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6,  2015




 

 

 

 

 

 

 

Over A Thousand People Came Together To Break a Record

And Bring This Moving Christmas Hymn To Life

 

 

 

 

 

 

피아노 가이스(The Piano Guys)는

 '크로아티아의 첼로듀오, 투첼로스(2CELLOS)'와 함께

최근 크로스오버 뮤직씬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미국의 음악그룹이다.

 

명칭은 피아노 가이스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구성은

'첼로(스티브 샤프 넬슨)와 피아노(존 슈미트)의 듀오'이다.

나머지 세 멤버들(텔 스튜어트, 폴 앤더슨, 앨 밴 더 비크)은

각각 뮤직비디오와 프로듀싱을 담당한다.

레퍼토리는 주로 팝음악을 첼로와 피아노의 듀오편성으로

편곡하여 연주하거나, 기존의 클래식음악에

락(Rock)음악의 사운드를 접목시키는 곡이 많다.

 

 

 

 

 

 

 

 


 

 

 

 

 

 

 

 

 

 

 

 

 

 

 

 

 

 

 

 

 

 

 

 

 

 

 

 

 

 

 

 

 

 

 

 

 

 

 

 

 

 

 

 

 

 

 

명칭

유래 및 설명

기간

구약

복음서

서신서

대강절

Advent

待降節)

교회력의 첫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서 성탄절 4주전부터 시작하여 성탄절까지 계속되는 절기이다.

기간중에는 왕되신 우리 주님의 오심을 위해 회개를 비롯하여 여러 형태로 준비하는 기간이다.

Advent 뜻은 `오신다'(Coming)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①성탄절을 기점으로 오신 예수님의 육적인 강림을 기다린다.

②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린다.

③세상 끝날에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린다.

 

 

1첫째 주

이사야

2:1-5

 24:36-44

13:11-14

2첫째 주

사야

 11:1-10

마태

3:1-12

 15:4-9

3첫째 주

사야

35:1-6, 10

마태

 11:2-11

5:7-10

4첫째 주

사야

7:10-15

마태

 1:18-25

 1:1-7

성탄전야

사야

62:1-4

 2:1-14

 1:15-20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5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지우산-종이 우산

 

 



 

 

사랑은 이기적인 감정인 동시에 이타적인 감정이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사랑할 수 없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사랑의 의미를 시인의 자조 섞인 음성을 통해 되돌아보게 한다.
 

김수영은 여섯 살 아래 김현경과 연애결혼을 했지만 순탄치 않은 사랑을 겪어야 했다. 결혼한 해 6.25가 터져 북한군 포로가 돼 북으로 끌려간 김수영은 남으로 내려와 거제도 수용소에서 두 해를 보냈다. 그 사이 남편의 생사를 몰랐던 김현경은 김수영의 친구 이종구와 살게 됐다. 전쟁 후 풀려난 김수영은 아내를 찾아가 다시 결합하자고 거듭 호소했다. 처음엔 김수영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젓던 아내도 더 외면하지 못해 다시 합쳤다.
 

그러나 한 번 깨진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마누라를 패고 집으로 와서는 남의 이목이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두고 온 지우산 따위에 연연하는 이 소시민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그는 이 일을 왜 이리 크게 떠벌리고 있을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는 구절이다. 뒤집어보면 이 말은 자신은 살인할 배짱도 용기도 없다는 것, 즉 남과 자신을 사랑할 각오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은 둘만의 경험이다. 내 눈에 그 만 들어올 때,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내 ‘범행’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그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지금-여기, 쇼윈도부부, 무늬만 부부, 각방 부부로 사는 우리 삶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순아 시인)


 

 

 

 

 

 

 

 
 


 

 

 

 

 

 

 

 

 

 

 

 

 

 

 

 

 

 

 

 

 

 

 

 

 

 

 

 

 

 

 

 

 

반복되는 예배 속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배의 본질이 변질 되지는 않았을까?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가 회복되도록 돕고자 합니다.(장재언)

 

▣ 이 글의 차례
 

1. 생각과 태도를 다듬는 예배자

2.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예배자

3. 탁월함을 추구하는 예배자

4. 하나됨을 지키는 예배자

5. 삶을 예배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예배자

 

1. 생각과 태도를 다듬는 예배자

 

♣끝까지 신실한 태도를 유지하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예수님은 마음속에 '인류 전체의 구원' 이라는 영원하고 최종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어떤 것도 예수님이 그 목적을 달성하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예수님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셨다.

 

사탄과 직접 맞닥뜨렸을 때도 목표를 수정하지 않으셨으며, 따르던 무리들이 자신을 버렸을 때도,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거부할 때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도 단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목표를 가지고 계셨고, 상황에 관계없이 그것을 추구하셨으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셨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확신에 차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을 끝내기를 바라시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우리가 삶의 마지막 때에 하게 되기를 소망하신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사라져 버리는 폭죽이 되고 싶은가?
 

♣익숙함과 무뎌짐을 구별하라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나이다"(시 92:4~5)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지 60년이 지난 AD90년대 후반에 씌어졌다고 한다. 이 책은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분명히, 이 편지를 받는 이들의 부모 세대 중 몇 명은 예수님을 직접 뵙고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은 자기 만족에 빠져 있다. 바로 그런 점을 주님은 꾸짖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위로가 되는 사실을 찾았다. 안주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죄를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회개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함께 기도하자.
 

♣약할 때 강함 주심을 믿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사실, 나는 내 자신이 커다란 진흙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고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결점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나 혼자서 이루어낼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이 있음도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소망을 찾는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쓰시지는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분의 자비와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완전히 진흙 덩어리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쓰실 만큼 완벽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런 꿈은 접어두라.

하나님은 이미 완전히 순전하고 온전히 완벽한 유일한 그릇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그릇은 바로 예수님이다.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한 흠 투성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는가? 아마도 간절히 죄를 용서받기 원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주님을 받아들였으니 주님을 받아들인 그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 안에서 살아가라.
 

♣섬김을 특권으로 삼으라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오셨다고 따르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볼 때, 다른 사람들이 손과 발로 예수님을 시중들 때에 예수님이 가만히 앉아 계시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예수님이 다른 세력가들처럼 누군가가 섬겨주기만을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자신이 온 목적이 섬기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편하고 그 일에 열심인가, 아니면 섬기는 것이 특권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역사하셔야 하는가?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라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분께만 온전히 위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오직 그분께만 있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재능이나 생각이나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아니라 가장 높으신 주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랄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능력 베푸실 방법을 찾으신다.
 

♣동기를 점검하라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삼하 20:25)
 

사독 아비아달이라는 두 제사장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비슷했지만,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사독의 혈통은 하나님이 축복하셨지만, 아비아달의 혈통은 심판받았다. 그들은 거의 평생을 같이 사역했다.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 왕 시대에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길 임무를 맡을 제사장의 명단의 가장 위에 올랐던 두 사람이다. 그리고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언약궤를 예루살렘 밖으로 옮겨야만 했을 때, 다윗 왕은 이 두 사람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그렇지만 다윗의 통치 말년에, 이 두 제사장은 누가 다윗의 뒤를 이을지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아비아달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왕상 1:5)고 말했던 아도니야의 편을 들었다.

그렇지만 사독은 아도니야의 과도한 야욕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다윗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
 

무엇이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후손들이 사독의 자손들이 받은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사독과 아비아달의 삶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있는 동기의 문제에 대해 환상적이고도 교훈적인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위 뒤에 숨어 있었던 동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있는 마음의 동기다. 아마도 사독은 다음과 같은 말을 매일 묵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것을 충실히 행하자. 그리고 주님을 계속해서 섬기자".

모든 예배팀과 예배자, 우리 모두가 이런 사독의 열정을 갖기를 소원한다!
 

♣예배할 때 믿음을 사용하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어떤 식으로 예배하든,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예배에 대한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믿음이다.

 

우리의 예배가 외적으로 어떻게 보이든 간에, 믿음이 없으면 그 예배는 의미가 없다. 성경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예배에 대해 강조하는 교회를 다닌다 해도, 이것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증표는 아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 즉 신뢰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과, 능력과, 지혜와 넉넉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 진리들을 단지 믿는 것뿐 아니라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손을 드는 행위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노래와 말로 고백한 것을 적극적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와 삶이 바뀌도록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8~10)
 

우리가 예배를 인도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 수 있는가? 다음의 세 가지 면을 고려해 보자:
 

① 하나님께 언제나 순종하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쓰러질 때면(분명히 쓰러질 것이다), 재빨리 하나님께로 와서 회개하고 회복의 손길을 경험해야 한다. 사무엘이 어린아이 때 하나님께 드려진 것처럼 우리 또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② 우리는 걷기 전에 반드시 기어야 한다. 웅장한 시작을 하기 전에 작은 걸음을 먼저 걸어야 한다. 어쩌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배 첫 곡을 콘티와는 다르게 시작하는 것일 수 있다. 회중에게 모범이 되도록 손을 들고 예배하는 것과 같이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사무엘은 그가 훌륭한 선지자가 되기 이전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간단한 일을 하면서 사역을 시작했다.
 

③ 당신의 목사님이나 예배 팀원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 마라.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한 믿음의 발자국들을 다시 돌아보라.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신학적으로 오류가 없는가에 민감해야 한다. 사무엘은 그의 스승인 엘리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과 일치하는 방법으로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그분의 음성을 주의해서 듣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라신다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순종하려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하신다. 그러므로 사무엘처럼 말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
 


 

2.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예배자

 

♣예배하는 이유를 잊지 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원하실까?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과 말씀하신 장면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찾으신다는, 즉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다가 한번쯤은 질문해 보았을 것이다. "도대체 왜?" 많은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가장 심오한 영역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바라시는 이유는 그분의 자녀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우리와의 관계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그분은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신다. 창조하신 피조물과 관계하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친교를 갈망하면서 말씀하신 구절을 보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와 관계를 갖는 것 말고, 하나님이 어떤 이유로 우리를 창조하셨겠는가?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본질적으로 나눔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을 기대하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 4:8)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리스도는 놓친다. 경외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매일 보았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40년 동안이나 주셨다. 하나님의 손길 말고는 다른 무엇으로도 이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것들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더욱 계발해야 한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평범해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기대감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정말 거기에 계시는 것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어깨를 두드리시더라도 아마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열의 없는 태도에 안주하지 말자. 하나님께 당신을 사로잡아 달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구하라. 기대감을 계발하라.
 

♣거룩한 낭비를 드리라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마 26:7)
 

지금까지 들어본 예배 중에서 가장 전심으로 드린 능력 있는 예배의 예를 하나 들라면 바로 이 장면일 것이다.

 

이 여인의 예배 행위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은 각자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은사와 사역들을 받았다. 그들은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로마서 12장 1절은 바로 그러한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제사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여인이 비싼 향유를 주님께 드린 이야기는 지금도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행동이 왜 기릴 만한가? 그녀는 자신의 삶과 사랑의 제일 중심 되는 분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귀한 소유물을 드린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대답하신 것과 권고하신 것을 살펴보라. 예수님은 "그녀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예배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이 경우에는 여인의 드리는 행위, 그리고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후 온 방에 퍼진 향내가 바로 예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웠다!
 

자, 이제 당신에게 도전하고 싶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위대한 예배를 드리자. 우리 삶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주님께 내어드림으로 그분과 달콤한 교제를 나누자. 그렇게 할 때 예배를 드리는 성소로 계속해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식과 열정으로 예배하라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기쁨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열정이 솟아나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되어야 한다. 찬양은 우리의 사랑으로 울려 퍼진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을 표현하려는 소망 안에서 우리의 음악은 이런 아름다운 관계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축복 받은 방법이 된다.

 

세상 음악가들도 감정을 벅차게 하는 사랑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짓된 인간의 사랑도 노래로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가장 위대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더 타올라야 하겠는가?
 

시편 기자는 자신의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해서 쇠약해지고, 마음과 육체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찬양 가운데 있어야 할 열정이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싶어서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였다.

시편 103편 1절에서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속사람에게 열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예배 중에 깊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는가? 상황이 어떻든 간에 당신의 속사람에게 제한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했던 마지막 때가 언제였는가?

 

예배를 인도할 때는 최신 인기 찬양에만 의지해서 예배를 이끌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당신의 마음과 영과 뜻과 힘을 다해서 예배를 인도하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당신이 만들어내는 음악, 즉 예배를 특별하게 만드는 당신의 목소리나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이 그런 은사와 능력들을 당신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이신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바리새인과 같은 태도 때문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마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라. 우리의 음악과 은사와 능력들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것들에 사로잡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사로잡혀라. 

 

 

3. 탁월함을 추구하는 예배자

 

 

♣자신의 은사를 갈고닦으라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대상 15:22)
 

하나님은 모든 좋은 은사들을 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은사들을 알아가고 발전시키는 데 귀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사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좋은 은사를 주시는 분이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하나님께 보여드림으로써 감사를 올려드리자.

여든다섯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악기 연주법의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고는 '유레카!'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훌륭한 제화공이 되자!
 

♣실패를 뛰어넘으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별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베토벤은 훌륭한 작곡자 중 한 사람이지만 지휘자로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렇지만 지휘자로서 실패했다는 사실이 베토벤이라는 한 사람을 실패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서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갔고 세계는 그의 도전으로 더 풍성해졌다.

 

당신은 어떠한가? 과거의 실패 경험이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가? 하나님이 새롭게 지경을 넓히라고 말씀하시지만 실패 경험이 가져온 두려움 때문에 그냥 안전지대에 머물고 싶은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날개를 펴고 앞에 다가올 실패의 가능성을 직면하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신다. 창조자시며 삶에 힘을 주시는 분, 온 우주에서 가장 높은 권위로써 행성들이 그 궤도에 있을 수 있도록 지켜주시는 바로 그분이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 때에 믿음의 큰 걸음을 뗄 수 있을 정도로 자유해진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실패가 사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또 그렇게 될 만큼 자유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부족함을 쓰신다. 지금 시작하라!

 

♣자신에게 맞는 예배를 훈련하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롬 12:6)
 

사람들은 각각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은 우리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좋아하신다.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설명하듯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
 

게다가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진 개성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배를 받으시길 원하신다. 화려하게 춤을 추는 사람부터 침상에서 경배하는 사람까지 모두를 원하시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개발해야 하며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물론 각자의 '스타일'로 예배를 드려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이지 어떤 특정한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본성적인 개성이 어떤 것인지 알고, 그것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특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예배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개성을 이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어렵고 부자연스러울지라도, 그렇게 하도록 계속 훈련하라. 하나님은 분명히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면 할수록 예배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4. 하나됨을 지키는 예배자

 

♣시너지를 이해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 하지 못하리라"(고전 12:21)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1~23, 27).
 

배경과 스타일과 취향과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 필요하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지만 같이 하면 이루어낼 수 있다.

기러기 떼가 'V' 자 형태를 지어서 날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앞에 있는 기러기들은 바람을 막아주면서 뒤의 기러기를 도와준다. 그렇게 무리지어 날아감으로써 혼자 날아갈 때보다 더 적은 힘으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너지'다.
 

얼마 전에 나는 시너지에 대한 환상적인 예를 보았다. 평균적으로 농장의 말은 6톤 정도를 끌 수 있다. 그렇다면 말 두 필은 23톤을 끌 수 있다! 이것이 시너지다!

 

성경은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씀한다.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레 26:8).

 

수학적으로는 다섯 명이 백 명을 쫓는다면 백은 2천 명을 쫓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백 명이 만 명을 쫓을 수 있다. 그것이 시너지다. 함께 걸어가고 함께 일할 때에 혼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피조물들을 통해 보여주셨다는 것을 이해하는가? 서로가 많이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 필요하다!
 

♣다양한 스타일을 인정하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롬 14:13)
 

많은 교회들의 다양한 예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교단마다 예배 형식이 다를 뿐 아니라, 같은 교단 내에서도 교회들마다 서로 다르다.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서 교회를 옮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교회를 찾아서 '다녀보면' 당신은 아마 계속해서 이사가기 전에 다니던 교회와 새로 옮긴 교회들을 비교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다니던 교회와 똑같은 교회는 없을 것이다. 아니, 전혀 없다고 확신한다. 교회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우 창조적이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시기에 이런 다양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 개의 서로 다른 복음서를 쓰도록 저자들을 감동시키셨는데, 복음서들은 모두 우리의 삶을 바꿀 만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각 책이 서로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거스틴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함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함이 그리고 이 모든 것 안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연합으로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라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 4:24,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반어와 대조를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나비와 코뿔소를 모두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걸작품인 남자와 여자 역시 대조의 좋은 예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걸까!
 

여기 또 하나의 반어가 있다. 하나님은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영이란 본질적인 것이고, 진리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늘 아버지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모두로 예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원칙은 이렇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희생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성령과 조화를 이루고, 그분의 진리에 따르는 예배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면, 진리가 없는 영이나, 영이 없는 진리 모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이의 동기와 진심을 신뢰하라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삼상 17:28)
 

예배 팀 안에서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에 그의 동기나 진심을 의심한다. 마치 엘리압이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이 무례하거나 아니면 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목소리 톤이나 생김새나 태도 때문에 누군가의 동기에 대해서 의심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피해를 주려하고 있어.',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이 외에도 그 사람에 대한 다양한 판단들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듯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우리는 사도 바울의 조언을 따라야 할 것 같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동기들을 판단하지 마라. 그렇게 할 때 결국에 가서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결론 내리게 될 것이다. 대개 우리는 진실과는 180도 정반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판단하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예배의 본질에서 다양함을 발견하라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마 15:3)
 

다음 세 가지는 예배에 대한 성경적인 원칙들을 발견하는 핵심 요소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본질이다.(요 4:24)
② 예배는 인간의 전인격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본질이다.(마 22:37)
시와 찬미(찬송가)와 신령한 노래들로 하는 것이 본질이다.(엡 5:19, 골3:16)
 

 

이 세 가지 형태는 하나님이 다양함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한 종류의 연주만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이런 하나님의 다양함을 연습하는 교회는 감정적인 사람들이나, 지성적인 사람들, 그리고 직관적인 사람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성경적인 예배는 우리 모두에게 예배의 더 큰 완전함을 표현하도록 도전할 것이다.

 

5. 삶을 예배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예배자

 

♣섬김의 예배를 드리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가 수직과 수평으로 이루어졌듯이,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최고 계명처럼, 우리는 위를 향할 뿐 아니라 밖을 향해서도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소리내어 찬양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 이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이 둘 중에 하나만 있다면 예배를 불완전하게 표현한 것이다.
 

'예배란 노래 부를 때만 드려지는 것이라고 생각지 마세요. 남을 섬기는 것도 예배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작은 자' 라고 부르신 이들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어린아이, 힘없는 자, 갇힌 자,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이 등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즐겨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온전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만약 예배팀에 속해 있으면서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연습을 잠시 멈추고 '작은 자'를 찾아 나섬으로써 당신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씀드리라.
 

♣삶으로 예배하라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7)
 

이 구절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의 '행위'는 있지만 진정한 마음이 없다고 꾸짖으신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성경의 이 부분을 가르쳐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는 구절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성들이 예배에 대해서 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꾸짖으신 다음에 말씀하신 것이 "공의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대받는 자들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고 고아를 위해서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명령하신다. 내가 이해를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주님이 정말로 예배를 어떤 자비로운 행동과 연결하시는가?
 

자비로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삶 가운데에 공의로운 행동이 없다면, 우리의 찬양은 의미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말보다 행동에 훨씬 더 관심이 많으시다.

교회 안에 들어가 찬양을 부르지만 공의를 향해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면 그 찬양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한다(삼상 15:22).
 

나는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의 예배를 자비로운 행위들과 연결하고 계시다는 증거들을 점점 더 많이 발견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약 1:27) 놀라운 말씀이다.

 

여기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나 손을 드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하지 않으신다. 기도나 중보에 대한 언급도 없다. 순전한 경건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예배'는 주일날 아침 또는 일주일 내내 찬양을 하는 것 그 이상이다. 예배는 살아가는 방법이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며, 아주 작은 자비로운 행동들까지도 포함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신다. 우리의 예배는 교회의 벽을 넘어야 한다. 곤란에 처한 사람들에게 선행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자. 그것이 진정한 예배다.
 

♣예배자의 부르심에 견고히 서라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속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민 8:14~16).
 

의심할 여지없이 레위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었다. 즉,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인 것이다. 그들의 삶에 있는 다른 모든 일들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행하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었고, 하나님께 그들이 속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오늘날의 찬양 사역자들이 레위 족속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둘 다 음악 사역을 한다는 분명한 유사점 외에도, 하나님이 레위인에게 요구했던 것과 찬양 사역을 하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단지 재능 있는 음악인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우리 삶의 가장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큰 일에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도 관계없고, 어떤 제한도, 조건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그분의 레위인들이다.
 

♣어디서나 예배하기로 결정하라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2~25)
 

바울과 실라가 '예배 인도자'라고 언급된 적은 없었지만, 이 놀라운 구절로부터 예배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상상해 보라. 당신과 당신의 동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수천 리를 여행했다.

이제 빌립보라는 도시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하루는 어떤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다. 그런데 그 여종의 주인은 자신이 이제 돈 벌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에 화가 나서 당신을 끌고 관원에게로 간다. 그가 그럴싸한 재판에서 잘 조작된 거짓말을 늘어놓자, 군중들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관원은 당신을 묶고 매를 때린다. 지치고, 멍들고, 외롭게 감옥으로 던져져 도둑과 살인자와 반역자들과 함께 있다. 당신의 발에는 착고가 채워졌고, 간수는 당신의 행동을 감시한다.
 

괴로운 시간이 흘러서 이제 자정이 되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눈을 좀 붙여서 육체의 고통을 잊으려 하고 예배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과 실라는 달랐다.

그들은 자정에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들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① 예배는 언제나 드리는 것이다.
② 예배는 어느 곳에서나 드리는 것이다.
③ 예배는 모든 상황에서 드리는 것이다.
④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⑤ 예배는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된다.
 

비록 그 사람이 한밤중에 감옥에 홀로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찾으신다.

누가는 '찬미'가 즉시 지진을 일으켰다고 기록한다. 우리의 예배가 항상 그런 결과를 얻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행동으로부터 배운 교훈들을 적용할 때마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준비가 되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번역/이종환) 


 

저자 탐 크라우더

저술과 강의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실제적이고 성경적인 가르침을 교파를 초월해 전하고 있다. 그 동안 2만 여명이 그의 예배 세미나에 참석했다.

『하나님의 손에 훈련된 예배 인도자』『효과적인 찬양 사역』『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12가지 이유』『워십 리더 핸드북』『40인의 예배 인도자 I』『50인의 예배 인도자 II』 등 그의 저서 및 편저는 세계 여러 나라에 보급되어 예배 인도자들의 실질적인 지침서로 자리매김해 왔다.

1984년부터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근처에 있는 크리스천 아웃리치 교회에서 리더의 한 사람으로 섬기고 있다. 





 

 

 

 

 

 

 

 

 

 

 

 

 

 

 

 

 

 

 

 

 

 

 

 


 

조각가 로뎅은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3번이나 낙방했고, 아버지마저 실직하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여동생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수도사 권유로 다시 일하게 된 그는 작품을 내지만 너무 사실적인 묘사라는 이유로 낙선하게 됐다.
 

삶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며 여행하던 그는 이탈리아에서 크게 영감을 받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청동시대’를 발표했다. 많은 고민과 좌절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그의 작품은 근현대 조각 미술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좌절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는 명인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중국인의 지혜로운 상인 정신이 담긴 책 스유엔(史源)의 《상경(商經)》의 글 가운데 일본 최고의 공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한 학생은 미쓰시타 회사 입사 시험에 응모했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는 빠져 있었다. 수치심과 분노에 학생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다음 날, 전보가 한 장 날아왔다. 입사시험 수석 합격자인데 전산 처리에 문제가 생겨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회사 인사부의 책임자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 소식이 그룹의 총수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귀에 전해졌을 때, 그의 반응은 엉뚱했다.
 

“이 학생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회사가 이 학생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정도 좌절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봐서 그 학생의 심리적 자질이 형편없으며, 회사의 중요한 자리에서 좌절을 만날 경우 충동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1664년 아이작 뉴턴이 나이 21세 때 런던에 흑사병이 발생, 수백 명이 죽었다. 전염병은 그 이듬해에 더 무섭게 번져 많은 사람이 시골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뉴턴도 학업 중단이란 절망감을 안고 케임브리지 대학을 떠나 외가인 울스소프라는 작은 마을로 피신했다.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마친 뉴턴은 의자에 앉아 명상을 즐기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봤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이렇게 고난의 때에 발견된 것이다.
 

작은 좌절에 스스로 무너지면 구제해 줄 사람이 없다. 성공의 맛은, 승승장구해 이룬 것보다 좌절과 실패를 딛고 얻은 것이 더 달고 맛있다. 사람은 일시적 역경이나 고난의 극복을 통해서 강해진다. 

구제 불능의 인간을 향하신 인내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성탄절이 되자... (언) 



 

 

 

 

 

 

 

 

 

 

 

 

 

 

 

 

 
 

 



 

 


 

 

 

 

 

 

 

 

 

 

존 스타인벡의 단편소설 [통조림 공장가(工場街)]는 수도 공사용 토관(土管) 속에 사는 한 가난한 가족 이야기다.
 

어느 날 부인은 헝겊 조각을 주워다가 토관의 속 벽에다 커튼을 만들어 쳤다. 물론 토관에 창문이 있을 수는 없다. 없는 창에 친 그 커튼 아래서 해진 양말을 꿰매면서 부인은 등을 맞대고 있는 아들놈과 서로 행복을 확인한다.

 

남편은 창문도 없는데 커튼을 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빈정대지만, 그 같은 남편의 실용주의나 합리주의로는 따져질 수 없는 눈물겹지만 평화로운 인간미와 행복을 그 커튼 아래 소복하게 일궈놓고 있다.
 

편리할수록, 실용적일수록 좋고 선(善)이라는 현대인의 정신적 병폐에 대한 인간미의 반동(反動)을 실용적이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은 없는 창의 커튼으로 대변시키고 있다.

 

얼마 전 광고에서 물만 부으면 꽃이 피어나는 비닐 컵 속의 즉석 꽃을 보았다. 싹 틔우고 잎을 돋게 하며 봉우리지게 하는 그 꽃 기르는 묘미를 거두절미, 꽃과의 인간 교류에서 인간미를 소외시켜 버린다.
 

슈퍼마켓에서는 즉석 매운탕도 판다. 갖은 양념이 돼 있기에 냄비에 쏟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양념의 조절에 의한 개성이 있는 솜씨고 정성이고 입 맛 이고가 `편리할수록 선'이라는 현대 병에 희생되고 만다.
 

미국에서도 웬만한 미국사람 상대하는 수퍼 마켓에서 한국 컵라면을 구할 수 있다. 인간미 사라진 인스턴트 식품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옛 어머니들은 같은 밥을 짓더라도 물의 분량, 솥 불의 강약으로 열 두 가지 밥맛을 달리할 수 있었다 던데, 전기밥솥이 밥맛에 스민 그 다양한 인간미를 앗아가 버렸다.

쇠 우리 속에서 꼼짝 못하고 무정란(無精卵)만 낳아 대는 닭이며, 인간의 편리를 위해 식물로서 번식 능력을 약탈당한 가엾은 씨 없는 수박도 그렇다.

 

우리가 자랄 때 성탄절이 되면 크리스마스 추리를 꾸미느라 아날로그적인 고생과 수고를 낙으로 삼았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맛이 꿀 같았다.

지금은 돈 몇 푼 손에 들고 나가면 현란하게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디지털이 깜박이는 불빛 속에 아날로그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숨이나 제대로 쉬실까? 부질없는 걱정을 해 본다.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님을 향한 여행은 그 느려터진 낙타를 재촉하며 오래오래 걸었다.

 

올 해 성탄절은 현란하게 번쩍이는 불을 끄자.  찬 기 스며드는 가난한 창문 아래 엎드려 조용히 기도하자. 그리고 헤어진 지폐 한 장 건네 줄 ATM 옆에 엎드린 흠리스를 찾아 나서자.(장재언)

 

 

 

 

 

 

 

 






 

 

 

 

 
 

 

 


 

 

 

 

 

 

 

 

 

 

 

 

 

 


 

신디아 보이킨(Cynthia Boykin) 저서 중에 ‘코끼리 믿음’(Elephant Faith)이 있다.

백과사전을 펴고 임신기간을 조사했더니 인간의 평균 임신기간은 267일이고, 1년이 넘는 임신기간을 가진 포유류는 ...

세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낙타(370~440일), 기린(395~425일), 코끼리(520~730일).

 

지상에 거주하는 포유류 중 가장 커다란 코끼리는 매우 똑똑하고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다.
 

반대로 짧은 임신기간을 지닌 동물은 대부분 쥐 과에 속한 동물들이었는데 주머니쥐는 12~13일, 생쥐는 18~20일, 집쥐는 21~22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사람을 ‘쥐를 닮은 믿음의 사람’과 ‘코끼리를 닮은 믿음의 사람’에 대해 대조적으로 분류했다.
 

쥐 믿음은 빠르긴 하지만 동시에 보잘것없고 쓰레기를 뒤지고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믿음이다.

반대로 코끼리 믿음은 결과를 얻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과묵하게 참고 견뎌 유익을 주는 믿음이다. 이는 늘 신실한 모습으로 예배하고 온전한 예물을 드린다. 자리나 직분에 연연하지 않는 것.
 

이러한 ‘코끼리 믿음’을 발견한 저자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기꺼이 씨를 뿌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과 약속을 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오래도록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 언급되는 엘리야, 데라, 아브라함, 다윗, 요셉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코끼리로 자라날 수 있는 엄청난 씨앗이 숨겨져 있지만, 대개 우리는 그 씨앗을 쥐나 벌레 같은 작고 해로운 생명으로 길러낸다.
 

쥐와 코끼리처럼, 이제껏 우리가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이유로 유산시켜온 믿음의 씨앗들은 몇 개나 될까?

 

어쩌면 육체적 유산보다 더 나쁜 것은 이러한 영적 유산일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작은 씨앗들은, 결코 버려지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씨앗은 열매 맺기 위해 우리에게 왔다”라고 했다.
 

제30대 미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도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특별한 용기를 가졌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쥐를 닮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코끼리를 닮은 믿음의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단이 크리스마스의 생각이 되어야겠다. (언)
 

 

 

 

 

 

 

 

 

 

 

 

 

 

 

 

 

 

 

 

 

 

 

 

 

 

 

 

 

 

 

 

 

 

 

 

 


 

 



 

 

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과연 역사적 사실일까?
 

동방 박사들을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은 신화나 동화와 같이 꾸며 낸 이야기인가, 박사들에게만 보인 기적인가, 아니면 역사적·과학적 사실인가. .
 

성경에 베들레헴의 별에 대한 기록은 마태복음 2장 1∼11절에만 4번 나온다. 4번이나 사실적으로 기재된 것을 볼 때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예수님의 전기를 기록한 복음서 중 마태복음은 특별히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강조했다.

 

'별'은 높음의 의미와 더불어 왕을 상징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민24:17)" 하신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구세주이신 왕으로 탄생하셨고 특별한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나타난 것이다.

 

 


 


 

케플러가 발견한 베들레헴의 별
 

베들레헴의 별에 대하여 최초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정체를 연구한 천문학자는 케플러이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는 루터교 목사가 되려고 할 정도로 헌신적인 기독교인이었다.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프라하로 와서 천문학을 연구하였으며 별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밝힘으로 점성술이 거짓임을 입증하였다.
 

행성 운동의 3법칙(타원 운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공전 주기의 법칙)을 발견한 후 그는 "나의 발견으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만 높아지게 하시고 나의 이름은 쇠하게 하소서"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의 발견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의 기초가 되었으며 인공위성 궤도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드려 베들레헴의 별에 대하여 집중 연구했으며 BC 7년 5월, 10월 및 12월 목성과 토성이 물고기자리에서 3번 이성상합을 이루며 밝게 빛을 발한 사실을 계산해 냈다. 목성은 '왕'의 별이며 토성은 가나안 지방의 방패 유대 민족의 수호성(구원자)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물고기는 익투스의 의미와 같이 메시아(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그는 이 이성상합이 바로 베들레헴의 별로서 "유대인의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탄생의 징조"라고 믿었으며, "나는 신학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을 볼 때 천문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감사를 드렸다.
 

현대과학 의해 밝혀지는 신비
 

천문학자 케플러는 베들레헴 별애 대해 최초로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 그는 이성상합이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지목했다.
 

컴퓨터에 의한 계산과 별의 이동 경로를 천정에 비추며 확인하는 프로젝터인 플라네타륨(천상의·천체 투영기) 조사 결과, 3차례 합은 BC 7년 5월 29일, 9월 29일 및 12월 4일에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추측하면, BC 7년 5월 29일 목성(왕)과 토성(구원자)이 물고기자리(메시아)에서 약 1도(달 지름의 2배) 거리로 근접하여 빛을 발하는 1차합을 보고 동방 박사들은 유대 땅에 왕이 탄생하였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두 행성이 서로 멀어지다가 8월초부터 다시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박사들은 구세주 탄생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한 것 같으며 마침내 9월 29일 2차합이 이루어지자 이들은 메시아 탄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약 2달 동안 900km의 먼 거리를 여행한 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당시의 유대왕인 헤롯을 만났으나 왕궁에는 최근에 왕자가 태어난 사실이 없음을 알고 크게 실망했을 것이며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에 따라 12월 4일, 왕궁을 나서는 순간 3차합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본 박사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마2:10).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남쪽으로 약 8∼10km를 걸어 아기 예수 계신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별은 완전한 3차합을 이룬 상태로 머물러 있었으므로(마2:9), 박사들은 그 집의 아기가 바로 메시아임을 깨닫고 그 분에게 경배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이다(마2:11).
 

케플러는 약 400년 전에 이 사실을 밝혔지만 최근에는 컴퓨터와 천체 관측 기술의 향상으로 더 많은 연구와 제안들이 이루어 졌다.

캠브리지 대학의 헨프리즈, 스페인 천체물리연구소의 마르키저(저서 「베들레헴의 별」), 천체물리학 박사 마이클 몰나(저서 「베들레헴의 별-동방 박사의 유산」) 등의 저서를 보면 더 큰 은혜가 넘치리라.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의 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람들이 우상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세의 시신과 법궤와 성경 원본을 감추신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의 별도 그 흔적을 지우시고 비밀에 부치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다시금 하늘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며(마24:29∼30), 예수님은 어둠의 권세를 이기는 '광명한 새벽별(계22:16)'로 다시 오실 것이다. (언)
 

 

 

 

 

 

 

 

 

 

 

 

 

 

 

 

 

 

 

 

 

 

 

 

 

 

 

 

 

 

조선 여성 교육에 횃불을 들고 헌신한 이화학당 제3대 교장 페인(Paine) 선교사(1869~1909)는 1906년도 감리교회 해외여선교회 한국 선교사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첫 수업을 하려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언문(한글) 선생이 찾아와서 내 시간인 제3교시에 학생들이 조금 늦더라도 양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끼리 기도회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학생들에게 무엇을 위해 기도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 수업을 중단하고 나라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화학당 학생과 한국인 교사들은 점심때마다 예배실에 모여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이때 학생들의 구국기도회를 인도한 언문 교사는 여류 독립운동가 조신성(1873~1953)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22살에 청상과부가 되는 등 불행한 초년을 보냈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온 그녀가 자신과 민족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은 기독교사상을 받아들이면서 부터다.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과부도 존귀한 인격체라는 것을 느낀 것.
 

24살 되던 해 서울로 와 이화학당과 상동 소재 교원양성소를 졸업한 뒤 소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녀는, 한국 최초 조선부인회를 조직해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평양 진명여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지만, 3.1운동에 연루돼 교장직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만주로 망명한 그녀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에 힘썼다. 다이너마이트와 탄환을 가슴에 품고 깊은 산 속을 며칠씩 헤매기도 하고, 순경과 육탄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그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화학당은 이렇게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학교였다.

오늘의 위기를 가슴에 품고 기도가 회복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다.(언)

 

 

 

 

 

 

 

 

 

 

 

 

 

 

 

 

 

 

 

 

 

 

 

 

 


"아이고, 헛걸음 했네~"

영어표현이 궁금했어요.

이런
때 사용하는 표현은 "This trip was a waste of time"
다른 표현도 있어요. "This is a fool's errand"

그런데, 두
개의 표현의 사용이 조금 달라요.

waste of time 사용되는 상황


Waste of time is you didnt know the store was closed.
You thought it was open, but when you got there it was closed.
"아~ 헛걸음 했네"

fool's errand 사용되는 상황 1


Fool's errand is like, you go to the store for strawberries,
but strawberries are not in season.
so the stores wont have them but you go try anyways.
fools errand is you KNOW strawberries are not in season,
but you go to store anyway.
just in case there may be some left over strawberries.
딸기 제철이 아님에도 혹시나 하여 스토어를 찾았는데 없는거예요~
직역하면 "이럴 줄 알았어, 바보같이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럼 그렇지~"

fool's errand 사용되는 상황 2


Its like if i told you to carry the bed outside.
it would be a fools errand because it would be impossible for you to do that by yourself.
it would ALSO be a waste of time because you cant do it,
so you would struggle to move the bed but cant do it
옮길 수 없는 침대를 옮기라고 시키면 뭐라 하겠어요?
구지 또 직역하면 "말도 안돼, 바보같은 짓이야, 이건 헛수고야."

그래서~!!! Fool's errand는 waste of time이 될 수 있지만,
waste of time은 언제나 fool's errand가 될수 없어요.

우유를 사러 갔는데 문을 닫았어요. 그럼 다른 스토어 가면 되겠죠?
"아이고 헛걸음 했네(waste of time)" 이 될 수 있지만,
"말도 안되는 짓(fool's errand)" 을 한게 아니죠?
 

 

 


제철이 아니
서 구하기 힘든 딸기를 구하기 위해 가게에 갔는데 없는 것은 ...


"이럴
줄 알았어. 바보같이 와봤네(fool's errand)" 도 되고
"헛걸음 했네(waste of time)" 도 된다는 얘기 입니다.

fool's errand can be a waste of time.
but a waste of time is not always a fool's errand

fools errand is trying to do an impossible task

but if i said go to the market and buy milk.
but you go to the store and the store is closed.
then it was a waste of time. when you should have just gone to Ralphs.
BUT it is NOT a fool's errand, because it is something you can still do

간단히, waste of time 〉 fool's errand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의 ‘동방순례’라는 책은 동방국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순례자 집단은 동방으로 여행을 했다.

주인공 레오는 순례자 서번트(servant) 즉 하인으로 그들을 따라 함께 갔다. 그는 여행에서 순례자의 모든 일을 보살피고 하찮은 일을 도맡아 할 뿐만 아니라 순례자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도 했다.

레오와 함께하는 동방여행은 순조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레오가 순례집단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그동안 레오는 한낱 서번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그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레오가 사라진 순간부터 큰 혼란에 휩싸인다. 동방으로 여행은 엉망이 돼버렸으며, 순례자들은 방향을 잃고 헤맸다.
 

순례자들은 레오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순례자 중 한 사람이 어느 교단 후원을 얻어 자신의 서번트였던 레오를 찾아 나섰다. 그는 몇 년을 헤맨 끝에 레오를 찾아냈다. 그리고 자신의 수색작업을 후원했던 교단으로 인도됐다.

 

그 교단에서 그는 서번트였던 레오가 실제로 교단 최고 책임자이자 정신적 지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떠난 후 그의 가치와 인격, 리더십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낮고 천한 이 땅 이 백성을 종으로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그 예수님을 모시고 그와 같이 살아가야 하리라.(언)
 

 

 

 

 

 

 

 

 

 

 

 

 

 

 

 

 

 

 

 

 

 

 

 

 

 

 









 


 




 

 

 

 

 

 

 

 

 

 

 

 

 

 

 

 

 

고릴라 집단 가운데 수컷 우두머리의 등에는 은빛 털이 돋아난다고 한다. 자신감이나 승리감과 관계가 있는 세로토닌이란 신경전달 물질이 고릴라의 털 색깔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참새의 수컷 가슴에는 역삼각형의 검은 털이 돋아나 있다. 무리 가운데서 지위가 높을수록 이 삼각형이 커진다. 삼각형의 크기로 서열이 정해진다. 인간은 동물과 같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이런 생리적 변화를 통해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제도나 관습 등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든 드러내 보이려고 애쓴다.
 

학창시절 학급의 개구쟁이에게 ‘규율’이나 ‘선도’ 완장을 채워주면 곧 바로 의젓해지는 것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완장을 차고 나도 모르게 으스대는 느낌을 느꼈던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계급이 존재할 수 없는 교회 안에서 직분 때문에 상처받고 서로 갈등하는 경우가 적잖다. 교회 직분은 흔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다양한 지체(肢體)로 비유된다. 지체는 그 하는 일에 구별은 있을 수 있으나 차별은 없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 12:20-21)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마음속에 낀 앙금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교회 직분을 대하는 우리들의 의식은 이미 오래 전에 층이 나있다. 장로로 임직되는 순간부터 신분상의 변화가 교회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많은 교회의 경우 교회 주보에 목회자와 함께 나란히 장로의 이름을 올린다. 시무장로 뿐만이 아니다. 원로장로, 협동장로, 심지어 은퇴 장로의 이름까지 빠트리지 않는다. 마치 회사 등기부 등본에 이사 이름을 등재하듯 한다.
 

기록상 변화는 곧 행동으로 이어 진다. 다 같은 교인인데 누구는 교회 문 앞에 서서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듯 교인을 영접한다. 도열해 있는 장로의 순서에도 대부분 서열이 매겨진다. 목회자 옆에서 내미는 그들의 손을 잡을 때 마다 성도는 그 교회의 영원한 손님(?)임을 실감한다.
 

특히 대형교회에서 흔한 일이다. 직분이 사회적 신분상승의 기회로 왜곡되는 경우가 적잖다. 그래서인지 직분을 놓고 벌이는 다툼도 그 정도(正度)를 넘어 선다. 어디를 가면 “장로님이냐?”는 소리를 먼저 듣는다. "아니다"라는 대답 다음에 오는 상대방의 경망한 언행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평등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 지체임을 들먹이면서도 교회 직분에는 상승의 길만 있을 뿐이다. 직분 간 이동이나 순환은 없다. 이것 역시 직분의 층을 우리 스스로가 돋우는 또 하나의 제도적 모순이다.

 

안식교에서는 목사가 은퇴 후에 장로로 봉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직분은 봉사다. 장로, 집사 직분을 맡는데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교회 안에서는 직분 간 이동이나 순환이 불가능한지 모르겠다.
 

직분의 성(性)간 차별이 사라져가면서 교회 안의 직분은 오히려 세분화되었다. 직분이 늘어난 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따른 명분과 이유만큼 임무의 한계도 분명하여야 한다.
 

초대교회에는 분명한 목적에 따라 직분을 세분하였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어떤 사람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다.(엡4:11-12)
 

어느 지역 목회자 연합기관이 새로운 임원들을 선정했다. 회장 그리고 무슨 부회장이 그렇게 많은 지. 총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총무 저런 총무 등등 이 것은 분명 명예를 앞세우는 조직이란 느낌이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려드리고 종의 자리에서 찬송가 대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하고 봉사해야 한다. 

 


 

 

 

 

 

 

 

 

 

 

 

 

 

 
 

 

 


 

 

 

 


 

 

 

 

 


 

 

 


 

 


 




 

 

 

 

 

 

 

 

 

만성 염증은 뇌졸중, 암, 비만, 알츠하이머병, 심장병, 관절염, 우울증 등 각종 질환과 연관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몸 속 면역체계가 약화되면서 만성 염증이 생길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가 염증을 퇴치하는 데 좋은 식품 7가지를 소개했다.
 

연어=

두 가지 강력한 오메가-3 지방산인 EPA와 DHA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성분들은 염증을 감소시키고 암과 심장질환, 천식, 자가 면역질환 위험을 낮춘다.
 

두부=

두부 같은 콩으로 만든 식품에는 이소플라본과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있다. 이런 성분들은 몸 속의 염증 수치는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토마토=

염증 퇴치제로 꼽히는 항산화제인 라이코펜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열을 가하면 라이코펜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토마토는 요리를 하면 항염증 특성이 증폭된다.
 

마늘=

연구에 의하면 마늘은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이 생성되는 것을 막는다. 특히 마늘에 열을 가하면 항염증 효과가 증강된다.
 

표고버섯=

신체의 면역반응을 증가시키고 감염을 퇴치하는데 도움이 되는 화합물이 들어있다. 항균성이 있어 암 치료에도 이용되고 있다.
 

호박=

속에서 녹 방지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산화제인 카로티노이드가 들어있다. 이 성분은 세포와 DNA에 손상을 줌으로써 질병의 싹을 만드는 유해산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베리류=

베리류에는 폴리페놀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성분은 대표적인 항산화제이며 항염증제다. 딸기와 블루베리, 아사이베리 등 베리류에 이런 효능이 있다.
 

케일=

항염증 효과가 큰 비타민K가 많이 들어있다. 케일 한 컵 분량에는 항염증 효과가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의 하루 권장량의 10%가 포함돼 있다.
 

아몬드=

생선처럼 항염증 효능이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 또 아몬드에는 비타민E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은 관절을 매끄럽게 하며 염증전구체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비트=

혈압을 낮추고 스태미나를 증강시키는 효능이 있다. 염증을 퇴치하는 효과도 아울러 갖고 있다. 비트에는 베타인이라는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염증 위험을 감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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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심 5000명 발송비

F. Chang

C.Kim

Ki Sung Chu

S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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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10년 동안 발행한 비전통신을

링크한 목록을 제공해 드립니다.

날짜만 클릭하시면 그 날의 비전통신을 열어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2009년 이전의 내용은 바이러스 공격과

웹 서버 관리 부실로 데이터가 손실되어서

소개해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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