 통신이 출현하기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식민지 작가들은 영국에서는 이미 유행이 지난 글을 좇고 있었다. 당시 미국 최고의 시인 에드워드 테일러가 영국에서는 이미 인기가 없어진 형이상학파 시를 썼던 것도 이 때문이다. 테일러의 시처럼 놀라운 독창성을 지닌 값진 작품들이 외딴 식민지 상황에서 자라났다.

 

식민지 작가들은 대부분 벤 존슨 같은 위대한 영국 작가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민지 작가들은 다른 종교적 분파에 속하는 영국 시인들을 거부하여 영어가 생산해낸 최고로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극적인 작품들로부터 자신들을 차단하게 되었다. 또한 많은 식민지 이주자들은 책이 부족했기 때문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좋은 글쓰기, 믿음, 행동의 표본이 된 것은 공인된 영어 번역본 성경이었다. 로마 교회만큼이나 오래된 성경책은 그 연륜으로 인해 청교도의 눈에 권위적으로 보였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구약에 나오는 유대 인 이야기에 집착했다. 유대 인들처럼 자신들도 진정한 유일신인 하느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박해받고 있으며, 또한 자신들이 새로운 예루살렘, 즉 지상낙원을 세울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청교도들은 구약성경의 유대 인과 자신들 사이에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켰는데, 하느님의 기적적인 도움을 받아 홍해를 가른 후, 십계명의 형태로 되어 있는 신성한 율법을 하사받았다. 모세와 같이 청교도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영국의 영적인 타락으로부터 청교도들을 구해내고, 하느님의 도움으로 거친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넜으며, 하느님의 바람대로 새로운 법령과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

 

식민지 세계는 고풍스러운 경향이 있었는데 뉴잉글랜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선택, 믿음, 환경적인 면 모두 고풍스러웠다.

 

새뮤얼 시월(Samuel Sewall, 1652~1730)

 

성경 구절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한 종교시보다 읽기 쉬운 글은 실재 사건들을 생생하게 묘사한 역사 및 세속적인 이야기들이다. 총독이었던 존 윈스럽의 일기(Journal)(1790)는 초기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와 청교도 정치 이론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한편 새뮤얼 시월의 일기(Diary) 1674년부터 1729년까지를 생생하고 흡입력 있게 기록하고 있다. 시월은 브래드퍼드나 테일러에서 찾을 수 있는 초기 뉴잉글랜드 작가들과 유사한 삶을 살았다. 시월 또한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식민지에 오게 되었다. 그는 하버드를 졸업했으며 보스턴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법, 행정, 종교 업무 경력을 쌓았다.

 

시월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보다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뉴잉글랜드 식민지가 엄격한 종교 생활을 했던 초기 청교도 시기에서 세속적이며 상업적인 부 축적 시기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동시대 영국 작가 새뮤얼 페피스의 일기와 비견되는 시월의 일기는 이런 변화 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페피스의 일기처럼 시월의 일기 또한 일상생활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신앙심을 지니고 잘 살아야 한다는 그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이 일기에는 시월이 구애중인 여성을 위해 사탕을 조금 구입했다는 이야기와, 가발을 쓰고 마차를 이용하는 등 귀족적이고 돈이 많이 드는 일들을 좋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논쟁이 담겨 있다.

 

메리 롤랜드슨(Mary Rowlandson, 1635~1678)

 

식민지 시대에 주목할 만한 최초의 여성 산문 작가는 메리 롤랜드슨이다. 목사와 결혼한 그녀는 1676년 인디언 대학살 사건 당시 인디언에게 잡히게 되었는데, 글을 통해 인디언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던 11주의 기록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그녀가 쓴 책은 대학살 이후 존 윌리엄이 프랑스 인과 인디언들에게 잡혀 포로로 보낸 2년을 그린 작품 되찾은 포로(The Redeemed Captive)(1707)와 함께 인디언에 대한 적대 감정에 부채질을 했다. 당시 여성이 주로 창작한 작품들은, 쓰는 데 특별한 교육이 필요없는 가정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여성 문학이 가정을 배경으로 한 리얼리즘이나 상식적인 위트 때문에 인기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일례로 사라 켐블 나이트의 생생한 작품 일기(Journal)(1825년 사후 출간) 1704년에 그녀가 혼자서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왕복 여행을 했던 기록으로, 청교도 글쓰기의 특징인 바로크적 복잡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코튼 매더(Cotton Mather, 1663~1728)

 

대단한 현학자인 코튼 매더를 빼놓고는 뉴잉글랜드 식민지 문학 이야기를 끝마칠 수 없다. 매사추세츠 만에서 4대에 걸쳐 살았던 매더 가문 중 세 번째 세대에 속하는 그는, 5백 부가 넘는 책과 팸플릿을 통해 뉴잉글랜드에 대한 글을 장황하게 적었다. 매더의 가장 야심 찬 작품인 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업:뉴잉글랜드 교회 역사(Magnalia Christi Americana:Ecclesiastical History of New England)(1702)는 일련의 전기문을 통해 뉴잉글랜드 정착의 역사를 속속들이 기록하고 있다. 이 두꺼운 책은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미개척지로 간 청교도들의 신성한 사명감을 반영하고 있다. 책의 구조는 미국의 대표적인 성인들의 생애를 순차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그의 열의는 그의 허세를 어느 정도 만회시켜준다. 그는 나는 궁핍한 유럽에서 빠져나와 미국 해변으로 날아오면서 기독교의 경이로움에 대해 글을 적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1603~1683)

 

1700년대로 향해 가면서, 종교적 관용의 흐름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산발적이고 무자비한 청교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교조주의는 점차 수그러들게 되었다. 목사 로저 윌리엄스는 종교에 대한 관점 때문에 고통받은 인물이다. 영국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635년 뉴잉글랜드에서 자신의 종교적 관점 때문에 매서운 한겨울에 추방당했다. 존 윈스럽과 몰래 연락을 취했던 그는 인디언들과 살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1636년에는 로드아일랜드에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고 다른 종교를 지닌 사람들을 맞아들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생인 그는 노동자에 대한 동정심과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생각들은 시대에 앞서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제국주의를 비난했으며, 미국 땅이 인디언들의 것이므로 유럽의 왕들에겐 토지 허가증을 발급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윌리엄스는 또한 교회와 국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오늘날 미국 정부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이다.

그는 법정이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들을 처벌할 힘을 지녀서는 안 된다며 뉴잉글랜드의 엄격한 신정神政을 공격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평등과 민주주의를 믿었던 그는 인디언들의 평생 친구였다. 윌리엄의 수많은 책들 중에는 초기 인디언 관용어 선집 중 한 권인 미국 언어의 열쇠(A Key Into the Language of America)(1643)가 있다. 이 책은 또한 그가 인디언 부족과 함께 살았던 실제 경험을 기초로 인디언들의 삶을 과감하게 묘사해 기술 민족학의 모태가 되었다.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예를 들어 식사법 및 식사시간 등이 한 장을 구성하고 있다. 각 장은 주제에 관련한 인디언 단어와 문구가 논평, 일화, 그리고 결론에 해당하는 시와 결합되어 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은 다음과 같은 시로 끝난다.

 

 

자연의 아이들이 야생적이거나 길들여졌거나 상관없이

인간적이고 예의 바르다면

신의 아이들이 인간성이 부족한 것은

얼마나 좋지 않은 일인가.

 

 

오락에 대한 장에서 그는 사람이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수천 명 사이에서보다 이 야만인들 사이에서 자유롭고 기분 전환이 되는 여흥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한 진실이다라고 논평했다.

 

윌리엄의 인생 또한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내전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영국을 방문했을 때 석탄 공급이 중단되자, 그는 겨울 동안 자신의 생존을 무릅쓰면서도 뉴잉글랜드로부터 런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땔나무를 배달하도록 했다. 그는 서로 다른 기독교 종파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도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작성했다. “대부분의 이교도, 유대 인, 터키 인, 혹은 적그리스도적인 양심과 숭배가 모든 국가의 모든 이에게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의 의지이자 명령이다라고 그는 양심을 원인으로 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의 가르침(The Bloudy Tenent of Persecution for Cause of Conscience)(1644)에 적고 있다. 그가 지혜를 터득하게 된 계기는 상냥하고 인간적인 인디언들 사이에서 살았던 이질적인 문화 경험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식민지에 끼친 영향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예컨대 존 엘리엇은 성경을 인디언 언어인 나라간세트 어로 번역했다. 오늘날까지 인디언들의 교회는 기독교와 인디언 전통 신앙이 결합된 양식을 지니고 있다.

미국 식민지에서 점차 자라난 관용과 종교적 자유 정신은 로드아일랜드와 퀘이커 교도들의 본거지인 펜실베이니아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간적이며 관용적인 퀘이커 교도, 혹은 친구들(Friends)’이라고 알려진 이들은 신성한 개인적 양심이 사회적 질서 및 도덕성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보편적인 사랑 및 형제애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지녔던 퀘이커 교도들은 교조적인 종교 권위에 반대하면서 매우 민주적인 종교 집단이 되었다. 퀘이커 교도들은 그들의 영향력에 두려움을 느낀 이들 때문에 종교적으로 엄격한 매사추세츠에서 추방당했으며, 1681년 윌리엄 펜의 지도하에 펜실베이니아에 성공적인 식민지를 건설했다.

 

 

존 울먼(John Woolman, 1720~1772)

 

퀘이커 교도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존 울먼의 일기(Journal)(1774)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감미롭고 순수하며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로 담아내어 미국과 유럽의 많은 작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이 놀라운 남성은 인디언들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또 그들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자신의 편안한 집을 버리고 야생에서 인디언들과 함께 거주했다. 그는 자신의 욕심이 인디언들의 삶과 그들이 믿고 살아가는 정신을 느끼고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소박하게 적고 있다. 정의를 사랑한 울먼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회 비판으로 옮겨갔다. “나는 많은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럼을 팔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매우 사악한 짓이다.”

울먼은 또한 최초의 노예 제도 반대론자 중 한 명으로 1754년과 1762년에 수필 흑인 노예 소유권에 대한 고찰(Some Considerations on the Keeping of Negroes)두 편을 썼다. 열렬한 인본주의자인 그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권위와 법에 대해 수동적 복종의 길을 택했는데, 이는 몇 세대가 지난 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유명한 수필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1849)의 모체가 되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존 울먼과 정반대 인물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퀘이커 교가 두드러지기 17년 전에 태어났다. 울먼은 공식적인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에드워즈는 고등 교육까지 받았다. 울먼은 내적인 빛을 따랐지만 에드워즈는 법과 권위를 헌신적으로 따랐다. 둘 다 훌륭한 작가지만 식민지 종교 경험 면에서 극단적인 양 축을 드러내 보였다.

에드워즈는 극단적인 의무감과 엄격한 청교도 환경에서 자랐는데,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엄격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칼뱅주의를 변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놀랍고 힘있는 설교집인 진노한 하느님 손아귀 안의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의 작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느님이 당신을 놓는다면 당신은 즉시 가라앉아 죄스럽게 아래로 떨어져 바닥도 없는 심연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거미나 혐오스러운 어떤 곤충을 불 위에서 들고 있는 것처럼 당신을 불구덩이 위에서 잡아주고 있는 하느님은 당신을 증오하며 몹시 진노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에게 바닥도 없는 심연으로 던질 만한 가치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지대한 영향을 끼쳐 전체 회중會衆을 엉엉 울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이런 그로테스크한 가혹함 때문에 에드워즈가 그렇게 용감하게 변호했던 칼뱅주의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에드워즈의 교조적이고 중세적인 설교는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번성하고 있는 18세기 식민지 이주자들의 경험에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에드워즈 이후 종교적 관용이라는 신선하고 자유로운 경향이 힘을 얻게 되었다.

 

 

 

 

남부 및 중부 식민지의 문학

 

 

혁명 전 남부 문학은 플랜테이션(대농장)이라는 지배적인 사회럭姸╂?시스템을 반영하듯이 귀족적이며 세속적이었다. 초기 영국인 이주자들은 종교적 자유보다는 경제적 기회 때문에 남부 식민지에 이끌렸다.

비록 남부인 다수가 노예보다 별로 나을 것 없이 가난하게 사는 농부나 상인들이었지만, 남부의 학식 있는 상류층은 귀족적이며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상류 계급이라는 고전적이고 유럽적인 이상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상 실현은 노예 제도에 의해 가능했다. 노예 제도는 남부의 부유한 백인들을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이들에게 여가 시간을 만들어주었고, 또한 아메리카 황야에서의 귀족적인 삶이라는 꿈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청교도가 강조한 근면, 교육, 성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대신 승마나 사냥 같은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교회는 품위 있는 사회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할 뿐, 양심을 세밀하게 검토하기 위한 재판소가 아니었다.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674~1744)

 

남부 문화는 자연적으로 신사 계급이라는 이상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여기서 신사란 르네상스식 인간으로 농장 경영도 잘 하고 동시에 그리스 고전작품도 읽을 줄 아는, 봉건시대 영주와 같은 권력을 지닌 이를 말한다.

윌리엄 버드는 영국인 친구이자 오레이의 백작인 찰스 보일(Charles Boyle)에게 1729년에 보낸 유명한 서한에서 그의 대농장 웨스트오버에서의 품위 있는 생활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여기서 맑은 공기를 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돈을 쓰지 않아도 모든 종류의 식량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농장을 가진 사람들을 얘기하는 겁니다.) 나는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고 내 문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돈을 지불해야 할 청구서도 없기에 몇 달이 지났는데도 반 크라운짜리 동전이 호주머니에 그대로 있습니다.

나는 족장처럼 내 양과 소들을 가지고 있고, 남녀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내 하인들을 맘대로 매매할 수 있으니, 신의 섭리 말고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는 일종의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윌리엄 버드는 남부 식민지 상류 계급의 마음을 요약하고 있다. 그는 1,040헥타르의 땅을 상속받아 7,160헥타르로 확장한 상인이자 무역인이며 대농장주였다. 3,600권의 책을 구비한 그의 서재는 남부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던 그는 아버지 덕택에 영국과 네덜란드의 유명 학교에서 공부하며 더욱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 왕실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영국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고 당시 손꼽히는 영국 작가들, 특히 극작가인 윌리엄 위철리, 윌리엄 콩그리브 등과 친하게 지냈다. 그가 영국에서 쓴 일기는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일기와는 정반대로 환상적인 저녁 식사, 화려한 파티, 호색 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으며, 영혼 탐색에 대한 내적인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버드는 1729년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 인접한 두 식민지를 가르는 경계선을 조사하기 위해 미개척지로 몇 주 동안 960킬로미터를 여행한 경험을 생생하게 적은 경계선의 역사(The History of the Dividing Line)로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문명화된 신사였던 버드는 넓은 황야와 인디언들, 반쯤 미개인이 된 백인들, 야생 동물들, 갖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마주친 순간적인 인상들을 통해 가장 미국적이고 남부적인 작품을 창조해냈다. 그는 최초의 버지니아 식민지 이주자들을 대부분 좋은 가정을 버린 백 명 정도의 남성들이라며 희화화하고, 제임스타운에서 진정한 영국인들답게 교회를 짓는 데는 50파운드도 들지 않았는데 술집을 짓는 데는 5백 파운드가 들었다며 그곳 사람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버드의 글은 남부 사람들이 물질적인 세계, 즉 대지, 인디언, 농장, 가축, 이주자 등에 날카로운 관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로버트 비벌리(Robert Beverley, 1673~1722)

 

또 다른 부유한 농장주이면서 버지니아의 역사 및 현황(The History and Present State of Virginia)(1705, 1722)의 작가인 로버트 비벌리는 인간적이고 박력 있는 스타일로 버지니아 식민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버드처럼 그도 인디언들을 칭찬했으며 버지니아 지역에 대한 이상한 유럽적 미신들, 예를 들어 누구든 그 동네에 오면 흑인이 된다는 믿음 등에 대해 논평을 했다. 그는 또한 오늘날까지 남부에 남아 있는 특성인 남부 사람들의 친절함에 대해 언급했다.

인간의 사악함이나 어리석음을 아이러니, 조롱, 혹은 위트로 공격하는 문학 장르인 해학적 풍자(humorous satire)가 식민지 남부 지역에 자주 등장했다. 이주민 한 무리는 조지아 식민지에 대한 진실하고 역사적인 이야기(A True and Historical Narrative of the Colony of Georgia)(1741)라는 소책자에서 조지아 주의 박애주의적인 설립자 제임스 오글소프 장군을 풍자했다. 그들은 장군이 자신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지나치게 일을 많이 시켜 모욕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개발하고 미래의 야망에 대한 걱정을 피하도록 하고 있다며, 칭찬하는 듯 비난하고 있다.

메릴랜드 식민지에서 담배 상인으로 일하다 실패한 영국인 에벤에저 쿡이 지은 요란스럽고 풍자적인 시 연초 도매상(Sotweed Factor)은 메릴랜드를 풍자하고 있다. 쿡은 메릴랜드 식민지에서의 조잡한 생활 방식을 세련된 유머로 폭로하면서 식민지 이주민들이 자신을 속였다고 비난했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과장된 저주로 끝맺고 있다. “성난 신이 이 지역을 쓸모없게 만들어/남성은 부정하게 되고 여성은 순결하지 않게 되기를.”

일반적으로 식민지 남부는 가볍고 세속적이며, 유익하고 사실적인 문학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남부 사람들은 영국의 문학적 유행을 흉내 내면서 동시에 특수한 신세계 상황을 위트와 정확한 관찰력으로 풍자함으로써 높은 상상력을 성취할 수 있었다.

 

 

올라우다 에퀴아노/구스타부스 바사(Olaudah Equiano/Gustavus Vassa, 1745~1797)

 

올라우다 에퀴아노와 주피터 해먼은 식민지 시대에 출현한 중요한 흑인 작가들이다. 아프리카 서부 니제르에서 온 이보 족 에퀴아노는 미국에서 자서전을 쓴 첫 번째 흑인으로, 그의 자서전 제목은 아프리카 인 올라우다 에퀴아노, 혹은 구스타부스 바사의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The Interesting Narrative of the Life of Olaudah Equiano, or Gustavus Vass, the African)(1789)이다. 노예 설화 장르 초기 실례인 이 책에서 에퀴아노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서인도제도에서 붙잡혀 노예 생활을 할 때 느꼈던 두려움과 인간의 잔인성을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로 개종한 에퀴아노는 또한 기독교인들로부터 비기독교적으로 잔인하게 취급받았던 슬픈 이야기를 서술했는데, 그가 느꼈던 이러한 감정은 이후 아프리카 계 미국인 작가들이 몇 세기 동안 강조하게 되는 민감한 주제이다.

 

 

주피터 해먼(Jupiter Hammon, 1720~1800)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흑인 노예이자 시인인 주피터 해먼은, 종교시들과 함께 아이들을 세습 노예 제도 속으로 몰아가지 말고 자유롭게 해주어야야 한다고 주장한 뉴욕 주 흑인들에게 바치는 연설(An Address to the Negroes of the State of New York)(1787)로 유명하다. 그의 시 <저녁의 사색(An Evening Thought)>은 미국에서 흑인 남성에 의해 발표된 첫 번째 시이다.

 

 

 

 

CHAPTER _ 2 민주주의 기원 및 혁명 세대 작가들 : 1776~1820

 

 

미국이 영국에 대항하여 힘들게 싸운 독립혁명(1775~1783)은 최초로 식민권력에 저항한 현대 전쟁이었다. 당시 많은 이들에게 미국의 독립 쟁취는 미국과 미국인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의 계시처럼 보였다. 군사적 승리는 새로운 문학에 대한 희망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혁명 당시나 직후에는 뛰어난 정치적 글들을 제외하고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미국의 저술들은 영국에서 혹평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영국의 문학적 모델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고 있음을 고통스럽게 인식했다. 독자적인 문학 추구가 전국적인 강박관념이 되었다. 1816년 미국의 한 잡지 편집자는 종속 상태는 치욕으로 가득한 퇴보 상태이며, 우리 자신이 생산하는 것들에 대해 해외의 정신에 의존한다는 것은 게으름이라는 죄 속에 어리석음이라는 나약함을 더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군사 혁명과 달리 문화적 혁명은 강요에 의해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경험의 토양에서 자라나야만 하는 것이다. 문화적 혁명은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새로운 감수성과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미국이 문화적 독립을 얻어내기까지는 50년간의 축적된 역사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워싱턴 어빙,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랠프 월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허먼 멜빌, 너새니얼 호손,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등 위대한 미국 작가 1세대가 탄생하게 되었다. 미국의 문학적 독립은 지속적인 영국과의 동일시, 영국이나 고전 문학 모델에 대한 지나친 모방, 그리고 출판을 막고 있던 정치 상황 때문에 느리게 이루어졌다.

 

애국심으로 충만했던 혁명기 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자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들의 미국적 감수성에서 뿌리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혁명 세대의 식민지 작가들은 영국에서 태어나 어른이 될 때까지 영국 시민으로 성장했으며, 영국적인 생각과 영국적인 의상 및 행동 양식을 습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는 영국인이거나 유럽 인이었고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문예 사조는 영국에 비해 시간적으로 훨씬 뒤처진 상태였으며, 이러한 상황은 모방을 더욱 부추겼다. 조지프 애디슨, 리처드 스틸, 조나단 스위프트, 알렉산더 포프, 올리버 골드스미스, 새뮤얼 존슨 등 영국의 신고전주의 작가들은 영국에서 명성을 날린 지 50년 후에야 미국에서 열심히 모방되는 작가가 되었다.

 

더욱이, 서둘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재능 있고 교육받은 이들을 정치, 법률, 외교 분야에 끌어들였다. 이런 일들은 명예, 영광,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반면 글쓰기는 돈이 되지 않았다. 이제 영국에서 분리된 미국의 초기 작가들은 현대적인 출판사, 독자, 적절한 법적 보호 등을 찾을 수가 없었다. 편집이나 유통, 광고 또한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1825년까지 대부분 미국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출판비를 지불했다. 따라서 워싱턴 어빙, 뉴욕의 니커보커 그룹, ‘하트퍼드 위츠(Hartford Wits)’로 알려진 코네티컷 시인 그룹 등 시간적으로 여유 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만이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다. 예외적인 인물도 있었다. 바로 가난한 서민 출신의 작가 벤저민 프랭클린으로, 그는 인쇄업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있었다.

 

찰스 브록든 브라운은 당시의 상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이다. 흥미로운 고딕 소설을 창작한 브라운은 글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였다. 그러나 그의 짧은 생애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독자의 부족은 또 다른 문제였다. 미국에서 소양을 지닌 소수의 독자들은 유명한 영국의 작가들을 원했는데, 이는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과거 통치 국가를 맹목적으로 존경하는 풍토에 어느 정도 기인한 것이다. 미국 작품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미국 독자들이 영국 작품들을 선호하는 것이 완전히 불합리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미국 작가들에게는 독자를 빼앗기는 일이었기에 상황이 더욱 힘들게 되었다. 단지 저널리즘만이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었으며, 대중 독자들은 길고 실험적인 작품이 아니라 가볍고 읽기 쉬운 시나 짧은 시사적인 수필을 원했다.

 

적절한 저작권법의 부재는 미국 문학 정체의 가장 명백한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영국 베스트셀러들의 해적판을 찍어내는 미국 인쇄소들이 미국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 돈을 지불하기를 꺼려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외국 서적을 허가받지 않고 다시 인쇄하는 것은 프랭클린 같은 인쇄업자들에게 수입의 원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전 및 위대한 유럽 서적들로 미국 대중을 교육시킨다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미국 전역의 인쇄업자들은 프랭클린의 선례를 따랐다. 해적판 인쇄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저명한 미국 출판업자 매튜 캐리는 일종의 문학 스파이인 런던 중개상에게 돈을 지불하고 한 달 내에 미국에 도착하는 빠른 선박을 통해 제본되지 않은 페이지 복사본, 심지어 교정쇄까지 보내도록 했다. 캐리의 직원은 배를 타고 나가 항구로 들어오는 선박을 맞이했고, 식자공들은 책을 각 장으로 나누어 24시간 동안 교대근무를 해가며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해적판 서적들은 재빨리 인쇄될 수 있었다. 따라서 영국 서적의 해적판은 하루 만에 인쇄되어 영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 서점들에 팔릴 수 있었다.

 

승인된 수입 서적은 매우 비싸 해적판과 경쟁할 수 없었기에 저작권 상황이 미국 작가들뿐만 아니라 월터 스코트와 찰스 디킨스 등 외국 작가들에게도 피해를 주었다. 그렇지만 최소한 외국 작가들은 이미 원 출판사에게 돈을 지불받았으며 이미 유명해진 상태였다. 반면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와 같은 미국 작가들은 적절한 인세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코앞에서 자신의 책이 해적판으로 나오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쿠퍼의 첫 번째 성공작 스파이(The Spy)(1821)는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인쇄업체 네 곳에 의해 해적판이 출간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해적 행위를 인정하고 있는 1790년의 저작권법이 애국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미국 사전을 편집한 위대한 사전 편찬자 노아 웹스터에 의해 기안된 이 법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만을 보호하고 있으며, 영국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어조를 담고 있었다.

법은 법대로 나쁜 것이었지만, 저작권법이 자신들에게 수익을 가져왔기에 초기 출판업자들은 누구도 나서서 이 법을 개정하지 않았다. 해적 행위는 미국의 혁명 작가들 1세대를 굶주리게 만들었으며,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 다음 세대 작가들은 이들에 비해 훌륭한 작품을 많이 창작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량으로 공급되는 값싼 해적판 외국 서적들과 고전 작품들은 새로운 국가 설립 후 50년 동안 최초의 위대한 미국 작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미국인들에게 교양을 제공해주었다. 한편 위대한 미국 작가들은 1825년경이 되어서야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미국 계몽주의

 

 

18세기 미국의 계몽주의는 전통보다는 이성, 절대적인 종교 교리보다는 과학적인 탐구, 군주정치보다는 대의정치代議政治를 강조한 운동이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작가들은 인간의 자연적인 권리로 정의, 자유, 평등이라는 이상에 마음을 쏟았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미국 최초의 위대한 작가라고 불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간 이성이라는 계몽주의적 이상을 구현했다. 실천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주의자였던 프랭클린은 근면하여 크게 성공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유명한 작품 자서전(Autobiography)에 기록했다. 작가, 인쇄업자, 출판업자, 과학자, 박애주의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일반인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으며, 귀족 시대에 태어난 가난한 민주주의자로 모범을 보여 미국이 귀족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프랭클린은 이민 2세였다. 양초 제조업자였던 그의 청교도적인 아버지는 1683년에 영국에서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으로 건너왔다. 프랭클린의 삶은, 계몽주의가 능력 있는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여러모로 보여준다. 독학을 통해 존 로크, 샤프츠버리, 조지프 애디슨 그리고 여타 계몽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두루 섭렵한 프랭클린은 자신의 삶에 이성을 적용하고, 자신의 이상을 무너뜨리려 위협할 경우 전통, 특히 오래된 청교도 전통과도 단절해야 한다는 것을 계몽주의 작가들로부터 배웠다.

젊었을 때 프랭클린은 여러 언어를 독학으로 습득했고, 폭넓은 독서를 했으며, 대중을 위한 글을 창작했다. 보스턴에서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로 이주했을 때, 그는 이미 상류층이 받아야 할 교육을 마친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는 근면함, 꼼꼼한 일 처리, 지속적인 자기 성찰, 더 나아지려는 욕망 등 청교도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이타적이었던 프랭클린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통찰력을 공유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국적인 장르인 자기계발 서적을 최초로 만들게 되었다.

프랭클린의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Poor Richard? Almanack) 1732년에 시작되어 몇 년 동안 지속해서 발간되었는데, 이로써 프랭클린은 돈도 많이 벌었고, 식민지 전체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유용한 격려 문구, 충고, 사실에 대한 정보 등을 수록하고 있는 이 연간 서적은 늙은 에이브러햄 목사와 가난한 리처드 등 재미있는 등장인물을 통해, 뼈가 있는 기억할 만한 잠언들로 독자들을 훈계한다. 여기에 실려 있는 에 이르는 길(The Way to Wealth)이라는 글에서 평범하고 깨끗한 노인이며 하얀 머리카락을 지닌에이브러햄 목사는 가난한 리처드에게 현명한 사람에게는 한마디면 족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하게 된다등의 구절을 인용한다. 가난한 리처드는 근면은 빚을 갚고 절망은 빚을 늘린다는 식의 심리학적인 말을 하기도 하고 근면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어머니이다라며 열심히 일하도록 충고하기도 한다. 그는 오늘의 하나가, 내일은 두 가지 가치가 있다며 게으르지 말 것을 권한다. 때로 그는 자신의 관점을 예시하기 위해 일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소한 태만이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못 하나가 없어서 편자는 못 쓰게 되었고, 편자 하나가 없어서 말은 쓸모없게 되고, 말이 없으므로 기수가 길을 잃고 적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이것은 모두 말, 편자, 못에 대한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은 교훈적인 표현을 요약하는 데 천재적이어서 한 가지 악덕을 유지하는 힘이라면 아이 둘은 키울 수 있다”, “조그만 구멍이라도 거대한 배를 침몰시킬 수 있다”, “바보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현명한 사람들은 그것을 먹는다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부분적으로 또 하나의 자기계발서이다. 자신의 아들에게 충고하기 위해 쓴 이 책은 자신의 유년만을 다루고 있다. 가장 유명한 부분은 자기 수양에 대한 과학적인 계획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프랭클린은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온, 순결, 겸손 등 13가지 덕목을 나열하고 있다. 그는 각 덕목마다 잠언을 하나씩 연결시켰는데, 예를 들어 절제에 대한 잠언은 몸이 거북할 정도로 먹지 말고 기분이 흐트러질 정도로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실천적인 과학자였던 프랭클린은 자신을 실험 주체로 하여 완벽성이라는 개념을 실험한 사람이다.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프랭클린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달력 형태의 일지를 만들어 날마다 한 가지 덕목을 실행했다. 또한 잘못했던 일도 모두 기록했다. 그의 이론은 현대의 행동심리학을 미리 보여준 것으로, 그 체계적인 기록 방법은 현대 행동 교정 방식을 예고하고 있다. 자기 수양 계획은 완벽성이라는 계몽주의적 믿음과 도덕적 자아성찰이라는 청교도적 행동을 결합한 것이다.

프랭클린은 일찍이 글쓰기가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진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글쓰기 자체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아 유연한 산문 스타일을 정교하게 완성했다. 그는 배운 것을 쓰고 일반인들의 표현으로 말하라고 충고했다. 과학자인 그는 긍정적인 표현, 명백한 의미, 자연스런 평이함이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수학적인 단순함에 이르도록 하기에, 정밀하고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구사 방법을 사용하라는 영국 왕립과학회의 1667년 지침을 따랐다.

부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은 민주적인 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1787년 미국 헌법이 작성될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말년에 노예 제도 폐지협회의 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시도한 일들 중 하나는 세계의 공교육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헥터 세인트 존 드 크레브쾨르(Hector St. John de Crevecoeur, 1735~1813)

 

또 다른 계몽주의 인물로는 헥터 세인트 존 드 크레브쾨르가 있다. 그의 미국 농부의 편지(Letters from an American Farmer)(1782)는 미국이 평화, , 자부심 등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인상적인 개념을 유럽 인들에게 전했다. 미국인이나 농부도 아니었으며 혁명 전 뉴욕 시 외곽에 대농장을 보유하고 있었던 프랑스 귀족 크레브쾨르는 식민지 이주민들의 근면성, 인내심, 점진적 번영 등을 12편의 편지로써 열정적으로 칭찬했다. 이 편지들은 미국을 농업의 천국으로 묘사했으며, 이러한 관점은 이후 토머스 제퍼슨과 랠프 월도 에머슨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크레브쾨르는 미국과 미국의 새로운 특성에 대해 사려 깊은 관점을 피력한 최초의 유럽 인이었다. 그는 다음의 유명한 문구에서 미국의 특징을 묘사하는 용광로(melting-pot)’ 이미지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인, 이 새로운 인류는 누구인가? 그는 유럽 인이거나 유럽 인의 후손 둘 중 하나,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혈통이 이상하게 섞인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네덜란드 출신 부인을 둔 영국인 노인과 프랑스 여성과 결혼한 그의 아들, 그리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네 명의 부인과 같이 살고 있는 손자들이 있는 가정을 소개할 수 있다. 이곳에서 모든 국가의 개인들이 새로운 인종의 사람들과 섞이게 되고 그들의 자손들은 언젠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 팸플릿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

 

혁명문학의 열정은 당시 가장 인기를 끌던 정치 문헌의 형태인 팸플릿에서 찾을 수 있다. 혁명 당시 미국에는 2천여 종의 팸플릿이 발간되었다. 팸플릿들은 애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영국당원을 위협했다. 그것들은 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종종 군중을 선동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크게 읽히기도 했다. 미국의 군인들은 숙소에서 종종 팸플릿을 소리 내어 읽었고 영국당원들은 공개적으로 이를 불태웠다.

토머스 페인의 팸플릿인 상식(Com- mon Sense)은 출간된 지 3개월 만에 10만 부나 팔렸다. 이 글은 오늘날에 읽어도 선동적인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페인은 미국의 명분은 크게 보면 인류의 명분이다라고 적으며 현재에도 강력한 개념인 미국 예외주의를 표명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정치가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며, 미국은 모든 이주자에게 문을 개방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미국의 운명이 전체적으로 모든 인류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인 글은 투표권자인 유권자에게 호소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명료한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학식 있는 유권자를 양성하기 위해 미국 헌법 제정자들 다수는 보편적인 교육을 장려했다. 활발한 문자 세계를 보여주는 한 예는 신문의 급증이다. 혁명 시기의 미국인들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신문을 더 많이 읽었다. 이민자들 또한 단순한 스타일의 언어를 필요로 했다. 영어가 제2외국어인 새로운 이주자들에게 명료한 언어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의 독립선언서 초안은 명료하고 논리적이었으며, 위원회의 수정을 거쳐 더욱더 단순명료해졌다. 헌법을 옹호하기 위해 작성된 연방주의자 논문집(The Federalist Papers)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논쟁에 적합한 명료하고 논리적인 글로 채워졌다.

 

 

 

 

신고전주의:서사시, 모방 영웅시, 풍자

 

 

불행하게도 문학적인글은 정치적인 글만큼 단순하거나 직설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학식 있는 작가들은 시를 창작하려고 할 때 우아한 신고전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특히 서사시는 작가들에게 자석과 같은 힘을 지닌 장르였다. 미국 문학계의 애국주의자들은 위대한 미국 독립혁명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설적인 영웅의 업적을 고상한 언어로 표현한 길고 극적인 서사시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많은 작가들이 서사시를 시도했으나 성공한 이는 없었다. 하트퍼드 위츠로 알려진 작가 그룹의 일원인 티모시 드와이트가 그러한 예이다. 후에 예일 대학교 총장이 된 드와이트는 약속된 땅에 들어가려는 여호수아의 노력을 다룬 성경 이야기에 기초하여 서사시 가나안의 정복(The Conquest of Canaan)(1785)을 집필했다. 드와이트는 미국군 지휘자였으며 후에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 장군을 여호수아로 비유했으며,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호머의 서사시를 번역하면서 사용한 형태인 대구對句 형식을 차용했다. 드와이트의 서사시는 의욕적이었던 만큼 지루하기도 했다. 영국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철저하게 헐뜯었다. 심지어 존 트럼불 같은 드와이트의 친구들마저도 이 작품에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불은 신파조의 전투 장면에 천둥번개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며, 그 서사시 자체가 번개를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풍자시가 진지한 시보다도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았다. 모방 영웅시(mock epic) 장르는 미국 시인들에게 자연적인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할 것을 장려했으며 그리스 시인 호머나 로마 시인 버질(베르길리우스)의 가식적이고 뻔한 영웅적 감상주의와 개성 없는 관습적 미사여구의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존 트럼불의 맥핑걸(M?ingal)(1776~82) 같은 유머 가득한 모방 영웅시들에서는 양식화된 감정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장 전환을 풍자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혁명에 대한 과장된 미사여구 자체도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 시인 새뮤얼 버틀러의 휴디브래스(Hudibras)를 모델로 한 이 모방 영웅시는 보수적 토리 당원인 맥핑컬을 조롱하고 있다. 이 시는 다음 교수형을 앞둔 사형수를 묘사하는 구절처럼, 종종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기도 한다.

 

 

누구도 법률의 올바른 의견으로

교수용 밧줄이 떨어지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맥핑걸은 반세기 동안 30판이 넘게 계속 팔렸으며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풍자는 시사 논평이나 비판을 담고 있었고, 정치렌?문제가 일상에서 주요한 대화 내용이었기 때문에 혁명 당시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 미국 최초로 공연된 코미디인 로열 타일러의 콘트라스트(The Contrast)(1787년에 초연)는 미군 장교인 맨리 대령과 영국 패션을 흉내 내는 딤플을 유머러스하게 대비시킨다. 자연스럽게, 딤플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었다. 이 연극은 처음으로 양키 캐릭터인 조나단을 등장시키고 있다.

또 다른 풍자 작품으로 휴 헨리 브래큰리지가 1792년부터 1815년까지 연재한 소설 현대의 기사도(Modern Chivalry)가 있는데, 이 소설은 당시의 무절제한 생활상을 인상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미국 서부 변경에서 자란 브래큰리지는 돈 키호테에 기초하여 이 거대한 악한 소설을 창작했다. 이 소설은 파라고 선장과 어리석고 잔인하지만 매우 인간적인 그의 하인 티그 오리건의 역경을 묘사하고 있다.

 

 

 

 

미국 혁명기 시인

 

 

필립 프리노(Philip Freneau, 1752~1832)

 

시인 필립 프리노는 유럽의 낭만주의를 작품 속에 결합했으며 하트퍼드 위츠의 모방적인 시와 모호한 보편주의에서 탈피했다. 그는 융통성 없는 성격과 열정적이며 민주적인 정신으로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본 인물이다.

하트퍼드 위츠는 지식인층의 일반적인 특징인 문화 보수주의를 반영했다. 프리노는 이와 같은 토리 당의 보수적인 잔재에 대해 반대하면서 군주정치와 직함에 따른 차별을 선호하는 하트퍼드에서의 귀족적이고 사색적인 당파적 글쓰기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프리노는 비록 좋은 교육을 받고 하트퍼드 위츠 소속 작가들만큼 고전작품을 잘 알았지만, 이들과는 달리 자유레适聆岵?명분을 끌어안았다.

급진적인 프랑스 개신교인 위그노 파적 배경을 지닌 프리노는 독립전쟁 동안에는 민병으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1780년에 체포되어 영국인 선박 두 곳에 수감되었는데, 그의 가족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애써준 덕택에 겨우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는 시 <영국 감옥선(The British Prison Ship)>을 통해 세상을 피로 얼룩지게 만들려는영국군의 잔인함을 날카롭게 비난했다. 이 시를 비롯하여 <유토의 봄(Eutaw Springs)>, <미국의 자유(American Liberty)>, <정치적 기도문(A Political Litany)>, <한밤중의 자문(A Midnight Consultation)>, <조지 3세의 독백(George the Third? Soliloquy)> 등 혁명에 관련한 작품들은 그에게 미국 혁명의 시인이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프리노는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명분을 생각하면서 평생 동안 여러 가지 잡지를 편집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프리노가 1791년 호전적이고 반연방주의적인 내셔널 가제트(National Gazette)를 창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당시 프리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신문 편집자였으며, 이 분야에서 윌리엄 컬른 브라이언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H. L. 멩컨의 선임자가 되었다.

시인이자 편집자였던 프리노는 민주적 이상을 고수했다. 미국적인 소재로 유명한 그의 인기 시들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신문에 발표되었다. <담배의 미덕(The Virtue of Tobacco)>은 남부 경제의 대들보인 담배에 관한 것이며, <럼 단지(The Jug of Rum)>는 서인도제도의 알코올 음료이자 초기 미국 무역에서 결정적인 상품이자 신세계의 주요 수출품인 럼을 찬양하고 있다. 돌팔이 의사와 말 많은 복음 전도자에 대한 시들뿐만 아니라 <해터러스의 파일럿(The Pilot of Hatteras)>에서도 평범한 미국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프리노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사용했지만, 달콤한 향기가 나는 토종 관목을 찬양한 <야생 인동덩굴(The Wild Honey Suckle)>(1786) 등 선집에 자주 실리는 작품들에서는 섬세한 신고전적 서정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1820년대에 미국 르네상스가 시작될 때까지, 이보다 40년 앞서 프리노가 달성한 시적 성취를 능가하는 미국 시는 없었다.

미국 르네상스의 문학적 성취를 위한 또 다른 기초 작업들이 이 당시에 이루어졌다. 애국심은 여러 분야 관련 출판을 북돋아 미국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도했다. 노아 웹스터(1758~1843)는 학생들을 위한 철자법 책과 미국 사전(American Dictionary)을 편찬했다. 그의 철자 교본(Spelling Book)은 오랫동안 1억 부 이상 판매되었다. 최신판으로 개정된 웹스터 사전은 아직도 표준적인 사전이다. 또 다른 획기적인 참고 서적인 제디디어 모스의 미국의 지리(American Geography)는 당시에도 확장되고 있던 거대한 미국 영토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당시 비문학 분야의 글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서부 개척자 및 탐험가들의 일기이다. 그들 중에는 메리웨더 루이스(1774~1809)와 제불론 파이크(1779~1813)가 있는데, 이들은 토머스 제퍼슨이 나폴레옹으로부터 1803년에 사들인 북아메리카의 넓은 영토인 루이지애나 탐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소설가들

 

 

오늘날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미국 최초의 저명한 소설가들은 찰스 브록든 브라운, 워싱턴 어빙,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로, 이들은 미국적인 소재, 역사적 관점, 변화라는 주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어조를 주로 다루었다. 그들은 여러 산문 장르를 이용해 글을 쓰고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여 문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로 인해 미국 문학이 미국과 외국에서 인정받고 또 읽히기 시작했다.

 

 

찰스 브록든 브라운(Charles Brockden Brown, 1771~1810)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인 찰스 브록든 브라운은 래드클리프 부인과 윌리엄 고드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래드클리프는 무서운 고딕 소설로 알려져 있으며, 사회 개혁자이자 소설가인 고드윈은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의 작가이며 영국 시인 퍼시 비쉐 셸리와 결혼한 메리 셸리의 아버지이다.)

가난 때문에 브라운은 2년 만에 공포 소설 윌랜드(Wieland)(1798), 아서 머빈(Arthur Mervyn)(1799), 오먼드(Ormond)(1799), 에드거 헌틀리(Edgar Huntley)(1799) 등 네 작품을 집필했다. 그는 이들 소설을 통해 미국적 고딕 소설 장르를 개발했다. 고딕 소설은 이국적인 야생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심리적인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서스펜스를 유발함으로써 당시에 인기를 끌었던 장르이다. 소설에 부속물처럼 자주 등장하는 것은 폐허가 된 성이나 수도원, 유령, 신비스러운 비밀들, 위협적인 존재, 지혜와 정신력으로 살아남게 되는 외로운 처녀 등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극단에 처한 인간 영혼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뿐만 아니라 강렬한 서스펜스와 마술적인 힘을 제공해주었다. 비평가들은 브라운이 고딕적인 감수성을 통해 신생 국가의 부적합한 사회 제도에 대해 깊은 우려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브라운은 확실하게 미국적인 배경을 이용했다. 생각이 많은 그는 과학적인 이론을 극화했으며 개인적인 소설 이론을 개발했고 개인적인 빈곤에도 불구하고 높은 문학적 기준을 옹호했다. 결함이 있긴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점점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에드거 앨런 포, 허먼 멜빌, 너새니얼 호손 같은 낭만주의 작가들의 선구자로 보고 있다. 브라운은 낙관적으로 보이는 계몽주의 시대 저변에 흐르고 있던 잠재의식적인 두려움을 표현했다.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9~1859)

 

유복한 뉴욕 상인 가족의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워싱턴 어빙은 벤저민 프랭클린과 너새니얼 호손처럼 문화적렛?대사로 유럽에 파견되었다. 일련의 우연적인 사건이 글쓰기를 직업으로 택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작가에 대한 경제적 보상의 부족으로 인해 전업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친구들을 통해 스케치북(Sketch Book)(1819~ 1820)을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할 수 있었으며, 양국에서 저작권과 인세를 얻어낼 수 있었다.

어빙이 제프리 크레이온이라는 가명으로 낸 스케치북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 <립 반 윙클(Rip Van Winkle)> <슬리피 할로의 전설(The Legend of Sleepy Hollow)>이 수록되어 있다. ‘스케치란 표현은 어빙의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동시에 격식이 없는 듯한 스타일을 전달하고 있으며, 가명 크레이온(크레용)’은 풍부하고 미묘한 톤과 정서적인 효과를 채색하고 창조하는 그의 능력을 나타낸다. 스케치북에서 어빙은 뉴욕 북부 허드슨 강을 따라 펼쳐진 캐츠킬 산맥을 우화적이고 마술적인 공간으로 다루었다.

그가 독일 자료에서 소재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자들은 어빙이 상상한 캐츠킬 산맥의 역사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어빙은 초기 물질적인 시대에 정말로 필요했던, 신세계와 관련된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미국 땅을 의인화하여 이름과 얼굴, 그리고 전설을 부여하는 데 어빙만큼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20년 동안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식민지가 이미 독립했다는 립 반 윙클의 이야기는 민간 설화가 되어버렸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각색되었고 구전 전통에 스며들어 수 세대에 걸친 미국인들에게 진짜 미국의 전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어빙은 갓 태어난 신생국의 역사의식을 발견해냈고 이를 만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역사를 재구성하고 그 역사에 살아 숨쉬는 상상의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신생국의 정신을 구축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작품 소재로 미국 역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즉 신세계의 발견, 국가의 영웅인 첫 번째 대통령, 서부 탐험 등을 선택했다. 그의 처녀작은 재치가 번득이는 풍자 작품 뉴욕의 역사(History of New York)(1809)인데, 이 작품은 디드리히 니커보커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어빙의 친구들과 뉴욕 작가들은 니커보커 학파로 불리게 되었다.)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 1789~1851)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는 어빙처럼 과거의 감각에 미국적 색채를 덧입혔다. 그러나 우리는 쿠퍼를 통해 황금시대에 관한 강력한 신화와 신화의 상실에 따른 고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빙을 비롯하여 쿠퍼를 전후한 미국 작가들이 신화, , 멋진 주제 등을 찾아 유럽을 뒤졌다면, 쿠퍼는 미국이 황야처럼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고 있었다는 미국의 본질적인 신화를 포착했다. 미국의 역사는 영원을 침범한 역사이다. 미국에 온 유럽 인의 역사는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을 재현한 것이다. 자연의 순환적인 영역은 단지 그것이 파괴됨으로써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황야는 미국인의 눈앞에서, 다가오는 개척자들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처음에 식민주의자들을 이끌었던 새로운 에덴, 즉 황야가 파괴되었다는 인식, 이것이 쿠퍼가 지닌 비극적 상상력이었다.

쿠퍼가 황야의 변형뿐만 아니라 바다 및 타문화권에서 온 사람들 간의 충돌 등 다른 소재들을 생생하게 그리게 된 것은 개인적인 경험 덕택이었다. 퀘이커 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 주 중앙의 오체고 호수(현재는 쿠퍼스타운)에 있는 아버지의 외딴 사유지에서 자랐다. 이 지역은 쿠퍼가 어렸을 때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웠지만, 한때 인디언 대학살의 현장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쿠퍼는 봉건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저지 쿠퍼는 지주이자 지도자였다. 쿠퍼는 어렸을 때 오체고 호수에서 변경 개척자들과 인디언들을 보았으며, 훗날 과감한 백인 이주민들이 그들의 땅을 침입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쿠퍼가 창조한 유명한 허구의 인물 내티 범포는 신사이면서 토머스 제퍼슨을 닮은 자연적인 귀족으로서의 변방 개척자의 모습을 재현하는 인물이다. 쿠퍼는 1823년 초에 발표한 개척자(The Pioneers)에서 범포라는 인물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내티는 미국 문학에 등장하는 최초의 유명한 변방 개척자이며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카우보이나 벽지 영웅들의 선배이다. 그는 자신이 보호하려고 하는 사회보다 더 나은, 이상적이고 올바른 개인주의자였다. 가난하고 외톨이지만 그래도 순수한 내티는 윤리적 가치의 초석이며 허먼 멜빌의 빌리 버드와 마크 트웨인의 헉 핀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시금석 역할을 하고 있다.

쿠퍼와 같은 퀘이커 교도이면서 미국 개척자인 실존 인물 다니엘 분을 모델로 하여 창조된 허구의 인물 내티 범포는 뛰어난 산사람으로, 인디언 부족에 의해 입양된 온유한 남성이다. 분과 범포 둘 다 자연과 자유를 사랑했다. 그들은 점점 다가오는 이주자들을 피해 계속 서쪽으로 움직였다. 내티는 순결하고, 고상한 마음을 지녔으며, 매우 정신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숲과 바위가 많은 미국이라는 미개척지에 떨어진 중세의 기독교 기사였다.

가죽 각반 이야기(Leather-Stocking Tales)로 알려진 5권의 소설은 내티 범포의 생애를 다룬 연작 소설이다. 쿠퍼의 최고작인 가죽 각반 이야기는 배경으로 북미 대륙을, 등장인물로는 인디언 부족을, 사회적 배경으로는 전쟁과 서부로의 이주를 다루고 있는 거대한 서사극이다. 또한 이 작품은 1740년부터 1804년까지 개척기 미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쿠퍼의 소설들은 개척자들이 차례차례 정착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에는 원래 인디언이 살고 있던 거친 땅에 정찰병, 군인, 상인, 개척자 등이 도착하고 이어 가난하고 거친 이주 가족들, 판사, 의사, 은행원 등의 중산층 가족들이 도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새로운 무리가 들어오면 이전에 있던 무리들은 물러나곤 했는데,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대체하게 되어 인디언들은 서부로 도망쳐야 했다. 학교, 교회, 감옥 등을 세운 문명화된중산층은 변방 개척 활동을 한 하층 계급 사람들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 변방 개척자들은 더욱 서쪽으로 이동하여 그들보다 앞서 도착한 인디언들을 대체하게 되었다. 쿠퍼는 끝없는 이주민들의 이동 상황을 묘사하면서, 이익뿐만 아니라 손실의 차원에서 이를 바라보았다.

쿠퍼의 소설들은 개인과 사회, 자연과 문화, 영성靈性과 조직적인 종교 사이의 상당한 긴장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쿠퍼의 소설에 나타난 자연과 인디언들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이며, 문화적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 또한 선한 인물들이다. 반면 그 중간에 위치한 인물들은 자연이나 문화를 이해할 만큼 교육받지도 못했으며 세련되지도 않은 욕심 많고 가난한 백인 정착자들이다. 루디야드 키플링, E. M. 포스터, 허먼 멜빌 등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모습을 민감하게 관찰한 작가들처럼 쿠퍼 또한 문화 상대주의자였다. 그는 어떤 문화도 미덕이나 고상함에 있어 우선권을 가지지 않음을 이해했다.

쿠퍼는 어빙이 받아들이지 않은 미국적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빙은 유럽 전설, 문화, 역사를 수입하고 채택함으로써 미국적 배경에 유럽 인의 감수성을 결합했다. 하지만 쿠퍼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미국적 배경과 등장인물, 주제를 창조했다. 그는 미국 소설에 반복되는 비극성을 처음으로 표현한 작가이다.

 

 

 

 

 

 

여성 및 소수자

 

 

식민지 시대에 주목할 만한 여성 작가 몇 명이 출현했지만, 혁명 시대에는 우후죽순처럼 많은 학교가 생겨나고, 많은 잡지와 신문들이 발간되었으며, 문학 단체들도 많이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소수민족들의 작품은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앤 브래드스트리트, 앤 허친슨, 앤 코튼, 사라 켐블 나이트 등 식민지 시대 여성들은 원시적인 상황이나 위험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사회적레??영향을 끼친 바 있다. 참고로 1620년에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온 여성 18명 중에서 4명만이 첫해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온전한 몸을 가진 자는 누구나 중요했고, 상황의 변동이 많았던 식민지 시대에는 재능 있는 자라면 누구나 자기표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공화국이 수립되고 문화적인 제도들이 공식화되면서 여성과 소수민족 작가들은 소외되었다.

 

 

필리스 위틀리(Phillis Wheatley, 1753~1784)

 

독립 후 미국 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 당시 최고의 시 중 일부가 뛰어난 흑인 여성에 의해 쓰였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미국에서 중요한 최초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인 필리스 위틀리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7세경에 매사추세츠 보스턴으로 오게 되었는데, 보스턴에서 신앙심 깊고 부유한 재단사 존 위틀리에게 팔려 그의 부인 시중을 들게 되었다. 위틀리 부부는 필리스의 놀라운 지적 능력을 알아차렸고, 부부의 딸 메리를 통해 필리스는 읽고 쓰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위틀리 시의 주제는 종교적인 것이었으며 그녀의 스타일은 필립 프리노처럼 신고전주의적이었다. 가장 유명한 그녀의 시 중 하나인 <젊은 아프리카 화가 S. M에게, 그녀의 작품을 보고(To S.M., a Young African Painter, on Seeing His Works)>는 재능 있는 흑인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기독교 개종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강력한 종교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짧은 시이다. 백인 비평가들이 보기에는 너무 관습적이었고, 흑인 비평가들이 보기에는 노예 제도의 부도덕성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기에, 현대 비평가들은 이 시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종차별주의와 정면으로 맞서며 영적인 동등함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다. 위틀리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실려 옴에 대해(On Being Brought from Africa to America)>라는 시에서 보이듯이, 인종 문제를 자신 있게 언급한 최초의 시인이다.

 

 

이교도 땅에서 나를 데려와 내 어두운 영혼에

하느님이 있음을, 구세주가 있음을 가르침은

축복 받은 일이었습니다.

한때 나는 구원을 찾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어떤 이는 우리 흑인을 경멸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저 색은 악마의 색이야라고 말하죠.

기독교인들이여 기억하세요, 카인처럼 검은 흑인들이

마음을 씻고 천사의 행렬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을.

 

 

 

 

기타 여성 작가들

 

 

문학성이 있는 혁명 시기 여성 작가들 다수가 페미니스트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고 있다. 수재너 로우슨(1762~1824)은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집필한 7편의 소설 중에는 유혹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베스트셀러 샬롯 템플(Charlotte Temple)(1791)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페미니즘 및 노예제 폐지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미국 인디언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묘사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소설가 한나 포스터(1758~1840)의 베스트셀러 바람난 여자(The Coquette)(1797)는 순결과 유혹 사이에 마음 둘 곳 몰라 하는 젊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냉정한 성직자 애인으로부터 거부당한 이 젊은 여성은 유혹당하고 버림받게 된 후 아이를 낳고 혼자 죽는다.

주디스 사전트 머레이(1751~1820)는 자신의 작품이 진지한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남성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했다. 머시 오티스 워런(1728~1814)은 시인, 역사가, 극작가, 풍자가, 애국주의자였다. 그녀는 혁명 전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주최하고 통쾌한 연극을 통해 영국인을 공격했으며, 당시에는 유일했던 미국 혁명에 대한 급진적인 역사서를 집필했다.

머시 오티스 워런과 아비게일 애덤스(Abigail Adams)를 비롯한 여성들의 편지는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이다. 예를 들어 아비게일 애덤스는 1776년에 남편 존 애덤스(후에 제2대 미국 대통령이 됨)에게 보낸 서한에서, 여성의 독립이 미국 헌법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CHAPTER _ 3 낭만주의 시기 1820~1860 : 수필가 및 시인

 

 

독일에서 시작되어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 빠르게 확산된 낭만주의 운동은,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서정가요집(Lyrical Ballads)을 출간해 영국 시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지 약 20년 후인 1820년경에 미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낭만주의의 신선하고 새로운 비전이 미국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전율시켰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미국의 낭만주의는 국가 확장의 시기와 맞물려 미국적 목소리의 발견과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가 정체성이 굳어지고 이상주의 및 낭만주의에 대한 열정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 르네상스의 대작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낭만주의적 사고는 영감으로서의 예술, 자연의 정신과 미학, 유기적인 성장의 은유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낭만주의자들은 과학이 아닌 예술이 보편적인 진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낭만주의자들은 개인과 사회에서 표현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낭만주의 시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 부를 수 있는 랠프 월도 에머슨은 에세이 <시인(The Poet)>(1844)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사람은 진실에 의해 살아가고 표현의 필요성 때문에 일어선다. 우리는 사랑에서, 예술에서, 욕심에서, 정치에서, 노동에서, 게임에서 우리의 고통스러운 비밀을 표출하기 위해 애쓴다. 사람은 오직 절반만이 자신이며 나머지 절반은 표현이다.

 

 

자아의 개발이 주제가 되었고 자기 인식이 가장 우선하는 방법이 되었다. 낭만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아와 자연이 하나라면 자기 인식은 이기적인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우주로 향해 길을 여는 지식의 한 형태이다. 자아가 인류와 하나라면 개인은 사회의 불평들을 개혁하여 인간의 고통을 덜어줘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전 세대까지는 이기주의로 여겨졌던 자아의 개념이 새롭게 정의된 것이다. 자아실현(self-realization), 자기표현(self-ex-pression), 자기의지(self-reliance) 등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새로운 복합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독창적이며 주관적인 자아가 소중하게 여겨진 동시에 심리 영역 또한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뛰어난 예술적 효과와 기술이 한층 고양된 심리적 상태를 환기시키기 위해 개발되었다. 산꼭대기에서 본 풍경처럼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인한 효과인 숭고(sublime)’는 경외감, 존경심, 광대함,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힘 등을 느끼게 해주었다.

 

낭만주의는 대부분의 미국 시인과 창조적인 수필가들에게 긍정적이며 또한 적절한 것이었다. 미국의 거대한 산, 사막, 열대성 기후는 숭고를 구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낭만주의 정신은 미국 민주주의에 적합한 사상으로 간주되었다. 낭만주의가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일반인의 가치를 긍정하며, 상상력에 미학적렝구??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랠프 월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뉴잉글랜드 초월주의자들은 낭만주의 운동의 새로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낭만주의가 뉴잉글랜드라는 기름진 토양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초월주의

 

 

초월주의 운동은 18세기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이면서 동시에 19세기의 보편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사고 경향이 표출된 것이다. 초월주의 운동은 세상과 신이 동일하다는 근본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각 개인의 영혼은 세계와 동일한 것, 즉 소세계라고 여겨졌다. 자기의지 및 개인주의에 대한 학설은 개인의 영혼과 신이 동일한 것이라는 믿음을 통해 전개되었다.

 

초월주의는 보스턴에서 서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콩코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콩코드는 식민지 시대 당시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의 첫 번째 내륙 정착지였다. 숲으로 둘러싸인 콩코드는 평화로운 마을로, 서점이나 대학이 가까이 있어서 문화적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장소이면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보스턴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했다. 콩코드는 미국 독립 혁명의 첫 번째 전투가 발생한 곳으로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 <콩코드 찬가(Concord Hymn)>는 이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이 시는 미국 문학 중 가장 유명한 도입부 중의 하나로 시작된다.

 

 

시내 위로 휘어진 거친 다리 옆에

그들의 깃발이 사월 미풍에 날렸다.

한때 농부들이 여기 진을 치고 있었고

그들이 쏜 총소리는 온 세상에 울렸다.

 

 

콩코드는 시골에 위치한 첫 번째 예술가 식민지였으며, 미국의 물질주의에 대한 정신적레???대안을 제공해준 첫 번째 장소이기도 했다. 콩코드는 고상한 대화와 단순한 삶(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둘 다 채소밭이 있었다)을 위한 장소였다. 소로와 1834년에 콩코드로 거주지를 옮긴 에머슨은 그 마을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들이며, 이 마을은 또한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 페미니즘 작가 마거릿 풀러,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커트의 아버지이자 교육자인 브론슨 올커트, 시인 윌리엄 엘러리 채닝 등을 불러들였다. 초월주의 모임은 1836년에 특별한 짜임새 없이 구성되었으며 에머슨, 소로, 풀러, 채닝, 브론슨 올커트, 오레스테스 브라운슨(목사), 시어도어 파커(노예 제도 폐지론자, 목사) 등 다수가 회원이었다.

 

초월주의자들은 계간지 다이얼(The Dial)을 간행했는데, 이 잡지는 4년 동안 지속되었고 처음에는 마거릿 풀러가, 이후에 에머슨이 편집을 담당했다. 그들은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 개혁에도 참여했다. 많은 초월주의자들은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이었으며, 일부는 근처에 있던 브룩 농장[호손의 블라이스데일 로맨스(The Blithedale Romance)에 묘사된]과 프루트랜즈 등 실험적인 유토피아적 공동체에 참여했다.

많은 유럽 단체와는 달리 초월주의자들은 선언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인적인 차이, 각자의 독특한 관점을 존중했다. 미국 초월주의 낭만주의자들은 급진적인 개인주의를 극단으로 몰고 갔다. 미국 작가들은 자신들을 사회와 관습 밖에 있는 외로운 탐험자라고 여겼다. 허먼 멜빌의 에이합 선장, 마크 트웨인의 헉 핀, 에드거 앨런 포의 아서 고든 핌 같은 미국적 영웅들은 형이상학적으로 자아 발견을 추구하다가 위험에 직면하고, 때때로 파멸에 이르기까지 한다. 미국 낭만주의 작가들에게는 기정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학적렌?관습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작가들은 진정한 문학 형식, 내용, 목소리,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발견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미국 남북전쟁(1861~65) 이전 30년 동안 발표된 다수의 명작들을 살펴보면 당시 미국 작가들이 이러한 도전에 당당하게 맞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

 

당시 독보적인 존재였던 랠프 월도 에머슨은 선교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전복시키려 했다며 그를 비난했지만 에머슨은 좋은 성직자가 되기 위해 교회를 떠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에머슨은 1838년에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신학대학교에서 한 연설 때문에 30년 동안 하버드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이 연설에서 에머슨은 하느님이 죽은 것처럼행동하고, 교인들의 영혼을 옥죄며, 교리만을 강조한다고 교회를 비난했다.

 

에머슨의 철학은 자기 모순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성적인 체계가 직관과 융통성에 대한 자신의 낭만주의적 믿음과 어긋나기 때문에, 그가 논리적인 지적 체계 구축을 의식적으로 피했던 것은 사실이다. 에머슨은 <자기의지(Self-Reliance)>라는 수필에서 바보같이 일관성을 지키는 것은 마음이 편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미국적 개인주의의 발생을 요구하는 데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유지했다. 새로운 국가 비전의 필요성, 개인 경험의 이용, 우주적인 대령大靈의 개념, 보상 이론 등 그의 주요 사상 대부분은 그의 첫 번째 저술 자연(Nature)(1836)에 제시되어 있다. 수필 자연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 시대는 회고적이다. 우리 시대는 조상들의 무덤을 세운다. 우리 시대는 전기, 역사, 비평을 적는다. 앞선 세대들은 신과 자연을 대면했는데, 우리는 그들의 눈을 통해서 신과 자연을 본다. 왜 우리도 우주와의 본래 관계를 즐길 수 없는 것인가? 왜 우리는 전통, 우리에게 계시된 종교, 그들의 역사가 아닌 통찰력을 주는 시를 지닐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자연 속 계절에 안겨 과거의 마른 뼈 속을 더듬어야 하는가? 자연 속 생명의 강물이 우리 주위에, 우리를 관통해 흐르고 있고, 우리에게 힘을 주어 자연과 균형 잡힌 행동을 하도록 초대하고 있는데 말이다. 오늘도 태양은 다시 빛나고 있다. 들판에는 양모와 아마가 풍부하다. 새로운 땅과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사고가 있다. 우리 자신의 사역과 법, 예배를 요구하도록 하자.

 

에머슨은 16세기 프랑스 수필가 몽테뉴의 경구가 가득한 천재적인 글을 사랑했으며, 한번은 브론슨 올커트에게 자신도 몽테뉴의 책처럼 재미, , 관심사, 신성함, 철학, 일화, 상소리가 가득한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커트의 추상적인 스타일이 한 아이의 수저에 비친 빛이 반사되어 한 남자의 모자에 내려앉는 장면을 빠뜨리고 있다고 불평했다.

에머슨은 영적인 비전과 실용적이고 경구가 가득한 표현으로 더욱 유쾌한 인물이 되었다. 한 콩코드 초월주의자는 에머슨의 말을 듣는 것은 그네를 타고 하늘로 가는느낌이라고 비유했다. 그의 영적인 통찰력은 동양의 종교, 특히 힌두교, 유교, 이슬람 수피즘 등에 대한 서적들에서 얻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시 <브라흐마(Brahma)>는 인간의 제한적인 인식 외부에 존재하는 우주적인 질서를 주장하기 위해 힌두교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피에 굶주린 살인자가 살인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만일 살해당하는 자가 살해당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내가 존속하고,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는 그 오묘한 법을.

내게는 먼 또는 잊혀진 것이 가까운 것이고

그림자와 햇빛은 동일한 것이다.

사라진 신들이 내게 나타나고

내게는 수치심과 명성이 하나이다.

 

 

나를 등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잘못 생각한 것이며

내 위를 날아갈 때, 나는 날개다.

나는 의심자이자 의심이며,

나는 브라흐민이 노래하는 찬송가이다.

 

 

강한 신들도 내 거처를 동경하고

헛되이 일곱 성인들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대, 온순한 선애호가여!

나를 찾고, 천국에 등을 돌려라.

 

 

1857년에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1호에 실린 이 시는 힌두교 최고신이며 우주의 영원하고 무한한 영혼인 브라흐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혼돈을 야기했다. 에머슨은 독자들에게 브라흐마 대신 여호아라고 말하라고 충고했다.

영국 비평가 매튜 아놀드는 19세기 영어로 된 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워즈워스의 시와 에머슨의 수필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산문작가이며 시인인 에머슨은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에드윈 알링턴 로빈슨, 월리스 스티븐스, 하트 크레인, 로버트 프로스트 등 많은 시인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존 듀이, 조지 산타야나, 프리드리히 니체, 윌리엄 제임스 등의 철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프랑스 인과 스코틀랜드 인의 후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콩코드에서 태어나 그곳을 영구 거주지로 정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에머슨처럼 하버드 대학을 다녔다. 그는 평생 동안 극도로 검소하게 지냈으며 아주 적은 돈으로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중요한 경력으로 만들었다. 불순응주의자였던 그는 항상 자신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이 그의 글 다수의 주제였다.

 

소로의 대작인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1854)은 소로가 에머슨이 소유하고 있던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곳에서 보낸 2 2개월 2일 동안의 생활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 소로는 의식적으로 이 기간을 1년으로 줄였으며, 책을 계절 순으로 신중하게 구성했다. 이 책은 또한 단순한 세속적인 관심사(‘경제라는 장에서 소로는 오두막을 짓는 데 든 경비를 묘사하고 있다)로 시작해 끝으로 가면 별에 대한 명상으로 진행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여행 서적을 좋아하고 또 몇 권을 저술한 바 있는 소로는 월든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때까지 미국 책들이 접근한 적이 없는 자기발견이라는 내적인 개척 분야를 파헤친 반여행 서적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소로의 금욕적인 생활처럼 매우 소박한 이 작품은 좋은 삶이라는 고전적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서나 다름없다. 자세하게 표현된 오두막 짓기 과정은 영혼을 실하게 채우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은유이다. 1852 1 30일 일기에서 소로는 한곳에 뿌리박고 사는 것을 선호하는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이 완전히 흐트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여행을 많이 하거나 명소에 가는 것이 두렵다.”

소로의 은둔과 집중의 방법은 아시아의 명상법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소로는 에머슨과 휘트먼처럼 힌두교나 불교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소유물은 아시아 고전 작품 장서로, 에머슨과 공유했던 것이다. 그의 스타일은 절충적으로 그리스 어나 라틴 어로 된 고전 작품들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투명하면서도 말장난으로 가득하며, 영국 후기 르네상스의 형이상학적 작가들의 것만큼 은유로 풍성하다.

월든에서 소로는 초월주의 이론을 직접 시험해볼 뿐만 아니라 19세기의 총체적인 미국 경험, 즉 변방 개척지에서의 생활을 재현하고 있다. 소로는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언어를 통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느꼈다. 다음은 1851년 어느 날의 그의 일기이다.

영국 문학은 초서, 스펜서, 셰익스피어, 밀턴을 포함하여 음유시인으로부터 호반시인湖畔詩人(Lake Poets)에 이르기까지 신선하고 야성적인 기질을 지니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나 로마를 반영하는, 근본적으로 길들여지고 문명화된 문학이다. 문학의 황야는 푸른 숲이고 야성적인 인간은 로빈 후드였다. 시인들 중에는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자연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연의 역사는 우리에게 야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야성적인 동물들이 언제 멸종되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미국이 필요했던 것이다.

 

 

월든은 열정적인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에게 영감을 주어 이니스프리의 호도(The Lake Isle of Innisfree)라는 작품을 쓰도록 했다. 또한 소로의 수필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부당한 법에 대해 합법적인 개인이 불복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필요하다는 수동적 저항 이론을 담고 있으며, 이는 20세기에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생태학적인 관심,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독립성, 노예 폐지론에 대한 윤리적인 기여, 시민 불복종 및 평화적인 저항이라는 정치적 이론 등으로 인해 오늘날 소로는 초월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가로 남아 있다. 그의 생각들은 아직도 신선하며, 그의 예리하고 시적인 스타일과 철저하게 관찰하는 습관은 지금 생각해도 현대적이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월트 휘트먼은 목수이면서 민중의 대변인으로, 혁신적인 작품들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표현한 시인이다. 휘트먼은 대부분 독학으로 지식을 깨우쳤는데, 11살에 일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바람에, 미국 작가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영국 작가들을 모방하게 만드는 전통적인 교육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가 평생 수정하고 교정했던 시집 풀잎(Leaves of Grass)(1855)에는 미국인에 의해 쓰인 가장 독창적인 작품인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가 실려 있다. 비록 크게 성공은 못했지만, 이 대담한 시집에 대해 에머슨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보내준 열정적인 찬사는 시인으로서 휘트먼의 입지를 확인시켜주었다.

모든 피조물을 찬미하고 있는 사변적인 시집 풀잎은 에머슨의 글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에머슨은 수필 <시인>에서 휘트먼같이 신념이 강하고 마음이 열려 있으며 우주적인 시인을 예견했다는 것이다. 풀잎의 혁신적이고 각운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시 형식, 에 대한 묘사, 생동감 있는 민주주의적 감수성에 대한 공개적인 찬미, 시인의 자아는 시, 우주, 독자와 하나라는 식의 극단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주장 등은 미국 시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풀잎은 미국 대륙만큼 방대하며, 에너지로 충만하고 또 자연스럽다. 이 시집은 비록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수 세대에 걸쳐 미국 비평가들이 원했던 서사시였다. <나 자신의 노래> 내내 무언가가 불안한 음악처럼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묶었던 끈과 바닥짐은 이미 내게서 떠나갔다...

나는 산맥을 에워싸고 내 손바닥은 대륙을 덮는다.

나는 내 비전과 함께 걷고 있다.

 

 

이 시는 수많은 구체적인 풍경과 소리로 꿈틀거리고 있다. 휘트먼의 새들은 다른 시들에서 관습적으로 표현되는 날개 달린 영혼이 아니다. “노란 왕관을 쓴 왜가리는 밤에 늪지에 와서 작은 게를 먹는다에서 보는 것처럼 구체적이다. 휘트먼은 자신이 보거나 상상한 모든 것에 자신을 투영한다. 그는 장사와 모험을 하기 위해 모든 항구로 여행을 하고, 현대적인 군중과 함께 열의에 가득 차고 또 변덕스럽게 서둘러 움직이는대중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고통받는 인간이다.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마녀로 선고받아 마른장작에 태워진 늙은 어머니... 나는 사냥개에 쫓기는 노예, 그 개들이 물 때마다 몸을 움츠린다... 나는 구타당해 가슴뼈가 부러진 화부火夫.”

무엇보다도 휘트먼은 민주주의적인 미국의 신화를 창조했다. “지구상의 어떤 시기, 어떤 나라 중에서도 미국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시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이다.” 이 글을 쓰면서 휘트먼은 미국이 시적으로 되기에는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 국가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과감하게 뒤집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온 선구자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들로 북적대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땅 미국의 영원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D. H. 로렌스는 휘트먼을 열린 길의 시인이라고 불렀다.

휘트먼의 위대함이 엿보이는 시들 중에는 <브룩클린 나루터를 건너며(Crossing Brooklyn Ferry)>, <끝없이 흔들리는 요람에서(Out of the Cradle Endlessly Rocking)>,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의 죽음에 대한 감동적인 만가인 <앞뜰에 라일락이 피었을 때(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 등이 있다. 다른 유명한 작품으로는 긴 수필인 <민주주의 전망(Democratic Vistas)>(1871)이 있는데, 이 작품은 고삐 풀린 물질주의 시대인 19세기 말 황금시대(Gilded Age)’에 쓴 것이다. 이 수필에서 휘트먼은 미국 저변에 깔린 영혼의 마르고 평평한 사하라를 감추고 있는 강력한 여러 갈래의 부와 산업에 대해 적절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또한 미국인들을 활기 있게 만들 새로운 종류의 문학을 요구했다.(“책이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독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휘트먼의 불멸에 대한 주된 주장은 <나 자신의 노래>에 담겨 있다. 그는 시의 한가운데에 낭만적인 자아를 위치시켰다.

 

 

나는 스스로를 찬미하며 노래 부른다.

내가 취하는 것은 당신도 취하리라.

왜냐하면 내게 속한 모든 원자는 당신에게도 속하기 때문에.

 

 

모든 창조물에 존재하는 통일성과 생명력을 선포한 휘트먼의 목소리는 현대 독자들까지도 전율시키고 있다. 그는 매우 혁신적인 인물이었다. 휘트먼에 의해서 자전적인 시, 음유시인으로서의 미국적 범인凡人, 창작자로서의 독자, ‘실험적혹은 유기적 형식의 발견 등의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보스턴 브라민 시인들

 

 

귀족적이고 하버드 대학교 출신들인 보스턴 브라민(Boston Brahmins)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진정한 교양인 문학 중재자들을 양산했다. 그들은 뉴잉글랜드의 강력한 노동윤리와 교육에 대한 존경심에 이끌렸으며 동시에 부와 여유를 즐기는 생활을 했다.

 

보스턴 브라민들이 만약 청교도 시대에 살았다면 성직자가 되었을 것이지만 19세기에 살았기에 교수, 대개는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 때로 대사가 되거나 유럽 교육 기관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았다. 대부분은 유럽을 여행하거나 유럽에서 교육을 받았고, 영국럿뗌프랑스렝?틔스페인 서적과 사상들에 익숙했다. 배경으로는 상류층이며 정서적으로는 민주주의자들이었던 브라민 시인들은 3천 곳의 문화 강좌 회관 대중 강연과 영향력 있는 보스턴의 두 잡지 노스 아메리칸 리뷰애틀랜틱 먼슬리의 지면을 통해 자신들의 격조 높고 유럽 중심적인 관점을 미국의 모든 분야에 적용했다.

브라민 시인들의 글은 미국과 유럽 전통을 결합했으며 공유하고 있는 대서양 연안의 경험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들 학자 시인들은 미국 문학에 유럽적인 면을 소개함으로써 일반 대중을 교육시키고 고양시키려 노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의 노력이 전체적으로 보수적이었다는 점이다. 유럽적인 것들과 형식들을 고집함으로써 그들은 뚜렷한 미국적 의식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보수적인 배경으로 인해 소로, 휘트먼(그들이 사교적으로 만나기를 거부했던), 에드거 앨런 포 등이 이룩한 문학에서의 과감한 혁신을 파악하지 못했다. 브라민 시인들은 품위 있는 전통을 세웠고, 이 전통에 대해 미국 리얼리즘 작가들은 3세대에 걸쳐 투쟁해야만 했다. 부분적으로 브라민 시인들의 온건한 태도 때문에 휘트먼, 멜빌, 소로, 포 등 뛰어난 천재 작가들이 미국에서 널리 인정받기까지는 1세기 정도가 걸리게 되었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

 

보스턴 브라민 시인들 중 가장 유명한 시인들은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올리버 웬델 홈스와 제임스 러셀 로웰이다. 하버드에서 현대 언어를 가르쳤던 롱펠로는 당시 가장 잘 알려진 미국 시인이었다. 그는 미국과 유럽 전통을 섞은 모호하고 비역사적이며 전설과 같은 역사의식을 만들었다. 그는 유럽적인 각운을 사용하여 미국 토속 전설을 옮긴 장시 3, <에반젤린(Evangeline)>(1847), <하이워어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1855), <마일즈 스탠디시의 구애(The Courtship of Miles Standish)>(1858)를 집필했다.

롱펠로는 또한 현대 언어에 대한 교과서들을 집필했으며, 워싱턴 어빙의 스케치북형식을 이용하여 해외 전설을 소개하는 해외로(Outre-Mer)라는 제목의 여행기를 창작했다. 비록 관습적인 면과 감상적인 면, 그리고 쉽게 글을 쓴 점 때문에 롱펠로의 장시는 오점이 있지만, 쉽게 마음을 떠나지 않는 짧은 서정시 <뉴포트의 유대 인 묘지(The Jewish Cemetery at Newport)>(1854), <잃어버린 내 청춘(My Lost Youth)>(1855), <밀물과 썰물(The Tide Rises, The Tide Falls)>(1880) 등은 아직도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제임스 러셀 로웰(James Russell Lowell, 1819~1891)

 

정년퇴직한 롱펠로의 뒤를 이어 하버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 교수로 강단에 선 제임스 러셀 로웰은 미국 문학에서 영국 비평가 매튜 아놀드 같은 존재이다. 그는 시인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시적인 능력을 상실하고 존경받는 비평가 및 교육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애틀랜틱 먼슬리의 편집자와 노스 아메리칸 리뷰의 공동 편집자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비평가들을 위한 우화(A Fable for Critics)(1848)는 미국 작가들에 대한 재미있고 적절한 평가서이다. 이 책에서 로웰은 바나비 러지(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옮긴이)를 닮은 포가 자신의 까마귀를 들고 오고 있다. 그의 5분의 3은 천재적이며 나머지 5분의 2는 허튼소리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로웰은 부인의 영향을 받아 자유 개혁자, 노예 제도 폐지론자, 여성 참정권 및 미성년 노동 금지법에 대한 지지자가 되었다. 지방 사투리를 사용한 그의 시 비글로 페이퍼, 첫 번째 시리즈(Biglow Papers, First Series)(1847~48)에서는 개혁을 주장하는 영리하지만 교육 받지 못한 시골 시인 호시 비글로라는 허구의 인물을 창조했다. 로웰에 앞서 벤저민 프랭클린과 필립 프리노가 사회적 논평을 위한 대변자로 지적인 촌부村夫를 등장시킨 적이 있다. 로웰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글을 쓰면서, 1850년대에 꽃피어 마크 트웨인에 의해 결실을 맺게 된 새로운 리얼리즘 및 지역주의와 식민지 시대적인 인물 창조 전통을 결합하였다.

 

 

올리버 웬델 홈스(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

 

유명한 내과의사이자 하버드 대학의 해부학 및 생리학 교수였던 올리버 웬델 홈스는 여러 방면에 대한 다작 활동으로 유명한 브라민 3인방 중 가장 범주에 넣기 힘든 작가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아침식사 테이블의 독재자(1858)를 비롯, 유머 가득한 수필들로부터 시작하여 엘지 베너(Elsie Venner)(1861) 외 소설들,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1885)을 비롯한 전기들, 그리고 명쾌한 시 <집사의 명작(The Deacon? Masterpiece, or, The Wonderful One-Hoss Shay)>, 철학적인 시 <들어앉은 앵무조개(The Chambered Nautilus)>, 혹은 열렬한 애국시 <늙은 철기병(Old Ironsides)> 등의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총망라하고 있다.

홈스는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하버드 대학의 본고장인 보스턴 외곽 케임브리지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시인 앤 브래드스트리트의 후손이다. 홈스는 당시 그리고 이후에도 위트와 지성, 매력의 상징이었으며 사회, 언어로부터 의학, 인간 본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해석하는 모범적인 인물로 여겨졌다.

 

 

 

 

두 개혁가

 

 

뉴잉글랜드는 남북전쟁 이전 몇 해 동안 지적인 에너지로 충만했다. 당시 유명했던 브라민 시인들보다 오늘날 더욱 빛나게 된 인물들은 가난이나 성과 인종 등의 이유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현대 독자들은 노예 제도 폐지론자였던 존 그린리프 휘티어와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개혁가였던 마거릿 풀러의 작품을 점점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존 그린리프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 1807~1892)

 

당시 가장 활동적인 시인이었던 존 그린리프 휘티어는 월트 휘트먼과 아주 유사한 배경에 처해 있었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의 검소한 퀘이커 교도 농장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공식적인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고 훗날 기자로 활동했다. 노예 제도 폐지론이 대중의 공감을 얻기 몇십 년 전부터 그는 노예 해방을 열렬히 주장했다. 휘티어는 <슬프도다(Ichabod)> 등 노예 제도 반대 시로 존경받았고, 그의 시는 초기 지역적 리얼리즘의 예로 간주되기도 한다.

 

휘티어의 날카로운 이미지, 단순한 구조, 민요풍의 4보격 2행 대구 형식은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의 단순하고 소박한 짜임새를 그대로 닮았다. 휘티어의 최고 작품인 장시 <눈에 갇혀(Snow Bound)>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나 이제는 세상을 뜬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으로, 그들이 뉴잉글랜드의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훨훨 타오르는 화로에 오붓하게 둘러앉아 있는 풍경을 담았다. 이 단순하면서도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시는 기나긴 악몽의 기간이었던 남북전쟁 이후에 나온 것으로 죽은 이들에 대한 만가이자 치유의 노래이기도 하다. 이 시는 외부의 폭력적인 정치 폭풍에도 굴하지 않는 영혼의 영원성, 기억 속 영원한 사랑의 힘, 꺼지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거릿 풀러(Margaret Fuller, 1810~1850)

 

뛰어난 수필가인 마거릿 풀러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검소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집에서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며(당시 여성은 하버드에 들어갈 수 없었다) 어렸을 때 고전과 현대 작품에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독일 낭만주의 문학, 특히 괴테를 좋아해 그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주목할 만한 여성 저널리스트 1호인 풀러는 서평과, 여성 수감자 및 정신병자 대우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기사를 작성했다. 이러한 기사 일부는 그녀의 저서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Papers on Literature and Art)(1846)에 실려 있다. 이보다 앞서 1845년에 그녀는 자신의 최고작 19세기 여성(Woman in the Nineteenth Century)을 집필했다. 이 글은 원래 초월주의자 잡지 다이얼에 실렸는데, 풀러는 1840년부터 1842년까지 이 잡지의 편집을 담당한 바 있다.

 

풀러의 19세기 여성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한 최초의 미국 서적이며 동시에 가장 미국적인 서적이다. 풀러는 종종 민주주의적, 초월주의적 원리들을 적용하여 성차별에 대한 수많은 미세한 원인과 사악한 결과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이에 대해 취해야 할 긍정적인 조치들을 제안했다. 그녀의 생각 중 다수는 매우 현대적인 것이다. 그녀는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이 규율을 자신들 내부에서 이루어가려 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습득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에자립정신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풀러는 페미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인 자유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명분에 헌신한 행동주의자이자 개혁주의자였다.

 

 

우리 이제 좀더 현명해져서 영혼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 이제 하나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지닙시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이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남성이나 여성, 흑인이나 백인 모두에게 과거사로 이 에너지를 옥죄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에밀리 디킨슨은 19세기와 20세기의 문학적 감수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격한 개인주의자였던 그녀는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칼뱅주의 마을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던데다 외부적으로는 별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격렬한,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으며 뉴잉글랜드 시골의 새, 동물, 식물, 계절의 변화 등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디킨슨은 감수성이 너무 풍부했던 나머지 말년을 은둔자로 보냈다. 그녀는 아마도 시를 쓰기 위해 은둔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그녀는 하루에 시 한 편 정도를 쓰곤 했다). 그녀는 시를 쓰는 것 이외에도 변호사이자 애머스트의 유명 인사이며 후에 연방의원이 된 아버지를 위해 집안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디킨슨은 독서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고전 신화 관련 작품들을 꿰뚫고 있었다. 디킨슨은 당시 가장 은둔하는 문학인이었기에 이러한 책들만이 그녀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수줍음 많았고,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도 않았으며, 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시골 여성이 19세기 최고의 미국 시들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은, 그녀의 시가 재발견된 1950년대 이래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디킨슨의 간결하면서 이미지즘적인 스타일은 휘트먼에 비해 더욱 현대적이며 혁신적이다. 그녀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결코 두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없었고, 거의 속담처럼 응축된 스타일로 추상적인 사고와 구체적인 사물을 결합했다. 그녀의 수작들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다수의 시들은 현 시대의 감수성을 조롱하고 있고, 어떤 시들은 심지어 이교도적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때로 놀라울 정도로 실존적인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포처럼 마음의 어둡고 감추어진 부분을 탐구하면서 죽음과 무덤을 극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꽃과 벌 같은 단순한 사물들도 찬미했다. 그녀의 시는 대단한 지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간에 갇힌 인간 의식의 한계에 대한 고통스런 역설을 일깨우고 있다. 그녀는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녀가 다루는 주제의 범위와 묘사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그녀의 시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토머스 H. 존슨이 1955년 표준판에서 할당한 번호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시는 불규칙한 대문자와 대시(dash, )로 북적댄다.

소로처럼 불순응주의자였던 그녀는 단어와 문구의 의미를 뒤엎으며 역설법의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다음은 그녀의 시 435번이다.

 

 

구별할 줄 아는 눈으로 보면, 깊은 광기는

가장 신성한 감각이다.

깊은 감각은 순전한 광기일 뿐이다.

항상 그렇듯이 여기에서 우세한 것은

다수이다.

동의하면 당신은 제정신이다.

반대하면 당신은 즉각 위험한 존재가 되어

쇠사슬을 차게 된다.

그녀의 재치는 야망과 공인으로서의 삶을 조롱한 288번 시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전 무명인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도 무명인인가요?

그럼 우린 같은 처지인가요?

입 다물고 있어요, 사람들이 소문낼지 모르니까 -- 아시다시피. 

정말 끔찍해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정말 요란해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에 존경심 가득한 늪을 향해

개골개골 제 이름 외쳐대니.

 

 

디킨슨의 시 1,775편은 비평가들을 계속 자극하는데, 비평가들은 그녀의 시에 대해 대개 의견을 서로 달리한다. 어떤 비평가는 그녀의 신비로운 면을 강조하고 어떤 비평가는 자연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을 강조한다. 많은 비평가는 그녀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호소력에 주목한다. 현대 비평가 R. P. 블랙머는 디킨슨의 시가 때로 고양이 한 마리가 영어를 말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하게 느껴진다고 논평했다. 디킨슨의 깨끗하고 투명하며 섬세하게 조각된 시들은 미국 문학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동시에 도전적인 작품들이다.

 

 

 

 

CHAPTER _ 4 낭만주의 시기 1820~1860 : 소설

 

 

월트 휘트먼,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에드거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초월주의자들은 미국에서 탄생한 첫 번째 위대한 문학인 세대를 대표한다. 소설가들의 경우, 호손이 로맨스라고 명명한 정서적이며 상징적인 소설 형태를 통해 자신들의 낭만주의적 비전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로맨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는 진지한 소설 형태였다.

 

호손, 멜빌, 포는 대부분 영국 혹은 유럽 대륙 작가들처럼 풍부한 세부 묘사를 통해 사실적인 등장인물을 조심스럽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 의미로 가득한 과장된 영웅들을 만들어냈다. 미국 로맨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주인공들은 소외되고 고뇌에 찬 개인들이다.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아서 딤스데일이나 헤스터 프린, 멜빌의 백경에 나오는 에이합, 포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고립되어 있고 뭔가에 집착하는 인물들은 모두 외로운 존재들로, 자신들의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 알 수 없는 운명에 처한다. 상징으로 풍부한 플롯은 고통받는 영혼의 숨겨진 행동을 드러내준다.

 

이렇듯 소설가들이 영혼의 숨겨진 구석을 허구를 통해 탐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공동체 삶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앤서니 트롤로프, 조지 엘리엇, 윌리엄 새커리 등의 영국 소설가들은 복잡하고 유기적이며 전통적인 사회에 살았고, 리얼리즘 소설 내부를 형성하고 있는 태도를 독자들과 공유했다. 미국 소설가들은 고난과 혁명의 역사, 거대하고 황량한 지리, 유동적이고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주의적 사회와 마주해야 했다. 미국 소설들은 대개 전통의 부재를 드러낸다. 반면 많은 영국 소설들은 훌륭한 결혼을 하거나 숨겨진 귀족으로서의 과거를 발견함으로써 경제적렌?계단을 오르는 가난한 주인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닫혀 있는 플롯은 영국의 귀족적인 사회 구조에 도전장을 던지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사회적 구조를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주인공의 성공은 독자의 대부분인 중산층의 소원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일이었다.

 

반면, 미국의 소설가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방식에 의존해야 했다. 미국은 부분적으로 외국어를 말하고, 이상하고 조잡한 생활 방식을 따르는 이주자로 가득한, 정의하기 힘든 유동성 가득한 미개척의 땅이었다. 따라서 미국 문학의 주요 인물은 멜빌의 타이피(Typee)처럼 식인종 부족 사이에 홀로 떨어져 있거나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리더스토킹처럼 황야를 탐험하거나, 포의 고독한 개인들처럼 무덤에서 외로운 환영들을 목격하거나, 호손의 영 굿맨 브라운처럼 숲 속에서 길을 걷다가 악마를 만나게 된다. 사실상 미국 문학에 나오는 위대한 주인공들은 모두 고독한 존재들이다. 민주주의적인 미국의 개인은 스스로 자기를 창조해야만 했다.

 

진지한 미국 소설가라면 기이하게 길게 늘어진 듯한 멜빌의 백경과 포의 꿈에서처럼 배회하는 듯한 아서 고든 핌 이야기(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와 같은 새로운 형식을 개발해야만 했다. 미국인들은 이미 실험된 문학적 방법을 차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창작 기법을 개발하고자 했다. 미국에서는 과거의 전통 유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전적이고 한정적인 사회적 개체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새로운 혁신적 힘을 창조하는 일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었다.

 

 

 

 

로맨스

 

 

로맨스 형식은 어둡고 험악하며, 안정적인 사회가 아닐 때 정체성을 창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낭만주의적 영웅 대부분은 생을 마감한다. 백경에서는 이스마엘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이 익사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죄의식으로 가득한 주홍글씨의 성직자 아서 딤스데일은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한다. 미국 문학의 자기 분열적이고 비극적인 어조는 1860년대 남북전쟁이라는 더욱더 큰 사회적 비극을 보여주기 전에도 이미 소설의 지배적인 요소였다.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영국인의 후손으로 미국에서의 다섯 번째 세대인 너새니얼 호손은 동인도와의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부유한 항구 도시 세일럼(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북부에 있다)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 중 한 명은 세일럼 마녀 재판 당시 판사였다. 이를 반영하듯이 호손은 소설 일곱 박공의 집(The House of the Seven Gables)(1851)에서 사악한 판사 집안에 내려진 저주의 이야기를 그렸다.

 

호손의 많은 이야기들은 뉴잉글랜드 청교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최고 작품인 주홍글씨(1850)는 청교도적인 미국의 고전적 초상화가 되었다. 이 소설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신앙심 깊은 젊은이 아서 딤스데일 목사와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도회지 여성 헤스터 프린의 금지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초기 청교도 식민시대인 1650년경의 보스턴을 배경으로 도덕성, 성적인 억압, 죄의식, 고백, 정신적 구원 등에 대한 칼뱅주의적 집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당시 주홍글씨는 과감하고 심지어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호손은 부드러운 스타일, 현실과 거리가 있는 역사적 배경, 모호함 등을 이용해 암울한 주제를 유연하게 만듦으로써 일반 대중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렇지만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허먼 멜빌 같은 정교한 작가들은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몸서리쳐지는 힘을 인식했다. 이 소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충격과 자유로운 민주주의적 경험, 특히 성적려쓩냅?자유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19세기 미국에서 주로 은폐되었던 주제를 다루었다.

 

주홍글씨는 뛰어난 구성과 함께 아름다운 문체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 소설은 또한 초기 청교도 식민지 이주자들이 사용했던 기법인 알레고리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호손의 다른 소설과 이야기에서도 그의 명성을 엿볼 수 있다. 일곱 박공의 집에서 호손은 주홍글씨에서처럼 다시 뉴잉글랜드 역사를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의 무너짐은 실제로 가옥이 무너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일럼의 가족 붕괴를 의미한다. 이 소설의 주제는 유산으로 이어받은 저주와, 사랑을 통한 저주의 해결이다. 한 비평가가 지적했듯이 이상주의적인 주인공 홀그레이브는 호손 자신의 낡은 귀족 가족에 대한 민주주의적 불신을 대변하고 있다. 홀그레이브는 소설 속에서 사실은 적어도 반세기마다 한 번씩은 한 가족이 인류의 위대하고 이름 없는 군중 속에 포함되어 자신들의 조상을 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호손의 마지막 두 소설은 그리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두 작품 모두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로맨스의 매력을 제한하고 있다. 이중 하나인 블라이스데일 로맨스(1852)는 사회주의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브룩 농장 사회를 묘사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책에서 호손은, 자기중심적이고 권력에 굶주려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 개혁가들을 비난하고 있다. 대리석 목신상(The Marble Faun)(1860)은 로마를 배경으로 하지만 죄, 고립, 속죄, 구원 등 청교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청교도적인 주제들과 청교도 식민지 시대의 뉴잉글랜드라는 호손 특유의 배경은 그의 유명한 단편소설 <목사의 검은 베일(The Minister? Black Veil)>, <영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 <나의 친척 몰리노 소령(My Kinsman, Major Molineux)> 등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의 친척 몰리노 소령>은 시골 출신의 순진한 젊은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권력 있는 친척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도시로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런 주인공의 행보는 도시화되는 19세기 미국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주인공 로빈은 소령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내 불명예스러운 범죄자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동네에서 우스꽝스럽고 잔인하게 추방당하는 한밤의 이상한 폭동에 휘말리게 된다. 로빈은 가장 크게 웃지만 범죄자가 다름 아닌 그가 찾으려 했던 친척(혁명적인 미국 폭도에 의해 막 전복된 영국인들을 대표하는)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모든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죄와 고통의 굴레를 확인시켜준다. 또한 자수성가에 대한 주제를 강조하는데, 즉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미국인들처럼 로빈 또한 부유한 친척으로부터 특혜를 받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친척 몰리노 소령>은 호손 소설의 가장 특징적 요소 중 하나인 제 역할을 하는 가족의 결핍을 조명하고 있다. 쿠퍼의 가죽 각반 이야기가 가족들을 극단적인 장소인 황야에 위치시켰다면, 호손의 소설들은 붕괴되었거나 저주받았거나 인공적인 가족의 모습과 고립된 개인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혁명의 이데올로기 또한 자랑스럽지만 격리된 자유의 느낌을 미화하는 데 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역사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독립혁명은 영국이라는 부모와 대영제국이라는 더 큰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춘기적 저항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인들은 독립을 얻었지만 낡은 권위에서 떨어져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당황스러운 딜레마에 직면해야 했다. 이런 시나리오는 개척자들에게 수없이 발생했던 상황이며, 소설에서는 소외가 미국인들이 지닌 기본적인 삶의 조건인 것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청교도와 프로테스탄트 분파들은 개인의 첫 번째 책임이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설교함으로써 가족의 위상을 더욱 약화시켰을 수도 있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허먼 멜빌은 호손처럼 부유했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갑자기 빈곤 속으로 빠져든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멜빌은 귀족적인 배경과 자부심 강한 가족 전통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다. 멜빌은 19살에 바다로 나갔다. 그의 소설에 드러난 선원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은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그의 초기 소설 대부분은 항해 경험을 다룬 것이었다. 멜빌의 초기 소설에서 우리는, 젊은 멜빌이 겪었던 풍부한 민주주의적 경험과 독재 및 부정행위에 대한 그의 증오심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타이피는 남태평양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이지만 친절한 타이피 족과 함께 보낸 시절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책은 섬사람들과 그들의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생활을 찬미하며 기독교 선교사들을 비판하고 있는데, 멜빌은 선교사들이 그들이 개종시키러 온 원주민보다 실제로 더 미개하다고 보았다.

 

멜빌의 대작 백경은 포경선 피쿼드와 신을 믿지 않는 신적인 남성선장 에이합에 대한 서사적인 이야기로, 하얀 고래 모비딕에 대한 에이합의 집착 때문에 배와 선원들은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리얼리즘적 모험 소설인 이 작품은 인간 상황에 대한 명상을 담고 있다. 책 전체를 통해 포경은 지식의 추구에 대한 거대한 은유이다. 책 중간에 나오는 고래와 포경업에 대한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나열은 전체 이야기를 중단시키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5 큰고래의 머리에서 화자는 큰고래가 스토아 학파의 특성을 지녔고 향고래는 플라톤적이라고 표현하면서 고대 철학의 두 학파를 고래에 견준다.

 

멜빌의 소설은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이기도 하다. 에이합은 영웅심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으며 마지막에는 저주를 받는 듯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도 낯설고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백경에서 멜빌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에머슨의 낙관적인 사상에 도전장을 던졌다. 에이합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은 소설 전체를 주도하고 있는 파악하기 힘든 우주와 같은 존재이다. 고래와 포경에 관한 사실만으로는 고래 모비딕을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그 사실 자체들이 상징이 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사실은 다른 사실과 우주적인 망처럼 모호하게 연결되어 있다. 멜빌이 스핑크스장에서 언급한 이 상응(correspondence)’의 개념은 에머슨과는 달리 인간이 자연 속에서 진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멜빌이 축적한 사실들 뒤에는 신비한 비전이 존재하지만 이 비전이 악인지 선인지, 인간적인지 초인간적인지는 결코 설명되지 않고 있다.

 

이 소설은 자기반영적인 경향을 지닌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소설은 소설 쓰기 자체에 관한 것이다. 멜빌은 글쓰기, 독서, 이해 등 정신적인 과정에 대해 자주 논평한다. 예를 들어 한 장에는 화자가 철저하게 조사한 것을 분류하다가 마침내 포기하면서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내가 마무리하지 못하게 하신다. 이 전체 책은 초고일 뿐이다, 아니, 초고의 초고일 뿐이다. , 시간이여, 힘이여, 돈이여, 인내여!”라고 말한다. 문학 텍스트를 완전하지 못한 작품 혹은 버려진 초고로 보는 멜빌의 개념은 매우 현대적이다.

 

에이합은 자신만이 사람들 위에 우뚝 서게 되는 영웅적이고 시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세계를 계속 상상한다. 현명하지 못하게도 그는 정답, 마무리된 텍스트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마무리된 텍스트가 없는 것처럼 죽음 말고는 최종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문학적인 텍스트를 참조한 점이 소설 내내 울림을 더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왕의 이름을 딴 에이합(아합)은 완전한, 파우스트적인, 신과 같은 지식을 원하고 있다. 잘못된 지식을 찾으려다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소포클레스 희곡의 오이디푸스처럼, 에이합은 다리에 상처를 입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백경 고아라는 단어로 끝나는데, 화자인 이스마엘은 고아와 같은 방랑자이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의 창세기편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갈(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시종)의 아들이다. 이스마엘과 하갈은 아브라함에 의해 황야에 던져지게 된다.

 

다른 예도 있다. 야곱의 부인 중 한 명인 레이첼(라헬)은 책의 끝에서 이스마엘을 구하는 배의 이름이다. 형이상학적인 고래 모비딕은 유대교와 기독교 독자들에게 성경 이야기 중에서 신의 노여움을 산 인물로 여겨져 동료 선원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진 요나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성경에 따르면 요나는 커다란 물고기에 의해 삼켜져 그 뱃속에서 살다가 하느님의 개입으로 마른 땅에 돌아오게 된다. 요나는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도망치려 했다가 더 많은 고통을 받게 된 인물이다.

 

역사적인 내용을 참조한 것 또한 소설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배 이름 피쿼드는 사라진 뉴잉글랜드 인디언 부족의 이름으로 배가 결국 파괴될 운명임을 암시한다. 사실 포경업은 특히 뉴잉글랜드의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 포경은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기름, 특히 램프 기름을 공급해주었다. 따라서 고래는 말 그대로 세상에 불을 밝히는 존재였다. 고래잡이를 하기 위해서 미국인들이 고래를 찾아 세상을 항해해야 하기 때문에 포경업은 본래 미국의 영토 확장주의 경향을 담고 있으며, 이를 정당화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개념과 연관성이 있다(사실 현재 하와이 주는 미국 포경선을 위한 주요 연료 보급소로 사용되어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피쿼드 호의 선원들은 모든 인종과 다양한 종교를 대표하는데, 이는 용광로뿐만 아니라 인류 보편성이라는 미국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에이합은 민주주의적이며 미국적인 개인주의의 비극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개인으로서 자신의 위엄을 주장하면서 냉혹한 외부의 압력에 과감히 저항하는 개인주의자이다.

 

백경의 에필로그는 선박 파괴의 비극성을 완화시켜준다. 멜빌은 내내 우정의 중요성과 다문화적인 인간 사회를 강조하고 있다. 배가 가라앉자 이스마엘은 친한 친구이자 영웅, 문신을 한 작살잡이이자 폴리네시아의 왕자인 퀴퀘그가 만들고 장식한 관을 이용해 죽음을 모면한다. 관의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장식은 우주의 역사를 통합하고 있다. 이스마엘은 죽음과 관계된 물건에 의해 죽음을 피하게 된 셈이다. 결국 죽음으로부터 삶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백경은 사냥꾼 신화, 통과의례에 대한 주제, 에덴 같은 섬에 대한 상징주의, 기술시대 이전 사람들의 긍정성 부각, 부활에 대한 의지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원시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 정신을 훌륭하게 극화시킨 자연 서사시라고 일컬어진다. 인간을 자연에 위치시킨 점은 뚜렷하게 미국적인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1835)에서 민주주의의 결과물로 이와 같은 주제가 미국에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신의 열정, 의심, 특이한 성향 그리고 상상하기 힘든 비참함을 지닌 채, 자신의 국가와 자신의 시대에서 동떨어져 홀로 자연과 신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의 운명이 (미국) 시의 유일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주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문학은 단순한 외양이나 계급이나 지위 등의 피상적인 분류가 아니라 비물질적인 인간 본성의 숨겨진 깊이를 강조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확실히 백경타이피두 소설 모두 허클베리 핀의 모험(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월든과 함께 이런 묘사에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이 책들은 자연을 찬미하면서 계급 중심의 도시 문명을 목가적으로 전복시키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 남부 출신의 에드거 앨런 포는 어두운 형이상학적 비전을 리얼리즘, 패러디, 희극적 요소들과 결합한 점에서 멜빌과 통한다. 포는 단편소설 장르를 세련되게 만들었으며 탐정소설을 개발하기도 했다. 포는 단편소설 다수를 통해 오늘날 인기 있는 공상과학소설, 공포소설, 판타지 장르의 초석을 깔아놓았다.

포의 짧고 비극적인 생애는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19세기 주요한 미국 작가들 다수처럼 포도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포가 1835년에 14살도 채 되지 않은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한 것은 자신에게 없는 안정적인 가족을 찾으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포는 이상함(strangeness)’을 아름다움의 필수 요소로 믿었기에, 그의 글은 이국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의 단편소설과 시들은 비극적 운명을 지닌 내성적인 귀족들(포는 미국 남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귀족적인 이상을 소중하게 여겼다)로 가득하다. 이러한 어두운 인물들은 일을 하거나 사교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 그들은 실제 세계인 햇살, 창문, , 바닥 등을 가리고 있는 괴이한 융단이나 천으로 상징된, 어둡고 허물어지고 있는 성 안에 자신들을 가두고 있다. 성 안에 있는 숨겨진 방들에는 오래된 책들, 기이한 예술 작품, 다양한 동양 물건 등이 채워져 있다. 귀족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오래된 책들을 읽으면서 비극, 특히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삶 속 죽음(death-in-life), 특히 등장인물이 생매장되거나 무덤에서 흡혈귀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 등으로 표현된 이 주제는 <때 이른 매장(The Premature Burial)>, <리지아(Ligeia)>, <아몬틸라도의 술통(The Cask of Amontillado)>, <어셔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등을 비롯한 다수의 소설에 나타나고 있다. 생사의 중간 영역에 대한 묘사와 화려하고 고딕적인 배경은 단순히 장식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배경은 심적으로 불안한 등장인물이 지나칠 정도로 문명화되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내부 세계를 지니고 있음을 반영하며, 무의식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포의 예술세계의 큰 특징이다.

 

많은 남부 시인들의 시처럼 포의 시 또한 매우 음악적이며 지나칠 정도로 운율적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알려진 포의 시는 <갈가마귀(The Raven)>(1845)이다. 이 음산한 시에서 죽은 자의 영혼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는 화자는 자정에 독서를 하면서 떠나간 리노어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가, 썩은 고기를 먹는, 따라서 죽음의 상징인 갈가마귀의 방문을 받는다. 갈가마귀는 문 위에 내려앉아 불길하게 이 시의 유명한 후렴구이자 갈가마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이젠 끝이다(nevermore)’라는 단어를 반복한다. 이 시는 삶 속 죽음을 보여주는 정지된 장면에서 끝맺는다.

 

 

그리고 갈가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아직도 앉아 있었다,

나의 침실 문 바로 위 팔라스의 창백한 흉상 위에 아직도;

그의 두 눈은 꿈꾸고 있는 악마의 모든 모습을 담고 있고

그의 위에서 흐르던 등잔불이 마루 위에 그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나의 영혼은 마루 위에 누운 채 떠돌아다니는 그 그림자를 떠나

떠오를 것이다 -- 이젠 끝이다!

 

 

앞에 언급된 소설들을 비롯한 포의 단편소설들은 공포 소설로 간주되고 있다. 한편 <황금 풍뎅이(The Gold Bug)>, <도난당한 편지(The Purloined Letter)> 같은 이야기는 추리 소설에 가깝다. 포의 공포소설은 H. P. 러브크래프트, 스티븐 킹 등 호러 판타지 소설 작가들의 작품에 모체가 되었으며, 포의 추리소설은 대쉬엘 해머트,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D. 맥도널드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포는 또한 공상과학 소설이 나올 수 있는 여지 또한 마련해주었다. 포의 모든 단편소설은 그가 19세기 세계관을 급진적으로 세속화하는 획기적인 과학적 지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포는 모든 장르를 통해 정신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심오한 심리적 통찰력은 그의 단편소설 전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포는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에서, “수백 번씩이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은 자 어디 있겠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심리적인 과정의 이상하고 괴상한 면을 탐구하기 위해 포는 광기와 극단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었다. 고통스럽게 씌어진 정교한 스타일과 상세한 설명은 사건들을 더욱 생생하고 그럴듯하게 만들어 무서운 느낌을 한층 배가시킨다.

 

포가 데카당스(decadence)’와 낭만적 원시주의를 결합한 점은 유럽 인들, 특히 스테펜 말라르메, 샤를르 보들레르, 폴 발레리, 아르튀르 랭보 등 프랑스 시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귀족적 거부감, 이국적인 것의 선호, 비인간화에 대한 주제들에도 불구하고 포는 미국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오히려 미국 민주주의가 정신세계의 깊고 숨겨진 면들을 드러내주는 작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는 토크빌의 예견을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가이다. 유럽 인들에게는 적어도 정신적 안정성을 부여해주는 복잡하지만 확고한 사회적 구조가 있기에, 깊은 근심이나 심리적 불안감은 유럽보다는 미국 사회에서 먼저 발생한 듯하다. 미국에서는 안전성을 보상해줄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혼자인 것이다. 포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물질주의와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인 외로움, 소외, 삶 속 죽음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포의 데카당스는 또한 19세기에 발생한 상징에 대한 평가절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상징 평가절하 경향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온 예술 작품들을 난삽하게 결합하여 각 작품의 특징적인 면을 제거하고 전체 작품 속에서 각 작품을 단지 장식적인 것으로 축소시키는 경향이었다. 이로 인한 스타일의 혼돈은 대개 자체적 전통 스타일이 부족한 미국에서 특히 눈에 띄게 나타났다. 이렇게 뒤섞는 기법은 이민, 도시화, 산업화가 가족과 전통적인 방식들을 뿌리째 뒤흔들면서 일관성 있는 사고 체계가 상실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상징들의 혼란스러운 사용은 예술에서 그로테스크한 효과를 유발했는데, 포는 단편소설 모음집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1840)에서 이런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여성 작가들 및 개혁가들

 

 

19세기 미국 여성들은 숱한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었고 전문학교 입학이나 고등교육이 금지되었으며, 공공장소에서 말하는 것이나 심지어는 집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사유재산을 소유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튼튼한 연결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서신 왕래, 개인적인 친분 교류, 공식적인 모임, 여성 신문, 서적을 통해 여성들은 사회 변화에 한몫을 했다. 지적인 여성들은 자신과 노예의 처지를 비교했다. 여성들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하고 때로 경제적 파산에 직면하긴 했어도, 용기 있게 노예 제도 폐지 및 여성의 참정권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감상소설(sentimental novel)을 포함한 작품들을 통해 규모가 방대한 여성 문학 전통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 Cabin)과 같은 여성의 감상소설은 당시 인기가 아주 좋았다. 감상소설은 감정에 호소하며, 종종 논쟁중인 사회 문제들, 특히 가족 및 여성의 역할과 책임 등에 대한 문제들을 극화했다.

 

마거릿 풀러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노예 제도 폐지론자 리디아 차일드는 여성들의 네트워크 구축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녀의 성공적인 소설 호보모크(Hobomok)(1824)는 인종적려쓩냅?관용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너새니얼 호손이 미리 다루었던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청교도 땅인 세일럼이다. 행동주의자였던, 차일드는 사립 여성 학교를 설립하고 미국 최초의 아동 잡지를 창간, 편집을 직접 담당했다. 그녀는 또한 1883년에 첫 번째 노예 제도 반대 소책자인 아프리카 인이라고 불리는 미국인을 위한 호소(An Appeal in Favor of that Class of Americans Called Africans)를 발표했다. 이 도발적인 작품 때문에 그녀는 좋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파산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의 다양한 시대 및 국가 여성들의 상황에 대한 역사(History of the Condition of Women in Various Ages and Nations)(1855)는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업적을 지적하면서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는 글이다.

 

안젤리나 그림케(1805~1879)와 사라 그림케(1792~1873) 자매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우아한 도시 찰스턴에서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림케 자매는 흑인과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북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뉴욕 노예 제도 반대학회의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남성을 포함한 청중에게 공개적인 강연을 한 미국 최초의 여성들이 되었다. 그림케 자매는 편지, 수필, 연구서를 통해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을 연결시켰다.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자 여권운동가였던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1815~1902)은 잠시 동안 보스턴에서 살다가 리디아 차일드와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캐디 스탠튼은 루크레시아 모트와 함께 1848년 세니카폴스 여권신장대회를 조직했다. 그녀는 또한 이 대회의 소신 선언문(Declaration of Sentiments)을 집필했다. 그녀의 <여성의 독립 선언(Wom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며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결의문을 포함하고 있다. 캐디 스탠튼은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수전 B. 앤서니와 함께 여성 참정권을 위한 운동을 펼쳤으며,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한 전국여성연맹과 전국여성참정권협회를 조직했고, 주간 신문인 레볼루션(Revolution)을 공동 편집했다. 캐디 스탠튼은 여성참정권협회의 회장직을 21년 동안 맡으면서 여권 신장을 위한 투쟁을 이끌었다. 그녀는 몇몇 주에서 공개 강연을 가졌는데, 부분적으로는 자신의 자녀 7명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캐디 스탠튼은 남편이 죽은 뒤 남녀 차별에 대한 분석의 깊이를 더했다. 그녀의 책 여성의 성경(The Woman? Bible)(1895)은 유대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반여성적인 편견을 구별해내고 있다. 그녀는 86살의 나이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해달라는 편지를 쓰고 난 직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이혼렛퓐종교에 관한 주제들로 강연을 했다. 그녀가 처음에는 가명으로, 이후에는 실명으로 낸 수많은 책들 중에는 공동 집필한 세 권짜리 책 여성 참정권의 역사(History of Woman Suffrage)(1881~1886)와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쓴 자서전 등이 있다.

소저너 트루스(1797~1883)는 이 비범한 여성들의 인내력과 카리스마를 요약하고 있는 인물이다. 뉴욕에서 노예로 태어난 그녀는 네덜란드 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자랐다. 그녀는 1827년에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따뜻하게 자신을 대해주는 네덜란드 계 미국인 반 바게너 가족을 위해 하녀로 일하면서 아들과 딸을 데리고 정착했다. 그 가족은 그녀가 아들의 자유를 위한 법정 투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었고, 그녀는 그들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택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다가 매춘부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한 전도사와 같이 일했으며 진보적인 공동체 사회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하기 시작한 신비로운 목소리와 환영 때문에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환영에 의한 가르침의 진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그녀는 혼자 살면서, 30년 동안 여러 주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고, 성가를 부르며, 노예 제도 폐지론을 주창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에 고무되어 여성의 참정권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녀의 삶은 올리브 길버트가 받아 적고 편집한 자서전 소저너 트루스 이야기(Narrative of Sojourner Truth)(1850)에 묘사되어 있다. 평생 문맹으로 살았던 그녀는 네덜란드 어 악센트로 영어를 발음했다. 소저너 트루스가 한 여권신장대회에서 남자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자 가슴을 드러내 보였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연약하다고 말한 어느 남성에게 그녀가 들려준 답변은 이제 전설적인 말이 되었다.

 

 

난 밭을 갈고 곡식도 심었으며 헛간에도 들어갔지만, 어느 남자도 내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는 남자만큼 일하고 남자만큼 먹을 수 있으며 -- 물론 먹을 음식이 있다면 -- 남자만큼 채찍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난 여자가 아닌가? 난 아이 열셋을 낳았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내 어머니의 슬픔을 느끼며 소리쳤을 때 예수님만이 내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런데도 난 여자가 아닌가?

 

 

이 유머러스하고 불경스럽기까지 한 연설자는 위대한 블루스 가수와 비견된다. 해리엇 비처 스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믿기 어려운 이 흑인 여성을 통해 지혜를 발견했다. 트루스는 한때 신이시여, 신이시여, 난 심지어 백인도 사랑할 수 있다오!”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 19세기 가장 인기 있었던 미국 서적이다. 잡지 내셔널 이러(National Era)에 처음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국에서만 40개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인쇄했으며, 이내 20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프랑스의 조르주 상드, 독일의 하인리히 하이네, 러시아의 이반 투르게네프 등의 작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스토가 작품에서 표현한 미국 노예 제도 폐지에 대한 열정적인 호소는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의 단초가 된 논쟁에 불씨를 댕겼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성공한 이유는 명백한 것이었다. 민주주의와 만인의 평등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 미국에서 노예 제도는 엄청난 규모의 부정행위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이 소설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스토 자신은 뉴잉글랜드 청교도 출신을 전형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형제, 남편 모두 이름 있고 학식 있는 프로테스탄트 성직자 및 개혁가였다. 스토는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매를 맞고 있는 늙고 남루한 노예의 환영이 떠올라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후에 그녀는 소설이 하느님에 의해 영감을 받고 하느님에 의해 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삶을 경건하게 만들려는 종교적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낭만주의는 감정의 시대를 이끌었고, 가족과 사랑이라는 미덕은 최고로 군림하게 되었다. 스토의 소설에서 노예 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정의 가치를 침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예인 주인공 톰 아저씨는 친절한 주인 세인트 클레어를 개종시키려 노력하고, 그가 죽었을 때 주인을 위해 기도하며, 여성 노예들을 보호하려다 살해당하는 진정한 기독교적인 순교자이다. 노예 제도는 정치적이거나 철학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족들을 강제로 헤어지게 하고 정상적인 부모의 사랑을 파괴하며 내재적으로 비기독교적이기 때문에 사악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감상적인 장면은 고통받고 있는 여성 노예가 울부짖는 자신의 아이를 도와주지 못하는 장면과 아이의 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팔려가는 장면이다. 이는 신성한 가족간의 사랑에 대한 범죄 행위였다.

스토의 소설은 원래는 남부 지역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사실 스토는 남부를 방문하고 남부 사람들을 좋아했으며 그들을 친절한 사람들로 묘사했다. 소설 속에서 남부의 노예 소유자들은 좋은 주인들이고 톰을 잘 대우한다. 세인트 클레어는 개인적으로 노예 제도를 싫어하며 자신의 노예 모두를 해방시켜주려 한다. 반면 사악한 주인 사이몬 레그리는 북부 사람이며 악당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소설이 10년 뒤 전쟁을 치르게 되는 미국 북부와 남부를 화해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은 남부에 대한 논쟁서로 노예 제도 폐지론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활용되었다.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 1818~1896)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노예로 태어난 해리엇 제이콥스는 여주인을 통해 글을 배웠다. 제이콥스는 여주인이 죽자마자 다른 백인 남성 주인에게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 주인은 그녀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거부하고 다른 백인 남성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고, 두 아이는 그녀의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강제에 복종하는 것보다 자신을 줘버리는 편이 자존심에 상처를 덜 받는 것 같다고 적었다. 그녀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다음, 자신이 북쪽으로 갔다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붙잡혀 다시 노예가 되어 처벌받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주인이 살고 있는 같은 읍내의 할머니 집에 숨어 캄캄한 다락방에서 거의 7년을 보냈다. 그녀는 천장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들을 훔쳐보면서 삶을 이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북부로 도피해, 뉴욕 주 로체스터에 정착하게 되었다. 로체스터는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노예 제도 반대 신문 노스 스타(North Star)를 발행한 곳이며 가까운 곳에 있는 세니카폴스는 여권신장대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로체스터에서 제이콥스는 퀘이커 교도이며 페미니스트이자 노예 제도 폐지론자인 에이미 포스트와 친구가 되었다. 포스트는 제이콥스에게 자서전을 쓰도록 권고했다. 노예 소녀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들(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1861년에 출간되었으며 편집은 리디아 차일드가 담당했다. 이 책은 흑인 여성 노예들에 대한 성적 착취를 거리낌없이 비판하고 있다. 제이콥스의 책은 더글러스의 책처럼 식민시대의 올라우다 에퀴아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예설화(slave narrative) 장르에 속한다.

 

 

해리엇 윌슨(Harriet Wilson, 1807~1870)

 

해리엇 윌슨은 미국에서 소설을 출간한 최초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이다. 그녀가 쓴 소설은 우리의 검둥이:혹은 북부의 하얀 2층집에 사는 자유로운 흑인의 삶에 대한 스케치, 노예 제도의 그림자가 거기에도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는(Our Nig:or, Sketches from the life of a Free Black, in a two-storey white house, North. showing that Slavery? Shadows Fall Even There)(1859)으로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결혼을 사실적으로 극화하고 있으며, 부유한 기독교 집안 흑인 노예의 어려운 생활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전에는 자전적인 이야기로 여겨졌으나 요즘에는 허구로 이해되고 있다.

제이콥스와 마찬가지로 윌슨도 자신의 본명으로 책을 출간하지는 않았으며(‘우리의 검둥이라는 표현은 아이러니하다), 그녀의 작품은 최근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 당시 대부분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흑인 소설 연구의 선봉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 학자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는 1983년에 우리의 검둥이를 다시 출간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7~1895)

 

당시에 가장 유명한 미국 흑인 노예 제도 반대 지도자이자 연설가인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메릴랜드의 대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그는 운이 좋아 어렸을 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볼티모어에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글을 배웠다. 1838 21살의 나이에 매사추세츠로 도망친 더글러스는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며 편집자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의 도움을 받아 노예 제도 반대 학회에서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1845년에 더글러스는 노예설화 중 최고작이며 가장 인기 있는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1855년 재판, 1892년 개정판)를 출간했다. 당시 노예설화는 종종 백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이 문맹인 흑인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으로 선전용 글로 사용되었는데, 남북전쟁 직전 몇 년 동안 유명했던 장르였다. 더글러스의 노예설화는 생생하며 매우 잘 씌어진 글이다. 또한 독특한 통찰력을 통해 노예의 심리 상태 및 노예 제도가 흑인들에게 안겨준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노예설화는 미국에서 흑인 문학 최초의 산문 장르였다. 노예설화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은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20세기 내내 흑인 소설의 기법 및 주제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체성 찾기,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 쫓기며 지하생활을 하는 느낌 등은 리처드 라이트, 제임스 볼드윈, 랠프 엘리슨, 토니 모리슨 등 20세기 미국 흑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반복된 주제이다.

 

 

 

 

CHAPTER _ 5 리얼리즘의 발생 : 1860~1914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은 산업 위주의 북부와 농업이 주된 산업이며 노예를 보유하고 있던 남부 사이의 전쟁으로 미국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젊은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순진한 낙관주의가 점점 힘을 잃게 되었다. 미국적인 이상주의는 남아 있었지만 방향을 달리하고 있었다. 전쟁 전에 이상주의자들은 인권, 특히 노예 제도 폐지를 옹호했으나 전후의 미국인들은 점점 더 진보와 자수성가를 이상화하기 시작했다. 전후는 백만장자 제조업자와 투기꾼들의 시대로 다윈의 진화론이나 적자생존이론이 때로 성공적인 거대 사업가의 비도덕적인 방법들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인상을 주는 시기였다.

전쟁이 끝나자 산업이 번창했다. 군수품 생산이 북부의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결국 북부에 강한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선사하게 되었다. 그것은 또한 산업 지도자들에게 인력과 기계 관리에 대한 가치 있는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미국 땅에 매장된 철, 석탄, 석유, , 은 등 방대한 천연 자원 또한 사업에 도움을 주었다. 1869년 새로운 대륙횡단 철도가 부설되고 1861년 대륙 내 전신이 실용화되면서, 산업계는 원료, 시장, 통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주자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값싼 노동력이 계속 제공되었다. 1860년부터 1910년 사이 2,30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들이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독일인, 스칸디나비아 인, 아일랜드 인 등이, 이후에는 유럽 중부 및 남부인들이 주로 들어왔다.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 인 계약 노동자들 또한 하와이 대농장주들, 철도 업체 및 기타 서부 해안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미국 업체들에 의해 투입되었다.

1860년에 미국인 대부분은 농장이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1919년경에는 인구의 절반이 약 12개 도시에 집중되었다. 때문에 사람들로 북적대는 허술한 주택, 비위생적인 환경, 저임금(‘임금 노예라는 단어가 생겨남), 열악한 작업 환경, 사업에 대한 부적절한 제약 등 도시화 및 산업화에 따른 문제들이 발생했다. 노조가 생겨났고 파업은 근로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전국에 알리게 되었다. 농민들 또한 동부에 있는 J. P. 모건과 존 D. 록펠러 같은 소위 악덕 자본가들의 돈에 대한 이해관계때문에 자신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동부 은행들은 서부 발전과 농업에 결정적인 부동산 담보 대출이나 신용 대출을 팽팽하게 통제했고, 철도 업체들은 농산물을 도시로 운송하는 데 높은 가격을 매겼다. 농부들은 점점 우스갯소리의 대상이 되었고 세련되지 못한 촌뜨기(hick)’, ‘시골뜨기(rube)’라는 놀림을 당하게 되었다. 남북전쟁 후 미국인들의 이상은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었다. 백만장자의 수는 1860년에 백 명도 안 되었는데 1875년경에는 천 명을 넘어섰다.

1860년부터 1914년까지 미국은 과거 식민지였던 작고 젊은 농업국가로부터 거대하고 현대적인 산업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다. 1860년에 채무 국가였던 미국은 1914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고, 인구 또한 2배 이상 늘어나 1860 3,100만 명에서 1900 7,600만 명으로 증가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 미국은 세계 강국이 되어 있었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소외 또한 증가하게 되었다. 스티븐 크레인의 거리의 여인 매기(Maggie:A Girl of the Streets), 잭 런던의 마틴 에덴(Martin Eden),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An American Tragedy)등 당시 특징적인 미국 소설들은 경제적 힘과 소외감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개인에게 어떤 해를 입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트웨인의 헉 핀이나 잭 런던의 바다표범(The Sea-Wolf)에 나오는 험프리 밴더베이든, 드라이저의 기회주의적 여성 캐리 등은 친절함, 융통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성 등의 내적인 힘을 통해 상황을 견뎌내고 있다.

 

 

새뮤얼 클레멘스/마크 트웨인

(Samuel Clemens/Mark Twain, 1835~1910)

 

필명 마크 트웨인으로 더 유명한 새뮤얼 클레멘스는 미주리 주 미시시피 강의 변방 개척지에 속하는 한니발에서 성장했다. 모든 미국 문학은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책 한 권에서 나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은 미국 문학 전통에서 트웨인이 차지한 독보적인 위치를 대변한다. 19세기 초기 미국 작가들은, 영국인들처럼 자신들도 우아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미사여구를 즐겨 쓰거나, 감상적이거나, 혹은 과시욕이 강한 경향이 있었다. 반면 힘있고 사실적이며 구어체적인 미국 영어를 사용한 트웨인의 문체는 다른 작가들에게 미국적 목소리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트웨인은 미국에서 나온 첫 번째 대문호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유머러스한 사투리와 사회 인습을 포착해냈다.

 

트웨인을 비롯한 19세기 후반 미국 작가들에게 리얼리즘은 단순한 문학적 기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닳아빠진 관습을 파괴하는 도구였다. 따라서 리얼리즘은 심오할 정도로 해방적이며 잠재적으로 반사회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리얼리즘적 인물은 헉 핀으로, 그는 양심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법을 어긴 것에 대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흑인 노예가 자유를 찾아 도주하도록 도와주는 가난한 소년이다.

 

트웨인의 대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 1884년에 출간되었으며 미시시피 강가에 있는 마을 세인트 피터스버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이자 부랑자 아버지를 둔 헉은 괜찮은 집안에 입양되지만 술 취한 아버지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게 된다. 헉은 생명이 위태로움을 느끼고 죽음을 가장한 채 그 집을 떠난다. 그는 추방된 노예 짐과 함께 도망치는데, 짐의 주인 왓슨은 짐을 더욱더 고된 노예 생활을 해야 하는 남부 한가운데로 팔아버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헉과 짐은 뗏목을 타고 거대한 미시시피 강을 따라 흘러간다. 증기선에 의해 뗏목이 부서지는 바람에 서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사회의 다양성, 관대함, 때로 잔인하면서 비이성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우스꽝스럽고 위험한 모험을 겪는다. 마지막에 왓슨이 이미 짐을 해방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헉은 괜찮은 집안에 입양된다. 그러나 헉은 문명화된 사회를 참지 못하고 인디언의 땅으로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소설의 마지막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문명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원시적인 황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고전적인 미국 성공 신화의 또 다른 버전을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들, 월트 휘트먼의 열려 있는 길에 대한 찬가, 윌리엄 포크너의 (The Bear),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On the Road)는 이와 같은 예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수많은 문학적 해석을 유발해왔다. 명백한 것은 이 소설이 죽음, 부활, 통과의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노예 짐은 헉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짐을 구하기로 결심한 헉은 자신이 속해 있던 노예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도덕적으로 성숙한다. 헉을 복잡한 인간 본성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며 그에게 종교적 용기를 주는 것은 짐이다.

 

이 소설은 또한 조화로운 사회라는 트웨인의 이상을 극화하고 있다. 헉은 뗏목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모두가 만족하고 기분이 좋으며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멜빌의 포경선 피쿼드 호처럼 뗏목은 가라앉고, 뗏목과 함께 그 특별한 공동체도 가라앉는다. 뗏목이라는 순수하고 단순한 세계는 증기선이 상징하는 진보에 궁극적으로 무너지지만, 삶만큼 방대하고 변화무쌍한 강의 신화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현실과 환상의 불안정한 관계는 트웨인의 특징적인 주제이자 유머의 기조가 되고 있다. 트웨인의 상상 세계에서는 장대하고 기만적이며 계속 변화하는 강 또한 주된 소재다. 미시시피에서의 생활(Life on the Mississippi)에서 트웨인은 증기선 조타수로 훈련받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나는 이제 강의 모양을 배우기 위해 일하러 갔다. 내가 파악하려고 했던, 이해되지 않고 포착하기 힘든 모든 사물들 중에서 강은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고 적고 있다.

작가로서 트웨인의 윤리의식은 배를 안전한 곳으로 돌려야 하는 조타수의 책임감을 반영하고 있다. 새뮤얼 클레멘스의 필명 마크 트웨인은 보트가 안전하게 지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깊이인 두 길(3.6미터)을 의미하기 위해 미시시피 뱃사람들이 사용하는 문구이다. 유머와 스타일을 겸비한 흔치 않은 재능을 지닌 트웨인의 진지한 목적의식으로 인해, 그의 글은 신선하고 호소력 짙은 작품으로 남아 있다.

 

 

 

 

지역주의와 리얼리즘

 

 

19세기 미국 문학에서는 두 가지 주요한 경향이 마크 트웨인을 통해 결합되었다. 인기 많은 개척지 유머(frontier humor)와 지역 색채, 지역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서로 연관이 있는 이 두 가지 문학적 방법은 1830년에 시작했는데, 그전에도 지역의 구전문학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었다. 도시적 유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외진 개척지 마을이나 배 위에서, 광산 캠프에서, 카우보이 모닥불 주변에서, 이야기꾼을 통한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과장, 허풍, 자랑, 우스꽝스러운 노동자 영웅담 등이 개척지 문학에 활기를 더했다. 이런 유머러스한 형식은 옛 남서부’(현재는 남부 내륙과 중서부 아랫부분), 광산 개척지, 태평양 해안 등 많은 개척지에서 발견되었다. 각 지역은 나름대로 다채로운 인물들을 지니고 있었고,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들이 수집되었다. 미시시피 강의 선상 싸움꾼 마이크 핑크, 용감한 철도 엔지니어 케이시 존스, 힘이 엄청 센 흑인 존 헨리, 광고를 통해 명성을 쌓게 된 거인 벌목꾼 폴 번얀, 그리고 서부 사람들인 인디언과 싸운 투사 키트 카슨과 정찰병 데이비 크로켓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었고 민요나 신문, 잡지를 통해 한층 더 과장되었다. 때로 키트 카슨과 데이비 크로켓의 경우처럼 이야기들이 수집되어 책의 형태로 출간되는 경우도 있었다.

 

트웨인, 포크너 등 특히 남부 출신의 많은 작가들은 남북전쟁 이전의 개척지 유머 작가인 존 후퍼, 조지 워싱턴 해리스, 오거스터스 롱스트리트, 토머스 뱅스 소프, 조지프 볼드윈 등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들을 통해 우스꽝스러운 신조어들이 크게 확산되었다. 그런 단어들로는 ‘absquatulate(종적을 감추다)’, ‘flabbergasted(어리둥절한)’, ‘rampagious(난폭한)’ 등이 있다. ‘고리 모양 꼬리를 지닌 시끄러운 이(ring-tailed roarer)’라고 불리는 지방 허풍선이들은 자신들이 반은 말이고 반은 악어라고 주장하면서, 개척지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강조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기겁하는 자연적인 위험 요소들을 이용해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한 사람은 나는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토네이도인데, 히코리 열매처럼 단단하고 북서풍처럼 꼬리가 길다. 나는 넘어지는 나무처럼 주먹을 날릴 수 있고 내가 한번 핥으면 햇살 1에이커가 들어올 정도로 군중 사이에 큰 구멍을 만들게 된다고 과장하기도 했다.

 

 

 

 

지방색을 지닌 작가들

 

 

개척지 유머처럼 지방 색채를 담고 있는 글들은, 오래된 전통을 지니고 있었지만 남북전쟁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최고의 작품들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너새니얼 호손으로부터 시작하여 존 그린리프 휘티어와 제임스 러셀 로웰에 이르기까지 남북전쟁 많은 전 작가들은 특정 지방의 모습을 뛰어나게 그려냈다. 전후 작가들이 이전의 작가들과 다른 점은 특정한 장소에 대한 자의식적이고 집중적인 관심을 드러냈으며, 꼼꼼한 리얼리즘 기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브렛 하트(1836~1902)는 서부 광산 개척지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 <떠들썩한 캠프의 행운(The Luck of Roaring Camp)>, <포커 플랫의 추방자들(The Outcasts of Poker Flat)> 등의 모험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지방색 작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뚜렷한 성공을 거둔 하트는 잠시나마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서부 총잡이들을 다룬 낭만적인 소설 또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리얼리즘 작가 계열에 속하는 그는 교활한 도박사, 화려한 매춘부, 투박한 강도 등 사회 밑바닥 인물들을 진지한 문학 작품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하트의 작품을 극찬한 바 있는 영국의 찰스 디킨스가 그랬듯이, 하트 또한 사회의 낙오자들이 사실은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메리 윌킨스 프리먼(1852~1930), 해리엇 비처 스토, 그리고 사라 온 주잇(1849~ 1909) 등의 여성 작가들은 뉴잉글랜드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주잇의 독창성, 메인 주의 인물과 배경에 대한 정확한 관찰, 감수성 풍부한 스타일 등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은 단편소설집 뾰족 전나무의 마을(Country of the Pointed Firs)(1896)에 실려 있는 섬세한 이야기 <하얀 왜가리(The White Heron)>이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지방색 짙은 작품들, 특히 메인 주의 소박한 어촌을 그린 오스 아일랜드의 진주(The Pearl of Orr? Island)(1862)는 주잇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편지에서 보이듯, 자체적으로 서로 도와주며 영향을 받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당시엔 여성들이 소설의 주된 독자였으며 많은 여성들이 대중 소설, , 유머 등을 집필했다.

 

미국 내 모든 지역 작가들이 지방색에 영향을 받은 글을 통해 각 지방을 찬미했다. 이러한 글 중 일부는 특히 세기말이 다가오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어려움이 절박한 문제가 되어가자 사회적 저항의 내용을 포함하게 되었다. 조지 워싱턴 케이블(1844~1925)과 케이트 쇼팬(1851~1904) 등 남부 작가들의 작품에는 인종 차별과 남녀 불평등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프랑스 이주민들이 사는 루이지애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케이트 쇼팬의 힘있는 작품들은 지역 색채를 넘어서는 작품들이다. 케이블의 그랜디심스(The Grandissimes)(1880)는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를 뛰어난 예술성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 책은 열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한 여성의 운명적인 노력을 담고 있는 쇼팬의 소설 각성(The Awakening)(1899)과 함께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다. 각성은 매력적인 자식들과 너그럽고 성공한 남편을 둔 젊은 여성이 자기실현을 위해 가족, , 체면, 그리고 결국 인생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바다, (새장에 갇힌 새와 자유로운 새), 음악에 대한 시적인 묘사는 이 짧은 소설에 평범하지 않은 강렬함과 복잡성을 부여하고 있다.

샬럿 퍼킨스 길먼(1860~1935) <노란 벽지(The Yellow Wallpaper)> (1892)는 종종 각성과 비견된다. 두 작품 모두 잠시 잊혀졌다가 20세기 후반 페미니즘 문학 비평가들에 의해 재발견된 작품이다. 길먼의 이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의사는 부인의 신경 쇠약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그녀를 방에 가둠으로써 그녀를 미치게 만든다. 갇힌 부인은 자신의 상황을 벽지에 표현하는데, 이 벽지의 디자인 속에서 그녀는 철조망에 갇혀 울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중서부 리얼리즘

 

 

중요한 잡지 애틀랜틱 먼슬리의 편집자였던 윌리엄 딘 하월스(1837~1920)는 몇 년 동안 브렛 하트, 마크 트웨인, 조지 워싱턴 케이블 등의 지방색 짙은 리얼리즘 작품들을 출판했다. 그는 리얼리즘의 기수로서 소설 현대적인 이야기(A Modern Instance)(1882), 사일러스 래팜의 출세(The Rise of Silas Lapham)(1885), 새로운 운명의 모험(A Hazard of New Fortunes)(1890)에서 평범한 중산층 미국인의 감성으로 사회적 상황들을 조심스럽게 얼기설기 엮고 있다.

하월스의 등장인물들은 사랑, 야망, 이상, 유혹 등에 이끌리는데, 하월스는 황금시대인 1870년대 당시 사업계 거물들의 도덕적 타락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사일러스 래팜의 출세는 이 점을 지적하기 위해 아이러니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사일러스 래팜은 옛 사업 파트너를 속임으로써 출세하고 몇 해 동안 자신이 옳지 않은 행동을 해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데, 그의 부도덕한 행동이 결국 그의 가족을 크게 흔들어놓게 된다. 마지막에 래팜은 비윤리적인 성공 대신 파산을 선택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속죄한다. 허클베리 핀처럼 사일러스 래팜은 반성공담이며, 래팜의 사업적 추락은 그의 도덕적 상승을 의미한다. 하월스는 트웨인처럼 인생의 말기로 갈수록 정치적 문제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서며 노동조합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국제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가들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

 

헨리 제임스는 한때 예술, 특히 문학은 삶을 만들고 관심을 만들고 중요성을 만든다라고 쓴 적이 있다. 제임스의 소설과 비평은 당대의 글 중 가장 의식적이고 정교하며 또 난해하다. 일반적으로 제임스는 트웨인과 함께 19세기 후반 최고의 미국 작가로 꼽힌다.

제임스는 국제적인 주제들, 다시 말해 순진한 미국인과 국제적 사고를 지닌 유럽 인과의 복잡한 관계를 그린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전기를 쓴 레온 에델은, 제임스가 여행기 대서양 횡단 스케치(Transatlantic Sketches)(1875), 소설 미국인(The American)(1877), 데이지 밀러(Daisy Miller)(1879) 그리고 대작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1881) 등을 집필한 시기를 그의 제1기 혹은 국제적인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인에서 순진하지만 지적이며 이상적이고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인 크리스토퍼 뉴먼은 신부감을 찾아 유럽으로 건너간다. 한 여성의 가족이 귀족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거절하고, 이후 그는 복수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는 복수하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입증한다.

제임스의 제2기는 실험적인 시기로, 이때 그는 새로운 주제들을 다루었다. 보스톤 사람들(The Bostonians)(1886)에서 페미니즘과 사회 개혁을, 카사마시마 공작부인(The Princess Casamassima)(1885)에서는 정치적 음모를 그렸다. 연극 작품 또한 시도했는데, 희곡 가이 돔빌(Guy Domville)(1895)은 공연 첫날 관중의 야유를 받은 수치스러운 실패작이 되었다.

제임스는 제3기에 다시 국제적인 주제들로 돌아갔는데, 이제는 더욱 정교하고 심리학적인 통찰력으로 그 주제들을 다루었다. 복잡하고 신화적인 작품 비둘기의 날개(The Wings of the Dove)(1902), 제임스 스스로 최고작이라고 느낀 대사들(The Ambassadors)(1903), 황금의 잔(The Golden Bowl)(1904) 등이 제3기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트웨인 작품의 주제가 외관과 현실이라면 제임스의 지속적인 관심은 인식(perception)’에 있다. 제임스에게는 자각과 타자에 대한 명백한 인식만이 지혜와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가져올 수 있었다. 제임스가 개인적으로 성장하면서 그의 소설들은 더욱 심리적인 것이 되었고 외부 사건들과의 연관성은 줄어들었다. 제임스의 후기 작품들에서 중요한 사건은 모두 심리적인 것으로, 주로 등장인물이 전에 깨닫지 못했던 바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다. 예를 들어 대사들에서는 늙어가는 이상주의자 램버트 스트레더가 비밀스런 사랑 행각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적인 삶에 새로운 복잡성을 발견한다. 그가 죄를 지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니게 되면서 그의 경직되고 고지식한 도덕성은 인간적인 것이 되어간다.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 1862~1937)

 

제임스와 같이 이디스 워튼은 얼마간 유럽에서 성장했으며, 결국 유럽에 가정을 꾸린 작가이다. 그녀는 뉴욕의 부유하고 기반 닦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성장하면서 교양 있는 사회가 몰락하는 모습과 그녀의 관점으로 보면 촌스러운 졸부에 지나지 않는 사업가 가족들의 부상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그녀의 소설 다수의 배경이 되고 있다.

제임스처럼, 워튼도 미국인과 유럽 인을 대비시킨다. 그녀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사회 현실과 내적 자아 사이의 깊은 골이다. 종종 감수성이 풍부한 등장인물들은 무자비한 인물이나 사회적 압력 때문에 스스로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디스 워튼은 개인적으로 젊었을 때 작가와 아내의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오랫동안 신경 쇠약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 이와 같은 느낌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워튼의 최고 작품은 소설 환희의 집(The House of Mirth)(1905), 그 지방의 관습(The Custom of the Country)(1913), 여름(Summer)(1917),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1920), 그리고 아름다운 단편소설 에단 프롬(Ethan Frome)(1911) 등이 있다.

 

 

 

 

자연주의 및 사회 고발 소설

 

 

워튼과 제임스가 사회에서 작용하고 있는 숨겨진 성적럭姸╂?동기에 대해 정밀하게 분석한 점은 피상적으로는 매우 달라 보이는 일군의 작가들인 스티븐 크레인, 잭 런던, 프랭크 노리스, 시어도어 드라이저, 업튼 싱클레어 등과도 연결되는 특징이다. 이 자연주의 작가들은 국제적인 내용을 다룬 소설가들처럼, 그러나 훨씬 더 노골적으로, 개인과 사회를 연결시키기 위해 리얼리즘 기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를 고발했으며, 다윈 사상과 이와 관련한 철학적 원리인 결정론에 영향을 받았다. 결정론은 개인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렌?힘에 무력하게 저당 잡힌 존재로 파악하는 사상이다.

자연주의는 본질적으로 결정론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층 계급의 생활을 처량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결정론은, 종교를 세상에서 동기를 부여해주는 힘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우주를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는 사상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 또한 세상을 기계로 파악한 바 있으나, 자연주의자와는 달리 신에 의해 창조되고 진보와 인간 향상을 위해 나아가는 완벽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자연주의자들은 사회를 신이 존재하지 않고 통제 불가능한 맹목적인 기계라고 상상했다.

19세기 미국 역사가 헨리 애덤스는 기계의 힘인 동(dynamo)과 힘의 쇠퇴인 엔트로피(entropy) 개념을 포함한 정교한 역사 이론을 주창했다. 애덤스는 인간 사회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쇠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성직자의 아들이었던 스티븐 크레인은 신의 상실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 사람이 우주에 말했다.

보십시오, 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고 우주가 대답했다.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책임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는걸.”

 

낭만주의처럼 자연주의도 유럽에서 처음 발생했다. 주로 1840년에 씌어진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구스타브 플로베르, 에드몽 공쿠르과 쥘 공쿠르 형제,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등과 관련된 프랑스 문학 운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연주의 소설들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과감하게 펼쳐 보였고, 이혼렐볜간통렉箚切범죄 등의 주제들을 다루었다.

미국이 도시화되고 사람들이 거대한 경제적렌?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자 자연주의가 융성하기 시작했다. 1890년경에 개척지는 공식적으로 미국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거의 모든 미국인들은 도시에 거주했고, 사업은 심지어 멀리 떨어진 농장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 1871~1900)

 

뉴저지에서 태어난 스티븐 크레인은 1세기 전 독립전쟁 때의 군인, 성직자, 보안관, 판사, 농부 등의 후손이었다. 우선적으로 저널리스트였으며 소설, 수필, , 희곡 등을 집필한 크레인은 민가나 전쟁터 등지에서 적나라한 삶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의 단편소설들, 특히 <난파선(The Open Boat)>, <파란 호텔(The Blue Hotel)>, <신부, 옐로 스카이에 오다(The Bride Comes to Yellow Sky)> 등은 자연주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북전쟁에 관한 그의 흡입력 있는 소설 붉은 무공훈장(The Red Badge of Courage) 1895년 많은 찬사 속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그는 건강을 무시하다가 29살로 요절하여, 그러한 문단의 관심을 즐길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는 20세기 초반 20년 동안 완전히 잊혀졌다가 1923년 토머스 비어의 찬사 섞인 전기문을 통해 부활했다. 이미 세상을 떴지만 크레인은 보통 사람을 위한 투사, 리얼리스트, 상징주의자 등으로 일컬어지면서 명성을 쌓게 되었다.

크레인의 거리의 여인 매기(1893)는 최고의 미국 자연주의 소설 중에 하나이다. 이 소설은 가난하고 감수성 풍부한 소녀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교육받지도 못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소녀의 부모는 딸을 돌보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에 빠지고 폭력적인 가정생활에서 도망치고 싶어 젊은 남자와 같이 살게 되는데, 이 남자는 곧 그녀를 버린다. 그녀는 독선적인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하자 생존을 위해 매춘부가 되고 곧 절망에 싸여 자살한다. 크레인의 세속적인 주제와 교훈을 배제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문체 때문에 거리의 여인 매기는 자연주의 작품이라는 꼬리표를 얻게 되었다.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

 

캘리포니아 출신으로서 독학으로 글을 깨우친 노동자이자 자연주의자였던 잭 런던은, 알래스카의 클론다이크 지역과 캐나다 유콘 지역을 대부분의 배경으로 한 첫 번째 단편소설집 늑대의 아들(The Son of the Wolf)(1900)로 가난을 벗어나 곧바로 명예를 얻게 되었다. 야생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1903), 바다표범(1904) 등을 포함한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통해 당시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작가가 되었다.

자전적인 소설 마틴 에덴(1909)은 런던이 가난하게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내적인 압박감을 묘사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지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선원 노동자인 에덴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결국 그는 글을 통해 부자가 되고 명성도 얻게 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단지 그의 돈과 명예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한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된다. 그는 더 이상 노동자 계급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고, 동시에 부유층의 물질적인 가치마저 거부하면서 계급적 소외감을 겪게 된다. 결국 그는 남태평양을 항해하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당시 최고의 소설들 다수가 그렇듯이 마틴 에덴은 반성공담이다. 엄청난 부에 담겨 있는 절망을 드러낸 점에서 이 소설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선행하는 작품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 1871~1945)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1925년 작품 미국의 비극은 런던의 마틴 에덴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위험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의지가 약하고 자기 인식 능력이 결여된 소년 클라이드 크리피스의 삶을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크리피스는 유랑민 복음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나 매우 가난하게 성장하지만 부의 성취와 아름다운 여성과의 사랑을 꿈꾼다. 그러다 부유한 삼촌에게 고용되어 그의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의 여자친구 로버타는 임신하게 되자 그에게 결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클라이드는 돈, 성공, 사교계 입문을 대표하는 부유한 여성과 사랑에 빠진 상태이다. 클라이드는 배를 타고 나가 로버타를 익사시키려 조심스럽게 계획하지만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우연하게 배에서 떨어진다. 수영을 잘하는 클라이드였지만, 그는 그녀를 구하지 않는다. 클라이드가 법정에 서게 되면서 드라이저는 그의 이야기를 거꾸로 재생시킨다. 이때 드라이저는 원고와 피고 측 변호사들의 입을 빌려 종교적 배경과 유복한 가족 인맥을 지닌 온순한 클라이드가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상황 및 동기를 분석한다.

어색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드라이저는 미국의 비극을 통해 압도적인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정확한 세부 묘사는 어쩔 수 없는 비극이라는 느낌을 이끌어낸다. 이 소설은 삐뚤어진 미국적 성공 신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동시에, 도시화 및 현대화로 인한 소외로부터 발생하는 압박감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그 속에는 박탈당한 자들의 낭만적이고 위험한 환상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미국의 비극은 성공 위주의 경쟁 사회에서 많은 가난한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불만, 시기심, 절망을 반영한 것이다. 산업화가 가속화될수록 신문과 사진에 나타나는 부유한 사람들의 화려한 삶은 평범한 농민들이나 도시 근로자들의 단조로운 삶과 크게 대비되었다. 미디어는 점점 더 커지는 기대감과 비이성적인 욕망을 부채질했다. 국가가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사회 문제를 보도하고 사회 개혁에 중요한 자극제를 제공하는 통찰력 있는 조사 보고서 위주의 저널리즘이 발생하게 되었다.

 

위대한 미국적 조사 보도(investigative journalism)의 전통은 이 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 맥클루어스(McClures)콜리어스(Collier?)등 전국적인 잡지들은 이다 M. 타벨의 스탠더드 석유 회사의 역사(History of the Standard Oil Company)(1904), 링컨 스테펀스의 도시의 수치(The Shame of the Cities)(1904) 및 기타 충격적인 폭로 서적들을 간행했다. 사회 문제 고발 소설들은 힘든 작업 환경이나 탄압을 묘사하기 위해 시선을 끄는 저널리즘 기법들을 사용했다. 민중주의자인 프랭크 노리스의 문어(The Octopus)(1901)는 거대 철도 회사들의 횡포를 폭로했고, 사회주의자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The Jungle)(1906)은 시카고 육류 포장 공장의 불결한 위생 상태를 묘사했다. 잭 런던의 디스토피아적 소설 강철 군화(The Iron Heel)(1908)는 조지 오웰의 1984(Nineteen Eight-four)에 앞서 계급 간의 전쟁과 정부 전복을 예견했다.

 

고발 소설보다 더욱 예술적인 작품은 보통 사람들과 절망으로 가득한 그들의 정신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혹은 작품집이었다. 윌리엄 딘 하월스의 프로테제(영적 피양육자-옮긴이) 햄린 갈랜드(1860~1940)의 단편집 주로 지나가는 길(Main-Travelled Roads)(1891)은 일반인들의 초상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농업 개혁을 요구하는 중서부 농민들의 가난한 삶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목은 용감한 개척자들이 따라갔던 서쪽으로 난 많은 길과 그들이 정착한 마을에 있는 먼지 나는 대로大路를 의미한다.

갈랜드의 주로 지나가는 길과 유사한 소설은 1916년부터 발표된 셔우드 앤더슨(1876~1941)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Winesburg, Ohio)이다. 이 소설은 순진하고 젊은 신문기자 조지 윌라드의 눈에 비친 허구적인 마을 와인즈버그의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윌라드는 결국 도시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마을을 떠나게 된다. 주로 지나가는 길과 같은 당대의 기타 자연주의적 작품들처럼, 이 작품 역시 소박한 미국의 가난, 외로움, 절망을 강조하고 있다.

 

 

 

시카고 그룹의 시

 

 

일리노이 주에서 성장하여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던 3명의 중서부 시인들은 칼 샌드버그, 바셀 린지, 에드거 리 매스터스이다. 이들의 시는 대개 조명받지 못하는 개인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또한 리얼리즘, 극화 등의 기법을 개발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동해안 문학계에 도전하기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 전에 설립된 중서부 학파, 혹은 시카고 그룹에 속하는 시인들이었다. ‘시카고 문예부흥운동은 미국 문화의 분수령이 되었으며 미국이 내부적으로 성숙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에드거 리 매스터스(Edgar Lee Masters, 1868~1950)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시카고는 새로운 건축과 세계적인 예술 작품들을 지닌 위대한 도시가 되었다. 시카고는 또한 당대에 가장 중요한 문학잡지인 해리엇 먼로의 포이트리(Poetry)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이 잡지에 실린 흥미로운 현대 시인들 중에 에드거 리 매스터스가 있었는데, 그의 과감한 시집 스푼 리버 선집(Spoon River Anthology)(1915)은 시적이지 않은 구어체의 새로운 문체, 성에 대한 솔직한 표현, 시골 생활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깊은 상상력 등의 특징을 담고 있다.

스푼 리버 선집은 마을 사람 개인의 생애를 요약하는 구어체의 비문碑文 형식을 빌려 마치 이들이 직접 말하는 것처럼 이들의 초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공동묘지를 통해 시골 마을의 전체 풍경을 담았는데, 그곳에 묻혀 있는 250인은 자신들의 비밀을 폭로한다. 사람들은 대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20개 가족들은 현대적인 자유시 형태의 독백으로 자신들의 꿈과 좌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1878~1967)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칼 샌드버그에 대해 짧게 적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흑백사진 한 장으로 그랜드캐니언을 담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시인이자 역사가, 전기작가, 소설가, 음악가, 수필가이기도 했던 샌드버그는 철도 제철공의 아들로 태어나 수많은 일을 한 인물이다. 직업적으로는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20세기 고전 작품 중 하나인 거대한 분량의 에이브러햄 링컨 전기를 집필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샌드버그는 범위가 넓고 기억을 상기시키는 도시적, 애국적 시들을 창작하며 단순하고 순수한 동요 및 민요 형식을 이용한 점에서 월트 휘트먼을 연상시킨다. 그는 자신의 시를 노래하는 듯 경쾌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낭송하고 녹음하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전국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우쭐해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은 감옥에 가지 않고, 제때에 밥을 먹으며, 내가 쓴 것을 출간하고, 가정과 미국 전역에서 자그마한 애정을 받으며, 날마다 노래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제와 휘트먼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시카고(Chicago)>(1914)라는 시이다.

 

 

세상 사람들을 위한 돼지 도살자,

연장 제조자, 밀을 저장하는 자,

철도에서 일하는 자, 국가의 화물 취급자;

격렬하고, 튼튼하고, 요란한

큰 어깨들의 도시.

 

 

바셀 린지(Vachel Lindsay, 1879~1931)

 

바셀 린지는 중서부의 소박한 민중주의 찬미자이자, 큰 소리로 읽을 수 있는 강하고 운율적인 시를 쓴 시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한편으로는 기독교 성가나 보드빌(vaudeville, 촌극런ㅄ諭慢음악 등이 포함된 대중적인 버라이어티 연극)과 같은 대중적이고 민속적인 시 형태를, 다른 한편으로는 발전된 모더니즘 시학을 미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린지의 시 낭송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재즈 음악과 함께 이루어졌던 비트(Beat)’ 시인들의 시 낭송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시의 대중화를 위해 린지는 고품격 보드빌이라고 스스로 명명한, 음악과 강렬한 리듬을 활용한 시 낭송법을 개발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인종 차별적으로 들릴 수 있는 시이자 그의 유명한 작품인 <콩고 강(The Congo)>(1914)은 재즈, , 음악, 성가를 섞어 아프리카 인들의 역사를 찬미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채프먼을 각각 시 <에이브러햄 링컨, 자정에 길을 걷다(Abraham Lincoln Walks at Midnight)> <조니 애플시드(Johnny Appleseed)>를 통해 찬미하는 등, 신화와 사실을 섞어가며 미국의 유명 인사들을 시로 다루었다.

 

 

에드윈 알링턴 로빈슨(Edwin Arlington Robinson, 1869~1935)

에드윈 알링턴 로빈슨은 19세기 후반 최고의 미국 시인이다. 에드거 리 매스터스처럼 그 또한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짧고 아이러니 가득한 묘사로 유명하지만, 매스터스와는 달리 전통적인 각운법을 사용했다. 로빈슨이 창조해낸 가상의 마을 틸버리 타운은 매스터스의 스푼 리버처럼 절망적인 인생의 모습을 담고 있다.

로빈슨의 극적 독백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버림받은 애인에 관한 <루크 하버갈(Luke Havergal)>(1896), 낭만적인 몽상가에 대한 초상인 <미니버 치비(Miniver Cheevy)>(1910), 그리고 자살하는 부유한 남성에 대한 우울한 초상인 <리처드 코리(Richard Cory)>(1896) 등이 있다. <리처드 코리>는 다음과 같다.

 

 

리처드 코리가 시내로 갈 때마다

우리들은 길에서 그를 쳐다봤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사였는데

잘생기고 제왕과 같이 몸매가 좋았으며

 

 

또한 항상 정갈하게 옷을 입었다.

그가 말할 때 그는 항상 인간미가 넘쳤다.

그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할 때 맥박은 강하게 고동쳤으며

그리고 그가 걸을 때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는 부자였다. 왕보다도 더 부유했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훌륭한 교양을 쌓았다.

요컨대 그는 우리가 그였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했고, 빛을 기다렸다.

우리는 고기 없이 살았고, 빵을 저주했다.

그런데 리처드 코리는 어느 고요한 여름밤

집으로 돌아가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리처드 코리>마틴 에덴, 미국의 비극,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맥락에서, 백만장자의 시대에 미국인들을 괴롭힌 과장된 성공 신화를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여성 지역 소설가 2

 

 

엘렌 글래스고(1873~1945)와 윌러 캐더(1873~1947)는 지역 특색을 담고 있는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여성의 삶을 탐색한 작가들이다. 두 소설가 모두 처음부터 특별히 여성의 문제를 다룬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초기 작품들에는 주로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예술적 자신감과 원숙미를 얻고 나서야 그들은 여성의 삶을 묘사하는 데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들의 작품은 분류하기 매우 힘들기 때문에, 글래스고와 캐더는 편의상 여성 작가들로 간주될 수 있다.

 

글래스고는 남부동맹의 옛 수도였던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 출생이다. 그녀의 사실주의적 소설들은 남부의 경제가 농업 경제에서 산업 경제로 변모해가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버지니아(Virginia)(1912) 등 원숙미가 느껴지는 작품들은 남부의 경험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녀의 최고작으로 일컬어지는 불모지(Barren Ground)(1925) 같은 후기 소설들은 밀실공포증을 유발하는 전통적 남부 코드인 여성의 가정에 대한 충실성, 신앙심, 의존성 등을 타파하려는 재능 있는 여성들을 극화하고 있다.

역시 버지니아 출신인 캐더는 네브래스카 초원에 살았던 초기 이주자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이런 성장 배경을 통해 , 개척자여!(O Pioneers!)(1913),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1918) 등의 소설과 유명한 단편소설 <이웃 로시키(Neighbour Rosicky)>(1928)를 집필했다. 그녀는 살면서 물질적인 현대 생활에서 점점 더 멀어졌고, 미국 남서부와 과거 속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글을 썼다.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Death Comes for the Archbishop)(1927)는 뉴멕시코 사막에 가톨릭 교회를 설립한 16세기 성직자 2명의 이상주의를 그리고 있다. 캐더의 작품들은 문학계의 주류 밖에 있는 미국적 경험의 중요한 면, 즉 개척이나 종교의 설립, 여성의 독립적인 삶 등을 담았다.

 

 

 

 

미국 흑인 문학의 발생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문학적 성취는 남북전쟁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발전이었다. 미국 흑인 문학은 부커 T. 워싱턴, W. E. B. 뒤 보이스, 제임스 웰든 존슨, 찰스 워델 체스넛, 폴 로렌스 던바 등의 작품들을 통해 확고히 뿌리를 내렸으며, 특히 자서전렝?문학렐낢낮시럼?등의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 1856~1915)

 

교육자이자 당대 가장 두드러진 흑인 지도자였던 부커 T. 워싱턴은 버지니아 주 프랭클린 카운티에서 노예 소유자인 백인 아버지와 노예 신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노예로 성장했다. 그의 섬세하고 소박한 자서전 노예 신분으로부터의 상승(Up From Slavery)(1901)은 출세를 위한 자신의 성공적인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해방된 미국 흑인들을 미국 사회의 주류에 포함시키기 위하여 주장한 백인들과의 타협 정책은 유명한 애틀랜타 박람회 연설문(1895)에 드러나 있다.

 

 

W. E. B. 뒤 보이스(W. E. B. Du Bois, 1868~1963)

 

뉴잉글랜드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와 독일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W. E. B. 뒤 보이스는 <부커 T. 워싱턴 및 다른 이들에 대하여(Of Mr. Booker T. Washington and Others)>라는 수필을 집필했다. 이 수필은 후에 그의 명저인 흑인의 영혼(The Souls of Black Folk)(1903)에 수록되었다. 뒤 보이스는 이 수필에서 워싱턴이 많은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 차별, 즉 흑인들에 대한 불평등하고 분리된 처우를 받아들였으며, 이런 차별이 어쩔 수 없이 흑인들을 특히 교육에서 불리하게 만들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창설자였던 뒤 보이스는 또한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논평을 집필했다. 그의 작품은 흑인 지식인들로 하여금 흑인들의 풍부한 민속 문학과 음악을 재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

 

 

제임스 웰든 존슨(James Weldon Johnson, 1871~1938)

 

뒤 보이스와 마찬가지로 시인 제임스 웰든 존슨 또한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정신세계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시 <, 무명의 흑인 시인들이여(O Black and Unknown Bards)>(1917)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노래 내 영혼 예수님에게와 같은 멜로디는

어느 노예의 마음에서 뿜어져 나온 것인가?

그 노래 위에서 그의 영혼은 밤마다 자유롭게 떠다녔으리라,

그의 손에는 비록 아직도 쇠사슬이 채워져 있지만.

 

 

백인과 흑인의 혼혈 조상을 둔 존슨은 백인으로 통하는 혼혈 남성에 대한 허구적인 소설 유색인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n Ex-Colored Man)(1912)에서 복잡한 인종 문제를 다루었다. 이 책은 흑인들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찰스 워델 체스넛(Charles Waddell Chesnutt, 1858~1932)

 

찰스 워델 체스넛은 여자 주술사(The Conjure Woman)(1899)젊은 날의 아내(The Wife of His Youth)(1899) 2권의 단편집과 전통의 정수(The Marrow of Tradition)(1901)를 포함한 몇 권의 장편소설, 그리고 프레더릭 더글러스 전기 등을 저술한 작가이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그의 단편소설들은 인종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었지만 예상 가능한 결말이나 일반화된 감정은 피했다. 등장인물들은 인종을 포함한 많은 것들에 대해 복잡한 태도를 지닌 독특한 개인들이다. 체스넛은 가끔 흑인 사회의 강한 면을 보여주면서 윤리적 가치와 인종 간의 유대를 강조했다.

 

 

 

 

CHAPTER _ 6 모더니즘과 실험 : 1914~1945

 

 

 

 

비록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으며(1917~1918), 사상자 또한 유럽 동맹국이나 적군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두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를 정신적 충격을 받은 미국의 성년기로 특징지었다. 존 더스 패서스는 소설 세 군인(Three Soldiers)(1921)에서 전후의 환멸감을 표현하면서 문명은 방대한 허위의 구조물이며, 문명이 부스러기가 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문명을 가장 완전하고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전쟁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모습으로 귀향했고, 다시는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시골 출신의 군인들 또한 쉽게 자신들의 뿌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세상을 경험한 후이기 때문에 다수는 이제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파종, 수확, 묶음을 위한 새로운 기계들이 농장들의 인력 수요를 급감시켰다. 그러나 생산성 증대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가난했다. 도시 노동자의 임금처럼 곡식 가격은 사업 이익을 챙기려는 통제되지 않은 시장의 힘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농민이나 노동자를 위한 정부 보조금 제도는 아직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1925년에 미국인들에게 주된 관심사는 비즈니스이다라고 선포했으며 대부분 이 말에 공감했다.

 

전후의 거대한 붐 속에서 사업은 번창했으며 성공한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처음으로 다수의 미국인들이 고등 교육 기관에 등록해, 1920년대에는 대학 등록자 수가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중산층은 부유해졌으며,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국가 평균 수입을 기록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지위의 상징인 자동차를 구입했다. 전형적인 도시 가정에는 전깃불이 들어왔으며, 가정을 바깥 세계와 연결하는 라디오와 전화기가 설치되었고, 카메라렴맛未綏재봉틀 등도 자랑스럽게 구비되었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배빗(Babbit)(1922)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평범한 미국인들은, 이러한 기계들이 현대적이기 때문에, 또한 대부분 미국에서 발명되고 미국에서 제조된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했다.

 

포효하는 1920년대미국인들은 현대적인 오락물들과 사랑에 빠졌다. 대부분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보러 갔다.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18조에 따라 미국 전역에 알코올 생산, 운송, 판매를 금지한 금주법이 1919년에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즈와 칵테일, 과감한 스타일의 옷과 춤으로 특징지어지는 지하 무허가 술집과 나이트클럽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 영화, 자동차 여행, 라디오 등에 온 국민이 열광했다. 특히 미국 여성들은 자유를 만끽했다. 많은 여성들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후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농장이나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서 현대적인 여성으로 변모했다. 그들은 주로 단발머리에 플래퍼(flapper)’ 스타일의 짧은 옷을 입었고, 1920년에 통과된 헌법 수정조항 제19조에 따른 여성 투표권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여성들은 또한 과감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했고, 사회에서도 공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유럽의 젊은이들은 야만적인 전쟁,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나이든 세대, 어려운 전후 경제 상황 등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며 반항했다. 아이러니한 일은 이러한 경제적 상황 때문에 F.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등 여유 있는 미국인들이 유럽에서 적은 돈을 가지고도 생활을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프로이트 심리학과 마르크스주의 등 당시의 지식 풍조는 이보다 앞선 다윈의 진화론처럼 신이 존재하지 않는세계관을 표현했으며, 또한 전통적인 가치의 붕괴를 거들었다. 해외에 사는 미국인들은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 후 미국으로 돌아와 정착하면서 젊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불씨를 댕겼다. 예컨대 20세기 미국 소설가인 윌리엄 포크너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 프로이트적인 요소를 이용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진지한 미국 소설가들은 모두 프로이트적인 요소를 사용했다.

 

밖으로 보이는 쾌활함과 현대성, 전례 없는 물질적 번영 등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이 명명했듯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였다.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가치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개인은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 안정적인 가족, 익숙하고 기틀 잡힌 사회, 농장에서 파종과 수확을 알려주는 자연의 영원한 리듬, 지속적인 애국주의, 종교적인 믿음과 사고에 의해 심어진 도덕적 가치들, 이 모든 것이 제1차 세계대전과 그 후유증으로 훼손된 것처럼 보였다.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와 피츠제럴드의 낙원의 이편(This Side of Paradise)(1920)을 비롯한 수많은 소설들이 잃어버린 세대의 무절제와 환멸을 그렸다.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친 T. 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The Waste Land)(1922)에서는 서구 문명이 비(영적인 갱생)가 절실하게 필요한 음산한 사막으로 상징되고 있다.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은 미국인 대부분에게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고 공장은 문을 닫았으며 기업들과 은행들은 파산했고, 작물을 수확하여 운송하거나 팔 수 없는 농부들은 빚을 갚지 못해 농장을 잃어야 했다. 중서부의 가뭄은 미국의 곡창지대에 먼지가 날리게 만들었다. 많은 농부들이 직장을 찾아 중서부를 떠나서 캘리포니아로 향했는데, 이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39)에 묘사되어 있다. 대공황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전체 미국인의 3분의 1이 실업자가 되었다. 무료 급식소, 판자촌, 실직하여 불법으로 화물차를 타는 부랑자 등이 미국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공황을 지나친 물질주의와 안이한 생활에 대한 처벌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중서부 하늘을 검게 물들였던 먼지 폭풍을 보면서 한낮의 회오리바람, 정오의 어둠이라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믿었다.

 

대공황은 세계를 뒤집어놓았다. 1920년대에 비즈니스라는 복음을 전파한 미국인들 다수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같은,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지지하게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방 자금을 통해 공공 부문과 자연 보호, 시골 지역 전기 보급 등에서 일자리를 창출했다.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에게는 벽화를 그리고 정부 책자를 발간하게 하여 임금을 지불했다. 이 정책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야 산업적인 건설을 통해 경제 성장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수 있었다. 1941 12 7일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한 후 사용되지 않던 조선소와 공장들이 선박, 비행기, 지프차, 군대 물자 등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군수품 생산 및 실험은 핵무기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 개발을 이끌었다. 첫 번째 핵무기 폭발 실험을 목격한 국제적인 핵 과학자 팀의 지도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나는 세상의 파괴자인 죽음이 되었다라는 힌두교의 시를 인용했다.

 

 

 

 

모더니즘

 

 

20세기 초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점증적으로 부상한 모더니즘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흐름은, 서양 문명의 고전적 전통뿐만 아니라 과거와도 날카롭게 단절한 예술로 현대적인 삶의 느낌을 표현했다. 현대적인 삶은 전통적인 삶과는 매우 달라 더욱 과학적이고 빠르며,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것처럼 보였다. 모더니즘은 이러한 변화를 껴안았다.

문학에서는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이 현대 미술과 유사한 글쓰기를 창안했다. 파리지엔이자 미술품 수집가(그녀와 그녀의 오빠 레오는 세잔, 고갱, 르느와르,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구입했다)였던 스타인은 글을 쓰는 자신과 그림을 그리는 피카소는 사실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녀는 물감 대신 단순하고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해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시를 개발했다. 스타인의 단순한 단어들의 순수한 면은 현대 미술의 밝은 원색을 연상시키며, 반복적인 표현은 추상적인 시각 구상 작품의 반복적인 모양을 반영하고 있다. 그녀는 문법과 구두법을 혼란스럽게 씀으로써 새로운 추상적의미들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그녀의 시집 부드러운 단추들(Tender Buttons)(1914)에서는 입체파 그림처럼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있다.

 

 

탁자를 탁자는 의미하지 않는다 내

사랑아 그것은 완전한 안전함을 의미한다.

변화 가능성이 높다. 탁자는

유리잔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하며

심지어 유리거울은 크다.

 

스타인 작품에서 의미는 기법에 종속하는데 이는 추상 시각미술에서 형식이 소재보다 더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주제와 기법은 그 당시 시각미술과 문학 모두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술과 문학에서 초석이 된, 내용의 등가물等價物로서의 형식이라는 개념이 빛을 발했던 것이다.

공장과 기계 산업에서의 기술 혁신은 예술의 기법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자면 빛, 특히 전깃불은 현대 미술가와 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포스터와 광고는 투광조명을 비춘 고층 빌딩 이미지와, 무지와 낡은 전통을 의미하는 삭막한 어둠을 밝히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극장, 감시탑에서 나오는 빛줄기들의 이미지로 가득했다.

과학 발전을 통해 사진이 예술의 위치에 오르기 시작했다. 사진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는 뉴욕 시에 화랑을 열고 1908년까지 피카소와 거트루드 스타인의 유럽 친구들의 작품 등 최신 유럽 작품들을 전시했다. 스티글리츠의 화랑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시인들 중 한 명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윌리엄스는 이미지의 사진적인 명쾌성을 연마했는데, 그의 미학적 격언은 사상이 아니라 사물을 통해서(no ideas but in things)”였다.

시각과 관점은 모더니즘 소설에서도 본질적인 면이 되었다. 직접적인 3인칭 서술이나 혹은 부적절하게 참견하는 화자의 사용은 더 이상 충분한 서술 방법이 되지 못했다.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이, 이야기 자체만큼이나 중요해졌다.

헨리 제임스, 윌리엄 포크너를 비롯한 많은 미국 작가들은 허구적인 시점에 대해 실험했으며, 일부 작가들은 아직도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제임스는 종종 소설 속의 정보를 한 인물이 알고 있는 정보만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포크너의 소설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1929)는 이야기를 전체 4장으로 나누어 각 장마다 다른 인물(정신지체아까지 포함해)의 관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 모더니즘 작품들을 분석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새로운 비평 언어를 지닌 신비평(New Criticism)’이 등장했다. 신비평 학자들은 에피파니(epiphany, 인간들에게 성인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로, 현대 문학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자신이 처한 상황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의미한다)’를 찾으려 했으며, 자신들의 통찰력으로 작품을 조명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을 철저히 분석하고 명료화했다.

 

 

 

 

1914~1945년의 시:형식 실험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에즈라 파운드는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미국 시인 중 한 명이다. 파운드는 1908년부터 1920년까지 런던에 거주하면서 많은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그중에는 자신이 비서로 일했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자신이 과감하게 편집하고 수정했던 시 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이 있었다. 파운드는 미국과 영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해리엇 먼로의 중요한 시카고 잡지 포이트리에서 공헌도 높은 편집자로 일했다. 그는 또한 매우 시각적이고 명료한 표현을 옹호하는 이미지즘이라는 새로운 시 운동의 선봉에 섰다. 이미지즘에 따라 다양한 시적 접근을 시도하던 파운드는 이탈리아로 가서 파시즘에 빠지게 되었다.

파운드는 편지, 수필, 시선집 등을 통해 이미지즘을 진전시켰다. 1915년 먼로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상투어나 관용구등을 피하며 현대적인 음성을 지닌 시각적 시를 옹호한다고 했다. 그는 <이미지즘 시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A Few Don?s of an Imagiste)> (1913)라는 글에서 이미지를 순간에 지적이고 감성적인 복잡성을 전달하는 무엇이라고 정의했다. 1914년 파운드가 시인 10인의 시를 모은 선집 이미지즘 시인들(Des Imagistes)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힐다 두리틀, 에이미 로웰 등을 비롯한 뛰어난 작가들의 이미지즘 실례를 수록하고 있다.

파운드의 관심과 독서는 세계적이었다. 그의 번안물과, 더러 틀린 점도 있지만 대체로 훌륭했던 번역물들은 다양한 문화로부터의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미국의 현대 작가들에게 소개했다. 그의 역작은 캔토스(The Cantos), 눈을 감는 날까지 집필하고 출간했던 시들이다. 훌륭한 시구를 담고 있는 캔토스는 다양한 시대 및 문화로부터 온 문학과 예술 작품을 인유하고 있어 난해하다. 파운드의 시는 명백한 시각 이미지, 신선한 운율, 남성적이고 지적이며 평범하지 않은 글귀로 유명하다. 이러한 특성은 <캔토 81>에 나오는 용의 세계에서 개미는 켄타우루스다라는 표현과 다음의 <지하철역에서(In a Station of the Metro)>(1916) 같은 일본 하이쿠로부터 영감을 받은 시들에 나타나 있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얼굴들;

축축한 검은 나뭇가지의 꽃잎들.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은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 소르본 대학, 옥스퍼드 대학의 머튼 칼리지 등에서 공부한 그는 동시대 주요 미국 작가들 중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은 작가였다. 그가 공부했던 산스크리트 어와 동양 철학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파운드처럼 그도 일찍 영국으로 건너가 문학계에서 거대한 인물이 되었다. 당시 가장 존경받는 시인 중 한 명이었던 엘리엇의 모더니즘적이고 보기에 비논리적이거나 추상적인 새로운 시들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또한 영향력 있는 수필과 희곡을 집필해 현대 시인들에게 문학적렌?전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비평가로서 엘리엇은 객관적 상관물을 공식화시킨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는 신성한 숲(The Sacred Wood)에서 객관적 상관물을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공식이 되는 한 무리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J. 앨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1915)는 이런 접근법을 구체화한 것으로, 이 시에서 나이든 화자 프루프록은 스스로 커피 스푼으로 내 삶을 쟀다고 생각하는데, 이 구절에서는 단조로운 존재와 낭비된 인생의 반영으로 커피 스푼이라는 상관물이 사용되었다.

<프루프록의 연가>의 유명한 서두는 현대적인 삶처럼, 인생이 던지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 천박한 골목길로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

 

 

자 우리 갑시다, 당신과 나

수술대 위에 누운 마취된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을 배경으로 사지를 뻗고 있는 지금

우리 갑시다, 반쯤 인적 끊긴 어느 거리를 통해

싸구려 일박 여인숙에서의 불안한 밤이

중얼거리며 숨어드는 곳,

굴 껍질 흩어져 있는 톱밥 깔린 레스토랑을 지나

위압적인 질문으로 당신을 인도할

음흉한 의도의

지루한 논쟁처럼 이어진 거리들을 지나

, 묻지는 마세요, “무엇이냐?”라고.

일단 가서 방문해봅시다.

 

 

1차 세계대전 즈음 런던의 분주한 거리를 환기시키기 위해 단테의 지옥을 반영하는 황무지(1922)에서도 비슷한 이미지가 가득 배어 있다.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런던 다리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을 죽음이 망쳤으리라고는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I, 60-63)

황무지의 비전은 궁극적으로 묵시록과 같은 보편성을 지닌 것이다.

 

 

보랏빛 허공 속에 있는 깨어짐 재건 그리고 다시 터짐

무너지는 탑들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런던

현실감이 없는 (V, 373-377)

 

 

엘리엇의 다른 주요 작품 중에는 서구 사회의 노쇠함을 상징하기 위해 노인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작은 노인>(1920), 인간성 상실에 대한 감동적인 만가인 <텅 빈 사람들(The Hollow Men)>(1925),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영국 국교회로 마음을 돌리고 있는 재의 수요일(Ash-Wednesday)(1930), 시간과 자아의 본질, 영적인 각성 등 초월적인 주제에 대한 복잡하고 실험적인 명상시 4개의 4중주(Four Quartets)(1943) 등이 있다. 그의 시, 특히 과감하고 새로운 초기 작품들은 몇 세대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로버트 리 프로스트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까지 미국 북동부에 있는 농장에서 성장했다. 엘리엇과 파운드처럼 그도 영국으로 건너갔고 새로운 시운동에 이끌렸다. 카리스마적인 시 낭송가였던 그는 순회공연으로 명성을 날렸고,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는 자작시를 낭송해, 시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촉발하기도 했다. 그의 인기는 쉽게 설명되는데, 전통적인 농장 생활에 관한 시를 씀으로써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프로스트의 소재는 사과 따기, 돌담, 울타리, 시골길 등으로 보편적인 것들이었다. 그는 명쾌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창작했다. 그는 인유나 생략법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각운脚韻 또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프로스트의 작품은 종종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거의 최면적인 각운을 지닌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1923)라는 시에서 배경이 되는 조용히 눈 내리는 저녁은 죽음에 대한 차분한 태도를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게 누구의 숲인지 알 듯하다.

그 사람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 멈춰 서서

자신의 숲에 눈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내 조랑말은 나를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

근처에 농가라곤 하나 없는데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서

연중 가장 캄캄한 이 저녁에 길을 멈추었으니.

 

 

말은 방울을 흔들어댄다,

뭐가 잘못됐느냐고 묻기라도 하듯.

그밖의 소리는 오직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소리, 부드러운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1955)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난 월러스 스티븐스는 하버드 대학과 뉴욕 대학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1904년부터 1916년까지 법률 활동을 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겸했다. 1916년 보험회사의 간부가 되기 위해 코네티컷의 하트퍼드로 이사를 가서도 시를 계속 창작했다. 그의 삶은 놀랍게도 시인으로서의 생활과 직장인으로서의 생활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는데, 보험회사 관계자들은 그가 당시 유명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풍금(Harmonium)(1931년 개정판), 질서의 관념들(Ideas of Order)(1935), 세계의 부분들(Parts of a World)(1942) 등과 같은 적절하게 이름 지어진 시집에서 보이듯이 평생 미학적인 질서에 대한 매우 복잡한 생각들을 개발하는 데 매진했다. 그의 유명한 시들 중에는 <일요일 아침(Sunday Morning)>, <건반 앞의 피터 퀸스(Peter Quince at the Clavier)>, <아이스크림의 황제(The Emperor of Ice-Cream)>, <검은새를 보는 13가지 방법(Thirteen Ways of Looking at a Blackbird)>, <키웨스트에서 질서의 관념(The Idea of Order at Key West)> 등이 있다.

 

스티븐스의 시는 상상력, 미학적 형식의 필요성, 예술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와 호응해야 한다는 믿음 등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가 사용한 시어는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는 울창한 열대 지방의 장면들뿐만 아니라, 유머 넘치고 아이러니한 삽화 같은 장면들 또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 일부는 대중문화를 다루고 있으며 어떤 시들은 복잡한 사회에 대해 조롱하거나 지나치게 지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는 이윽고 탬버린 같은 소음을 내며/그녀를 시중드는 비잔틴 사람들이 왔다(Soon, with a noise like tambourines/Came her attendant Byzantines)”는 표현에서처럼 풍부한 언어 유희로 유명하다.

스티븐스의 작품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는 때로 다음의 <10시의 환멸(Disillusionment of Ten O?lock)>(1931)이라는 시처럼 독자들에게 장난을 친다.

 

 

그 집들에는

흰색 잠옷들이 출몰한다.

어떤 것도 초록색이 아니다.

초록색 링이 달린 자주색도

노란색 링이 달린 초록색도

파란색 링이 달린 노란색도 아니다.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

레이스와 작은 구슬 달린 띠가 있는

양말을 신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비비와 고둥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 늙은 선원만이

술에 취해 장화를 신은 채 잠들어

호랑이를 잡는다,

붉은 날씨 속에서.

 

 

이 시는 상상력이 없는 삶(평범한 흰 잠옷)을 불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시는 독자들의 마음속에 생생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끝에서 재산에는 관심 없는 술 취한 선원이 비록 꿈에서지만 호랑이를 잡는다’. 이 시는 인간의 상상력이 항상 창조적인 출구를 찾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평생 소아과 의사로 일했다. 그는 2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도와주었고 처방전에 시를 적기도 했다. 윌리엄스의 초기 시들은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후에 구어체 사용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미국 영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활용해 미국 시가 르네상스 시기부터 영국 시를 주도하고 있던 단장격短長格 형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현대 도시에 살고 있는 노동자와 아이들, 그리고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들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애정 때문에 독자는 그의 시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네덜란드 정물화와 같은 <빨간 손수레(The Red Wheelbarrow)>(1923)는 일상적인 사물에서 흥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많은 게

놓여 있다

 

 

빨간 바퀴

손수레에

 

 

빗물에 젖어

빛나는데

 

 

그 곁에 흰

병아리들

윌리엄스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개발했다. 그에게 시는 스티븐스처럼 완벽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고, 프로스트처럼 워즈워스적인 사건들을 조심스럽게 재창조하는 것도 아니었다. 윌리엄스에게 시는 포즈를 취하지 않고 찍은 스냅 사진처럼 순간을 포착하는 것인데, 이 개념은 윌리엄스가 뉴욕 시의 스티글리츠 살롱 같은 갤러리에서 만난 사진가들과 예술가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젊은 주부(The Young Housewife)>(1917)에서 보이듯이 그의 시는 종종 숨겨진 가능성이나 유혹 등을 스냅 사진처럼 포착해내고 있다.

 

 

오전 10시 젊은 주부가

남편의 집 나무 벽 뒤쪽으로

평상복을 입고 움직이고 있다.

나는 내 차를 타고 쓸쓸히 지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얼음장수, 생선장수를

만나러 길모퉁이에 가서

수줍어하며 코르셋도 입지 않은 채로

흩어진 머릿결을 쓸어 올리며 서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낙엽에 비유한다.

 

 

내 차의 소리 없는 바퀴들은

마른 잎사귀들 위로 바스락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내가 인사하고 미소 지으며 지나갈 때.

그는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사물들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자신의 작품을 사물주의(objectivist)’라고 불렀다. 그의 작품은 경험의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면을 포착하고 있으며, 1950년대 초반 비트작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엘리엇과 파운드처럼 윌리엄스 또한 서사시 형식에 도전했는데, 엘리엇과 파운드의 서사시가 문학적인 인유를 사용하며 교육 수준이 높은 소수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반면, 윌리엄스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사시를 창작했다. 엘리엇이나 파운드와 달리 윌리엄스는 해외에서 수학했지만 미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시인이다. 그의 5권짜리 서정시집 패터슨(Paterson)(1946~58)은 자전적인 인물 패터슨 박사의 눈으로 바라본 그의 고향 뉴저지 주 패터슨을 찬미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윌리엄스는 서정적인 문구, 산문, 편지, 자서전, 신문 기사, 역사적 사실들을 병치시키고 있다. 그의 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넓은 여백은 미국 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한 열린 길을 내포하며, 동시에 일요일 공원에 소풍 나온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는 새로운 장소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휘트먼의 풀잎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패터슨 박사 또한 노동자들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인다.

 

 

-늦봄,

일요일 오후!

 

 

-벼랑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간다 (숫자를 세며:증명)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이 개와 발을 맞춰 오르다가

밟고 미끄러진 그 돌멩이를 이어 밟으며!

 

 

웃으며 서로에게 소리치며-

 

 

기다려! (II, i, 14-23)

 

 

 

 

양차 세계대전 사이 작가들

 

 

로빈슨 제퍼스(Robinson Jeffers, 1887~1962)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재능 많고 참된 시각을 지닌 미국 시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들 중에는 서부 연안 출신의 시인들과 여성 및 흑인 시인들도 있었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처럼 시인 제퍼스는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스페인 농장 소유자, 인디언, 그들의 혼합된 전통, 대지의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썼다. 고전 문학을 공부하고 프로이트에 정통했던 그는 거친 해안 풍경을 배경으로 그리스 비극의 주제를 재창조했다.

그의 비극적 이야기시 중 잘 알려진 작품은 타마(Tamar)(1924), 얼룩털의 종마(Roan Stallion)(1925),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Agamemnon)을 다시 쓴 비극 너머의 탑(The Tower Beyond Tragedy)(1924),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을 다시 쓴 메데아(Medea)(1946) 등이 있다.

 

 

에드워드 에스틀린 커밍스(Edward Estlin Cummings, 1894~1962)

 

일반적으로 e. e. 커밍스로 알려진 에드워드 에스틀린 커밍스는 유머, 세련미, 사랑과 에로티시즘에 대한 찬미, 구두점에 대한 실험과 시각적 형식 등의 특징을 지닌 매력적이고 새로운 시를 창작했다. 화가이기도 했던 그는, 시가 우선적으로 언어 예술이 아니라 시각적인 예술로 변했음을 인지한 첫 번째 미국 시인이었다. 그는 자간과 들여쓰기를 남다르게 구사했으며, 대문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윌리엄스와 마찬가지로 커밍스는 구어체, 날카로운 이미지, 대중문화에서 비롯된 단어들을 사용했다. 또한 윌리엄스와 마찬가지로 시를 자유롭게 배열하였다. 그의 시 <이제 막(in Just)> (1920)은 독자들에게 중간에 빠진 생각들을 채우도록 하고 있다.

 

 

이제 막 --

 

 

봄 세상이 진흙인

감미로운 작은

절름발이 풍선장수는

 

 

멀리 휘파람을 불고 휙

 

 

그리고 에디와빌은*

구슬치기와 해적놀이를 하다

달려온다 이제

봄이다...

* ‘에디와 빌이라는 의미인데 커밍스는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무시했다-옮긴이

 

 

하트 크레인(Hart Crane, 1899~1932)

 

하트 크레인은 33살의 나이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 고뇌에 찬 젊은 시인이었다. 그는 서사시 다리(The Bridge)(1930)와 같은 놀라운 시들을 남겼는데, 이 시는 브루클린 다리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었다. 하트는 이 시를 통해 의욕적으로 미국적 문화 경험을 검토하고 이를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감미롭고 열정적인 스타일은 <항해(Voyages)>(1923, 1926) <멜빌의 무덤에서(At Melville? Tomb)>(1926) 등의 짧은 시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멜빌의 무덤에서>의 마지막 부분은 크레인 자신에게 적합한 묘비명이다.

 

 

만가를 불러도 그 선원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바다만이 이 전설적인 그림자를 지키고 있다.

 

매리앤 무어(Marianne Moore, 1887~1972)

 

매리앤 무어는 시에 대한 정의를 살아 있는 두꺼비들이 있는 가상의 정원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녀의 시는 회화체이지만 분절마다 정확성을 기할 만큼 정교하고 섬세하며, 지나칠 정도로 정확한 묘사와 역사적럭墟隙?사실에 의존하고 있다. ‘시인의 시인이었던 그녀는 어린 친구 엘리자베스 비숍 등을 비롯한 후기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랭스턴 휴스

(Langston Hughes, 1902~1967)

 

랭스턴 휴스는 제임스 웰든 존슨, 클로드 매케이, 카운티 컬른 등과 함께 1920년대 흑인들의 문학운동인 할렘 르네상스 시기에 나온 재능 있는 시인들 중 한 사람이다. 휴스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재즈 리듬을 수용했으며, 글쓰기로 돈이 되는 경력을 쌓으려고 했던 최초의 흑인 작가들 중 한 명이다. 휴스는 자신의 시에 블루스, 흑인 영가, 구어체적 연설, 흑인 풍속 등을 결합시켰다.

휴스는 영향력 있는 문화 조직자로서 수많은 흑인문학 선집을 출간했으며 뉴욕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지에서 흑인 연극단체들을 설립했다. 그는 또한 사회 논평을 위해 허구적인 인물 제시 B. 셈플을 창조하여 효과적인 저널리즘 글을 집필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시 <검둥이, 강에 대해 말하다(The Negro Speaks of Rivers)>(1921, 1925)는 서사시라는 장르 속에 아프리카적이면서 동시에 우주적인 유산을 감싸 안은 작품이다. 이 시는 세상의 모든 위대한 강들처럼 아프리카 문화도 인내 속에서 더 깊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강을 알고 있다.

세상처럼 나이 들고 인간의 핏줄 속에 흐르는 피처럼 오래된 강들을.

 

 

내 영혼은 강처럼 깊이 자랐다.

 

 

나는 이른 새벽에 유프라테스 강에서 목욕을 했다.

내가 콩고 강 옆에 오두막을 지으니 그 강은 나를 달래어 재웠다.

나는 나일 강을 바라보고 그 위에 피라미드를 세웠다.

나는 에이브 링컨이 뉴올리언스에 왔을 때 미시시피 강의 노랫소리를 들었고 나는 흙탕물 섞인 강물의 가슴이 일몰에 금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강을 알고 있었다.

나이 들고 어슴푸레한 강들을.

 

 

내 영혼은 강처럼 깊이 자랐다.

 

 

 

 

1914~1945년의 산문:미국적 리얼리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미국의 산문 작가들은 유럽 작가들처럼 실험적인 관점과 형식을 창조했지만, 전반적으로 유럽 작가들에 비해 더욱 사실적인 글을 썼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전쟁, 사냥, 그리고 기타 남성적인 이야기들을 장식적이지 않은 평이한 문체로 그려냈다. 윌리엄 포크너는 선 굵은 남부 소설들을 미시시피의 열기와 먼지 속에 뿌리박고 있는 세대와 문화를 배경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싱클레어 루이스는 부르주아적 생활을 아이러니하고 명쾌하게 서술했다.

현실에 대한 직시의 중요성이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주도적인 주제가 되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극작가 유진 오닐은 얄팍한 꿈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비극성을 반복적으로 묘사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

 

프랜시스 스콧 키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의 인생은 동화를 닮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피츠제럴드는 미군에 입대했고, 자신의 근무지인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근처에 사는 부유한 미모의 여인 젤다 세이어와 사랑에 빠졌다. 피츠제럴드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젤다는 약혼을 파기했다. 전쟁이 끝나고 제대한 그는 젤다와 결혼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서 문학적 성공을 꿈꿨다.

그의 첫 번째 소설 낙원의 이편(1920)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들은 결혼했지만, 둘 다 성공과 명성으로부터 온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절제된 생활을 하기 위해 1924년 프랑스로 갔다가, 7년 후 미국으로 돌아왔다. 젤다는 불안정한 정신 상태 때문에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영화 각본을 쓰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미국 문학에서 피츠제럴드의 확고한 입지는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 때문이다. 이 소설은 아메리칸 드림과 자수성가에 관한 것으로서, 훌륭한 문체와 간결한 구조를 지녔다. 신비로운 주인공인 제이 개츠비는 자아 성취와 사랑이라는 면에서 성공의 파괴적인 대가를 깨닫게 된다. 다른 수작으로는 심리가 불안한 여성과 결혼하는 바람에 삶에 어둠이 드리워지게 되는 젊은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인 밤은 상냥하다(Tender Is the Night)(1934), 단편소설집 말괄량이와 철학자들(Flappers and Philosophers)(1920), 재즈 시대의 이야기(Tales of the Jazz Age)(1922), 그리고 모든 슬픈 젊은 남자들(All the Sad Young Men)(1926) 등이 있다. 피츠제럴드는 다른 어느 작가보다 더 많이 1920년대의 화려하면서도 절망적인 삶을 포착해내고 있다. 낙원의 이편은 현대 미국 젊은이의 목소리의 도래를 알린 작품이다. 피츠제럴드는 두 번째 소설 아름다운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The Beautiful and the Damned)(1922)에서 자기 파괴적이고 무절제한 시대를 계속 탐구했다.

 

유혹적인 화려함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눈부신 스타일은 그의 특징 중 하나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능숙하게 요약한 유명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여름 밤 내내 내 이웃집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이웃의 푸른 정원에는 남자와 여자들이 나방들처럼 속삭임과 샴페인, 별들 사이를 오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다채로운 삶을 산 작가도 드물다. 헤밍웨이의 삶은 그의 모험 소설 중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피츠제럴드, 드라이저, 그리고 다른 많은 20세기의 우수한 소설가들처럼 헤밍웨이는 미국 중서부에서 태어났다.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에는 미시간 주에서 사냥과 낚시 여행을 하면서 방학을 보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의용병으로 자원해 프랑스에 갔으며 부상을 당해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다. 헤밍웨이는 전쟁이 끝난 뒤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며 고국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셔우드 앤더슨, 에즈라 파운드, F.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을 만났다. 특히 스타인은 그의 경제적인 글쓰기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로 명성을 얻게 된 후에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1940년대 중국에서의 분쟁 등을 다루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사파리 여행을 하던 중 자신의 경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심하게 다쳤지만, 사냥과 낚시 등 그의 최고 작품들에 영감을 주었던 활동들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늙고 가난한 어부가 영웅적으로 거대한 물고기를 잡지만 고기가 상어의 공격으로 다 뜯기게 된다는 내용의 짧고 시적인 소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1952) 195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그 이듬해에는 노벨상을 수상했다. 가정 문제와 지병, 문학적 재능을 상실했다는 생각에 낙심한 그는 1961년에 총기로 자살했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헤밍웨이는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소설가이다. 그의 감수성은 기본적으로 비정치적이고 인간적인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는 보편적인 작가이다. 그의 단순한 스타일은 그의 소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며 그의 소설들은 종종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경험이라는 신앙을 믿었던 헤밍웨이는 등장인물들을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고 그들이 내적인 본성을 드러내도록 했다.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는 때때로 위험한 상황이 남성다움을 보여줄 기회로 사용되고 있다.

 

피츠제럴드처럼 헤밍웨이는 자기 세대의 대변인이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피츠제럴드처럼 치명적인 화려함을 묘사하는 대신 전쟁과 죽음, 그리고 냉소적인 전쟁 생존자들로 구성된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몽상가가 아니라 강인한 투우사, 군인, 운동선수들이다. 그들은 지적이긴 하지만 깊이 상처받고 환멸을 느끼고 있다.

헤밍웨이의 특징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이다. 그는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는데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1929)에서 여주인공은 아이를 낳다가 죽으면서 난 조금도 두렵지 않아. 이건 그냥 더러운 장난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자신의 글쓰기를 빙산에 비유하면서 보이는 것의 8분의 7은 물밑에 있다라고 말했다.

헤밍웨이의 훌륭한 대화와 정확한 묘사는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 <프랜시스 매컴버의 짧고 행복한 삶(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 등의 단편소설에 나타나 있다. 그의 최고 장편소설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도덕성을 상실한 이방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영국 간호사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무기여 잘 있거라,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1940), 노인과 바다등이 있다.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

 

오래된 남부 가정에서 태어난 윌리엄 해리슨 포크너는 미시시피 주 옥스퍼드에서 성장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포크너는 완전한 가상의 장소인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를 창조해 많은 소설에서 이곳을 언급하고 또한 과거 몇 세대 동안 서로 연결되어 있는 허구의 가족들을 창조해냈다. 제퍼슨을 중심지로 두고 있는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는 미시시피 주 옥스퍼드와 그 주변을 모델로 하고 있다. 포크너는 그 땅의 역사와 그곳에 살았던 인디언, 아프리카 계 미국인, 유럽 계 미국인, 다양한 혼혈인 등 다양한 인종들을 재창조하고 있다. 포크너는 연대기적 서사, 다양한 관점 및 목소리(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 아이들, 문맹자 등을 포함하여), 복잡한 종속절을 지닌 지나칠 정도로 긴 문장들로 구성된 풍부하고 읽기 힘든 바로크 스타일 등으로 훌륭한 실험 소설들을 창작했다.

 

포크너의 최고 소설로는 가족의 일원을 잃게 되는 상황에 처한 남부 가족의 모습을 탐색하기 위해 실험적인 시점을 활용한 두 편의 모더니즘 작품 음향과 분노(1929)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As I Lay Dying)(1930),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 간의 복잡하고 폭력적인 관계를 그린 8월의 빛(Light in August)(1932), 그리고 자수성가한 대농장주가 인종 편견 및 사랑의 실패로 패배자가 된다는 내용을 다루었으며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압살롬, 압살롬!(Absalom, Absalom!)(1936) 등이 있다.

 

이들 소설 대부분은 각기 다른 등장인물이 이야기의 한 부분만을 전달하도록 하여 다루고 있는 소재뿐만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식에 따라 어떻게 의미가 전달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관점을 사용하기 때문에 포크너는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에 비해 좀더 자기반영적이다. , 각 소설은 보편적인 관심을 지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동시에 글쓰기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포크너의 주제는 남부의 전통, 가족, 사회, 대지, 역사와 과거, 인종, 야망과 사랑 등이다. 그는 또한 퇴화하는 가족 스놉스 가에 초점을 맞춘 세 편의 소설 촌락(The Hamlet)(1940), 마을(The Town)(1957), 저택(The Mansion)(1959)을 집필했다.

 

 

 

 

사회 인식 소설들

 

 

1890년대부터 사회 저항의 기류는 미국 문학계를 타고 흐르다가 스티븐 크레인과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자연주의, 그리고 사회 문제 고발 소설가들의 명쾌한 메시지를 통해 크게 부각되었다. 그들에 이어 사회 문제에 참여한 작가들로는 싱클레어 루이스, 존 스타인벡, 존 더스 패서스, 리처드 라이트, 그리고 극작가 클리포드 오데츠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1930년대에 일반 시민의 복지에 대해 관심을 보인 작가들이다. 그들은 또한 일군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는데, 싱클레어 루이스는 애로스미스(Arrowsmith)에서 의사, 배빗(Babbitt)에서 사업가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다루고 있으며,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에서 가족을, 더스 패서스는 미합중국(U.S.A.) 3부작에서 등장인물 11명을 통해 도시 대중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싱클레어 루이스

(Sinclair Lewis, 1885~1951)

 

해리 싱클레어 루이스는 미네소타 주의 소크 센터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학교를 휴학하고 사회 고발 소설가인 업튼 싱클레어가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던 사회주의 생활 공동체 헬리컨 홈 콜로니에서 일했다. 루이스의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1920)는 미네소타 주 고퍼 프레리를 배경으로 단조롭고 위선적인 소도시 생활을 풍자하고 있다. 미국 생활에 대한 날카로운 재현과 미국적 물질주의, 편협성, 위선 등에 대한 비판으로 루이스는 전국적인,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6년에는 탐욕과 타락으로 가득한 의료계에서 윤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의사를 추적한 애로스미스(1925)로 퓰리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상을 거절했다. 1930년에는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루이스의 또 다른 주요 소설에는 배빗(1922)이 있다. 주인공 조지 배빗은 평범한 미국 도시인 제니스에서 사는 평범한 사업가이다. 배빗은 도덕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이 강한 인물로, 사업이 현대적인 삶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접근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불안을 느끼며 무언가를 성취하려 하지만 자유분방한 여성과의 관계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부인에게 돌아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소설은 미국 언어에 새로운 단어를 첨가하도록 만들었는데, 바로 ‘babbittry’라는 단어로, 이는 속 좁고 무관심하며 중산 계급적인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엘머 갠트리(Elmer Gantry)(1927)는 미국 내 신앙부흥 운동가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캐스 팀벌레인(Cass Timberlane)(1945)은 나이든 판사와 젊은 여성의 결혼으로 야기되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존 더스 패서스(John Dos Passos, 1896~1970)

 

싱클레어 루이스처럼 존 더스 패서스도 좌익 급진주의자로 시작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익으로 옮겨갔다. 더스 패서스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원칙에 따라 작품을 창작했다. 그의 최고 작품들은 과학적 객관주의와 다큐멘터리적인 효과를 성취하고 있다. 더스 패서스는 북위 42도선(The 42nd Parallel)(1930), 1919(1932), 거금(The Big Money)(1936)으로 구성된 대작 미합중국을 위해 실험적인 콜라주 기법을 개발했다. 미합중국 3부작은 1900년부터 1930년까지 미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물질주의적인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상을 폭로했다.

더스 패서스는 미합중국 3부작에서 새로운 기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첫 번째 새로운 기법은 당시의 신문 머리기사, 유행가, 광고에서 따온 뉴스 영화(newsreel)’ 부분이며, 두 번째 기법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노동운동 지도자 유진 데브스, 영화배우 루돌프 발렌티노, 금융업자 J. P. 모건, 사회학자 톨스타인 베블런 등 당시 중요한 미국인들의 삶을 간단히 보여주는 전기(biography)’ 부분이다. 이러한 기법들은 더스 패서스의 소설에 다큐멘터리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세 번째 기법인 카메라의 눈(camera eye)’은 책에 묘사된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을 제공해주며,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산문체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

 

싱클레어 루이스처럼 존 스타인벡 역시 오늘날 미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1963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로 인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노벨 위원회가 사회 비판으로 유명한 자유주의적 미국 작가를 선택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스타인벡의 작품 다수는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있는 살리나스 밸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최고 작품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분노의 포도(1939)로 세계 대공황 때 농장을 잃고 일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여행하는 가난한 오클라호마 가족의 고통을 담았다. 가족들은 부유한 지주의 봉건적인 억압으로 고통을 겪는다.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으로는 토르티야 대지(Tortilla Flat)(1935),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1937), 통조림 공장 거리(Cannery Row)(1945), 에덴의 동쪽(East of Eden)(1952) 등이 있다.

스타인벡은 대지와 가까이 사는 가난한 농부들에게서 미덕을 찾는 원시적 낭만주의와 리얼리즘을 결합한다. 그의 소설은 가뭄으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으며 정치 불안이나 경제 침체의 시기에 가장 먼저 고통받는 농부들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할렘 르네상스

 

 

뉴욕 시 업타운 주택 지구에 위치한 흑인 사회 할렘은 활력 넘치던 1920년대에 열정과 창조성으로 번뜩였다. 흑인들의 재즈는 태풍처럼 미국을 휩쓸었고, 듀크 엘링턴 같은 재즈 연주자와 작곡가는 미국 전역과 해외에서 스타가 되었다. 베시 스미스 등의 블루스 가수들은 적나라한 감정을 보여주는 솔직담백하고 감각적이며 비꼬는 듯한 가사를 발표했다. 흑인 영가는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종교음악으로 널리 이해되기 시작했다. 흑인 배우 에델 워터스는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흑인들의 춤과 미술은 흑인음악 및 흑인연극과 함께 크게 유행했다.

할렘에는 다양한 재능을 지닌 예술가들이 존재하는 동시에 다양한 시각 또한 존재했다. 칼 밴 베치튼이 1926년에 발표한 할렘에 관한 감상적인 소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앞에서 미국 흑인이 겪어야 하는 복잡하고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생활을 담고 있다.

 

시인 카운티 컬른(1903~1946)은 할렘 출신으로 W. E. B. 뒤 보이스의 딸과 잠시 결혼했었으며, 기존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각운을 맞춘 훌륭한 시를 창작해 백인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시인이라면 인종 때문에 주제나 시 스타일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컬른과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경우는 마커스 가비의 흑인들은 아프리카로운동에 동조하여 미국을 거부한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이었다. 이 양 극단 사이에 바로 진 투머의 작품이 놓여 있다.

 

진 투머(Jean Toomer, 1894~1967)

 

컬른처럼 아프리카 계 미국인 소설가이자 시인인 진 투머는 인종을 초월하는 미국적 정체성을 그렸다. 아마도 이 때문에 그는 각운과 운율 면에서 시적 전통을 훌륭하게 따르면서 새로운 흑인형식을 추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주요 작품 사탕수수(Cane)(1923)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윌리엄스의 패터슨처럼 사탕수수는 시와, 산문체로 된 짤막한 글귀, 이야기, 자전적인 기록 등을 결합하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한 흑인은 조지아 주의 농촌, 워싱턴 D.C., 일리노이, 시카고 등지의 흑인 사회 안팎에서, 그리고 미국 남부에서 흑인 교사로 일하며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사탕수수에서 투머가 그린 조지아 주 시골 흑인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우며 예술적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커진다소나무는 기타이다

솔잎은 연주를 하면서 빗줄기처럼 떨어진다

그들의 목소리가 커진다사탕수수 합창단은

별들에게 저녁 기도를 올리고 있다 (I, 21-24)

 

 

사탕수수는 도시 워싱턴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흑인들의 생활을 다음과 같이 대조하고 있다.

 

 

돈이 호주머니에서 타고 있다, 호주머니는 아프다.

실크 셔츠를 입은 주류 밀매자들,

풍선을 달고 달리는 캐딜락들,

전차 선로를 씽씽 달리고 있다. (II, 1-4)

 

 

리처드 라이트

(Richard Wright, 1908~1960)

 

리처드 라이트는 가난한 미시시피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5살 되던 해 아버지로부터 가족이 버림받았다. 라이트는 중학교까지밖에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일반 독자에게 다가간 아프리카 계 미국인 소설가였다. 그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은 최고작 중 하나인 흑인 소년(Black Boy)(1945)에 묘사되어 있다. 훗날 그는 인종 차별로 인한 박탈감이 너무 커서, 독서만이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셔우드 앤더슨, 시어도어 드라이저, 싱클레어 루이스의 사회 비판과 리얼리즘이 라이트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0년대에 라이트는 공산당에 가입했다. 1940년대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거트루드 스타인과 장 폴 샤르트르를 알게 되고 반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대담한 글은 후배 흑인 소설가들이 가야 할 길을 닦아놓았다.

그의 작품에는 단편소설집 톰 아저씨의 아이들(Uncle Tom? Children)(1938), 박력 넘치고 잔인한 소설 토박이(Native Son)(1940) 등이 있다. 토박이에 등장하는 교육받지 못한 흑인 젊은이 비거 토머스는 실수로 백인 고용주의 딸을 죽이게 되고 그녀의 몸을 태운 다음, 자신의 흑인 여자친구가 자신을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녀를 살해한다. 비록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 일부는 라이트가 흑인 등장인물을 살인자로 묘사했다며 비난했지만 이 작품은 숱한 논쟁의 주제가 되어왔던 인종 차별을 시의적절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 1903~1960)

 

플로리다 주의 작은 마을 이튼빌에서 태어난 조라 닐 허스턴은 할렘 르네상스를 빛낸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16살 때 유랑극단의 일원으로 뉴욕 시에 처음 오게 되었다. 청중을 사로잡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이었던 그녀는 버나드 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즈와 함께 공부하며 민족성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보아즈는 그녀에게 고향 플로리다의 민담을 모아보라고 했고, 그녀는 보아즈의 말을 따랐다. 저명한 민속학자 앨런 로맥스는 허스턴의 노새와 인간(Mules and Men)(1935) 가장 흡입력 있고 독창적이며 능수능란하게 씌어진 민담집이라고 불렀다.

허스턴은 또한 카리브 연안의 민담을 모아 내 말에게 말하라(Tell My Horse)(1938)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천부적인 구어체 영어 실력으로 그녀는 마크 트웨인의 위대한 전통 속에 포함되었다. 그녀의 글은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구비문학 전통에서 나온 다채로운 언어와 코믹한 혹은 비극적인 이야기들로 번뜩인다.

허스턴은 인상적인 소설가이다. 그녀의 가장 중요한 소설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Their Eyes Were Watching God)(1937)는 아름다운 흑백 혼혈 여성이 세 차례의 결혼을 겪으면서 성숙해가고, 결국 행복을 되찾는 이야기를 감동적이며 신선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미국 남부 시골에서 일하고 있는 흑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다. 여성운동의 선구자인 허스턴은 자서전 길 위의 먼지 자국(Dust Tracks on a Road)(1942) 등의 책들을 통해 앨리스 워커, 토니 모리슨 등 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문학 비평:탈주자 그룹(the Fugitives)과 신비평

 

 

독립전쟁을 지나 20세기가 되어서도 미국 남부에서는 인종 차별과 미신으로 가득한 정치경제적 침체가 계속되었지만, 동시에 그곳은 다채로운 풍속과 강한 자부심, 전통 의식으로 축복받은 곳이었다. 당시 남부는 지방패권주의를 지닌 무지한 문화의 불모지라는 다소 부당한 오명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사실은, 20세기 가장 의미심장한 지역적 문화운동이 문학 이론가 존 크로 랜섬, 시인 앨런 테이트, 소설가 겸 시인이자 수필가 로버트 펜 워런이 이끄는 탈주자 그룹에 의해 바로 남부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남부 문학파인 탈주자 그룹은 미국을 장악하고 있던 북부적인도시상업적 가치들을 거부했다. 탈주자 그룹은 남부에 아직도 남아 있는 미국 전통과 대지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이들 그룹은 문학잡지 퓨지티브(The Fugitive)에서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이 잡지는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1922년부터 1925년까지 간행되었고, 랜섬렴戮鉗?워런 모두가 여기에 관여했다.

 

3명의 주요 탈주자 작가들은 세밀한 독서를 통해 형식(이미지, 은유, 운율, 소리, 상징 등)과 형식이 제시하는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며 문학을 이해하려는 접근 방법인 신비평과 연관되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남부의 문예부흥을 주도한 이론가인 랜섬은 이런 방법에 기초한 저서 신비평(The New Criticism)(1941)을 출간했으며, 이를 통해 역사와 전기 등 문학 외적인 요소를 통한 기존의 비평 방법에 대해 대안을 제시했다. 신비평은 엘리엇 등 모더니즘 작가들을 비평하는 데 아주 적합하고, 프로이트 이론(특히 이드, 에고, 초자아 등 구조적인 구분)과 신화적인 패턴을 이용한 접근 방법을 흡수할 수 있는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1940년대와 1950년대 주도적인 비평 방법이 되었다.

 

 

 

 

20세기 미국 연극

 

 

미국의 연극은 20세기에도 한동안 영국과 유럽의 연극을 흉내 냈다. 대개 영국에서 오거나 유럽 언어에서 번안된 작품들이 연극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극작가들을 보호하거나 홍보하지 못했던 부실한 저작권법은 독창적인 연극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었다. 또 실제 연극보다는 배우들이 찬사를 받았던 스타 시스템도 한몫 했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극장을 찾은 유럽 배우들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또한 수입 와인처럼 수입된 연극은 미국 내에서 제작된 작품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했다.

19세기에는 모범적인 민주주의적 인물이 등장하고, 선악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연극인 멜로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다. 노예 제도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룬 연극도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런 연극들은 때로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같은 소설을 각색한 것이었다. 20세기 전까지 미국에는 미학적 실험을 시도한 진지한 연극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 문화는 특히 보드빌에서 결정적인 발전을 보였다.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공연한, 흑인의 음악과 풍속에 기초한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또한 독창적인 형식과 표현 방법을 개발했다.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

 

유진 오닐은 미국 연극계에서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상당히 독창적인 기교와 신선한 시각, 그리고 감성적인 깊이가 결합되어 있다. 오닐의 초기 작품들은 노동자 계급과 빈민 계층을 다루었으며 후기 작품들은 강박관념과 성등 주관적인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후기 작품들은 또한 프로이트적인 해석 및 자신의 죽은 어머니, 아버지, 형제와 화해하려는 고뇌에 찬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작품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1924)은 한 가족 내에 숨겨진 욕정을 그려내고 있으며, 위대한 신 브라운(The Great God Brown)(1926)은 부유한 사업가의 무의식 세계를 모색한다. 또한 퓰리처상 수상작 기묘한 막간극(Strange Interlude)(1928)은 한 여성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을 추적한다. 이러한 인상적인 연극들은 강렬한 억압 속에서 원시적 감정이나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오닐은 계속해서 소포클레스의 고전 오이디푸스에 기초한 상복喪服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1931)라는 제목으로 묶은 희곡 3부작에서, 가족 내의 사랑과 지배에 관한 프로이트적인 억압을 탐색하고 있다. 후기 대작들로는 죽음을 적나라하게 다룬 얼음장수 오다(The Iceman Cometh)(1946),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가족과 그들의 육체적려?퇴화 과정에 중점을 둔 자전적인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 Journey Into Night)(1956) 등이 있다.

오닐은 전통적인 막과 장의 분리법을 파기하고(기묘한 막간극 9막으로 되어 있으며,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공연하는 데 9시간이 필요하다), 아시아나 그리스 연극에 등장하는 마스크를 사용하며, 셰익스피어적인 독백과 그리스 연극적인 코러스를 도입하고 조명과 음향을 통한 특수효과를 이용함으로써, 연극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고, 1936년에 미국 극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손튼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

 

손튼 와일더는 희곡 우리 마을(Our Town)(1938)위기일발(The Skin of Our Teeth)(1942), 그리고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The Bridge of San Luis Rey)(1927)로 알려져 있다.

우리 마을은 긍정적인 미국적 가치들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원형적이며 전통적인 작은 시골 읍내, 다정한 부모와 장난꾸러기 아이들, 젊은 연인들 등 감상적이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유령, 관객 속에서의 목소리, 과감한 시간 전환 등 실험적인 요소들이 이 연극을 흡입력 있게 만든다. 사실 이 작품은 비록 잠시지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연극이다.

 

 

클리포드 오데츠(Clifford Odets, 1906~1963)

 

사회 연극의 거장인 클리포드 오데츠는 동유럽 출신 유대 인 이주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뉴욕에서 성장한 그는 해럴드 클러먼, 리 스트라스버그, 셰릴 크로포드 등이 조직하여 인디언 연극만을 연출하는 그룹 시어터(Group Theater)’의 최초의 배우 회원 중 한 명이 되었다.

오데츠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노동조합 결성을 열렬히 옹호하는 실험적인 1막짜리 연극 레프티를 기다리며(Waiting for Lefty)(1935)이다. 그의 향수 어린 가족 드라마 깨어나 노래하라!(Awake and Sing!)는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또 다른 작품이며, 이어 골든 보이(Golden Boy)또한 성공을 거두는데,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이주자가 돈의 꼬임에 넘어가 권투 선수가 되어 손을 다치는 바람에 바이올린 연주자로서의 음악적 재능을 망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처럼 골든 보이 또한 지나친 야망과 물질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CHAPTER _ 7 1945년 이후 미국 시 : 전통

 

 

 

 

문학적 상상력에서의 전통적인 형식, 사상, 역사가 인간의 삶에 의미와 연속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건들은 불연속적인 역사관을 초래했으며 각각의 행동, 감정, 순간이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으로 파악되기 시작했다. 스타일이나 형식은 창작 과정과 작가의 자의식을 반영하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익숙한 표현 방법들은 이제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독창성이 새로운 전통으로 부상했다.

미국에서 이러한 분열적 감수성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거대한 도시사회에서의 익명성과 소비자 중심주의, 1960년대 저항운동, 10년 동안 지속된 베트남 분쟁, 냉전 시대, 환경 파괴 등이 미국 문화에 미친 충격은 다양했다. 그러나 미국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것은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발생이었다. 처음에는 라디오가, 이후에는 영화가, 그리고 전지전능한 텔레비전이 미국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책과 눈, 독서에 기초한 교양 중심의 개인적 엘리트 문화가 물러가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성, CD와 카세트에서 들리는 음악, 영화, TV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에 눈높이가 맞춰진 미디어 문화가 새롭게 떠올랐다.

미국의 시는 매스 미디어와 전자 기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시 낭송과 시인과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 비디오, 녹음 테이프 등이 속속들이 시장에 진출했고, 값싸고 정확한 인쇄 방법은 젊은 시인들에게는 자비 출판의 기회를, 젊은 편집자들에게는 문학잡지 창간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문학잡지의 수는 2천 종을 넘어섰다. 195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미국인들은 자체적으로는 아주 유용한 테크놀로지가 잘못된 충격적 이미지들을 통해 위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대안을 찾으려는 미국인들에게 시는 전보다 더욱 적절한 표현 도구인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시는 주관적인 생활을 표현하고 테크놀로지와 대중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지역적이고, 일부는 유명한 시파 혹은 시인들과 관련된 다양한 스타일의 시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합을 벌이면서, 현대 미국 시는 탈중심화하며 매우 다양해져 요약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편의를 위해서 이들을 하나의 선상에 위치시키면, 서로 겹치는 부분을 지닌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선의 한쪽 끝에는 전통적인 시인들, 중간에는 특이한 시인들, 다른 끝에는 실험적인 시인들을 위치시킬 수 있다. 전통적인 시인들은 시적 전통을 유지하거나 부흥시켰으며, 특이한 시인들은 독특한 음색을 창조하기 위해 전통적인 기법과 새로운 기법을 모두 사용했다. 한편 실험적인 시인들은 새로운 문화적 스타일을 찾기 위해 애썼다.

 

 

 

 

전통주의 시인들

 

 

전통주의 시인들은 대개 각운이나 정형시 형태를 사용하면서 이미 익숙한 기법으로 시를 쓰는 전통적인 형식과 어법의 대가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동부 연안이나 남부 지방 출신으로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리처드 에버하트와 리처드 윌버, 탈주자 그룹의 나이든 시인들인 존 크로 랜섬, 앨런 테이트, 로버트 펜 워런 그리고 뛰어난 젊은 시인들인 존 홀랜더와 리처드 하워드, 그리고 초기 로버트 로웰이 전통주의 시인들의 예이다. 이들의 작품은 시선집에 자주 실릴 정도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6장에서 다루었던 탈주자 그룹은 섬세함, 자연에 대한 존경심, 보수적인 가치 기준 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특징들은 전통적인 형식의 많은 시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전통주의 시인들은 일반적으로 정확하고 사실적이며, 재치가 넘친다. 리처드 윌버(1921~ )처럼 그들은 종종 T. S. 엘리엇이 선호했던 15, 16세기 영국 형이상학파 시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윌버의 가장 유명한 시 <사물이 없는 세상은 감각이 있는 공허다(A World Without Objects Is a Sensible Emptiness)>(1950)는 형이상학파 시인 토머스 트라헌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 시의 생생한 서두는 일부 전통적인 시인들이 각운과 형식적인 규칙성에서 얻어낸 투명함을 보여준다.

 

 

영혼의 키 큰 낙타들이

사막으로 나아간다, 매미들이 제재소의 톱 소리처럼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작은 숲을 지나

건조한 태양의 완전한 달콤함

속으로. 그들은 느리고, 거만하다

 

너무나 시적인시어들을 믿지 않았던 많은 실험주의 시인들과는 달리, 전통주의 시인들은 울림이 있는 시적 표현들을 선호했다. 로버트 펜 워런은 어떤 시를 세상을 정말로 사랑하여 결국 하느님의 존재를 믿도록이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했다. 앨런 테이트(1899~1979)는 어떤 시에서 우리 모두의 나이를 세고 있는 무덤지기!”라고 끝맺었다. 전통적인 시인들은 독특한 형용사[예를 들어 음산한 부엉이(sepulchral owl)’처럼]를 자주 사용하거나, 자연스러운 회화체 어순을 부자연스럽게 변경하는 도치법을 이용하며, 이제는 쓰이지 않거나 이상한 단어들을 수사적으로 활용했다. 워런의 글귀에서 보이듯이 그 효과는 때로 고상하다. 그러나 때로는 어리석게 신비 의식 사제의 옷단을 만졌다라는 테이트의 글귀처럼 과장되고 실제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홀랜더, 하워드, 제임스 메릴(1926~ ) 등의 시에는 자의식적인 내용이 위트, 동음이의어, 문학적 인유 등과 결합되었다. 도시적인 주제, 각운이 맞지 않는 시행, 개인적인 소재, 가벼운 대화체 등에서 신선함을 보인 메릴은 <상심(The Broken Heart)>(1966)이라는 시에서 결혼이 마치 칵테일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전통주의 시인들과 위트 넘치는 창작 습관을 공유하고 있다.

 

 

항상 같은 이야기이다 -

아버지 시간과 어머니 땅

무너지고 있는 결혼*

* A marrige on the rocks:‘on the rocks’는 술잔에 얼음을 넣는다는 의미와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옮긴이

 

 

비록 메릴, 존 애쉬베리와 같은 일부 시인들은 유창하고 화려한 언어로 전통적인 시인으로 성공했지만, 그들의 시는 철저하게 새로운 방법으로 시를 재정의하고 있다. 랜덜 자렐(1914~1965) A. R. 아몬스(1926~ )의 경우에서처럼 스타일의 우아함은 일부 시인들을 실제보다 더욱 전통적인 시인인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아몬스는 인간과 자연의 밀도 있는 대화를 창조했으며, 자렐은 다음에 나오는 <포탑 사수의 죽음(The Death of the Ball Turret Gunner)>(1945)에서처럼 여성, 아이들, 죽을 운명에 처한 군인들 등 소유하지 못한 자들의 갇혀 있는 의식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내 어머니의 잠에서 나는 그 상태로 떨어졌다

나는 내 젖은 털옷이 얼 때까지 그 배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땅에서 6마일 떨어진 곳에서 삶의 꿈에서 풀려나

나는 검은 포화와 악몽과 싸우는 사람들의 소리에 깨어났다

내가 죽자 그들은 호스로 포탑에서 내 흔적을 씻어냈다.

 

 

전통적인 많은 시인들이 각운을 사용했지만, 그렇다 해도 모든 시가 주제나 음조 면에서 전통적인 것은 아니다. 시인 그웬돌린 브룩스(1917~ )는 도시 빈민가에서의 글쓰기의 어려움과 삶의 고단함에 대해 시를 쓰고 있다. 그의 <간이부엌 빌딩(Kitchenette Building)>(1945)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꿈은 양파 연기 속으로 흰색과 보라색 빛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튀긴 감자와 싸우면서

어제의 쓰레기는 복도에서 익어가는데

 

 

브룩스, 에이드리언 리치, 리처드 윌버, 로버트 로웰, 로버트 펜 워런 등 많은 시인들은 각운과 운율을 맞춘 전통적인 시로 출발했지만, 1960년대에 여러 사건들과 점진적으로 자유시 형태를 선호하는 경향에 눌려 전통적인 시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 1917~1977)

 

최근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인 로버트 로웰은 전통적인 시로 시작했지만 실험주의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의 삶과 작품은 에즈라 파운드 같은 후기 모더니즘 대가들과 현대 실험주의 작가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로웰은 학자 시인의 유형에 들어맞는다. 그는 백인이며 남성이고, 신교도로 태어났으며, 교육을 잘 받았고, 정치사회적 기득권 세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보스턴 브라민 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며, 이 가문에는 19세기의 유명한 시인 제임스 러셀 로웰과 최근 하버드 대학교 총장이 있었다. 로버트 로웰은 그러나 자신의 엘리트적인 배경 밖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그는 하버드에 가지 않고 오하이오에 있는 케니언 대학에 갔으며 그곳에서 청교도적인 계통을 거부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양심적 전쟁 반대자로 1년 동안 수감되었으며,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다.

닮지 않은 땅(Land of Unlikeness)(1944), 퓰리처상을 받은 위어리 경의 성(Lord Weary? Castle)(1946) 등의 초기 시집은 전통적인 형식과 절제된 스타일, 강렬한 느낌, 개인적이지만 역사적인 시각 등을 담고 있다. 인디언을 죽인 청교도들과 남은 곡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보내지 않고 그냥 태워버리는 청교도의 후손에 대해 날카롭게 비난하고 있는 시 <빛의 아이들(Children of Light)>(1946)과 같은 초기 시들은 독자를 압도한다. 로웰은 우리의 아버지들은 가축과 돌로 빵을 얻고/인디언들의 뼈로 정원의 울타리를 만들었다라고 적었다.

로웰의 다음 작품 카바노프 가의 방앗간(The Mills of the Kavanaughs)(1951)은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온화함과 결점을 드러내는 감동적이고 극적인 독백들로 구성된다. 로웰의 스타일에는 항상 웅대함과 인간적인 면이 혼합되어 있다. 종종 전통적인 각운을 사용하지만, 구어체적인 가벼움 때문에 이는 거의 배경 음악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이 시집은 로웰이 창조적인 개인적 언어를 만들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준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로웰은 1950년대 중반 시낭송 순회를 하다가 처음으로 새로운 실험적인 시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던 앨런 긴즈버그의 울부짖음(Howl), 개리 스나이더의 신화와 텍스트(Myths and Texts)가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변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재즈 연주와 함께 낭송되었다. 로웰은 이런 시들에 비해 자신의 시는 형식적이고 수사적이며, 관습에 얽매여 있다고 느꼈다. 시를 크게 읽으면서 그는 즉각적으로 더욱더 구어체적인 어법으로 자신의 시를 수정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내 시들이, 늪지로 끌려와 그들의 육중한 무기에 죽임을 당하는 선사시대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 시점에서 로웰은 그를 이은 수많은 시인들이 그랬듯이 미국의 대안적인 전통, 즉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학파로부터 배우기로 결정했다. 그는 1962년에 윌리엄스처럼 미국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미국의 언어를 제대로 들은 시인은 없었던 것 같다라고 적었다. 이후 로웰은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윌리엄스의 시에서 가장 높이 샀던 음조, 분위기, 속도의 빠른 변화를 사용하게 되었다.

로웰은 모호한 인유 등 초기 시의 특징들 다수를 포기했다. 그는 각운을 강제로 부여하지 않는 대신 시 속의 내적인 경험과 긴밀히 연결되도록 했다. 연으로 구성된 구조 또한 무너졌으며, 새로운 즉흥적 형태가 생겨났다. 삶의 연구(Life Studies)(1959)에서 그는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개인 문제를 아주 정직하고 강렬하게 드러낸 새로운 시 형태인 고백시(confessional poetry)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신의 개성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어렵고 사적인 표현 방법으로 자신의 개성을 찬미했다. 그는 자신을 동시대적이고, 자아를 다루고 있는 파편적인 시로, 그리고 창작 과정으로서의 형식으로 변형시켰다.

로웰의 새로운 시는 전후 시의 분수령이 되어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터주었다. 시집 죽은 연방군에게(For the Union Dead)(1964), 노트북 1967~69(1970), 그리고 기타 후기작들에서 로웰은 심리 분석 경험을 다루면서 자전적인 탐색과 기법 실험을 계속했다. 로웰의 고백시는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존 베리먼, 그리고 그의 제자였던 앤 섹스턴과 실비아 플라스 등은 로웰과 따로 떼놓고 상상하기 힘든 시인들이다.

 

 

 

 

특이한 시인들

 

 

전통적인 글쓰기를 이용해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맛을 지닌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한 시인들에는 실비아 플라스, 앤 섹스턴, 존 베리먼, 시어도어 레트키, 리처드 휴고, 필립 레빈, 제임스 디키, 엘리자베스 비숍, 에이드리언 리치 등이 있다.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 1932~1963)

 

실비아 플라스는 스미스 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닌 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들어가는 등 외면적으로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녀는 카리스마적인 영국 시인 테드 휴즈를 만나고 그와 함께 아이 둘을 낳아 잉글랜드의 작은 시골집에 정착했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 유리 그릇(The Bell Jar)(1963)에 나타나듯이 동화 같은 성공 뒤에는 해결되지 않은 심리적인 문제들이 곪고 있었다. 그녀가 안고 있던 문제들 중 일부는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여성에 대한 1950년대의 억압적인 풍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풍조 중에는, 여성은 분노를 표출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경력을 야심적으로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대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대부분 여성들 또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비아 플라스 같은 성공한 여성들은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살아야 했다.

플라스의 동화 같은 삶은 휴즈와의 별거로 무너졌고 그녀는 극도로 추운 겨울날 런던의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아프고 고립된 채 절망에 싸인 플라스는 부엌에서 가스로 자살하기 전까지 시 창작에 몰두했다. 이 시들은 그녀가 죽은 지 2년 후에 출간된 시집 아리엘(Ariel)(1965)에 수록되었다. 이 시집의 머리말을 쓴 로버트 로웰은 그녀와 앤 섹스턴이 1958년 자신의 시 수업을 듣던 때에 비해 플라스의 시가 급격하게 발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플라스의 초기 시는 깔끔한 정통 시들이었지만, 후기 시는 대담성과 원형 페미니스트다운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원자(The Applicant)>(1966)라는 시에서 플라스는 아내를 무생물인 그것(it)’이라고 축소하며, 아내 역할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있다.

 

 

살아 있는 인형, 너는 어디서나 본다.

그것은 바느질하고, 요리할 수 있으며,

그것은 말하고, 말하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잘 한다, 거기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너는 구멍이 있다, 그것은 땜질한 것이다.

너는 눈이 있다, 그것은 그냥 환상이다.

내 아이야, 그것은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과 결혼, 결혼, 결혼하겠니.

 

 

플라스는 동요적인 운율과 잔인할 정도로 직접적인 표현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그녀는 대중문화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솜씨 있게 활용했다. 아기에 대해 그녀는 사랑은 너를 뚱뚱한 금시계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아빠(Daddy)>에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영화에 나오는 드라큘라로 상상하고 있다. “당신의 기름진 검은 심장엔 말뚝이 박혔고/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어요.”

 

 

앤 섹스턴(Anne Sexton, 1928~1974)

 

플라스처럼 앤 섹스턴도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아내, 어머니, 시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고 했던 열정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도 플라스처럼 정신 질환으로 고생했으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섹스턴의 고백시는 플라스의 시보다 더욱 자전적이며, 플라스의 초기 시가 가진 능숙함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섹스턴의 시는 강렬하게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그녀의 시는 성, 죄의식, 자살 등 금기시되었던 소재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녀는 종종 여성의 관점에서 본 임신, 여성의 육체, 결혼 등의 여성적인 주제들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그녀의 종류(Her Kind)>(1960)에서는 화형에 처해지는 마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나는 당신의 수레에 탄 적이 있어요, 마부여

내 벌거벗은 팔을 지나가는 동네사람에게 흔들면서

마지막 환한 길을 배우며, 생존자여

당신의 화염이 내 정강이를 아직도 물어뜯는

그리고 당신의 바퀴가 구를 때 내 갈비뼈에는 금이 가는 그곳을.

죽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여성.

나는 그녀와 한 종류였다오.

그녀의 작품집 제목을 보면 광기와 죽음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집 중에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일부(To Bedlam and Part Way Back)(1960),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Live or Die)(1966), 그리고 사후에 출간된 하느님을 향한 서툰 배젓기(The Awful Rowing Toward God)(1975) 등이 있다.

 

 

존 베리먼(John Berryman, 1914~1972)

 

존 베리먼의 삶은 로버트 로웰의 삶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베리먼은 북동부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와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프린스턴 대학교 연구원이 되었다. 전통적인 형식과 운율을 따랐던 그는 초기 미국 역사에 영감을 받았으며 꿈 노래(Dream Songs)(1969)를 통해 자기 비판적이고 고백적인 시들을 발표했다. 이 시집에서 베리먼은 헨리라는 괴이한 자전적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일상적인 교편 생활, 만성 알코올 중독, 야심 등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동시대 작가 시어도어 레트키처럼 베리먼은 민담, 동요, 상투어, 속어 등의 구문으로 활기를 더해 유연하고 쾌활하며 동시에 심오한 스타일을 개발했다. 베리먼은 헨리에 대해서 그는 폐허를 바라보았다. 폐허가 대답하듯 그를 쳐다보았다라고 적고 있다. 다른 곳에서 그는 이런, 이런, 이런/무관심이 언제 올 것인가, 나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기뻐 소리친다네라고 쓰고 있다.

 

 

 

 

시어도어 레트키(Theodore Roethke, 1908~1963)

 

온실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시어도어 레트키는 작은 벌레들과 보이지 않는 뿌리로 채워진 온실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특별한 언어를 개발했다. “벌레야, 내 곁에 있어주렴/내가 아주 힘들거든.” 바람을 위한 말(Words for the Wind)(1958)에 실린 그의 사랑시는 순수한 열정으로 아름다움과 욕망을 찬미하고 있다. 그의 시 하나는 나는 바짝 말라 아름다운 여성을 알고 있는데/작은 새들이 한숨을 쉬면 그녀 또한 한숨으로 답했다라고 시작한다. 때때로 그의 시는 자연에 관한 짧고 오래된 수수께끼 같다. “누가 먼지를 기절시켜 소리 지르게 만들었는가?/두더지에게 물어보렴, 그가 알고 있으니.”

 

 

리처드 휴고(Richard Hugo, 1923~1982)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난 리처드 휴고는 시어도어 레트키의 문하생이다. 그는 비참한 도시 환경 속에서 가난하게 자랐으며 미국 북서부를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희망, 공포, 좌절 등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휴고는 과감하게 억양격을 활용해 미국 북서부의 허름하고 잊혀진 작은 마을에 대한 향수 어린 고백적 시를 창작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의 수치, 좌절, 배척 등을 다루었다. 또한 자세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디테일에 독자가 관심을 집중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당신이 매우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미국적인 것이다(What Thou Lovest Well, Remains American)>(1975)라는 시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기억을 음식인 것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당신이 이상한 텅 빈 마을에서 길을 잃고

배고픈 연인들을 친구로 삼고 싶고 그들이 만든

길가 선술집에서 환영을 받고 싶다면

 

 

필립 레빈(Philip Levine, 1928~ )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필립 레빈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노동자들의 경제적 고통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휴고와 마찬가지로 레빈도 도시 빈민 출신이다. 그는 산업 사회에 갇힌 외로운 사람들을 대변해왔다. 그의 시 다수가 우울하며, 정부 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임을 아는 가운데 느끼는 무정부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시에서 레빈은 용기와 꾀로 사냥꾼들의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여우와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운율법을 사용하다가 후기로 가면서 더욱 자유롭고 형식에 개의치 않는 시를 창작했다. 또한 그는 현대 사회의 악에 대한 외로운 저항을 작품에 담았다.

 

 

제임스 디키(James Dickey, 1923~1997)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인 제임스 디키는 조지아 주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주제가 자아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야만 하는 연속성에 대한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작품들 다수는 강과 산, 날씨 변화,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등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디키는 남성간 우정의 어두운 면을 다룬 소설 석방(Deliverance)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책이 출간되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그의 명성은 높아졌다. 그의 최근 시집들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예리코:남부 관망(Jericho:The South Beheld)(1974)에서는 남부의 풍경을, 신의 이미지(God? Images)(1977)에서는 성경의 영향 등을 보여주고 있다. 디키는 종종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필사적으로 이루고/요구 이상으로 해내며라는 표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 비숍(Elizabeth Bishop, 1911~1979)과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 1929~ )

 

특이한 여성 시인들 중에는 엘리자베스 비숍과 에이드리언 리치가 최근 가장 많이 존경받고 있다. 비숍의 투명한 지성, 외진 풍경에 대한 관심, 여행과 관련한 은유들은 정확성과 섬세함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비숍은 자신의 정신적 선배인 메리앤 무어처럼 결혼하지 않았고, 철학적 깊이를 내포하고 있는 냉담하고 묘사적인 스타일로 멋진 시들을 창작했다. <어시장에서(At the Fishhouses)>처럼 매우 추운 대서양 북부의 묘사는 비숍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지식이 그러했으면 하는 것들과 닮았다/검고, 짜고, 맑고, 움직이고, 완전히 자유로운.”

 

플라스, 섹스턴, 에이드리언 리치 등의 뜨거운시들과 비교해서, 비숍의 시는 무어의 시와 함께 에밀리 디킨스까지 족적을 찾아갈 수 있는 차가운여성 시 전통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리치는 비록 전통적인 형식과 운율에 맞춰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작품들, 특히 그녀가 1960년대에 열렬한 페미니스트가 된 후에 쓴 작품들은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특히 재능을 보인 곳은 은유인데, 그녀의 뛰어난 작품 <난파선으로 잠수하기(Diving Into the Wreck)>(1973)는 여성의 정체성 찾기를 난파선을 찾아 잠수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난파선은 여성의 자아 상실과 같은 것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을 뚫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화자는 주장한다. 시인 드니즈 레버토프에게 바치는 리치의 시 <루프워커(The Roofwalker)>(1961)에서는 여성의 시 창작을 위험한 작업과 동일시하고 있다. 지붕을 만드는 남성들처럼 그녀는 실제보다 크고, 노출되었으며/언제라도 목이 부러질것처럼 느끼고 있다.

 

 

 

 

실험적인 시

 

 

1950년대에 많은 시인들에 의해 시작된 실험주의는 로웰의 후반기 시와 동시대 대부분의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험주의 시인들은 도널드 앨런이 최초로 비평가 집단이나 대학에서 외면당했던 과거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선집 새로운 미국 시(The New American Poetry)(1960)에서 분류한 대로 대략 5개의 학파로 나눌 수 있다.

재즈와 추상 표현주의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실험주의 작가들 대부분은 로웰보다 한 세대 정도 어린 시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유분방하며 반문화적인 지식인들로 대학이나 부르주아적인미국 시로부터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의 시는 과감하고 독창적이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한 그들의 시는 신화, 전설, 인디언과 같은 전통 사회 등 오래된 세계를 선호했다. 형식은 자유롭고 즉각적이며 유기적이었다. 시의 형식은 주제, 시를 쓸 당시 시인의 감정, 구어체적인 자연적 호흡 등에서 우러나왔다. 앨런 긴즈버그가 <즉흥 시학(Improvised Poetics)>에서 지적했듯이 첫 번째 떠오르는 생각이 최고의 생각으로 여겨졌다.

 

 

블랙 마운틴 시파

 

블랙 마운틴 시파는 찰스 올슨, 로버트 덩컨, 로버트 크릴리 등이 1950년대 초반에 교편을 잡았던 노스캐롤라이나 주 애쉬빌의 실험적이고 자유분방한 예술대학인 블랙 마운틴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에드 돈, 조엘 오펜하이머, 조나단 윌리엄스 등이 그 대학에 다녔으며, 폴 블랙번, 래리 에그너, 드니즈 레버토프는 대학의 잡지 오리진(Origin)블랙 마운틴 리뷰(Black Mountain Review)에 자신들의 작품을 실었다. 블랙 마운틴 시파는 찰스 올슨의 투사시(projective verse)’ 이론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휴지기와 타이핑에서의 줄바꾸기에 기초한 열린 형식을 옹호하고 있다.

짧은 스타일의 시를 쓴 로버트 크릴리(1926~ )는 대표적인 블랙 마운틴 시인이다. 크릴리는 <경고(The Warning)>(1955)라는 시에서 격렬한 동시에 사랑스러운 장면을 창조해내고 있다.

 

 

사랑을 위해 -- 나는

머리를 가르고

눈 뒤쪽에 초를

넣을 것이다

 

 

우리가 부적과

일순간의 놀람의 미덕을

잊는다면

사랑은 우리 안에서 죽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파

 

일반적으로 서부 연안의 시 대부분을 포함하는 샌프란시스코 시파의 작품들은 동양 철학과 종교, 일본 및 중국 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동양이 미국 서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비추어볼 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들쭉날쭉한 해안선 등 샌프란시스코 주변 지역은 아름답고 장엄하여 그 지역 시인들은 자연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시 중 다수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배낭여행 중 생긴 일을 다루고 있다. 시인들은 시적 영감을 얻기 위해 문학적 전통이 아닌 자연으로 시선을 돌렸다.

샌프란시스코 시인들은 잭 스파이서, 로렌스 펄링게티, 로버트 덩컨, 필 웰른, 류 웰치, 개리 스나이더, 케네스 렉스로스, 조앤 카이거, 다이앤 디프리마 등이 있다. 이들은 자신과 노동자를 동일시했다. 그들의 시는 단순하고 쉽게 읽히며 낙관적이다.

개리 스나이더(1930~ )의 작품에서처럼 샌프란시스코 시파의 시들은 개인과 우주의 미묘한 균형을 표현하고 있다. 스나이더는 <페이트 골짜기 위에(Above Pate Valley)>(1955)라는 작품에서 산을 따라 길을 내다가 이미 사라진 인디언 부족들이 남긴 흑요석 화살촉 파편들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묘사했다.

 

 

여름만 빼고 내내 눈이 오는 언덕에서

살진 여름 사슴의 땅에서

그들은 캠핑을 하게 됐다. 그들

자신만의 길에서. 나는 여기 내 자신만의 길을

따라왔다. 차가운 드릴과

곡괭이, 썰매, 다이너마이트 자루를

들고.

1만 년.

 

비트 시인들

 

샌프란시스코 시파는 1950년대에 등장한 비트시인 집단과 합쳐진다. 중요한 비트 작가들 대부분은 동부 연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사람들이며, 캘리포니아 주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처음으로 얻게 된 이들이다. 주요 비트 작가들은 앨런 긴즈버그, 그레고리 코르소,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스 등이다. 비트 시는 지하 클럽에서 행해진 시 낭송 공연에서 발전되었기에 구어체적이고 반복적이며, 읽을 때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일부 사람들은 비트 시가 1990년대에 널리 퍼진 랩 음악의 증조부쯤 된다고 보기도 한다.

비트 시는 미국 문학의 기존 형태를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언어들 밑에는 미국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었다. 비트 시는 미국이 순수함을 상실했다는 점과 미국의 인적, 물적 자원이 비극적으로 낭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한 고통과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다.

긴즈버그의 울부짖음(1956) 같은 시들은 전통적인 시에 혁명을 일으켰다.

 

 

나는 내 세대의 최고 정신이 광기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았다. 굶주리고, 히스테리를 부리며, 벌거벗은 채,

독한 마약을 찾아 새벽 흑인들의 거리를 몸을 질질 끌며,

천사머리를 한 비트 족들, 밤의 기계장치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발전기와 아주 오래된 천상의 교류를 찾아 타오르는...

 

 

뉴욕 시파

 

비트 및 샌프란시스코 시인들과는 달리 뉴욕 시파의 시인들은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정치적인 문제 또한 회피했다. 그들은 어느 시파보다 공식적인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시인들이다.

뉴욕 시파의 주요 인물인 존 애쉬버리, 프랭크 오하라, 케네스 코치는 하버드 대학교 재학 중일 때 만났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도시적이고 냉담하며, 비종교적이고 위트와 날카로운 섬세함을 겸비하고 있다. 그들의 시는 속도감이 있으며 도시적인 묘사와 부조화로 가득하다.

뉴욕은 미국의 예술 중심지이며 추상 표현주의의 탄생지로, 뉴욕 시파의 시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시인들은 예술 비평가나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거나 화가들과 협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구상적인 모양이나 명백한 의미를 믿지 않는 추상 미술에 대한 선호 때문에 이들 시인들의 작품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존 애쉬베리(1927~ )의 후기 작품들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애쉬베리의 흐르는 듯 부드러운 시들은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마음 위로 움직이는 사고와 감정을 기록하고 있다. 주요 문학상 3개를 수상한 그의 심오한 장시長詩 《볼록거울에 비친 자화상(Self-Portrait in a Convex Mirror)(1975)은 여러 생각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가끔 자기반영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배 하나가

알 수 없는 색깔을 날리며 항구로 돌아왔다.

당신은 이질적인 물질들이

당신의 하루를 분쇄하도록 허락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

 

도널드 앨런은 새로운 시파를 정의하는 시선집에서 확실한 지리적 기반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정의하기 힘든 이들을 다섯 번째 집단에 포함시켰다. 이 규정하기 모호한 집단에는 최근의 시 동향과 실험적인 경향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시는 생생한 꿈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무의식 세계를 표현하는 초현실주의 시와 최근에 급성장한 여성 및 소수민족 작가들의 작품이다. 피상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초현실주의자, 페미니스트, 소수민족 작가들은 주류인 백인 남성 문학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T. S. 엘리엇, 월러스 스티븐스, 에즈라 파운드가 1920년대 미국 시에 상징주의적 기법을 도입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와 이후 유럽 시와 사상에서 주요한 추세였던 초현실주의는 미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60년대가 되어서야 초현실주의가 실존주의와 함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압박감 속에서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1960년대 W. S. 머윈, 로버트 블라이, 찰스 시믹, 찰스 라이트, 마크 스트랜드를 비롯한 많은 미국 작가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초현실주의에 눈을 돌려 순수한 감정, 원형적인 이미지, 비이성적이고 실존적인 불안감 등의 특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머윈과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은 다음 시 구절에서 보이듯이 경구적인 시구詩句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신들은 우리가 되지 못했던 이들이다/자신이 더 이상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원을 넓혀라.”

블라이는 정치적인 초현실주의 시를 통해 베트남 전 당시 미국의 가치 기준과 외교 정책에 대해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는 시 <이빨 엄마 마침내 벗다(The Teeth Mother Naked at Last)>에 잘 나타난다.

 

 

벼가 자라는 논에 폭탄 구멍이 있는 것은

우리가 새로 포장된 훈제 굴을 먹고 있기 때문이야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더욱 커질수록 초현실주의 시들은 더욱 조용하고 사변적으로 되어갔는데, 찰스 라이트의 시 <새로운 시> (1973)에 이런 특징이 엿보인다.

 

 

그것은 우리의 슬픔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아이들을 위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도와줄 수 없을 것이다

 

 

마크 스트랜드의 초현실주의 시들은 모빈의 시처럼 음산하다. 스트랜드의 시는 극단적인 상실감을 담고 있다. 전통, 가치, 믿음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스트랜드에게는 동굴 같은 캄캄한 영혼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열쇠가 있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어둡고 나는 들어간다

더욱 어두워지는데 나는 들어간다

 

 

 

 

여성과 다민족 시인들

 

 

여성 문학은 소수민족 문학과 초현실주의처럼 196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미국 문학의 주요한 동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성 문학은 당시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에 의해 꽃을 피웠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그렇듯 미국 문학 역시 오랫동안 여성의 공헌을 간과하는 남성적 기준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뛰어난 여성 시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페미니스트인 것도, 그들이 다룬 주제가 반드시 여성의 관심사를 일률적으로 대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휴머니스트인 경우가 많았다. 지역적, 정치적, 인종적 차이가 그들의 작품을 형성했으며, 그들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뛰어난 여성 시인들에는 에이미 클램피트, 리타 도브, 루이즈 글뤽, 조리 그래엄, 캐롤린 카이저, 맥신 쿠민, 드니즈 레버토프, 오드리 로드, 거트루드 슈나켄버그, 메이 스웬슨, 모나 반 듀인 등이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다민족 문학이 부흥했다. 미국의 다민족 작가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흑인의 주도하에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민족 연구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는 여러 민족들을 전문으로 하는 수많은 학술지, 전문 조직, 문학잡지 등이 생겨났다. 1990년대 즈음에는 특정한 민족 문학 연구를 위한 학술회의가 시작되었고, 작품 선집이나 대학 과정 독서 목록에서 고전 작품이라는 정전正典에 민족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중요한 논쟁거리는 인종 대 민족, 민족우월주의 대 다중심주의, 단일언어 사용주의 대 이중언어 사용주의, 그리고 접합 대 주변화 등이다. 문학 텍스트뿐만 아니라 정치학 텍스트에도 적용되는 탈구조주의 혹은 해체주의는 당연시되던 것들에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소수민족의 시는 여성의 시가 담고 있는 다양성과 분노를 공유하고 있다. 최근에 꽃피운 소수민족 시인들로는 게리 소토, 알베르토 리오스, 로나 디 세르반테스 등의 히스패닉 계 미국인들과 레슬리 마몬 실코, 시몬 오티즈, 루이즈 에드리치 등의 인디언들, 아미리 바라카 혹은 르로이 존스, 마이클 하퍼, 리타 도브, 마야 앤젤루, 니키 지오바니 등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 그리고 캐시 송, 로슨 이나다, 재니스 미리키타니 등 아시아 계 미국인들이 있다.

 

 

치카노/히스패닉/라티노의 시

 

스페인 어에 영향을 받은 시들은 다양한 그룹의 작품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1950년대부터 치카노(Chicano)라고 알려진 멕시코 계 미국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1848년에 끝난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얻어낸 남서부 주들에 몇 세대 동안 살았던 사람들이다. 스페인 계 카리브 연안 사람들 중에는 쿠바 계 미국인들과 푸에르토리코 계 사람들이 활동적이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문학 전통을 뚜렷이 유지해왔다. 예를 들어 쿠바 계 미국인들의 뛰어난 희극은 루돌포 아나야 같은 치카노 작가들의 구슬픈 서정시와는 구별된다.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에서 온 이민자들 또한 이러한 다민족 문학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치카노 혹은 멕시코 계 미국인들은 멕시코 민요인 코리도(corrido) 형태의 구비문학 전통을 시에 담아내고 있다. 최근 작품들은 멕시코 인 사회의 전통적인 강인함과 그들이 백인들과 같이 있을 때 맞닥뜨리는 차별을 강조하고 있다. 치카노 시인들은 때로 알루리스타와 글로리아 안잘두아처럼 스페인 어와 영어 단어를 시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그들의 시는 구전 전통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으며 큰 소리로 읽힐 때 그 힘을 발휘한다.

 

일부 시인들은 대체로 스페인 어로 글을 썼는데, 이런 스페인 어 시 전통은 뉴멕시코 주 아코마에서 침략자인 스페인 사람들과 푸에블로 인디언과의 1598년 전투를 기념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서 쓰인 최초의 서사시인 가스파르 페레즈 데 빌라그라의 뉴멕시코의 역사(Historia de la Nueva Mexico)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치카노 시의 중심에 서 있는 시인 로돌포 곤잘레스(1928~ ) 나는 와퀸이다(I Am Joaquin)(1972)는 치카노들의 고된 상황을 애달파하는 작품이다.

 

 

혼돈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미국인 사회의 소용돌이에 갇혀

규칙들에 혼란을 느끼며

태도에 조롱을 받으며

교묘한 조종에 억압을 느끼며

현대 사회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치카노 작가들은 자신들의 멕시코적인 뿌리에서 생명력을 찾고 있다. 로르나 디 세르반테스(1954~ )는 고대 멕시코의 웅장함을 그리며 전통적인 서사적 코리도형식으로 시를 쓰고 있으며, 루이스 오마르 살리나스(1937~ )는 자신을 아즈텍 천사라고 부르고 있다. 치카노 시의 다수는 매우 개인적이며 가족이나 사회 구성원들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개리 소토(1952~ )는 주로 세상을 뜬 조상들을 경배하는 고대 전통을 살려 시를 썼지만, 1981년에 쓴 다음과 같은 시구에서는 오늘날 모든 미국인들에게 닥친 다문화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촛불은 죽은 자들을 위해 밝혀졌다

우리 앞에 있는 두 개의 세계

 

 

인디언 시

 

인디언들은 훌륭한 시를 창작했는데, 이는 샤머니즘적인 노래 전통이 그들의 문화유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작품은 자연을 생생하고 생동감 있게 그리며, 때로는 신비주의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또한 인디언 시인들은 자신들의 풍요로운 유산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실되는 것에 대한 비극적인 감정을 글로 옮겼다.

아코마 지역 인디언 사이먼 오티즈(1941~ )는 역사에 기초하여 미국에서 인디언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순을 탐색한다. 그의 시는 종종 백인 독자들에게 한때 자신들이 인디언들에게 가한 부정행위와 폭력을 상기시키면서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상호간의 깊은 이해를 통한 인종적 조화를 꿈꾼다.

오네이다 부족의 일원인 로버타 힐 화이트맨(1947~ )은 시 <별 이불(Star Quilt)>에서 별 이불, 새벽빛으로 짠과 같이 다문화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있으며, 라구나 푸에블로 인디언의 피를 어느 정도 이어받은 레슬리 마몬 실코(1948~ )는 아름다운 서정시에 구어체와 전통적인 설화를 담았다. 실코는 <차가운 눈보라 번개(In Cold Storm Light)>(1981)에서 일본 하이쿠와 유사한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꺼운 얼음 하늘에서

재빠르게 달리며

쿵쾅거리며

나무 꼭대기 위에 소용돌이치며

눈같이 하얀 고라니가 온다

조금씩 움직이며

하얀 노래

나뭇가지에 이는 폭풍

 

 

실코처럼 시인이자 소설가인 루이즈 에드리치(1954~ )는 드라마를 응축해놓은 듯한 인상적인 극적 독백을 창조했다. 에드리치의 시는 치페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알코올 중독, 실업, 가난과 싸우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시 <가족 상봉(Family Reunion)>(1984)에서는, 항상 술에 취해 있으며 학대를 일삼던 레이 삼촌이 도시에서 몇 년 만에 돌아온다. 레이 삼촌은 심장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시의 화자이자 삼촌으로부터 학대받은 적이 있는 여자 조카는, 레이 삼촌이 오래전 큰 거북이의 뱃속에 폭죽을 넣어 죽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에 화자는 삼촌과 그가 죽인 거북이를 연결시키고 있다.

 

 

어떻게든 우린 돌아갈 길을 찾게 된다네, 레이 삼촌은

오래된 노래를 부른다, 그를 고향으로 불러온

그 몸뚱이에 대고. 그의 손이 되어버린 회색 지느러미는

파도막이판에 뼈를 고정시키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좋지 않은 상처를 항상 그냥 내버려두는 소년이나

오랫동안 바다 밑에서 살아온 짐승의

이상하고 조용한 인내심이 고여 있다.

그리고 천사들은 밧줄을 들고 들것을 낮추며

오고 있다.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시

 

현대의 미국 흑인들은 아름답고 주제나 음색 면에서 상당히 다양한 시들을 창작했다. 흑인들의 시는 미국에서 가장 발전한 민족 문학이며 매우 다양하다. 아프리카 계 미국인 시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인 아미리 바라카(1934~ )는 희곡도 집필했으며 정치에도 활동적으로 참여했다. 마야 앤젤루(1928~ )는 희곡을 비롯하여 유명한 회고록인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1970), 시집 내가 죽기 전에 차가운 물 한 잔만 주오(Just Give Me a Cool Drink of Water ?ore I Diiie)(1971)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다. 앤젤루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을 기리는 시를 집필하기도 했다.

 

최근에 존경받고 있는 아프리카 계 미국인 시인 리타 도브(1952~ ) 1993년에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명명되었다. 소설가 및 희곡 작가이기도 한 그녀는 1987년에 시집 토머스와 뷸라(Thomas and Beulah)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시집에서 그녀는 일련의 서정시를 통해 자신의 조부모를 찬양하고 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풍요로운 내면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도브와 비슷하게 마이클 하퍼(1938~ )도 인종 차별과 폭력 앞에 노출된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복잡한 생활을 드러냈다. 그의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시는 종종 전쟁이나 도시생활 등 사람들로 북적대는 장면을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시들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의학적 이미지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의 <부족 모임:태생과 국가:피의 노래(Clan Meeting:Births and Nations:A Blood Song)>(1971) 고기들을 체액으로 잇대고에서 보이듯이 요리와 의료 수술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뷔페에서 기웠던 인생을/중환자실에서 재구성한다라고 적고 있다. 이 시는 병원의 이미지, 초기 미국 영화인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에 나타난 인종 차별, KKK, 필름 편집, X-레이 기술 등을 서로 연결시키며 마무리된다.

 

 

우리는 카메라처럼 우리의 뇌를 재장전한다

X-레이 광선에

과다 노출된 필름

이중 문에 갇힌

노출계:인종과 성

취미 삼아 필름처럼 감기고 울려 퍼졌던;

우리는 우리의 짐을 꾸려 집으로 간다

 

 

역사, 재즈, 대중문화 등은 대학 교수인 하퍼로부터 서부 연안의 출판가이자 시인인 이슈마엘 리드(1938~ )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리드는 이전 콜럼버스 재단과 야드버드(Yardbird), 퀼트(Quilt), 콘치(Konch)등의 잡지를 통해 다문화적 문학에 앞장선 인물로 유명하다. 오드리 로드(1934~1992) 등의 흑인 시인들은 아프리카를 고대로부터 문명의 중심지로 보는 아프리카 중심주의에서 정신적인 힘을 얻었다. 로드는 <댄의 여성들은 그들이 전사였던 시기를 기념하기 위해 손에 칼을 쥐고 춤춘다(The Women of Dan Dance with Swords in Their Hands to Mark the Time When They Were Warriors)>라는 감각적인 시에서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따뜻하게 만들고” “이미 죽은 것만을 소비하는고대 다호메이 왕국(현재 아프리카 서부 나이지리아의 베냉 남부에서 15~19세기에 번영했던 왕국-옮긴이)의 여전사를 화자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아시아 계 미국인의 시

 

아시아 계 미국인의 시 또한 치카노와 히스패닉 작가들의 시와 같이 매우 다양하다. 일본, 중국, 필리핀 계 미국인들은 미국에 7세대 동안 살았으며 한국, 태국, 베트남 계 미국인들은 비교적 최근에 이민을 왔다. 각 그룹은 서로 다른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 계 미국인 문학의 최근 전개 상황은 환태평양 지역 연구 및 여성 문학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시아 계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이국적이고 착한소수민족으로 동양인을 구별하는 정형성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미학자들은 도와 로고스의 개념을 비교하는 등 아시아와 서양의 문학 전통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계 미국인 시인들은 중국 경극에서 일본의 선불교까지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왔으며, 아시아의 문학 전통, 특히 선불교와 연결된 전통은 수없이 많은, 아시아 출신이 아닌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1991년에 출간된 선집 하나의 달 아래:현대 미국시의 불교(Beneath a Single Moon:Buddhism in Contemporary American Poetry)에서 파악할 수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들의 작품 세계는 매우 다양해, 아이이이이이이이이!(Aiiieeeee!)(초기 아시아 계 미국인 문학 선집)의 공동 편집자인 프랭크 친은 파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유명한 소설가 맥신 홍 킹스턴(1940~ )과 같은 작가들은 전통을 풍부하게 활용하고 있다. 일본계 미국인 3세대인 재니스 미리키타미는 일본-미국의 역사를 다루면서 3세계 여성, 타임 투 그리즈(Time to Greez), 아유미:미국에서의 일본인 4세대(Ayumi:Four Generations of Japanese in America)등 몇 권의 선집을 편집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캐시 송(1955~ )은 서정적인 시집 사진 신부(Picture Bride)(1983)에서 자신의 가족을 통해 역사를 극화하고 있다. 많은 아시아 계 미국인 시인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탐색하고 있다. 캐시 송이 시 <식물성 공기(The Vegetable Air)>(1988)에서 묘사한 소가 어슬렁거리는 광장, 중국 식당, 비딱하게 걸린 코카콜라 현수막 등이 있는 초라한 마을은 뿌리 없는 다문화적인 동시대의 삶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런 삶은 예술을 통해, 특히 이 시의 경우에는 카세트에 담긴 오페라를 통해 참을 만한 것이 된다.

 

 

그리고 친숙한 아리아가

달처럼 떠올라

당신을 몸에서 들어올려

다른 나라로 데려다주면

그곳에서 당신은 잠시 동안 가볍게 여행을 한다.

 

 

 

 

새로운 경향

 

 

미국 시의 최근 경향은 잡지 템블러(Temblor)와 관련이 있는 언어 시인들(language poets)’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브루스 앤드루스, 린 헤지니언, 언어:선집(?anguage?Poetries:An Anthology)(1987)을 편집한 더글러스 메설리, 밥 페럴맨, 수필집 완전 통사론(Total Syntax)(1985)의 저자 바레트 와튼 등이 있다. 그들은 언어가 모호성, 단편성, 혼돈 속에서의 자기주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언어를 확장한다. 반어적이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그들은 이데올로기, 교리, 관습 등 거대담론(metanarratives)’을 거부하고 초월적인 존재의 실재를 의심한다. 마이클 파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기가 천국이다, 집안에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곰팡이 핀 책

 

 

밥 페럴맨의 <만성적인 의미들>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 하나의 사실은 질료이다

열한 개 글자만 말할 수 있다

한밤에 검은 하늘, 적당하게.

나는, 비이성적인 잔재이다...

 

 

그들은 예술과 문학비평이 내재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판단하고 모더니즘의 닫힌 형식, 위계질서, 공현과 초월의 개념, 장르와 정전正典 텍스트(문학계에서 널리 인정받은 문학 작품)의 범주에 반대한다. 대신 그들은 열린 형식과 다문화적인 텍스트를 제시한다. 그들은 대중문화, 미디어, 패션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이를 재구성한다. 퍼포먼스 시처럼 언어 시는 종종 해석이 불가능하며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작곡가 존 케이지의 음악 같은 즉흥 연주와 연결된 퍼포먼스 중심의 시, 재즈 즉흥 연주, 혼합 매체 작품, 유럽 초현실주의는 많은 미국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잘 알려진 인물로는 필름, 비디오, 음향과 음악, 안무, 최신 기술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미합중국(1984)의 저자 로리 앤더슨을 들 수 있다. 음성과 악기를 강조한 음성시(sound poetry)’의 작가로는 즉흥 공연을 하는 데이비드 앤틴을 비롯하여 뉴욕 출신 출판인 조지 퀘이샤, 아먼드 슈워너, 잭슨 매클로 등이 있다. 매클로는 시각적인 혹은 구상적인 시를 공연하기도 했는데, 이는 문자 배열과 문장 배치를 통해 시각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기법이다. 민족 단체의 공연 시 또한 랩 음악과 함께 문화의 주류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대안 미술관이나 문학 서점 등에서 개최되는 공개 시 낭송회 포이트리 슬램(poetry slam)’은 미국 전역에서 정신을 고양시키는 참여 오락 행사가 되었다.

 

문학 이론 면에서 이런 경향에 반대하는 시인들이 있다. 이들은 자칭 신형식주의자(New Formalist)’로서 전통적인 형식, 각운, 보격 등을 다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형식주의자들은 현재 상태에 대한 중산층적 안일함, 꼼꼼한 그러나 지나치게 장식적인 소리, 시 워크숍에서 생산된 작품, 개인적인 서정시에 대한 지나친 강조 등의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신형식주의자들은 스토리라인 출판사와 관련이 있는데, 주요 시인으로는 사업가 시인인 다나 지오이아, 시인이면서 강력한 조치:전통 형식을 이용한 현대 미국시(Strong Measures:Contemporary American Poetry in Traditional Forms)(1986)의 공동 편집자인 필립 데이시와 데이비드 자우스, 브래드 라이트하우저, 거트루드 슈나켄버그 등이 있다. 로버트 리치먼의 시의 경향:1977년 이후 영어로 된 운율 및 보격을 맞춘 시(The Direction of Poetry:Rhymed and Metered Verse Written in English Since 1977)는 최근에 출판된 선집이다. 이 시인들은 비록 19세기 주제로 퇴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음악적 언어와 전통적인 닫힌 형식에 보편적인 마음 자세와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CHAPTER _ 8 1945년 이후 미국 산문 : 리얼리즘과 실험주의

 

 

 

 

2차 세계대전 후의 산문 문학은 일반화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전자 매체로 인해 지구촌 시대가 열린 가운데, 산문 문학은 유럽 실존주의 및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 등 국제적인 조류로 인해 활기를 띠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구어체가 구비문학 전통을 새롭게 부활시켰다. 문학은 미디어, 대중문화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과거에는 대중문화가 엘리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현재 미국에서는 오히려 엘리트 문화가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토머스 핀천, 조이스 캐롤 오츠, 커트 보니거트 주니어, 앨리스 워커, E. L. 닥터로 등의 진지한 작가들은 만화, 영화, 패션, 대중음악, 구전 역사를 이용해 글을 쓰거나 이것들에 대해 논평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최근 문학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이 질문들 다수는 형이상학적이다. 최근 작가들은 매우 실험적이며 자기의식적 혹은 자기반영적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기법들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더욱 다양한 재료를 통해 생명력을 얻는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최근 몇십 년 동안 미국 작가들은 포스트모던적인 감수성을 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모더니즘처럼 관점을 재구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관점을 담을 새로운 내용이 필요했다.

 

 

 

 

리얼리즘의 유산 및 1940년대 후반

 

 

20세기 전반의 소설들이 그랬듯이 하반기 소설 또한 당시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동시에 냉전시대가 개막되었다.

 

2차 세계대전은 주요 소재를 제공해주었다. 나자裸者와 사자死者(The Naked and the Dead)(1948)의 저자 노먼 메일러와 지상에서 영원까지(From Here to Eternity)(1951)의 저자 제임스 존스는 이러한 소재를 가장 잘 이용한 작가였다. 두 작가 모두 자연주의와 리얼리즘적인 기법을 사용했으며 전쟁을 미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윈 쇼의 젊은 사자들(Young Lions)(1948)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먼 오크도 케인 호의 반란(The Caine Mutiny)(1951)을 통해 인간의 약점이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전쟁시에도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지프 헬러는 캐치-22(Catch-22)(1961)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을 풍자적이고 부조리하게 그려내면서 전쟁이 광기로 점철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토머스 핀천은 중력의 무지개(Gravity? Rainbow)(1973)에서 또 다른 현실세계를 패러디하고 치환시키는 복잡하지만 멋진 이야기를 그려냈다. 커트 보니거트는 5도살장(Slaughterhouse-Five)(1969)의 출간으로 1970년 초반에 반문화의 총아가 되었는데, 이 반전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이 연합군에 의해 폭격당하는 상황을 전쟁 포로의 눈으로 그려내고 있다.

1940년대에는 새로운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수필가인 로버트 펜 워런을 비롯하여, 극작가 아서 밀러와 테네시 윌리엄스, 단편소설 작가 캐서린 앤 포터와 유도라 웰티 등이 바로 그들이다. 밀러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남부 출신이다. 이들 모두는 가족과 사회 내에서 개인이 겪게 되는 운명을 다루었으며, 개인적인 성공과 그룹 내 책임감 사이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었다.

 

 

로버트 펜 워런(Robert Penn Warren, 1905~1989)

 

남부 탈주자 문학 그룹의 일원이었던 로버트 펜 워런은 20세기 내내 성공한 작가였다. 그는 역사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적인 가치에 대해 평생 동안 관심을 가졌다. 지속적으로 사랑받은 그의 작품 모두가 왕의 신하(All the King? Men)(1946)는 멋쟁이지만 사악한 남부 상원의원 휴이 롱의 정치 경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면을 들추어냈다.

 

 

아서 밀러(Arther Miller, 1915~ )

 

뉴욕 출신의 극작가이며 소설가, 수필가, 전기 작가이기도 한 아서 밀러는 1949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을 통해 절정에 다다랐다. 이 작품은 인생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하지만 실패가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깨닫게 된 한 남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 희곡은 로만 가족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부인의 불안정한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 또한 자연주의 색채와 리얼리즘을 결합하고 있으며, 동적인 인물을 짜임새 있게 설정하고,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가치를 고집한다는 점에서 1940년대 문학적인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윌리 로먼의 부인이 말하듯이 반드시 관심을 보여야 하는한 평범한 서민에 대한 찬가이다. 신랄하면서도 어두운 이 작품은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극중 한 등장인물은 반어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세일즈맨은 꿈을 꾸어야 해. 담당할 구역이 딸려 오거든.”

 

밀러는 명작 세일즈맨의 죽음 이외에도 몇십 년 동안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모두가 나의 아들(All My Sons)(1947)도가니(The Crucible)(1953) 또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둘 다 정치극으로 각각 현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두가 나의 아들은 한 제조업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결함이 있는 줄 알면서도 부품들을 비행기 업체에 보냄으로써 결국 자신의 아들과 다른 이들을 죽게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도가니는 일부 청교도들이 마녀로 오인받아 처형당했던 17세기 매사추세츠 살렘 마녀 재판을 묘사하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마녀 사냥이 민주주의에 저주로 작용한다는 메시지는 이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던 1950년대 초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 등이 이끈 반공산주의 운동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 Williams, 1911~1983)

 

미시시피 출신의 테네시 윌리엄스는 20세기 중반 미국 문학계에 등장한 아주 복잡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미국 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가족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가족 내에 존재하는 불안한 감정 및 해소되지 못한 성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다. 윌리엄스는 주문을 외우는 듯한 반복법의 사용, 시적인 남부 사투리, 괴기스러운 배경, 성적 욕망에 대한 프로이트식 해석 등으로 유명하다.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최초의 미국 작가들 중 한 사람인 윌리엄스는 고통 받는 등장인물의 성을 통해 그들의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윌리엄스의 등장인물들은 심한 고통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윌리엄스는 20편이 넘는 장막극을 썼는데 그중 다수가 자전적이다. 그는 1940년대에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194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1947)를 통해 상대적으로 일찍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20년 이상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이 두 작품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했다.

 

 

캐서린 앤 포터(Katherine Anne Porter, 1890~1980)

 

캐서린 앤 포터의 짧지 않은 연륜과 경력은 몇 시대에 걸쳐 있다. 그녀의 첫 번째 성공작인 단편소설 <꽃 피는 유다 나무(Flowering Judas)>(1929)는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아름답게 짜여진 단편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의 사생활을 살짝 들추어낸다. 예를 들어 <웨더럴 할머니의 남자 차버리기(The Jilting of Granny Weatherall)>는 여러 감정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포터는 종종 여성들이 겪는 내적인 경험과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의 태도를 들추어냈다.

포터의 뉘앙스는 뉴질랜드 출신의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이야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포터의 단편소설집에는 꽃 피는 유다 나무(1930), 정오의 와인(Noon Wine)(1937),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Pale Horse, Pale Rider)(1939), 기울어진 탑(The Leaning Tower)(1944), 단편소설집(Collected Stories)(1944) 등이 있다. 1960년대 초반 그녀는 인간 상호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불변의 주제로 우의적인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바로 바보들의 배(Ship of Fools)(1962)라는 작품으로, 1930년대 후반 독일 상류층 사람들과 난민들을 태운 여객선을 배경으로 한다.

포터는 많은 작품을 집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 중에는 남부 출신 동료 유도라 웰티와 플래너리 오코너 등이 있다.

 

유도라 웰티(Eudora Welty, 1909~2001)

 

미시시피에서 태어나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해온 부유한 가정의 유도라 웰티는 워런과 포터의 영향을 받았다. 사실 포터는 웰티의 첫 번째 단편소설집인 초록빛 커튼(A Curtain of Green)(1941)의 머릿글을 써주었다. 웰티의 섬세한 작품은 포터의 글을 모델로 했지만 웰티는 코믹하고 그로테스크함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웰티는 플래너리 오코너처럼 비정상적이고 괴벽스러우며 특이한 인물을 등장시켰다.

웰티는 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간적이고 긍정적인 위트를 사용했는데, 소설 선집에 자주 수록되는 <내가 우체국에서 일하는 이유>라는 단편소설은 이러한 면을 잘 드러내준다. 이 작품은 고집 세고 독립심 강한 딸이 가출하여 작은 우체국에서 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단편소설집에는 넓은 그물(The Wide Net)(1943), 황금 사과(The Golden Apples)(1949), 이니스폴른 호의 신부(The Bride of the Innisfallen)(1955), 달빛 호수(Moon Lake)(1980) 등이 있다. 웰티는 또한 현대 플랜테이션 가족에 초점을 둔 델타의 결혼식(Delta Wedding)(1946), 그리고 낙관주의자의 딸(The Optimist? Daughter)(1972) 등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1950년대 풍요 속의 소외

 

 

세계 대공황이 있기 전인 1920년대에 발생했던 현대화 및 테크놀로지는 1950년대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은 공황에서 탈피하게 되었고, 1950년대는 대부분 미국인들에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물질적 번영을 안겨주었다. 기업계에서의 사업은 사람들, 특히 교외에 사는 사람들에게 성공의 실재적이며 상징적 징표인 집, 자동차, 텔레비전, 가전제품들을 제공해줌으로써 멋진 삶을 영유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외로움은 당시 지배적인 주제였다. 슬론 윌슨의 베스트셀러 회색 플란넬 정장의 남자(The Man in the Gray Flannel Suit)(1955)에서 등장하는 얼굴 없는 회사원은 문화적인 전형이 되었다. 미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소외감은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연구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1950)에 묘사되어 있다. 이 서적 외에도 다소 과학적인 연구서들이 잇달아 출간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밴스 패커드의 숨은 설득자들(The Hidden Persuaders)(1957)지위 추구자들(The Status Seekers)(1959), 윌리엄 화이트의 조직 인간(The Organization Man)(1956), C. 라이트 밀스의 지적인 연구서 화이트칼라(White Collar)(1951)파워 엘리트(The Power Elite)(1956) 등이 출간되었다.

 

경제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풍요로운 사회(The Affluent Society)(1958)라는 책을 집필했다. 이러한 책들은 모든 미국인들이 공통된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1950년대식의 가정을 뒷받침해주었다. 이 연구서들은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시민들이 개척정신 중심의 개인주의를 상실하고 너무 순응주의적으로 되어간다며 비난하거나(예를 들어, 리스먼과 밀스) 혹은 갤브레이스의 글에서 보이듯이 독자들에게 테크놀로지와 여가 시간이 만들어낸 신흥 계급의 일원이 되도록 충고하고 있다.

 

1950년대는 사실 포착하기 힘들지만 스트레스가 널리 퍼져 있던 시기였다. 존 오하라와 존 치버, 존 업다이크의 소설은 겉으로는 만족스러워 보이는 현실의 이면에 서서히 꿈틀거리는 스트레스를 탐구하고 있다. 1950년대 최고 작품들 대부분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과 솔 벨로의 짧은 소설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1956)에서 보이듯이 성공이라는 덫에 빠진 사람들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일부 작가들은 조금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낙오한 사람들을 다뤘는데,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1951), 랠프 엘리슨의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1952),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1957) 등이 이러한 작품들이다. 1950년대가 저물 무렵 필립 로스는 자신의 유대 인 유산으로부터 스스로의 거리감을 반영한 단편소설집 안녕, 콜럼버스(Goodbye, Columbus)(1959)를 발표했다. 로스의 심리적 관찰력은 지금까지도 그의 소설 및 자서전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다.

 

1950년대와 이후 솔 벨로, 버나드 맬러머드, 아이작 바쉐비스 싱어 등 두드러진 유대 인 작가들은 미국 문학에 높은 가치의 호소력 짙은 작품들을 더해주었다. 3명의 유대 인 작가들의 작품은 유머를 사용하면서 윤리적인 면에 관심을 보였고, 구렘탉섟?속에 있는 유대 인 공동체를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존 오하라(John O’Hara, 1905~1970)

 

기자 출신의 존 오하라는 극본, 단편소설, 장편소설 등을 쓴 다작 작가였다. 그는 섬세하고 인상적인 세부 묘사의 귀재로서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 특히 195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는 외양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이들이 내부의 결점 및 불만으로 인해 상처받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런 작품들로는 사마라 마을의 약속(Appointment in Samarra)(1934), 프레드릭 10(en North Frederick)(1955), 테라스에서(From the Terrace)(1958) 등이 있다.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1924~1987)

 

제임스 볼드윈과 랠프 엘리슨은 1950년대 미국 내 흑인들의 경험을 반영한 작가이다. 두 작가의 주인공들은 과대한 야망이 아니라 정체성 결핍으로 고통을 겪는다. 뉴욕 할렘 지역에서 9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볼드윈은 성직자의 양자였다. 어렸을 때 볼드윈은 교회에서 때로 설교를 했다. 이 경험은 그의 문장에 호소력 있고 입담 좋은 특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는 특히 훌륭한 수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그의 수필집 다음에는 불을(The Fire Next Time)(1963)에 실린 <내 마음의 영토에서 보낸 편지(Letter from a Region of My Mind)>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볼드윈은 인종간의 차별을 종식해야 한다고 감동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볼드윈의 자전적인 첫 번째 소설 산에 올라 고하여라(Go Tell It On the Mountain)(1953)는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이 소설은 교회에서 기독교 개종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아와 종교적 신앙을 찾으려 하는 14살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볼드윈의 다른 중요한 작품은 인종 문제와 동성애 문제를 다룬 또 다른 나라(Another Country)(1962)와 인종 차별, 예술가의 임무, 문학에 관한 개인 수필집인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른다(Nobody Knows My Name)(1961) 등이 있다.

 

 

랠프 월도 엘리슨(Ralph Waldo Ellison, 1914~1994)

 

랠프 엘리슨은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중서부인으로 남부에 있는 투스케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는 미국 문학계에서 특이한 존재이다. 호평을 받은 책 보이지 않는 사람단 한 편이 그의 작품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전기회사로부터 훔친 전기로 불을 밝힌 지하 구멍에서 살고 있는 한 흑인 남성에 관한 이야기로, 그의 그로테스크한 환멸의 경험을 담고 있다. 그는 흑인 대학 장학금을 받으면서 백인들에게 치욕스런 대우를 받게 되는데, 대학에 가서는 흑인 교장이 흑인들의 관심사를 일축해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대학 밖의 삶 또한 타락해 있다. 예를 들어 종교마저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데, 한 설교자는 범죄자임이 드러난다. 이 소설은 사회가 실현 가능한 꿈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흑인이나 시민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인종적인 주제를 강력하게 구체화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투명인간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인간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 1925~1964)

 

조지아 출신의 플래너리 오코너는 치명적인 혈액병인 낭창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여성작가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감상주의를 배제했다. 이러한 특징은 지나칠 정도로 유머가 풍부하면서도 음산하고 견고한 단편소설에 잘 드러나 있다. 다른 여성작가인 포터, 웰티, 허스턴과 달리 오코너는 자주 등장인물과 거리를 두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이나 무능을 폭로하고 있다. 그녀의 소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지한 남부 사람들은 종종 미신이나 종교를 이유로 들어 폭력을 행사한다. 자신만의 교회를 설립하는 광신자 이야기를 다룬 현명한 피(Wise Blood)(1952)에 이와 같은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폭력은 때로 편견에서 비롯된다. 단편소설 <이주자(The Displaced Person)>에서 무지한 시골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며 남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한 이주자에 대해 위협을 느껴 결국 그를 살해하게 된다. 잔인한 사건들이 등장인물에게 발생하는데, <착한 시골 사람들(Good Country People)>에서는 한 남성이 소녀를 유혹한 후 그녀의 의족을 훔쳐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코너의 블랙 유머는 너새니얼 웨스트, 조지프 헬러와 연관이 있다. 그녀의 작품에는 단편소설집인 착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A Good Man Is Hard to Find)(1955)오르다 보면 한곳에 모이게 마련이다(Everything That Rises Must Converge)(1965), 장편소설 끝까지 공격하는 자는 그것을 얻는다(The Violent Bear It Away)(1960), 편지 모음집 존재의 습관(The Habit of Being)(1979) 등이 있다. 그녀의 전집(Complete Stories) 1971년에 출간되었다.

 

 

솔 벨로(Saul Bellow, 1915~ )

 

캐나다 출신으로 시카고에서 성장한 솔 벨로는 러시아 계 유대 인 조상을 두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인류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이는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대상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점에서 선배 소설가인 시어도어 드라이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많은 존경을 받았던 벨로는 197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암울한 실존주의적 색채를 담고 있는 벨로의 초기작에는 징집 영장을 기다리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카프카 스타일로 다룬 허공에 매달린 사나이(Dangling Man)(1944), 유대 인과 비유대 인 사이의 관계를 다룬 희생자(The Victim)(1947)를 들 수 있다. 1950년대에 그의 시각은 더욱 코믹하게 변했다. 그는 정열적이며 모험심 많은 1인칭 서술자를 등장시킨 오기 마치의 모험(The Adventures of Augie March)(1953)비의 왕 헨더슨(Henderson the Rain King)(1959)을 발표했다. 첫 번째 소설은 유럽 암시장에 진출한 허클베리 핀을 닮은 도시 출신 사업자 이야기이며, 두 번째 소설은 채워지지 않는 야망 때문에 아프리카로 가게 된 중년의 백만장자를 다룬, 반쯤 진지하고 반쯤 코믹한 소설이다. 이후 작품에는 낭만적 자아라는 개념을 전공하고 있는 신경쇠약에 걸린 영문학 교수의 고통스런 삶을 그린 허조그(Herzog)(1964), 새믈러 씨의 혹성(Mr. Sammler? Planet)(1970), 훔볼트의 선물(Humboldt? Gift)(1975), 자전적인 학장의 12(The Dean? December)(1982) 등이 있다.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1965)는 짧고 뛰어난 작품이기에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교재로 자주 사용된다. 이 소설은 자신의 좋은 점만을 부각시키며 사회적 무능을 숨기려는 실패한 사업가 토미 윌헬름이 주인공이며, “자신의 문제를 숨기는 데 있어서 토미 윌헬름은 다른 친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라고 반어적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감추는 데 에너지를 다 소모하여 결국 추락하게 된다. 윌헬름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완전히 무능해진다. 여성, 직장, 기계, 상품 시장 등과의 관계에서 모두 실패하며 돈도 몽땅 잃게 된다. 그는 불행한 일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유대 교 민간설화에 등장하는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schlemiel)’의 예이다. 오늘을 잡아라는 많은 미국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요약한 작품이다.

 

 

버나드 맬러머드(Bernard Malamud, 1914~1986)

 

버나드 맬러머드는 뉴욕 시에서 러시아 계 유대 인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두 번째 소설 어시스턴트(The Assistant)(1957)를 통해 삶의 역경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투쟁 및 최근 유대 인 이민자의 윤리적인 토대 등 그의 특징적인 주제들을 모색했다.

맬러머드의 데뷔작은 내추럴(The Natural)(1952)로 신화적인 프로 야구의 세계를 배경으로 리얼리즘과 환상을 결합한 작품이다. 다른 소설들로는 또 하나의 인생(A New Life)(1961), 매수자(The Fixer)(1966), 피델먼의 그림(Pictures of Fidelman)(1969), 차용자借用者(The Tenants)(1971) 등이 있다. 그는 또한 단편소설을 다수 집필한 대가이다. 그는 단편소설집 마법의 통(The Magic Barrel)(1958), 바보들 먼저(Idiots First)(1963), 렘브란트의 모자(Rembrandt? Hat)(1973) 등을 통해서 다른 누구보다 유대 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의식, 현실과 초현실, 사실과 전설 등에 대해 더욱더 깊게 파고들었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안겨준 맬러머드의 기념비적 작품은 매수자이다. 이 소설은 1913년에 러시아에서 발생했으며 현대사에 어두운 반유대주의 얼룩을 남긴 멜델 베일리스 모함 사건이라는 악명 높은 실제 사건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다. 맬러머드는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려 노력하는 주인공 야코프 보크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 1904~1991)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단편소설의 대가인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랍비 법원장의 아들로 태어나 1935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작가이다. 싱어는 평생 이디시 어(지난 몇 세기 동안 유럽 유대 인 사이에 공통적으로 쓰인 독일어와 히브리 어를 섞은 언어)로 글을 쓰면서 두 개의 특정 유대 인 단체, 즉 구세계의 작은 유대 인 마을 거주민들과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바다를 건넌 미국 이민자들을 신화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싱어의 글은 나치와 공모자에 의해 유럽 유대 인 상당수가 몰살당했던 유대 인 대학살에 대한 증언자 역할을 한다. 한편으로 싱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럽 유대 인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영지(The Manor)(1967)대장원(The Estate)(1969), 양차 세계대전 사이 폴란드 유대 인 가족에 중점을 둔 모스카트 가(The Family Moskat)(1950) 등에 나타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삶을 찾으려하는 유대 인 대학살 생존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 사랑 이야기(Enemies, A Love Story)(1972)에서처럼 세계대전 후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집필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89~1977)

 

싱어처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동유럽 이민자이다. 전제정치 체제 러시아에서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5년 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1948년부터 1959년까지는 뉴욕 주 코넬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으며 1960년에는 스위스로 건너가 여생을 마쳤다. 그는 소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무력한 러시아 이민자 교수를 그린 자전적 소설 프닌(Pnin)(1957), 12살 미국 소녀와 사랑에 빠진 학식 있는 중년 유럽 인의 이야기를 다룬 롤리타(Lolita)(1958년에 미국에서 출간됨) 등이 있다. 나보코프의 또 다른 야심작인 혼성 모방 소설 창백한 불꽃(Pale Fire)(1962)은 고인이 된 상상력이 풍부한 한 시인의 장편 시와 이에 대한 한 비평가의 비평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시에 대한 비평가의 글이 시를 압도하며 예상치 못한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보코프는 스타일상의 섬세함, 재치 있는 풍자, 독창적인 형식 실험 등으로 존 바스를 비롯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보코프는 러시아와 미국 문학 세계의 매개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의식하고 있었는데, 고골리에 대한 책을 집필했으며 푸슈킨의 예프게니 오네긴을 번역했다. 롤리타의 비정상적인 사랑에서 보이듯이 과감하고 표현주의적인 그의 주제들은 본질적으로 리얼리즘 경향을 지닌 미국 소설 전통에 표현주의적인 20세기 유럽의 조류를 소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부분적으로 풍자적이며 부분적으로는 향수 어린 그의 어조는 위트와 공포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합친 토머스 핀천 같은 작가들에 의해 사용된, 반쯤 진지하면서도 반쯤 코믹한 정서적 언어 사용역을 제시해주었다.

 

 

존 치버(John Cheever, 1912~1982)

 

풍속소설가로 불리기도 하는 존 치버는, 뉴욕 비즈니스 세계가 사업가와 그의 가족, 친구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격조 높고 시사적인 단편소설들로 유명하다. 섬세하게 그려진 체호프 스타일의 이야기는 열정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거나 형이상학적인 확신을 찾으려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단편소설들은 어떤 사람들의 인생(The Way Some People Live)(1943), 세이디 힐의 가택 침입자(The Housebreaker of Shady Hill)(1958), 나의 다음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을 몇몇 사람, 장소, 사물들(Some People, Places and Things That Will Not Appear in My Next Novel)(1961), 여단장과 과부 같은 아내(Brigadier and the Gold Widow)(1964), 사과의 세계(The World of Apples)(1973) 등이다. 이 제목들은 치버 특유의 냉소적이며 장난스럽고 불경스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소설의 중심 소재를 암시하고 있다. 치버는 또한 장편소설 웹쇼트 가의 스캔들(The Wapshot Scandal)(1964), 탄환 공원(Bullet Park)(1969), 자전적인 작품 매잡이(The Falconer)(1977) 등을 출간했다.

 

 

존 업다이크(John Updike, 1932~ )

 

치버처럼 풍속작가로 간주되는 존 업다이크는 교외 지역을 배경으로 가정 문제를 주로 다루면서 권태와 우울을 투영시켰는데, 특히 매사추세츠와 펜실베이니아 동부 연안의 허구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업다이크는 해리 래빗(토끼)’ 앵스트롬이라는 등장인물의 생애를 그린 4권의 토끼시리즈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시리즈는 40년에 걸친 미국의 사회적려÷?역사를 배경으로 앵스트롬의 희로애락을 그리고 있다. 달려라 토끼(Rabbit, Run)(1960) 1950년대를 반영하면서 목적과 애정을 잃은 젊은 가장 앵스트롬을 묘사하고 있다. 돌아온 토끼(Rabbit Redux)(1971) 1960년대 반문화에 주목하며 삶에서 뚜렷한 목표나 목적, 혹은 일상생활에서 현실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지 못하는 앵스트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시들해지면서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토끼는 부자다(Rabbit Is Rich)(1981)에서 앵스트롬은 유산 상속으로 인해 부자가 된다. 마지막 4번째 책인 잠든 토끼(Rabbit at Rest)(1990) 1980년대 문화의 퇴보 속에서 앵스트롬의 인생과의 화해, 우연한 죽음 등을 보여주고 있다.

업다이크의 다른 소설들에는 켄타우로스(The Centaur)(1963), 커플스(Couples)(1968), 베치, (Bech:A Book)(1970)이 있다. 그는 오늘날 작가 중에 가장 훌륭한 스타일을 소유하고 있는데, 특히 그의 단편소설들은 다루고 있는 분야나 독창성 면에서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다. 업다이크의 단편소설집에는 같은 문(The Same Door)(1959), 음악학교(The Music School)(1966), 박물관과 여성(Museums and Women)(1972), 가기에 너무 먼(Too Far To Go)(1979), 문제들(Problems)(1979) 등이 있다. 또한 시와 수필집 몇 권을 창작했다.

 

 

J. D. 샐린저(J. D. Salinger, 1919~ )

 

J. D. 샐린저는 다가올 1960년대를 예견이라도 하듯, 사회에서 낙오하고자 하는 시도들을 그렸다. 뉴욕 시에서 태어난 그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1951)으로 상당한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소설에서 감수성 풍부한 16살 소년 홀든 콜필드는 바깥의 어른들 세상을 보기 위해 명문 기숙학교에서 도망치지만 결국 물질주의와 가짜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콜필드는 로버트 번즈의 시를 잘못 인용하며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의 백기사가 되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호밀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그 속에서 놀 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호밀밭을 상상한다. 그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키가 큰 사람이다. “내가 벼랑 끝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해야 할 일은 벼랑으로 떨어지려 하는 아이들을 잡는 일이지라고 콜필드가 말한다. 벼랑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유년기의 상실과 순수, 특히 성적인 순수의 상실을 의미한다. 은둔하면서 말을 아끼는 작가 샐린저는 9개의 단편(Nine Stories)(1953), 프래니와 주이(Franny and Zooey)(1961), 그리고 잡지 뉴요커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묶은 목수여, 지붕의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Raise High the Roof Beam, Carpenters)(1963)를 발표했다. 뉴햄프셔에 살고 있는 샐린저는 1965년에 단편소설 한 편을 발표한 후 미국 문학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잭 케루악(Jack Kerouac, 1922~1969)

 

가난한 프랑스 계 캐나다 인 가정에서 태어난 잭 케루악 또한 중산층의 삶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뉴욕 시 컬럼비아 대학교 재학 당시 비트라는 지하문학 집단에 참여하고 있는 문학인들을 만나게 됐다. 그의 소설은 남부 작가 토머스 울프의 자전적인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케루악의 가장 잘 알려진 소설 길 위에서(1957)는 공동체적 삶과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좇아 미국을 여행하는 비트 족(beatnik)’들을 묘사한다. 달마행자들(The Dharma Bums)(1958) 또한 행자처럼 돌아다니는 반문화적 지식인들과 그들의 선에 대한 애착 등을 중심으로 다룬다. 케루악은 멕시코시티 블루스(Mexico City Blues)(1959)라는 시집을 냈으며 실험소설가 윌리엄 버로스와 시인 앨런 긴즈버그 같은 비트 세대 작가들과의 관계를 담은 책들을 펴냈다.

 

 

 

 

창조적인 격동의 1960년대

 

 

1950년대 수면 아래 잠재하고 있던 소외와 스트레스는, 1960년대에 외부적인 표현법을 찾게 되어 현재까지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공민권운동, 페미니즘, 반전 시위, 소수자 인권운동, 반문화의 도래로 표출된다. 이 시대에 주목할 만한 정치사회학 저술로는 마틴 루터 킹의 공민권에 대한 연설문, 페미니즘 선구자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1963)를 비롯한 초기 작품들, 1967년 반전 시위를 다룬 노먼 메일러의 밤의 군대(The Armies of the Night)등이 있다.

 

1960년대의 작품들은 허구와 사실, 소설과 르포의 경계 흐리기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에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1958) 등을 써 문학계의 악동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는 미국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집단 살인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냉혈한(In Cold Blood)(1966)을 통해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로써 저널리즘과 소설 기법을 결합하거나 실제 사실을 유희적으로 다루면서 보도 뉴스의 극적인 면과 직접성을 가미해 재구성하는 뉴 저널리즘이 등장하게 됐다. 톰 울프의 전기 쿨에이드 산성 테스트(The Electic Kool-Aid Acid Test)(1968)는 소설가 켄 케이시의 반문화적인 여행을 찬양하고 있으며, 급진적 유행과 비판 뒤집는 자 위협하기(Radical Chic and Mau-Mauing the Flak Catchers)(1970)는 좌익 행동주의자들의 여러 면들을 조롱하고 있다. 이후 미국 우주 계획의 초기 단계를 열의와 통찰력으로 다룬 역사서 옳은 일(The Right Stuff)(1979) 1980년대 미국 사회를 파노라마처럼 그려낸 소설 허영의 불꽃(The Bonfire of the Vanities)(1987)을 발표했다.

 

1960년대 문학은 시대의 격동과 함께 흘러갔다. 몇몇 작가들은 우화소설을 통해 아이러니하고 코믹한 관점을 부각시켰다. 예를 들면 수용자보다 관리인들이 더욱 심리적으로 불안한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을 담고 있는 켄 케이시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 Nest)(1962), 리처드 브로티건의 괴이하고 환상적인 소설 미국에서의 송어 낚시(Trout Fishing in America)(1967) 등이 있다. 코믹하고 환상적인 특징을 지닌 소설에 이어 반쯤 코믹하고 반쯤 형이상학적인 새로운 형식을 갖춘 소설들이 잇따라 출간되었는데, 예를 들면 토머스 핀천의 편집증적인 명작 V(1963)49호 품목의 경매(The Crying of Lot 49)(1966), 존 바스의 염소 소년 자일스(Giles Goat-Boy)(1966), 1964년 첫 단편소설집 돌아오라, 칼리가리 박사(Come Back, Dr. Caligari)를 출간한 도널드 바슬미의 단편소설 등이 있다.

 

한편 연극에서는 에드워드 올비가 비전통적 심리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 Afraid of Virginia Woolf?)(1962), 미묘한 균형(A Delicate Balance)(1966), 바다풍경(Seascape)(1975) 등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영혼 탐색 및 역설적인 접근법을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40대의 나이로 뒤늦게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 의사이자 남부 상류 계급의 모범적 인물 워커 퍼시 또한 1960년대에 등장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흥미진진한 심리 드라마의 배경으로 연출해냈다.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는 영화광(The Moviegoer)(1961)마지막 신사(The Last Gentleman)(1966)를 들 수 있다.

 

 

토머스 핀천(Tomas Pynchon, 1937~ )

 

뉴욕에서 태어나 1958년 코넬 대학교를 졸업한 토머스 핀천은 공개를 피하는 작가로 유명하며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코넬 대학교에 다니면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영향을 받았던 듯하다. 핀천의 신선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단서, 게임, 코드 해석이라는 주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들은 나보코프에게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핀천의 유연한 음조는 편집증에 관한 이야기를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핀천의 모든 소설은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중 최소한 한 명은 숨겨져 있는 거대한 음모를 모르고 있으며, 그 등장인물은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내고 세계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전통적으로 예술가들의 임무였던 이 일이 핀천의 작품에서는 독자에게 맡겨져,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단서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런 편집증적인 비전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확장하는데 핀천은 우주가 점차적으로 소진된다는 의미의 엔트로피 이론을 은유로 채택했다. 핀천은 또한 대중문화, 특히 공상과학소설 및 탐정 소설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서 능숙하게 사용했다.

핀천의 V는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이상한 사업을 벌이는 낙오자 베니 프로페인과, 그와 상반되는 인물로 미지의 여성 스파이 V를 찾으려는 학식 있는 허버트 스텐실의 이야기이다. 짧은 소설 49호 품목의 경매는 미국 우정국과 관련된 비밀 조직을 다루고 있으며, 중력의 무지개(Gravity? Rainbow)(1973)는 포탄이 난무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을 배경으로 나치들과 위장 인물들을 찾으려는 우스꽝스러운 사건과 상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핀천의 소설에 나타나는 특성인 폭력성, 코미디, 새로운 기법 추구 등은 그를 엄연한 1960년대 작가로 인정받게 해주었다.

 

 

존 바스(John Barth, 1930~ )

 

메릴랜드 출신의 존 바스는 이야기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말해지는가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작가이다. 핀천이 탐정소설을 통해 잘못된 실마리나 그럴듯한 단서들로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반면, 바스는 일부는 작게 만들고 일부는 크게 만드는 굴절된 거울로 가득한 유령의 집으로 독자의 손을 이끈다. 글쓰기와 독서 과정을 계속 언급하는 14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Lost in the Funhouse)(1968)의 작가인 바스에게 리얼리즘은 적이나 다름없다. 바스의 의도는 독자에게 독서와 글쓰기의 인공적인 특성을 알려주고 이야기가 실제인 줄 알고 빠져드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리얼리즘의 허위를 탐구하기 위해 바스는 독자에게 지금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자기반영적인 장치들을 사용한다.

바스의 초기 작품들은 솔 벨로의 작품들처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실존주의적 경향이 짙으며, 1950년대의 주제인 도피와 방황을 다루고 있다. 선상船上 오페라(The Floating Opera)(1956)에서 한 남성은 자살을 꾀하며, 여로의 끝(The End of the Road)(1958)은 복잡한 사랑의 행각을 그리고 있다. 바스의 1960년대 작품들은 코믹함이 더해지고 리얼리즘적인 요소는 줄어들었다. 연초 도매상(The Sot-Weed Factor)(1960) 18세기 피카레스크 방식을 패러디하고 있으며 염소 소년 자일스(1966)는 세상을 패러디하고 있다. 키메라(Chimera)(1972)는 그리스 신화를 재생하며, 편지(Letters)(1979)에서는 노먼 메일러가 밤의 군대에서 그랬듯이 바스 자신을 인물화하고 있다. 대학교 여교수와 과거 비밀요원이며 이제는 소설가인 남편에 대한 이야기 로맨스(A Romance)(1982)에서는 스파이라는 대중소설 모티프를 사용한다.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1923~ )

 

몇 번씩 스타일과 주제를 바꾸곤 했던 노먼 메일러는 몇십 년에 걸쳐 대표적인 작가로 간주되었다. 그는 경험에 대한 애착과 박력 있는 스타일, 극적이고 대중적인 등장인물 등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메일러의 생각은 과감하고 혁신적이며, 주제보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바스와는 상반된 경향을 보인다. 얼굴 없는 작가인 핀천과 달리 메일러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소설가이자 수필가, 문학운동가, 배우로 활동한 메일러는 항상 공개 석상에 얼굴을 보였다. 메일러는 1968년 정당 회의를 분석한 마이애미 그리고 시카고 점령(Miami and the Siege of Chicago)(1968)과 사형 선고를 받은 살인자의 처형에 대한 호소력 있는 연구서인 사형 집행인의 노래(The Executioner? Song)(1979)와 같은 뉴 저널리즘작품을 쓰다가,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고대의 저녁(Ancient Evenings)(1983),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배경으로 한 매춘부의 유령(Harlot? Ghost)(1992) 등 중후한 소설로 전환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새로운 방향

 

 

1970년대 중반에 통합의 시대가 시작됐다. 베트남 갈등이 막을 내렸고, 미국은 곧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했으며,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했다. 뒤이은 1980년대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들보다는 개인적 관심사에 중점을 두게 되는 자기중심주의 시대(Me Decade)’였다.

문학에서는 오래된 전통이 살아남은 한편, 순수 실험주의 정신의 힘은 약화되었다. 존 가드너, 가프가 본 세상(The World According to Garp)(1978)의 저자 존 어빙, 모기 해안(The Mosquito Coast)(1982)의 저자 폴 써로우, 섬꼬리풀(Ironweed)(1983)의 윌리엄 케네디, 칼라 퍼플(The Color Purple)(1982)의 앨리스 워커 등 새로운 작가들이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를 그려낸 훌륭한 스타일의 소설들로 문학계에 부상했으며, 리얼리즘과 관련한 배경, 등장인물, 주제들이 부활했다. 1960년대 실험주의 작가들에게 버려진 리얼리즘이 과감하면서도 독창적인 요소들과 섞여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런 특징은 액자 소설 형식을 취한 존 가드너의 10월의 빛(October Light)(1976)이나 흑인 사투리를 담고 있는 앨리스 워커의 칼라 퍼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수 문학 또한 번창했다. 연극에서는 리얼리즘 경향에서 더욱 영화적이고 역동적인 기법을 지닌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동시에 자기중심주의 시대의 특성은 큰 불빛, 큰 도시(Big Lights, Big City)(1984)의 저자 제이 맥이너니, 제로 미만(Less Than Zero)(1985)의 저자 브레트 이스턴 엘리스, 뉴욕의 노예들(Slaves of New York)(1986)의 저자 타마 자노비츠 등 완전히 새로운 재능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들에 반영되어 있다.

 

 

존 가드너(John Gardner, 1933~1982)

 

뉴욕의 한 농장 출신인 존 가드너는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윤리적인 가치를 대변하던 작가였다. 그는 영문학 교수로 특히 중세를 전공했다. 그의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그렌델(Grendel)(1971), 고대 영어로 된 서사시 <베오울프(Beowulf)>를 괴물의 실존주의적 시각으로 다시 쓴 작품이다. 짧고 생동감 넘치며 코믹한 이 소설은 주인공을 자기 파괴적인 절망과 냉소로 가득 채우게 하는 실존주의에 반대하는 섬세한 논쟁을 담고 있다.

다작 작가이며 대중 작가인 가드너는 리얼리즘적 접근법을 사용했지만 인간 상황에 대한 진실을 표출하기 위해 플래시백, 액자소설, 신화 개작하기, 이야기 비교 등 새로운 기법들 또한 사용했다. 그의 강점으로는 성격 묘사(특히 보통 사람들에 대한 동정적인 묘사)와 다양한 스타일을 들 수 있다. 주요 작품에는 부활(The Resurrection)(1966), 햇살 대화(The Sunlight Dialogues)(1972), 니켈 마운틴(Nickel Mountain)(1973), 10월의 빛(1976), 미켈슨의 유령(Mickelson? Ghosts)(1982) 등이 있다.

가드너는 소설을 통해 동료애, 의무, 가족 간의 책임 등 치유의 힘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떤 특정한 가치 기준과 행동이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의 저서 교훈적 소설에 관하여(On Moral Fiction)(1978)는 소설이 공허한 기법적 새로움으로 독자를 현혹하기보다는 윤리적 가치들을 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당시 유명 작가들이 윤리적인 문제를 글에 반영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놓고 비판하는 바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 )

 

아프리카 계 미국인 소설가인 토니 모리슨은 오하이오 주의 종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워싱턴 D.C.에 있는 하워드 대학교에 다녔고, 워싱턴에 있는 큰 출판사의 선임 편집자로 일했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모리슨의 잘 짜여진 소설은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모리슨은 호소력 있고 생동감 있는 소설들에서 흑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다루었다. 그녀의 초기작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1970)에서는 의지가 강한 소녀 피콜라 브리드러브가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피콜라는 자신의 검은 눈이 마술적으로 파랗게 변해 자신이 더욱 사랑스럽게 될 거라 믿고 있다. 모리슨은 이 소설을 통해 작가로서의 정체성 또한 창조했다면서 나는 피콜라였으며, 클로디아였고 또 모든 이였다라고 말했다.

 

술라(Sula)(1973)는 두 여성의 우정을 묘사하고 있다. 모리슨은 아프리카 계 미국 여성들을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독특하고 개성 있는 등장인물로 그려낸다.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는 여러 문학상을 휩쓴 작품으로 흑인 남성 밀크맨 데드의 가족과 사회와의 복잡한 관계를 다루고 있다. 타르 베이비(Tar Baby)(1981)에서 모리슨은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빌러비드(Beloved)(1987)는 자식이 노예로 살지 않게 하려고 아이를 살해하는 어머니를 다룬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리슨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목을 벴던 어머니와 살기 위해 돌아온 신비로운 인물 빌러비드를 묘사함에 있어 마술적 리얼리즘의 몽환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모리슨은 자신의 소설들이 자체적으로 완전한 것이지만 정치적 의미 또한 지니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녀는 나는 혼자 몰두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글로 옮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맞아요, 작품은 정치적이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1993년에 모리슨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앨리스 워커(Alice Walker, 1944~ )

 

조지아 주의 시골에서 아프리카 계 미국인이자 소작인 가정에서 태어난 앨리스 워커는 새라 로렌스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곳 교수 중 한 명이 정치 성향이 강한 여성 시인 뮤리엘 루케이저였다. 그밖에도 워커는 플래너리 오코너와 조라 닐 호스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자칭 여성주의자였던 워커는 여성의 시각으로 흑인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오랫동안 인종 차별 문제와 페미니즘을 연결시켰다. 토니 모리슨, 자메이카 킨케이드, 토니 케이드 밤바라 및 기타 유명한 흑인 소설가들처럼 워커는 이웃과 같이 현실적인 사람들의 꿈과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고상하면서도 시적인 리얼리즘을 사용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스타일리스트인 그녀는 특히 서간체 사투리 소설 칼라 퍼플에서 교훈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사회 문제와 인종 문제를 들추어내는 풍자소설을 쓴 흑인 소설가 이슈마엘 리드와 유사하다.

 

칼라 퍼플은 몇 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던 가난한 흑인 자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같은 시대에 수줍음 많고 못생기고 교육받지 못한 누이가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내적인 힘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와 결합되어 있다. 여성이 서로를 돕는다는 주제는 모녀간의 공감대를 그린 마야 앤젤루의 자서전 나는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알고 있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1970)와 에이드리언 리치 같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연상시킨다. 칼라 퍼플에서 남성은 근본적으로 여성의 실체와 그들의 바람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1980년대가 마무리되고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미국 문학계에 소수민족 작가들의 작품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는 산문뿐만 아니라 희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울타리(Fences)(1986), 피아노 수업(The Piano Lesson)(1989)을 집필했으며, 지금도 20세기 흑인 경험에 대한 연극 작품을 쓰며 그것이 공연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은 앨리스 워커, 존 에드거 와이드먼, 토니 모리슨에 버금가는 작가이다.

 

아시아 계 미국인 또한 미국 문학계에 입지를 다지고 있다. 여전사(The Woman Warrior)(1976)의 작가 맥신 홍 킹스턴이나, 조이 럭 클럽(The Joy Luck Club)(1989) 부엌 신의 아내(The Kitchen God? Wife)(1991)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중국인들의 생활을 명쾌하게 그려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에이미 탄이 여기에 속한다. 중국 이민자의 아들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헨리 황은 희곡 F.O.B(1981), M. 버터플라이(M. Butterfly)(1986)로 연극계에서 입지를 돈독히 했다.

 

문학계에 새롭게 진출한 히스패닉 계 미국인 작가들로는, 쿠바 출신의 소설가로 맘보 킹 사랑 노래를 부르다(The Mambo Kings Play Songs of Love)(1989)를 집필했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오스카 히후엘로스, 단편소설집 여성들이 소리치는 시내(Women Hollering Creek and Other Stories)(1991)를 집필한 단편소설 작가 샌드라 시스네로스, 미국 서부 지역에서 크게 반향을 일으켜 3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울티마, 내게 축복을(Bless Me, Ultima)(1972)의 작가 루돌포 아나야 등이 있다.

 

새로운 지역주의

 

 

미국 문학에서 지역주의 전통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전설만큼 오래되었으며,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와 브레트 하트의 작품들처럼 독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과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처럼 울림이 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잠시 동안 이런 전통이 사라지는 듯했다. 도시적인 감수성의 소설을 지역주의 소설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10여 년 동안 지역주의는 미국 문학에 성공적으로 귀환했으며 독자들에게 시간에 대한 감각과 인간성뿐만 아니라 지역에 대한 감각을 지닐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지역주의 작품들은 고전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탐정소설 류의 장편소설, 단편소설, 희곡 등 대중적인 작품에서 다수 나타나고 있다.

 

지역주의가 부활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의 모든 예술에 탈중심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연극, 음악, 무용 등은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거대 도시 못지않게 미국 남부, 남서부, 북서부 지역 도시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화사들은 미국 전역의 수많은 장소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소규모의 소설 전문 출판사들이 뉴욕 시의 출판가밖에서도 번성하고 있다. 작가들의 워크숍이나 회의가 유행하고 있으며 전국 대학가에서 문학 강의 또한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능력 있는 신예작가가 어디서나 부상할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필과 종이, 그리고 참신한 시각이 필요할 뿐이다.

 

새로운 지역주의의 가장 신선한 면은 범위가 넓으며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부에서 서부까지 미국 전역을 망라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 걸친 지역주의를 살펴보자면, 먼저 북동쪽 뉴욕 주 올버니 토박이면서 기자 출신의 작가 윌리엄 케네디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케네디는 섬꼬리풀(1983), 아주 오래된 뼈(Very Old Bones)(1992) 등의 소설들을 통해 뉴욕 주의 주도州都인 올버니의 거리 및 술집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생활을 애수 어린 어조로, 종종 날카로운 목소리로 포착하고 있다.

 

다수의 작품을 창작한 단편소설 작가이자 시인, 수필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 또한 미국 북동부에서 환영받는 작가이다. 한번 읽으면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녀의 작품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그로테스크한 환경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다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녀의 섬세한 단편소설들은 단편집 사랑의 바퀴(The Wheel of Love)(1970), 어디 가니, 어디에 있었니?(Where Are You Going, Where Have You Been?)(1974) 등에 실려 있다. 베스트셀러 공포소설의 대가인 스티븐 킹은 서스펜스 넘치고 흥미진진한 소설들의 배경으로 주로 메인 주를 사용하고 있다.

 

해변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앤 타일러가 절제된 언어로 평범하지 않은 삶과 놀라운 등장인물들을 보여준다. 향수병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Dinner at the Homesick Restaurant)(1982), 우연한 여행자(The Accidental Tourist)(1985), 숨쉬기 연습(Breathing Lessons)(1988, 우리나라에서는 종이시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옮긴이), 세인트 메이비(Saint Maybe)(1991) 등의 소설들로 타일러는 문학계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동시에 대중적인 사랑도 받게 되었다.

 

볼티모어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이 있는데, 이곳에는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가 정치인 만큼 그에 걸맞은 문학적 전통이 형성되었다. 정부와 권력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들 중에는 워드 저스트가 있다. 전직 국제 특파원인 저스트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세계, 즉 기자, 정치인, 외교관, 군인들의 세계를 작품으로 옮겼다. 그의 인상적인 작품 세계를 살펴보면, 니콜슨의 모든 것(Nicholson At Large) 1960년대 초 존 F. 케네디 대통령 집권 당시와 그후를 배경으로 워싱턴 취재기자를 다룬 보고서이며, 두려움의 도시(In the City of Fear)(1982)는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워싱턴의 모습을 살펴본 작품이다. 또한 잭 갠스(Jack Gance)(1989)는 시카고 정치인이 미국 상원의원의 자리에까지 진출하는 내용을 객관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수잔 리처즈 쉬레브의 권력의 아이들(Children of Power)(1979)은 정부 관리 자녀들의 사생활을 꼬집고 있으며, 대중 소설가로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톰 클랜시(Tom Clancy)는 워싱턴의 정치, 군사적 풍경을 서사 서스펜스 소설 시리즈의 초석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쪽으로 가면 레이놀즈 프라이스와 질 맥코클이 눈에 띈다. 앤 타일러의 정신적 지주인 프라이스는 1970년대에 비평가로부터 사라져가는 남부 거주 작가의 진지를 지키고 있는 작가로 묘사되곤 했다. 그는 로자코크 무스티앙이라는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주 동부 사람들을 다룬 소설 길고도 행복한 삶(A Long and Happy Life)(1962)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는 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이후 몇 년 동안 집필했으며, 이후 다른 주제로 궤도를 옮겨갔다가 다시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소설이 케이트 베이든(Kate Vaiden)(1986)으로, 유일하게 1인칭으로 씌어진 프라이스의 소설이다. 프라이스의 블루 칼훈(Blue Calhoun)(1992)은 열정적이지만 운명적인 사랑이 몇십 년 동안 가정생활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는 작품이다.

 

1958년 생으로 신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맥코클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집필했다. 치어 리더(1984) 10대의 신비를, 버지니아 쪽 경향(Tending to Virginia)(1987)은 세대간의 관계를, 크래시 다이어트(Crash Diet)(1992)는 현대 남부 여성의 특별한 감수성을 다루고 있다.

 

같은 지역 출신으로 팬 콘로이가 있는데,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저지대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자신의 성장 과정과 학대를 일삼는 폭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인 위대한 산티니(The Great Santini)(1976)프린스 오브 타이드(The Prince of Tides)(1986)를 집필했다. 미시시피 출신으로 오랫동안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살고 있는 셀비 푸트는 옛 미국 남부에 대한 역사가로서, 그가 집필한 소설과 역사서 덕택에 남북전쟁에 대한 TV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미국 중부는 글재주 많은 작가들의 산실이다. 그들 중에는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창작을 가르치는 제인 스마일리가 있다. 스마일리는 천 에이커(A Thousand Acres)(1991) 199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미국 중서부 농장으로 옮겨놓은 것으로, 노인이 된 한 농부가 자신의 땅을 세 딸에게 넘겨주면서 발생하는 가족 간의 격렬한 갈등을 담았다.

 

텍사스 역사학자 래리 맥머트리는 텍사스 주를 배경으로 다양한 시대와 감수성을 다루었는데, 외로운 비둘기(Lonesome Dove)(1985)빌리를 위해서라면(Anything For Billy)(1988)에서는 사라진 19세기 서부에 대해, 마지막 영화(The Last Picture Show)(1966)에서는 전후 사라져가는 작은 마을들을 묘사하고 있다.

 

핏빛 자오선(Blood Meridian)(1985), 모든 예쁜 말들(All The Pretty Horses)(1992), 크로싱(The Crossing)(1994) 등의 소설로 미국 남서부 사막 지역을 탐색한 작가 코맥 매카시는 마침내 미국 문학계에 자리 잡기 시작한 은둔적이고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작가이다. 남부 고딕 전통을 전수받을 작가로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매카시는 그 지역의 황량함뿐만 아니라, 거칠고 예상치 못한 인간의 본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태생지 뉴멕시코 주의 놀라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아메리칸 인디언 작가 레슬리 마몬 실코(Leslie Marmon Silko)는 비평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의식(Ceremony)을 통해 많은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은 N. 스콧 모마데이의 시적인 작품 비 오는 산으로 가는 길(The Way to Rainy Mountain)(1969)과 유사한 아메리칸 인디언의 치유 의식을 다룬 성가 소설(chant novel)’이다. 실코의 소설 사자死者의 달력(The Almanac of the Dead)(1991)은 고대 부족 이동에서부터 현대의 마약상과 땅을 불법으로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타락한 부동산 개발업자까지 미국 남서부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뉴멕시코 산타페에 살고 있는 베스트셀러 탐정소설가인 토니 힐러먼 역시 미국 남서부 지역을 다루면서, 겸손하고 열심히 일하는 두 사람의 나바호 족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

 

북쪽으로 올라가 몬태나 주를 살펴보면 시인 제임스 웰치가 흠잡을 데 없는 단편소설들 피 속의 겨울(Winter in the Blood)(1974), 짐 로니의 죽음(The Death of Jim Loney)(1979), 풀스 크로우(Fools Crow)(1986), 인디언 변호사(The Indian Lawyer)(1990) 등에서 가난과 알코올 중독으로 점철된 고통스런 인디언 보호구역 내 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디언들의 노력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다른 몬태나 출신 작가로 토머스 맥구앤이 있는데 그는 그늘 속 92(Ninety-Tow in the Shade)(1973), 잔돈은 가져라(Keep the Change)(1989) 등을 통해 뿌리 없는 상태에서 뿌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처절한 노력을 그리고 있다. 치페와 인디언 혈통을 이어받은 루이스 어드리히는 이웃하고 있는 노스다코타를 배경으로 한 강한 소설들을 발표했다. 사랑의 명약(Love Medicine)(1984) 등의 작품에서 그녀는 기능을 상실한 인디언 보호구역 가족들의 복잡한 삶을 절제와 유머로 포착하고 있다.

 

얼마 동안 미국 극서부 지역에서는 두 작가가 모범이 되어왔다. 이중 한 명은 이제 고인이 된 월리스 스테그너로, 1909년 중서부에서 태어나 1993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스테그너는 생애 대부분을 서부의 다양한 지역에서 보냈으며 지역주의가 유행하기 전에도 이미 지역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큰 얼음사탕 산(The Big Rock Candy Mountain)(1943)은 서부 개척자들이 사라지고 난 후 서부의 아메리칸 드림에 사로잡힌 한 가족을 연대기 순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미네소타에서 워싱턴 주까지 미국 전역을 다루고 있으며 스테그너의 말대로 나라 전체를 서쪽으로 이끌었던 매우 아름다운 그 장소에 관한 소설이다. 1971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휴식의 천사(Angel of Repose)또한 옛 서부의 삽화가이자 소설가인 한 여성의 초상을 그리면서 그 지역의 정신을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로서 스테그너의 힘은 거친 서부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뿐만 아니라 인물의 성격 묘사에도 놓여 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조안 디디언은 1968년의 논픽션 작품인 베들레헴을 향해 절하기(Slouching Toward Bethlehem)와 할리우드의 목적의식 부재에 대한 예리하고 충격적인 소설 건 만큼 승부를 겨룬다(Play It As It Lays)(1970)에서 현대 캘리포니아의 모습을 담았다.

 

1990년대 초반 미국 내 문화 풍경에서 풍요로운 문화적 토양을 지닌 곳으로 새롭게 등장한 태평양 북서부 출신 작가로는 제일 먼저 놀라운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를 들 수 있다. 카버는 문학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 지 얼마 안 되는 1988 50살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우리는 언제 사랑에 관해 말할지에 대해 말한다(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1974), 내가 전화하는 곳(Where I? Calling From)(1986) 등의 단편소설집에서 그가 살았던 지역 사람들의 노동 계급적 사고방식을 아직도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

 

도시마다 비영리 단체들이 제각각 현대 문화를 양성하는 가운데, 1960년대 초반 이후 지역적 극장운동의 성공으로 젊은 희곡작가들이 배출되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연극계의 뛰어난 이미지즘 작가들이 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연극과 문학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화려하면서 파편적인 사회와 격정적인 인간관계를 그린 매장된 아이(Buried Child)(1979)마음의 거짓말(A Lie of the Mind)(1985)의 작가 샘 셰퍼드, 비도덕적 인물과 충격적인 스타카토 톤의 대화들이 특징인 아메리칸 버팔로(American Buffalo)(1976)글렌게리 글렌 로스(Glengarry Glen Ross)(1982)의 시카고 출신 작가 데이비드 매멋, 중서부 지역 생활과 관심사에 끼어든 전통 가치들에 대한 7 5(5th of July)(1978), 탤리의 어리석음(Talley? Folly)(1979)을 쓴 랜포드 윌슨, 남부 지역의 괴짜들을 그린 마음의 범죄(Crimes of the Heart)(1979)의 베스 헨리 등이 바로 그들이다.

 

미국 문학은 식민지 이전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길고 굴곡 많은 길을 걸어왔다. 사회, 역사, 기술 모든 것이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미국 문학에 지속적으로 흐르는 주제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의 명암, 휴머니즘의 전통과 미래가 미국 문학에 쉬지 않고 흐르고 있다. (장재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