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3,  2016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

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그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

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3.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주께 네 영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

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4.

이런 일 다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바울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1.  태어나실 때 헛간의 구유를 빌려 쓰셨습니다,

 

2.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키실 때 보리떡 두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빌렸습니다. 빌립이 어린아이에게 받아서 전해 전해드렸습니다,

 

3.  다락방을 빌려 쓰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3절>

최후만찬 때 된 일인데 마가 복음 14장 15절에 보면 주님을 위해 예비된 큰 다락방이었다고 합니다.

 

4,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나귀를 빌려 썼습니다.<마가복음 11장 7절> 아무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새끼이고 주인이름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5,무덤을 빌리셨습니다,<마27장60절>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산헤드린 공의회의 서기관인데 아무도 장사 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습니다,

 

빌려 쓴 주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자기 형편대로....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실 때 선뜻 내어 드릴 수 있는 그 무엇인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버려두어도 좋은 헛간에 있는 말 구유 통을...

한끼 굶어도 좋을 도시락을...

그냥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는 나귀를...

손님들을 대접하고 수발 드는 기회를...

자기를 위해 예비해둔 귀하고 값진 것을....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언)

 

 

 

 

 

 

 

 

 

 
 
 
 
 
 

 
 

 

 

 

 

 

 

 

 

 

 

밑 빠진 질그릇의 몸 하나 입고 와서

눈으로 창을 삼고 세상 두루 헤맸어도

채울 길 없는 허무의 어둠밖에 없더니.

 

검보다 서슬 푸른 그 말씀 내 가슴에

과녁을 명중하는 화살처럼 박히던 날

미망의 안개는 걷혀 눈부신 빛 보았네.

 

오묘한 법칙으로 만물이 선 이치며

나의 뿌리, 나의 갈길, 역사의 시종까지

그 모두 세세히 밝혀 전해주신 두루마리.

 

저마다 짝이 있어 빠진 것 하나 없는

어느 절 어느 장이 복된 소식 아니랴 만

날 먼저 사랑하셨다는 말씀 귀하고도 놀라워.

 

당신의 피로 값 주고 그분 나를 사셨으니

명예며 자랑이며 세상 재미 다 버리고

나 이제 한 점 흠 없이 남은 날을 서리라. 

 

 

 

 

 

 

 

 

 

 

1. 밑 빠진 질그릇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 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창2:7)

 

2.검보다 서슬 푸른 그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히브리서 4:12)

 

3. 오묘한 법칙

그는 북쪽을 빈 자리에 펼치시고 땅을 허공에 매다시는도다.(욥 26: 7)

 

4.두루마리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왔나이다.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책에 있나이다.(시편 40: 7)

 

5. 저마다 짝이 있어 빠진 것 하나 없는

너희는 주의 책을 찾아 읽으라. 이것들 중에는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하나도 자기 짝 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바로 나의 입이 명령하였고, 바로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 셨음이라.(이사야 34: 16)

 

6. 날 먼저 사랑하심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요한일서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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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정부는 해외 거주 反김정은 세력의 구심점이 될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해외에서 정권 전복 운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로 인해 남북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개성공단 운영 중단을 결정하며 전에 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연한 조치이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때까지 결연한 자세로 밀어붙여야 한다. 개성공단에 우리 근로자가 있는 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 조치는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이미 국제사회의 압박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2014년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최종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반(反)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해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발표하고, 유엔에서 김정은을 ICC(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그런 압박 조치들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김정은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최근 리영길 총참모장 처형 등 김정은 집권 이후 제거한 간부만 해도 140여 명에 달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정권이 바뀔 경우 김정은은 사형을 피할 수가 없다. 즉, 김정은에게 화해나 협력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기를 구제(救濟)할 유일한 방법이 핵과 미사일 개발이라고 판단하고 이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김정은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한반도의 분쟁지역화다. 이를 위해 연평해전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중소규모 도발을 지속적으로 감행하고,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를 시도할 수 있다.

 

일단 분쟁지역으로 국제사회에 인식되면 우리 경제는 단번에 위기에 빠지게 되고, 정부도 대북(對北) 강경책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된다. 여기에 탈북민 출신 지도자급 등에 대한 암살에 성공할 경우 정부에 대한 비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김정은의 노림수다. 

 

김정은 제거가 한반도 평화의 길 

 

정부는 이에 대응해 국내에서 테러가 발생할 경우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해 곧바로 김정은에 대한 참수작전을 시행하겠다고 사전에 발표할 필요가 있다. 테러는 범죄의 증거를 확인하고 범인을 특정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국내에선 천안함 폭침 때와 마찬가지로 남남(南南)갈등이 첨예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사 대응조치가 가능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김정은이 바라는 혼란이 우리나라 사회를 휩쓴 후가 된다. 

 

그렇다면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김정은에 대응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김정은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김정은의 제거다. 앞에서 말했듯이 김정은에게 대화와 협력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정은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첫째, 대북 전단을 공격적으로 활용해 김정은과 2300만 주민들을 분리시켜야 한다.

예컨대 김정은 한 명만 문제이고, 북한 지도부와 군 지휘 간부들을 포함한 나머지 주민들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만들어 북한의 전체 주민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김정은만 제거되면 주민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둘째, 북한 권력층에 대한 분열 전략이다. 이를 위해 우리 측으로 회유할 대상을 정해야 한다. 1차 목표는 북한 권력 서열 5위인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이다. 국가안전보위부라는 조직 자체가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강해 배신이 어려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필자가 북한에서 대중(對中)무역 업무(주석궁 경리부 산하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를 할 때에도 사업상 편의를 위해 보위부 직원들에게 뒷돈을 주기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생리를 잘 아는 편이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는 이런 뇌물이 위계 라인을 통해 상납돼 결국 국가안전보위부장에까지 전달되는 구조다. 

 

즉 국가안전보위부장이라는 자리가 회유와 협상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이런 인사를 매수해 내부 조력자로 만든다면, 김정은의 동선 등 내부 정보가 확보되기 때문에 언제든 참수 작전에 돌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김원홍은 현영철, 리영길 이후 다음 처형 대상은 본인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항상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우리 측에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 

 

北 망명정부 설립하면 

 

셋째, 해외에 북조선국가재건위원회 같은 이름의 북한 망명(亡命)정부를 설립해야 한다. 망명정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반(反)김정은 세력의 구심점이 될 뿐만 아니라, 북한 내(內) 주민들에게 해외에서 정권 전복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망명정부 구성원은 탈북민이 주도할 수 있다. 세계탈북자연맹을 만들어서 영국·프랑스·덴마크·뉴질랜드·스위스 같은 북한의 무장(武裝) 주재원이 없는 지역에 거점을 구축하면 된다.

 

이 망명정부를 중심으로 북한의 반(反)정권 인사들을 규합하고 북한 내부에 협력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북한 관료 및 주민들을 회유해 우리 측 동조자로 유인하기 위해선 역시 북한 거주 경험이 있고 북한에 지인과 친인척들이 있는 탈북민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북한에 작게나마 시장경제의 싹이 돋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마당이 활성화돼 주민들이 장사로 돈을 벌고, 남한의 재력가 같은 소위 ‘돈주’들이 등장하고 있다. TV·라디오·휴대전화를 통한 외부 정보의 유입도 상당하다. 이제 탈북민들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북한 최고위급까지 침투 가능한 상황이다. 

 

조만간 뭔 일이 일어날 수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가만히 있으면 김정은 정권은 절대 붕괴되지 않는다. 김정은은 앞으로 수십, 수백 명을 더 죽여서라도 정권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나서 북한 정권을 흔들고 김정은을 제거하는 작전을 실행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모종의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중단은 일련의 대북 조치 가운데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 발표는 수사적 표현이 아닐 것이다.

 

자국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대거 투입하고 북한 내륙 침투 및 주요 시설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미국의 의지도 대단해 보인다. 언제든 참수작전을 할 준비가 돼 있으니 김정은이 먼저 우리를 도발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우리 탈북민들이 북한 내부를 교란하고 내부 조력자 네트워크를 만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김정은의 손에서 북한 주민을 구원하고 대한민국의 통일을 이룩할 시기가 왔다. 

 

 

 

 

 

 

 

 

 

 

 

 

 

 

 

 

 

 

 

 

 

 

 

 

 

 

 

사병들은 수시로 민가 습격,

지도부는 뇌물로 배를 채우고,  

보급이 끊겨 스스로 무너지기 직전의  거대한 약탈 집단 

 

북한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알려진 경우가 드물다. 북한군과 관련된 내용도 마찬가지다.

 

우리 머릿속 북한군의 모습은 수많은 군인이 로봇처럼 일사분란하게 행군하는 모습, 육중한 탱크부대 도열 모습, 대형 기동 미사일 탑재차량 행군, 굉음을 내면서 불을 뿜는 다연장 로켓 발사 장면, 험산고지를 다람쥐처럼 내달리는 훈련 모습, 최고지도자를 감싸고 울부짖으면서 “충성”을 외치는 모습, 대형 회의장에서 훈장 및 포장을 주렁주렁 앞가슴에 달고 충성을 외치면서 박수치는 군 간부들 모습 등이다. 이것이 과연 북한군의 실상일까? 

 

필자는 2014년 현재 2만7000여 명의 탈북민 중 2000여 명이 넘는 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에게 북한군의 실상 파악을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수기 모집과 인터뷰를 통해 책자를 발간한 경험이 있다.

 

수기나 인터뷰에 응한 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에게 ▲군에 입대하기 전 가정 환경 ▲군 복무 중 담당 업무 및 특이 사항 ▲군 출신으로서 탈북을 결심한 동기 ▲탈북해 오는 과정의 경험 ▲한국사회에 와서 생활한 소감 등 솔직하고 진실된 사실을 담도록 강조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외형만으로는 알 수 없던 다음과 같은 북한군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북한군은 눈만 뜨면 군인을 세뇌병 환자로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김일성 한 명의 우상숭배에 바빴으나 이제 3대 모두를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 만큼 숭배할 내용과 암송해야 하는 내용이 많아져 모든 사생활이 박탈당하고 있다. 

 

지도자 찬양과 적개심 고취를 위한 세뇌병(洗腦病) 환자 집단 

 

남한 및 미국에 대한 적개심 고취 작업도 큰 과업 중 하나다. “불구대천지 원수 미 제국주의” “한반도 만악(萬惡)의 근원 미 제국주의” “미국의 주구 남조선 괴뢰 도당!” 등 대남(對南) 및 대미(對美) 적개심 고취에 온갖 에너지를 다 쏟는다. 북한 군부는 일종의 광신교도 집단과 같이 암송하고 구호를 부르짖으며 세월을 보낸다. 

 

독재국가와 공산권 국가는 지도자에 대한 우상숭배 작업과 적개심 고취 작업을 동시에 실시한다. 북한의 경우 너무 거짓 내용으로 날조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지난 2월 7일 대륙간 탄도탄 발사 실험을 실시하면서 인공위성 실험을 했다고 전 세계인을 향해, 군의 정신교육 등에서 날조된 내용을 교육한다. 

 

북한에서는 한번 날조된 내용이 영원히 고쳐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북한 인민들은 머릿속에 해괴한 인성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장군님을 위하는 길이라면 자나 깨나 수류탄 묶음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 생각만 하고 있습네다”라고 찬양 주문을 암송하고, 매일 예배시간처럼 실시하는 정신교육시간, 곳곳에 부착해 놓은 우상숭배를 위한 찬양 포스터…. 이런 분위기 속에서 12년이란 군복무 기간을 보낸다. 

 

북한군은 반군반도(半軍半盜)적 속성 보유 

 

북한 군인들이 군복 입고 국토를 방위하는 군인 집단인 것은 맞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약탈하는 도둑 집단이다. 경제가 어려워 군에 정상적인 식량 배급이 중단되자 군인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민가를 습격하여 강탈을 일삼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밤중에 민가를 습격하여 돼지, 염소 등을 도적질하고 곡식, 과일, 채소를 약탈하는 것은 북한군의 정상 업무가 되었다. 한 북한군 출신 탈북민의 증언이다. 

 

“부대원들이 겨울을 나려면 ‘월동준비’를 잘 해야 한다며 주변 농장의 옥수수밭은 물론 개인집까지 털어가며 절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른 무력기관들보다는 보급도 잘되고 군사 규율도 비교적 강하다는 호위사령부가 이 지경이니 다른 부대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날 분대장은 자신의 제대 준비를 해야 한다며 신병이었던 나와 한 친구에게 도적질을 명령하고 농장이 있는 민가로 내려 보냈다. 도적질에 서툴렀던 나는 농장 경비원에게 붙잡혔다. 분대장의 명령으로 한 도적질이었는데, 우리는 분대장에게 망신을 줬다는 이유로 한 밤중에 전 부대원이 보는 앞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인정사정없는 몽둥이질에 이리저리 뒹굴며 피를 흘리던 나는 비명마저 못 지르고 오열을 삼키며 심각한 회의를 느꼈다. 배고픔 앞에서는 체면도 양심도 사상도 없었다. 절도와 강도질로 처벌 받아도 막을 길 없는 배고픔에 많은 병사들이 하루하루를 도적질로 연명해가고 있다.” 

 

북한 군인들의 현실은 남한 군대와 전쟁을 하여 필승을 해야 한다는 신념 구비는 그 다음이고, 그날그날 배고픔 해결이 더 화급한 과제가 되어 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농사일, 식량 채집, 도적질에 몰두하는 북한군이 과연 전쟁이 발발하면 어떤 모습으로 전쟁을 할까. 

 

북한은 군인들의 도적질을 권장하는 해괴한 군으로 변모했다. 북한군 출신 탈북민은 “군 생활은 나라를 위한 복무가 아니라 도둑질을 잘 해 노동당 입당과 대학 추천을 받으려는 병사들의 치열한 전쟁터”라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수기를 보면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은 전쟁하기 위해 단련한 기술을 인민을 대상으로 도적질하는 데 아낌없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특수부대 요원들은 밤에 높이뛰기에 사용되는 봉(棒)을 들고 민가에 침투하여 고급 텔레비전이 있는 고위층 거주 주택 2층에 봉을 이용하여 침투해서 물건을 훔친다. 

 

훔친 물건을 장물아비에게 팔아 고기와 양식을 구입하여 부대에 돌아와서 함께 영양을 보충한다. 연말이 되면 도적질한 군인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높게 평가하여 모범 표창을 주는 것이 북한군대의 실상이라고 증언한다. 

북한군은 부하에서부터 상관까지 심각한 도덕적 타락과 기강해이가 만연해 있다. 부하가 상관에게 항명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사소한 일에도 싸우며, 구타와 폭력이 난무한다. 

 

북한군 내부의 도덕성 타락과 기강 해이 

 

한 북한군 출신 탈북민은 자신이 근무한 여단의 한 직속 중대장이 3년 동안 무려 20톤의 중대 식량을 횡령하고 자신의 가족과 호의호식을 하다가 출당, 철칙 되어 교화형(징역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호위사령부 지휘부와 여단 간부들은 대대나 중대에 내려오면 으레 자신들의 차에 무엇이라도 챙겨 실어주길 요구한다고 한다. 아래위가 다 부패한 것이다. 

 

대남 도발을 주도한 인민군 대장으로서 북한군 총참모장까지 역임한 김격식의 기강해이 이야기는 유명하다. 북한 815 기계화 보병여단에 근무한 한 탈북민은 자기가 직접 봤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김격식이 지휘하는 2군단을 시찰한 김정일은 ‘2군단은 김격식이 죽을 때까지 사령관을 할 생각을 하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김정일의 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김격식은 겉과 속이 너무 달랐다. 호화생활을 즐기며 살던 김격식은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고 한다.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권력을 이용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골동품이었다. 

 

김격식 뿐만 아니라 2군단 산하 장군들은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군부대 내에 군인 6명에서 20명까지 ‘골동품 도굴조’를 만들어 골동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을 지명해 조상들의 묘를 도굴하거나, 비무장지대까지 파헤치도록 했다.

 

그렇게 나온 골동품들은 검문을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 선물 차량인 ‘216’으로 시작하는 김격식의 벤츠에 실려 검색도 받지 않고 국경도시까지 운반하여 이익을 챙겼다. 그는 군 생활보다는 골동품 전문 장사꾼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김격식은 여단장 시절 여단 참모장의 부인과 불륜관계를 가졌는데 여단장실에서 문밖에 보초를 세운 채 성관계를 하다가 훈련소 지시문을 전달하러 온 연락병에게 걸려 망신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김격식의 ‘여자 사랑’은 처녀 군인들은 물론이고 가정 주부까지도 서슴없이 진행되어 온 여단에 소문이 크게 났다.” 

 

북한군의 최고위층이었던 김격식의 정신 자세 및 군복무 기강이 이 정도 이니 북한군의 도덕적 해이와 군 기강의 심각함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장군들은 점심시간에 운전병을 문 앞에 경계병으로 세워놓고 부하 여군을 집무실로 데려다 온갖 성희롱을 하는 것도 별 이상할 것이 없는 분위기가 되어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여군이 대개 처녀로서 입대하여 처녀가 아닌 몸으로 제대하는 것이 상례라고 한다. 북한군에서는 상관인 남자 군인이 부하인 여군에게 성 접대를 요구하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한다. 

 

보급부대에서 기름을 타려고 할 때 남자 군인을 보내면 기름 한 방울 타지 못해도 예쁘장한 여군을 보내면 기름통이 넘치도록 기름을 타 온다고 한다. 북한군의 전반적인 기강 해이는 결정적인 시점에 전투력 발휘라는 차원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북한군은 군수·보급품 목록에 등재된 품목이 실제로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원인은 처음부터 보급을 하지 않고 보급한 것처럼 품목을 등재하여 놓았거나, 보급을 받았다가 분실하거나 두 가지 경우라고 한다. 

부족한 군수품과 보급품 

 

북한군도 부대별 장비검사를 한다. 장비 등재 목록에 등재된 장비나 보급품이 실존하지 않는 것은 장비검사를 하는 측이나 받는 측이나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장비검사계획이 세워지면 일단 장비검사를 하는 측이 먼저 수검 부대에 수검 날짜와 주안점을 알려준다.

 

그러면 수검 받을 부대는 인근 부대에서 부족한 장비 및 보급품을 빌려다 채워놓고 검사를 받은 후 돌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이제 북한군에서는 하나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군은 자기 부대의 부족한 장비 혹은 군수품을 보충하기 위해 타부대의 장비나 군수품을 훔치기도 한다. 특수부대인 폭풍군단 60여단(630군부대)에 근무 후 탈북한 한 탈북 군인의 증언이다. 

 

“2010년 2월 초 조장의 생일을 준비하기 위해 습격을 나갔다. 부조장은 중대 ‘반짝이’(도둑질을 잘하고, 협상 능력이 탁월하며, 아부를 잘 하는 병사)인 나와 상급병사 한 명과 함께 조장 생일 준비물을 마련해 오라고 했다. 우리는 인근에 있는 군단 전투식량창고로 접근했다. 우리는 창고 뒤쪽 창문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간 다음 손칼(작은 칼)로 합판으로 된 지붕 위쪽을 뜯어냈다. 

 

창고에 들어가 보니 술을 비롯해 각종 당과류, 쌀, 돼지고기 등이 창고를 꽉 채우고 있었다. 한 잔에서 시작한 술이 두 잔 세 잔으로 이어졌고 우리가 도둑질 왔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그곳에서 술을 먹다가 잠이 들었다. 잠든 우리에게 보초를 서던 병사 4명이 총구를 들이대면서 체포하려고 했다. 우리는 보초들 급소를 공격해 기절시키고 술과 고기를 훔쳐 부대에 복귀하여 조장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기절했던 보초병 중 1명은 사망했고, 함께 식량 창고를 털었던 본인과 동기는 살인죄가 형성되어 노동교화소 3년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변수들은 다수가 있다. 군사인력, 군사장비의 과학화·첨단화, 군수·보급능력, 전략·전술, 지휘관의 지휘능력, 국민들 애국심 및 실천적인 행동력, 동맹국·적대국 관계, 적국의 군사력 등이다. 군의 군수 능력은 그 자체가 전쟁 수행 능력이다. 

 

북한군의 보급 장비 부족, 군 보급품 부족, 부대 운영을 위한 기본 물자 부족 등은 전투력으로서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군인 출신 탈북민들은 만약 북한이 무력 도발하면 마음껏 되받아 치면서 공격해도 북한군의 부족한 군수·보급 상황 때문에 함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한 군인들은 외형적으로는 “충성”을 외치면서 광신교도 같은 태도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상적 요소가 있다고 한다. 북한군 1군단 1사단 2연대 즉, 북한군 특수부대인 폭풍군단 예하부대인 ‘우뢰부대’에서 15년간 전사(사병)와 대대군관(정훈장교) 보직을 맡았던 북한군 출신 탈북민의 증언이다. 

 

허상적 충성심 

 

“나는 장군님의 특전사로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꼈다. 입으로는 매일 같이 ‘충성’을 맹세하지만, 돈의 노예로 전락되어가는 일부 지휘관의 무분별한 관행과 군 생활, 극심한 물자 부족에 의한 군의 무질서와 급격한 전투력 저하 등을 겪으면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심경 변화에 가장 크게 자리한 것은 자유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었다. 야외훈련 시 이동용 라디오, 무선기재, 스피커를 통한 대한민국 방송 ‘불법청취’는 자유에 대한 환상과 호기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특전사의 삶에 회의를 느끼면서 생활도 편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국경경비대로 전출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군단 간부와 보위정치부에 뇌물을 찔러주면서 국경경비대 장교로 출세해 줄 것을 부탁했다.” 

 

북한군에서 오직 북한 체제에 충성을 부르짖는 특전사 군인의 내면적인 심경이 어떤 상태인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례다. 북한 군인들이 외형적으로는 울부짖으면서 충성을 외치고 있지만 허상적인 충성 태도는 유사시에 그들의 총구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북한군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2만8000여 명의 탈북민 중 군인 출신이 2000여 명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북한군 출신들이 자기의 조국을 배신하고 군 복무 시절 적성국이었던 한국으로 온다는 것은 조국에 대해 희망을 잃었다는 이야기다. 

 

 

 

 

 

 

 

 

 

 

 

 

 

 

 

 

 

 

 

 

 

 

 

 

 

 

 

 

 

바둑 한점 둘 때 컴퓨터 2000개 움직여

구글 직원이 결괏값 보고 바둑돌 대신 둬

 

 

이세돌 9단 맞수인 인공지능 '알파고'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국 IT기업 딥마인드가 만든 '알파고'는 실체가 없는 소프트웨어다. 알파고는 대용량 프로그램이어서 일반인이 쉽게 접하는 USB나 CD롬 파일로 변환될 수 없다.

 

구글은 알파고 가동을 위해 현재 컴퓨터 2000여대 분량을 거치며 움직이고 있다. 일종의 초대형 슈퍼컴퓨터가 동원된 셈이다.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바둑 한점을 둘 때 약 1분간의 시간 동안 컴퓨터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 2000대가 동시에 돌아간다.

 

CPU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칩이다. 알파고는 CPU를 여러개 묶은 연산 GPU도 170개가량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연구 1세대인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카이스트 명예교수)은 "알파고에 들어가는 CPU 2000개는 병렬처리 방식으로 작동한다"며 "알파고는 우리에게 익숙한 실물 컴퓨터가 아닌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움직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클라우드인터넷으로 연결 다른 컴퓨터들과 업무를 처리하는 기술로 속도가 빠르고 제어에 효율적이다. 물리적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아 많은 기업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다만 알파고 수준의 대용량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려면 매우 큰 데이터 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구글 알파고를 움직이는 데이터 센터의 규모와 위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영국과 미국에 산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는 "알파고는 슈퍼컴퓨터에 프로그램으로 입력돼 가동되는 중"이라며 "현재 알파고 알고리즘이 공개된 상태로, 알파고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설계지도(오픈 소스)까지 알려지면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알파고 프로그램을 작동하려면 매우 규모가 큰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므로 일반 사용자는 다루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알파고는 형체가 없어 바둑판은 계산해도 바둑돌을 직접 놓을 수는 없다. 알파고는 CPU 2000개를 작동시켜 얻은 착수 지점 결괏값으로 알려준다.

 

현재 이세돌9단과의 대국은 구글 딥마인드 직원 아자황 아마추어 6단 모니터 결괏값을 확인하고 바둑판에 바둑돌을 대신 놓아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이세돌9단은 바둑판을 보며 바둑을 두고, 아자황은 모니터를 보며 응수하는 이색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병원'에 고열에 시달리는 한 30대 남성이 실려 왔다. 의사는 전염성 단핵증, 백혈병, 목 안의 종기 등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며칠간 검사를 반복하면서 처방을 내렸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5일이 지나도록 정확한 원인과 병명을 확인하지 못한 의사는 병원 내 '왓슨 종양내과'로 환자를 보냈다.

 

이곳에서는 IBM 인공지능 수퍼컴퓨터 왓슨이 의사를 대신해 진단한다. 왓슨은 환자의 체온, 통증 부위, 엑스레이 등 검사 결과를 종합해 후보 병명을 추렸다. 그런 뒤 인터넷으로 수백만 편의 논문을 검색해 '급성 혈관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2시간 만에 진단했다.

 

시간을 다투는 질병이었다면 의사는 남성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공지능 왓슨이 인간 의사보다 월등한 진단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다. 슬론케터링 병원 등 미국 내 대형 병원에서 실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의 대결에서 두 판을 내리 지면서 '인공지능 쇼크'가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와 컴퓨터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왔던 지능과 종합적인 판단력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사례가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두뇌를 쓰는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보다 더 확실한 '정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파고가 입증했다. 20수 앞을 내다보는 프로바둑 기사들은 악수(惡手)라고 여겼던 알파고의 수가 40수나 지난 뒤 묘수(妙手)였다는 점을 깨달았다. 알파고의 선택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둑과 같은 게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의료·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전문가보다 월등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1년 첫선을 보인 왓슨은 불과 5년 만에 최고 수준의 의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뛰어난 진단 실력을 갖췄다.

 

미국 종양학회에 따르면 MD앤더슨 암센터 등 5개 유명 병원은 왓슨을 바탕으로 암 진단을 실시해 진단율 정확도 82.6%를 기록했다.

대장암은 98%, 직장암 96%, 췌장암 94%, 방광암 91%였고 자궁경부암은 100%였다. 인간 암 전문의의 초기 오진 비율은 20~44%에 이른다.

 

헤지펀드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 펀드매니저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HFR에 따르면 올해 1~2월 인간 펀드매니저들은 헤지펀드에서 평균 3%의 손실을 냈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한 헤지펀드는 5%의 수익을 거뒀다. 돈을 벌고 싶다면 사람보다는 인공지능을 믿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능가하고 있다는 것은, 지구의 지배자였던 인간이 가장 강력한 상대와 생존 경쟁을 펼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일자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과거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에 비견될 만한 격변의 시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현재 알파고 바둑만을 위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바둑에서 보여준 정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구글은 알파고를 의료 분야와 가정용 로봇 등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공지능의 판단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믿음이 생기면, 그 분야는 인공지능으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라면서 “집을 팔고 사거나 적합한 직장을 정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서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을 사람이 그대로 따르는 맹목적인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일자리 쇼크로 이어질 것

‘인공지능 쇼크’는 ‘일자리 충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아직 시험 단계지만 왓슨의료 자료 분석만이 아니라 환자 문진도 가능하다.

 

예컨대 환자가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콧물’과 ‘두통’을 증상에 추가하는 것은 물론 “콧물이 얼마나 나느냐”고 추가로 물어볼 수도 있다.

 

이는 왓슨이 인간의 자연언어를 이해하고, 그를 통해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도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하면, 많은 의사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맛도 안 보고 새 맛 찾아내는 '셰프 왓슨' - IBM 연구원이 요리사들에게 인공지능 프로그램 ‘셰프 왓슨’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셰프 왓슨은 레시피를 조합, 새 레시피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오른쪽 작은 사진들은 셰프 왓슨이 만들어낸 메뉴들. 위에서부터 ‘생강 맛 토마토 가스파초’, ‘토마토와 모차렐라 타르트’, ‘콩소메를 곁들인 관자’.

 

 

맛도 안 보고 새 맛 찾아내는 '셰프 왓슨' - IBM 연구원이 요리사들에게 인공지능 프로그램 ‘셰프 왓슨’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셰프 왓슨은 레시피를 조합, 새 레시피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오른쪽 작은 사진들은 셰프 왓슨이 만들어낸 메뉴들. 위에서부터 ‘생강 맛 토마토 가스파초’, ‘토마토와 모차렐라 타르트’, ‘콩소메를 곁들인 관자’. /IBM 제공

 

 

일본의 데이터 업체인 UBIC는 각종 법적 분쟁에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관련 메일이나 문서를 모두 조사한 뒤, 증거로 만들어 변호사에게 제출한다. 변호사는 자료를 조사할 필요 없이 인공지능이 넘겨 준 자료만 검토하면 된다. 비서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약사도 인공지능의 위협을 받는다. 미국 UC샌프란시스코 등 5개 대학병원에서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탑재한 로봇이 35만건의 약 처방을 조제하면서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없었다.

 

일부 국가는 사회망 운용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최근 “영국 고속도로에 무인(無人) 트럭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무인 트럭이 등장하면 물류 운송 시스템을 분초 단위까지 정교하게 계획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트럭 운전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매출은 크게 떨어진다.

 

◇감정·창의성도 인간만의 것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창의성이나 감정 등이 필요한 영역에는 진출하기 힘들 것으로 여겼다.

 

요리가 대표적이었다. 인공지능은 맛을 볼 수 없다. 하지만 IBM이 왓슨을 이용해 선보인 ‘셰프(요리사) 왓슨’은 수많은 레시피를 검색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새 레시피를 만들어낸다. 일본 도쿄와 미국 등지에서는 왓슨의 레시피대로 조리해 내놓는 곳도 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지난해 “영국 일자리의 35%가 20년 내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역시 향후 10~20년 안에 미국에서 702개의 직업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서류 작성이나 계산 등 일정한 형식이나 틀로 이뤄진 정형적인 업무는 인공지능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미국에서는 회계사와 세무사 등의 수요가 최근 몇 년 사이 8만명 이상 줄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30년이면 최소한 300만명 이상이 인공지능 상사 밑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김진형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인공지능이 중간 관리자로서 서류 작업과 인력 관리를 맡고, 사람에게는 현장에 나가 서류에 적힌 숫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육체적인 노동만 주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인들처럼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찬반의 상반된 반응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전문가 중 한사람인 에반스 리비어 전(前) 주한 미 부대사는 개성공단 폐쇄가 한국과 미국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을 때 내가 한 질문들에 이메일로 답하며 이 이슈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 정부에게는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협력의 마지막 실낱이자 언젠가 북한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포용정책의 마지막 자취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리비어 전 부대사는 대북 포용정책은 핵무기, 미사일, 도발만 생각하고 한국의 화해를 위한 노력들을 거부하는 북한 때문에 시들어 죽어갔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강력한 조치로 대응하도록 요구하려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개성공단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더라도 이 공단을 통해 매년 1억2000만 달러의 현금이 북한에 쏟아져 들어가고 있고, 한국은 이 돈이 북한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업자 5만5000명 떠안은 북한 

 

리비어 전 부대사는 “개성공단 폐쇄가 영구화되면 북한은 한국에 터무니없는 액수의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은 이번 결정으로 어려움에 처해졌다. 5만5000명이 넘는 새로운 실업자들을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북한 엘리트의 자녀들이거나 북한 정권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고 개성공단에 일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리비어는 “그들의 지도자들이 만든 정책 때문에 이들은 지금 소득, 생계수단, 양질의 삶에 대한 보장을 잃어버렸다”며 “김정은 정권이 북한 엘리트들의 충성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은 이들의 불만을 키우고, 더 나아가 일부에게는 절망을 안겨줬을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개성공단 폐쇄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그 영향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광범위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선, 개성공단의 폐쇄로 리비어 부대사는 김정은이 자신의 아버지 김정일의 막내 여동생과 결혼한 장성택을 비롯, 최근 이영길 인민군 총참모장 등을 처형한 후 북한에는 불확실함이 증폭해 있다고 봤다.

 

그는 “북한 정권은 이번에 인민군 총참모장을 처형하면서 북한 엘리트들에게 엄중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북한 고위층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일 당신이 북한 고위 지도층의 한 멤버인데 김정은의 테러통치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심지어 김 씨 가족 구성원과 고위 군 장성, 당 간부 등 가장 충성스런 지도층마저 처형하는 것을 본다면 이 시점에서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은 최근 핵과 미사일 실험을 축하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김정은의 이 통치 방식으로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인 북한 정권의 미래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오산에서 미 공군으로 복무한 후 프린스턴대에서 공부하고 국무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리비어 전 부대사는 개성공단 폐쇄 후 다음의 후속 조치를 제안했다. 

 

 

 

북한의 금융거래 동결시켜야 

 

“지금은 무엇보다 북한 정권의 재정, 은행, 외국자산, 금융거래 등을 겨냥한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정책들이 필요하다. 이 정책들은 김정은이 북한 고위층을 자신의 편에 두기 위해 사용했던 현금, 사치품, 근사한 삶에 대한 약속 등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북한 지도층의 김정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흥미로운 일들이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기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리비어의 견해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톰 피난스키는 개성공단 폐쇄는 예상했던 일이지만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개성공단 폐쇄가 한국에 좋은 입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고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밝혔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하지만 남북한 모두 정말 완고하다. 그래서 이것이 곧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북한 교착 상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올해 새로운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와 내년에 새로운 한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는데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은 이 선거 후에도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누가 선거에서 승리하든 개성공단 폐쇄와 그 의미에 대한 리비어 전 부대사의 해석은 내가 들었던 설명 중 가장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북 포용정책’이 실패해 북한은 비용이 많이 들고 파괴적이며 적대적인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데 왜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돈을 퍼줘야 하는가?  

 

 

원문:

 

Ex-U.S. Diplomat Defends Closing Kaesong: ‘Seoul Had No Choice’

 

The closing of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inspires both applause and criticism among Americans, as it does among Koreans. One of the more knowledgeable American experts, Evans Revere, a former senior diplomat at the American embassy in Seoul, summarized the issues in an email in response to questions that I asked him as the news was reverberating in Seoul and Washington.

 

"Shutting down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was a tough call for the RoK government" he wrote. "Kaesong was the last remaining thread of North-South cooperation.  It was also the final vestige of a policy of engagement that once held out hope for the transformation of North Korea."

 

Nonetheless, Revere frankly acknowledged the engagement policy "had largely withered away in the face of Pyongyang's single-minded pursuit of nuclear weapons, missiles, and provocations, as well as the North's rejection of the South's efforts at reconciliation." 

 

His conclusion:

"Seoul had no choice but to end the project if it expected its calls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adopt strong measures in response to North Korea's nuclear and rocket tests to be taken seriously. And Seoul was faced with the fact that, however well-intentioned the project may have been, it was pumping over $120 million in cash each year into North Korea and Seoul had no control over how those funds were used by Pyongyang."

 

With the suspension of activities "likely to be permanent" Revere predicted, North Korea will "demand that the RoK pay exorbitant 'compensation' for the shutdown." Yes, North Korea would suffer as a result. "The North Korean regime is now saddled with more than 55,000 newly unemployed workers" he observed. They "were largely the sons and daughters of the elites and who had been carefully vetted by the regime in order to be allowed to work at Kaesong."

 

As Revere noted, "Their incomes, livelihoods, and guarantees of a good life are now gone, thanks to the policies of their leaders." Considering that "the regime of Kim Jong-un depends greatly on the loyalty of the North Korean elites" he said, "the RoK decision to close Kaesong will certainly create a degree of disgruntlement, and perhaps even despair, among some of them."

 

What do we already know about the implications of the closure of Kaesong. The ramifications are likely to be long lasting and far reaching.

 

For starters, now that Kaesong's shut down, Revere perceived uncertainty in Pyongyang in the wake of reports of the execution of the army chief of staff, General Ri Yong-gil, on top of scores of other executions, notably those of the defense minister and, most famously, of Jang Song-thaek, Kim Jong-un's uncle by marriage to the younger sister of his father, Kim Jong-il. 

 

The regime "has just sent an ominous message to the elites by executing yet another general -- this time the chief of staff of the Army" Revere wrote. Here's how he explained the dilemma facing high-level North Koreans:

 

"If you are a member of the North Korean elite and you see that Kim Jong-un's reign of terror is showing no signs of slowing down and that even the most loyal elements of the leadership (including Kim family members and senior military and party officials) are being killed, you have to be thinking of a 'Plan B' at this point. Pyongyang may be in the midst of celebrating its recent nuclear and missile tests, but behind the celebratory facade, the leadership's policies may be undermining the one thing that North Korea values most highly, the future of the regime."

 

Revere, who served in the U.S. Air Force at Osan, then went to Princeton before joining the State Department, recommends following up decisively on the Kaesong shutdown:

 

"Now, more than ever, a policy approach by the U.S. and others that targets the regime's finances, banks, foreign exchange holdings, financial transactions, etc., can undermine the things that Kim Jong-un uses to keep the elites on side: cash, luxury goods, and the promise of a decent life.  Once the confidence of the elites is rattled, interesting things may start to happen inside North Korea."

 

Revere's view, though, is by no means unanimous.

 

"Predictable but very sad" was the assessment of Tom Pinansky, long-time lawyer in Seoul. Pulling out of the Kaesong complex "does not put South Korea in a better place" he emailed to me, but "let's see how the drama unfolds. "Both sides, he said, are "really stubborn, so I suspect this will go on for a while."

 

No one doubts that a prolonged standoff is likely. Americans and Koreans will be debating the Kaesong shutdown long after the election this year of a new U.S. president and the election next year of a new president of South Korea. No matter who wins, however, Revere's comments amount to the best exegesis I've seen of the Kaesong shutdown and its implications. 

 

Why keep pumping money into North Korea via Kaesong, the argument goes, when "engagement" has failed and North Korea shows no signs of giving up its costly, destructive, hostile nuclear program?  

 

 

 

 

 

 

 

 

 

 

 

 

 

 

 

 

 

 

 

 

 

 

 

 

 

 

 

 

 

 

 

 

 

전 영부인 낸시 레이건의 초상화 시미 밸리, 캘리포니아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주요 입구의 문을 장식합니다.  장례식은 도서관에서 금요일에 개최됩니다

 

 

 

 

 



 

 

This December 9, 1988, shows President Reagan and Nancy Reagan holding hands as they go out to greet the Bushes and the Quayles after election day at the White House
 

 

 

 

 

 

 

 

 

3월11일(2016년)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in Simi Valley, north of Los Angeles) 에서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

(Nancy Reagan, a former Hollywood actress and first lady) 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장례식에는 가족과 친척, 전·현직 미국 대통령 가족 등

조문객 1000여 명이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딸 캐럴라인 케네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딸 트리시아 닉슨,

린든 존슨 전 대통령 딸 린다 버드 존슨과 루시 베인스 존슨 등이

전직 대통령 가문을 대표해 장례식에 참석했다.

 

레이건 정권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에드윈 미즈와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부부,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 대표,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 정치인도 조문했다.

 

유명 앵커 케이티 쿠릭·래리 킹, 록 밴드 '비치 보이스'의 보컬이자 영화배우 마이클 러브,

 방송 작가 노먼 레어, 영화배우 보 데렉·톰 셀렉 등 유명 인사도 장례식장에 다녀갔다.

레이건 여사 생전에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 가수 조니 마티스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장례식 조사는 레이건 대통령 부부의 두 자녀와 레이건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제임스 애디슨 베이커 3세 등이 했다.

 

아들 론 레이건(Reagan's son, Ronald Prescott Reagan )은

레이건 여사가 남편인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안내와 쉼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레이건 여사가 아니었다면 레이건 전 대통령도 없었을 거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 부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첫해 크리스마스에

레이건 여사에게 보냈던 편지를 읽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편지에 레이건 여사가 그의 삶을 따뜻함과 사랑으로 채웠다고 썼다.

 

장례식이 끝나고 레이건 여사는 도서관 부지에 안장된 레이건 전 대통령 옆에 묻혔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사망했다.

 

지난 3월9-10일 레이건 여사의 관이 기념도서관에 안치됐을 때는 4500여 명이

이곳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The Power of Love(사랑의 힘)-line Dion(셀린 디온)


조가를 대신해 이 노래를 함께 듣기로 합니다.

 

 

 

 

 

 


 


 

California Gov Jerry Brown, First Lady Michelle Obama, former President George W Bush, former First Lady Laura Bush, Former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former First Lady Rosalynn Carter and Caroline Kennedy sat in the front row (left to right) as former First Lady Nancy Reagan's casket was brought in for the service on Friday
 


 

California Gov Jerry Brown and First Lady Michelle Obama took a seat alongside former President George Bush, former First Lady Laura Bush, and former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in the front row of the service



 

Former Secretary of State James Baker was one of many to reflect upon Nancy Reagan's life at Friday's funeral


 

Anne Peterson, Reagan's niece, spoke at the funeral before a love letter from Ronald Reagan to Nancy was read by former Canadian prime minister Brian Mulroney


 

레이건 여사는 1981~1989년 영부인이었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약 퇴치 캠페인 '저스트 세이 노(Just Say No)' 캠페인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Patti Davis, the daughter of Reagan, described her turbulent relationship with her mother and their undying love in devastating fashion at the funeral service
 

 

패티 데이비스, 레이건의 딸(Patti Davis, the daughter of Reagan)
 

 

 

Reagan's son, Ronald Prescott Reagan, also spoke at the funeral and described the unbelievable love and support his parents had for one another
 

 

레이건의 아들 로널드 프레스콧 레이건(Reagan's son, Ronald Prescott Reagan)

 


 

Ronald Reagan Jr takes a moment to shut his eyes while touching his mother's casket following a remembrance at her service
 


 

Michelle Obama attended the service without her husband, as Barack Obama had a prior engagement speaking at SXSW in Austin, Texas
 


 

Former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is taking a break from the 2016 presidential campaign trail to attend the funeral. Former president George Bush sat in the front row with Clinton
 


 

California Governor Jerry Brown (left), first lady Michelle Obama (second left), former President George W. Bush (third left) and former first lady Laura Bush (right) leave after the funeral of Reagan


 


 

A love letter from Ronald Reagan to Nancy was read at the service by former Canadian prime minister Brian Mulroney


 

 


 


 

Television journalist Tom Brokaw was one of many to speak at Reagan's funeral. Others included Reagan's children and other journalists


 

The casket of former US First Lady Nancy Reagan is carried by pallbearers to her gravesite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An honor guard moves the casket for a graveside service for Nancy Reagan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on Friday


 


 

A military honor guard carries the casket and is followed by Nancy Reagan's son Ronald Prescott Reagan, and daughter Patti Davis


 


 


 

 

Ronald Reagan Jr (left) and Patti Davis (right) leave to pay their final farewells to their mother, following the touching service service 


 


 

Family members surround the casket after attending the funeral services for former first lady, Nancy Reagan, on Friday


 


 

First lady Michelle Obama (right) greets Ron Reagan Jr during the graveside service for Reagan on Friday morning in Simi Valley


 


 

Patti Davis, center, greets first lady Michelle Obama, as Ronald Prescott Reagan, right, looks on during the graveside service for Nancy Reagan


 

 

Former first lady Rosalynn Carter (center) greets Patti Davis as she and former first lady Hillary Clinton (right) pay their respects at the casket
 


 

Family and close friends pause at the casket during the graveside service for Reagan following the larger service
 


 


 

Former President George W Bush and his wife Laura wait to pay their respects with first lady Michelle Obama during Reagan's funeral


 


 

Former Canadian prime minister Brian Mulroney pauses at Nancy Reagan's casket at her gravesite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Former US First Lady Laura Bush (left) and President George W Bush (right) arrive for the funeral service in Simi Valley on Friday

 


 

Former Canadian Prime Minster Brian Mulroney and his wife Mila look on during the Reagan's funeral service on Friday

 


 

Ron Reagan Jr and Patti Davis watch as the casket is laid to rest during funeral services for their mother, former First Lady Nancy Reagan

 


 

Ronald Reagan Jr blows a kiss to his mother's casket as his sister, Patti Davis, looks on, following Nancy Reagan's funeral


 

로널드 레이건 주니어, 그의 여동생 패티 데이비스가 어머니를 마지막 보내고 있다.


 

Former California Governor Arnold Schwarzenegger and his wife Maria Shriver wait to pay their respects to Reagan on Friday


 


 

People wishing to pay their respects wait in the rain during the graveside service for Nancy Reagan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Newt Gingrich, former speaker of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 and his wife Callista arrive for Reagan's funeral on Friday morning


 


 

Former California Governor Pete Wilson arrives for the funeral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in Simi Valley, California

 


 

Larry King's wife Shawn King reacts to a fellow funeral attendee as they make their way to their seats ahead of the start of funeral services on Friday morning


 


 

Katie Couric and her husband, John Molner, make their way to their seats for the service with approximately 1,000 other guests


 


 

Bo Derek was in attendance at the funeral services among approximately 1,000 guests


 

Funeral attendees make their way through a hallway to the tent in which Reagan's funeral services are being held on Friday morning


 


 

Melissa Rivers makes her way to the Presidential Lbrary for the funeral ervice for former First Lady Nancy Reagan on Friday morning


 

Anjelica Houston makes her way to the Presidential Lbrary for the funeral ervice for former First Lady Nancy Reagan on Friday morning


 

US Democratic Representative from California, Nancy Pelosi (left) and her husband, Paul Pelosi, find their seats ahead of Reagan's funeral


 

Johnny Mathis also attended the service


 



 

Actor Gary Sinise makes his way to his seat near the US Marine Corps band, which is playing a performance at the funeral service


 

Former California Gov Arnold Schwarzenegger arrives for the funeral service, where he sat with his wife, Maria Shriver. The service is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in Simi Valley, California


 

Blaine Trump and Steve Simon attended the funeral in Simi Valley, California, together


 


 

Larry King and his wife Shawn King make their way to their seats at Reagan's funeral services on Friday morning


 

 

 


 


 

Actors Mr T and Gary Sinise take their seats together at former First Lady Nancy Reagan's funeral on Friday morning


 

Mr T, donning camouflage gear and an American flag bandanna, was stopped outside the funeral service and searched by guards


 

It is unknown if Mr T was the only guest searched or if other guests were searched by security before the funeral as well


 

Opera singer Ana Maria Martinez sings Ave Maria during the funeral service for Nancy Reagan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Funeral services for Reagan are are taking place at her late husband's presidential library in Southern California on Friday


 

 


 


 


 


 


 


 


 


 

Reagan's funeral services cap two days during which thousands of mourners filed past her flower-bedecked casket as she lay in repose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The armed forces body bearer team move the casket of Nancy Reagan out of the public viewing area at 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on Thursday



 


 


 

Sea Cadets from Bakersfield, California, greet invited guests at former first lady Nancy Reagan's funeral in Simi Valley, California, on Friday


 

 

 

Close relatives from ten White House families - from Caroline Kennedy to first lady Michelle Obama - are expected to attend the services for Reagan


 

그들은 모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떠났다.


 

 

 

 

 

 

 

 

 


 

 

 

 

 

 

 

 

 

 

 

 

 

 

 

 

 

 

 

 

 


 

 


 

 


 


 

 

 

 

 

 

 

 

 

세기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의 바둑 대결에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그 대상이 인공지능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바둑을 모르는 제가 미국 서부 시간으로 새벽 두 시까지 관전했겠습니까?

 

다섯 번 싸워야 하는데 이세돌 9단은 세 번을 내리 인공지능에게 패했습니다. 인간의 자존심도 자존심이었지만 당사자인 이세돌 9단의 심정은 말 할 수 없이 착잡했습니다. 그런데 네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승리했습니다. 세계는 인간의 승리라며 흥분했습니다.

 

승리의 대국이 끝나자 참관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일어나 축제분위기에 들떴습니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은 미동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전문 동료기사를 부르더니 복기(復碁)를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약한 수를 되 집어 보면서 실패 할 뻔한 패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겼다고 두 손을 번적 들고 환호에 답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승리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의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바둑을 거꾸로 두어 보면서 말입니다.

 

 

 

 

기사(棋士)들은 복기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300알이나 되는 바둑 알을 거꾸로 기억하며 복기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의미 있는 돌]을 놓으면 복기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바둑판 위에 돌을 놓을 때 그 돌을 그곳에 두는지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두면 복기는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평균 300여수에 달하는 바둑의 복기는 단순히 돌의 순서에 대한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돌이 갖는 [의미의 연결]로 구성될 때 즉 [ 의미 있는 것] 만 살아남는다는 뜻입니다.

 

[의미 있는 것들만 살아남는다는 것]. 이것은 바둑판에만 국한된 법칙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생살이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인생이란 거대한 바둑판이요, 우리가 사는 매일 매일은 그 바둑판 위에 두어지는 돌과 같기에, 얼마나 살았느냐에 상관없이 결국엔 [의미를 지닌 날]들 만 살아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장수의 참된 개념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00년이란 긴 세월을 산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일생이 아무런 의미 없는 날들의 누적에 불과하다면 그는 결코 장수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둔 신생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30대의 젊은 날에 세상을 떠났다 할지라도 30여 년에 걸 친 그의 생애가 [의미 있는 날들의 집합]이라면 그는 절대로 요절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참된 의미의 장수는 자연날수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날]의 길이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60세가 넘어 주님을 영접한 한 성도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나름대로는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그분은 아직도 정년이 더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직에서 은퇴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고서 자신이 살아온 60평생을 되돌아보니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주님, 나는 60년 동안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빈손을 들어 주님 앞에서 복기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은퇴를 하고 [의미 있는 여생]을 살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비록 60이 넘었을망정 지금부터라도 진리 안에서 [의미 있는 날]들을 자신의 인생 판에 매일 매일 두기로 한 것은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30여 년 동안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집밖을 나선 것은 오래 전 여동생이 결혼하던 날, 그리고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거의 유일하였습니다. 밥도 자기 방에서 혼자만 먹었습니다. 물론 결혼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같은 아들을 둔 아버지는 아들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 놈이 방안에 틀어 박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동안 수천 권의 책을 독파하여 동서고금의 철학과 문학에서부터 천문 지리에 이르기까지 입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며 자위하곤 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수천 권에 이르는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사람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지식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할지라도 그 방에서 나오지 않는 한, 방안에서라도 그 지식을 타인과 나누기 위하여 논문이나 수필 한편이라도 남기지 않는 한, 그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삶이란 [바둑판과 무관한 바둑돌]과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 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인은 운동부족으로 인한 장기 손상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방에서 남을 위한 것이라곤 종이 한 장 없었습니다. 그는 그와 같은 자신의 삶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지만, 설령 깨달았다 해도 그는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할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죽었으니까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언제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복기할 수 있는 삶]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내 삶을 복기하려 해도 복기할 거리가 하나도 없다면 그보다 더 황당한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온 인생 판에서 [무슨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한 주간을 살아왔다면 그 한 수 한 수에는 참된 의미가 있었는가? 그 중에 먼 훗날까지 그 의미가 소멸치 않을 [참된 수]는 과연 몇 수나 될까? 이제껏 살아온 자기의 전 인생을 놓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과연 몇 수까지 스스럼없이 복기할 수 있을까?

 

바둑이든 인생이든 [의미 있는 것]만 살아남습니다. 복기할 수 없는 인생이라면 이미 의미를 상실한 인생이기에 그보다 더 허망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 기분 내키는 대로 욕구를 좇아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의미 있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일까 깊이 생각 는 절기라고 생각됩니다. (장재언)

 

 

 

 

 


 

 

 

 

 


 

 

 

 

 

 

 

 

 

 

 

 

 

 

 

 

 

 

 

 

1.자신의 약한 참모습을 바로 본다.(고전1:26-31)

2.적은 것으로도 감사한다.(요12:37-50)

3.하나님 앞에서 항상 마음이 겸손하다.(사57:15)

4.자신이 죄인임을 늘 깨닫는다.(롬3:23)

5.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으로 산다.(합2:4)

6.어린아이의 심령같이 순수하다.(마18:3)

7.항상 하나님을 찬양한다.(눅1:46-48)

8.항상 자신을 부인하며 포기한다.(눅9:23)

9.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다.(시42:1)

10.천국을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다.(골3:1-2)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다니며 복음성가 가수로 널리 활동하던 빌 만(Bill Mann)의 생애에 잊지 못할 기억이 있었다고합니다.

 

어느 날 복음성가 공연을 은혜와 감동 가운데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그곳에 한 여인이 그녀를 안내하는 분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귀머거리요 벙어리요 소경인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빌 만(Bill Mann)에게 마지막에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가 공연 중 마지막에 불렀던 노래는 '거기 너 있었는가' (Were you there)였습니다.

그는 기꺼이 다시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여인은 벙어리요 귀머거리였기 때문에 손가락을 말하는 사람의 입술과 성대에 대고 떨림으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 만은 바로 그 여인 앞에서 그 여인의 손을 입에 대게 하고 다시 한번 찬양을 했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그러자 그 여인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되풀이 해서 말하였습니다.

 

옆에서 통역하는 분이 말합니다.

"I was there!"

"I was there!"

"I was there!"

"나는 거기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그 유명한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였습니다.

 

거기 너 있었느냐?

"아무도 없었다"는 비통한 이 찬양에 헬렌 켈러는 고백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니요, 나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나는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는...

나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한마디 눈물의 고백을 드리고 싶어서 헬렌 켈러는 공연이 끝난 뒤 이곳을 찾아 다는 것입니다.

 

" 나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가 죽을 때 그리고 살아날 때 나는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나는 한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이제 성령의 인도를 얻었습니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같이 시공(時空)을 뛰어 넘는 영적 체험을 현실로 느끼며 고백하는 사람들을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과 고난 주간은 내가 곧 갈보리 십자가 현장 바로 거기 너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주간입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현실의 내 삶의 현주소이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지금 내 삶이 살아지고 있어야 합니다. (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대화하기 위해

그의 입술에 손을 대고 있는 헬렌 켈러

 

 

 

 

점자 책으로 독서하는 헬렌 켈러

 

 

 

 

 

헬렌 켈러는 점자 책을 늘 가까이 하며 세상을 익혔다.

 

 

 

 

 

젊었을 때의 헬렌 켈러

 

 

 

 

노년기의 헬렌 켈러

 

 

 

 

 

 

 

 

 

 

 

 

 

 

 

 


 




 

 

 

 

 

 

 

 

 

 

 

 

졸음을 몰아 내는 방법?

졸리면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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